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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64화 (64/325)

# 64

그건 회사 일이고요

“자...뭐가 궁금하십니까.”

생맥주가 나오기가 무섭게 파리처럼 두 손을 비비며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듯 안낙현이 물었다.

호프집이었다.

어느새 나보다 회사 근처 맛집, 분위기 좋은 술집을 더 많이 알아놓은 안 대리.

회사 근처에 미모의 여성들이 자주 출몰하는 술집이 한 군데 있다며 그곳으로 가서 눈까지 즐겁게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호프집에 들어서면서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의 상태부터 확인하던 안 대리.

정말 못 말린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안 대리를 상대로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는 술자리였다.

나 역시 살짝 분위기를 맞춰주며 장난을 치다가 생맥주 두 잔이 안주보다 먼저 나온 시점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어떠셨습니까?”

“뭐가요?”

“내부 고발자...”

이 부분은 꽤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그 이미지를 안고 회사 다니기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

“음...글쎄요, 인정하니까 편해지더라고요.”

입술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아내며 안 대리가 말했다.

“사실이잖아요. 내가 그런 걸 한 적이 없는데, 안 한 일을 가지고 오해를 받는 거라면 몰라도, 제가 한 일이라 불편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정말 멘탈갑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대답이었다.

그동안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알고 있다.

비록 말은 저렇게 하지만, 결코 쉬운 상태가 아니었다는 걸.

사내 식당에서 안 대리가 앉아 식사를 먼저 하고 있으면 특히 해외 사업부 직원들은 일부러 그곳을 둘러갔다.

그것도 그냥 요령껏 둘러가는 게 아니라 저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표정, 눈빛으로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하면서.

눈치가 빠른 인물이다.

그런 안 대리가 그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리는 없고.

어디 그 뿐인가.

한 번은 안 대리와 함께 영업 지원부에 인보이스 관련 수정 요청을 하러 내려갔던 적이 있는데, 마침 그 엘레베이터 안에서 해외 사업부 노 차장과 마주치는 일이 있었다.

안 대리를 향한 노 차장의 노골적인 비아냥은 괜히 옆에 있던 내가 다 기분이 나쁠 지경이었고, 거기에 한 마디 하려고 하던 날 은근한 미소로 말리던 안 대리의 표정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으니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런 부분은 안 대리님한테 배울 게 참 많네요. 하하하.”

“배우긴요. 그냥 찌질했던 찐따가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정신 승리 하고 있는 중입니다. 팀장님은 애초에 저같은 상황을 만드실 분이 아니니까 그런 걱정 하지마세요.”

“중국 법인...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건 저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시겠죠. 지금 회사가 이렇게 시끄러운데.”

“그런 곳에서 어떻게 버티셨습니까?”

“버티다니요?”

“듣자하니 언더 더 테이블을 안 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라고 하던데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거기에서도 분명 제대로 된 직원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총대를 매실 생각을 하셨던 겁니까?”

“무서웠거든요.”

“무서웠다...”

“네, 무서웠습니다. 무서웠고, 또 제가 불안한 입장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그곳 책임자들을 엿 먹이고 싶었죠.”

“불안한 입장에 처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단 말은...혹시 뭐 너 이거 안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이런 식으로 은근한 압박을 가했단 말인가요?”

“에이, 그런 압박이야 얼마든지 견디죠.”

“...?”

“저라고 깨끗했겠습니까?”

“그럼 뭐 안 대리님도 언더 더 테이블을 하신 적이 있단 말씀이세요?”

맥주 한 모금으로 입안을 적셔놓고 안 대리가 대답했다.

“결론은 예스, 하지만 과정은 노...입니다.”

“결론은 예스, 과정은 노?”

“모르고 했습니다. 그게 그런 건줄 알았음 분명 안했을 거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모르고 했다는 게...”

“네, 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고발을 할 수 밖에 없었고요. 저...그렇게 정의로운 사람 아닙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푸하하하...”

그나마 농담이 먹혀들어 천만다행이지, 안그랬음 무거운 분위기로 계속해서 뭔가를 추궁하는 장면이 이어질 것 같았다.

“누굴 탓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어쨌든 주재원 근무는 제 결정이었고, 또 동기보다 빠른 승진을 하고 싶었던 야망이 초래한 결과니까요. 신입 때 했던 주재원 근무 신청...사실 딱히 저한테는 큰 메리트가 없는 거였어요. 중국 생활을 오래 해봐서 누구보다 중국이란 곳을 잘 알고 있고, 또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싶어서 부모님 다 계시는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취직을 했던 저였으니까요.”

“흐음...”

“그런데 현지 본부장, 당시 해외 사업부 차 과장이 절 좋게 봤었죠. 이건 사실 영업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 입니다.”

“...네.”

“그때 막 본부장이 본부장 타이틀을 달고 중국 주재원으로 가는 게 확정이 난 상황이었거든요. 자기 따까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었겠죠. 거기다 주재원들이라고 어디 다 중국어가 저만큼 되겠습니까? 현지 사정을 저만큼 빤히 아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저한테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뒤에서 힘을 써줄테니 지원만 하라는 겁니다.”

“아, 그런 그림이 있었군요.”

“그런 게 없었음 무슨 수로 입사 1년 짜리 쌩신입이 그 경쟁률 높은 주재원 근무에 합격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야 어느정도 미스터리가 풀리는 거 같았다.

“이것저것 막 설탕발린 약속들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설탕발린 약속들 때문이 아니라, 그나마 중국은 저한테 만만한 곳이라 설렁설렁 4년만 들어갔다 오면 팀장 타이틀을 약속해주겠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죠. 어쨌든 본사에 있는 것보다는 인정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요.”

“그렇죠. 일단 언어랑 현지 돌아가는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을테니.”

“그런데 그런 완벽한 기회 속엔 항상 함정이라는 게 숨어있더라고요. 그때 전 그런 걸 몰랐고.”

“함정이요?”

“자, 입사 1년 갓 넘어 대리를 달았어요. 그리고 현지 본부장 따까리로 넘어갔죠. 대리지만 꽤 파워가 있었단 말이죠. 그러다보니 타이틀과는 상관없게 맡게 된 프로젝트들은 하나같이 스케일이 제법 나오는 것들이었거든요. 근데 정상적으로 대리를 단 것도 아니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타이틀만 잡고 있었던 제가 그 스케일 큰 프로젝트들을 무슨 수로 다 파악하고 또 소화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건 안 대리 말이 맞다.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도 막상 승진이 되면 하던 업무의 밀도가 달라져서 애를 먹는데, 중간 단계를 다 스킵을 하고 올라갔으니 얼마나 헷갈리는 게 많았겠나.

직접 해본 건 아니지만, 안 대리의 주재원 근무 초창기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사인을 하라고 하는데...분명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이에요. 그리고 그 글엔 자신이 있었죠. 한글, 한문, 영어...다 볼 줄 아니까. 하지만 그 글의 내용 앞에선 까막눈이 되는 거죠. 본부장이 얼른 사인에서 올리라고 하니까 그냥 하면 되는가보다 하고 올린 게 나중에 보니까 제 이름으로 언더 더 테이블을 했던 거더라고요.”

“아!”

“그런 게 몇 개나 있었어요, 제 법인 생활 초창기에.”

“그땐 몰랐나요?”

“모르죠, 이건 제가 했던 실수를 부인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모릅니다. 알 수가 없어요. 본사에서 밀어넣는 프로젝트가 계속 쌓이는데, 이미 사인하고 넘긴 프로젝트를 복습하듯 다시 꺼내 확인할 겨를은 없으니까요.”

“그건 또 그렇겠네요.”

“그런데 제가 아동복 관련 프로젝트를 스스로 기획하는 단계, 그러니까 그정도 실력이 올라온 뒤에는 알겠더라고요. 이전에 제가 제 사인을 넣었던 프로젝트들이 어쩌면 잘못된 것들일 수도 있겠다는.”

난 테이블 위로 팔짱을 낀 채 맥주 한 모금을 마셨고, 안 대리는 꽤 단단해진 표정으로 당시 자신이 했던 실수 모두를 인정하며 말을 이어갔다.

“마진 베이스들이 하나같이 조금씩 이상한 겁니다. 제가 분명 한국 업체와 이야기해서 따온 마진은 82퍼센트였어요. 그런데 그걸 77퍼센트로 하향 조정해서 올리라고 하더라고요. 회사 입장에선 그 5퍼센트가 사라지는 거 아닙니까. 그때 눈치를 깠죠. 그리고 예전에 제 사인이 들어갔던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국 업체들과 접촉해서 기본적인 마진 베이스를 따져봤죠. 언더 더 테이블이었더라고요.”

“소름이네요.”

“소름이죠. 제 프로젝트니까. 물론 난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는 말은 절대 못합니다. 왜?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성과급은 받았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그걸 가지고 너도 공범이다...로 몰고 가더라고요.”

“정말 썩을대로 썩었군요.”

“무서웠습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이해합니다.”

“학교 다닐 때...우리끼리니까 이런 표현 쓰더라도 좀 이해해주십시오.”

“편하게 하세요.”

“학교 다닐 때 전 좆밥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좆밥. 범생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잘나가는 일진도 아닌, 그 일진의 무리속에 끼고싶어하는 좆밥.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별 것도 아닌 놈이 잘나가는 애들 사이에 어떻게든 끼어서 같이 잘나가는 척 하는.”

“그런 친구들 꼭 있죠.”

“제가 그랬어요. 이리저리 눈치는 빠삭한 거죠. 잘나가는 애들 기분도 잘 살폈고. 하하하...그런데 그거 이제 그만하고 싶더라고요.”

“...”

“아버지 따라 중국 넘어가서 다시 왕따 비슷한 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 그러면서 제 얼굴에 가면이 씌워집니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혼자라는 사실을 부모님께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밝은척 까불고 말 많이 하고...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가족들한테 들킬 것만 같았거든요.”

“흐음...”

“이번에 법인에서 그 사단이 터지고 또 제 얼굴에 가면이 씌워지더군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왜 난 이런 가면 없이는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서지 못하는가...그런데 결론은 그런 가면이 필요한 것 역시 저란 사람이더군요. 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금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일 수도 있는데...비록 가면은 계속 쓰더라도 그 가면 뒤에 숨어서 또다시 도망이란 걸 가고싶지는 않더라고요.”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럴 때가 많죠. 아니, 그건 어쩌면 안 대리님만 그런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런가요? 아무튼 전 그랬습니다. 회사를 그만 둘 생각으로 정면 돌파를 해보자. 뭐 회사 그만둘 생각하니까 딱히 무서울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 이름으로 행해졌던 언더 더 테이블들의 모든 정황을 수집해서 본사 감사팀에 넘겨버렸습니다. 그리고 지켜보는 거죠. 날 어떻게 하나. 회사가 저에게 어떤 처분을 주는가가 궁금한 게 아닌, 절 그렇게 몰고간 사람들이 절 어떻게 대할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절 살려주네요? 재밌죠?”

“...”

“전 당연히 저부터 잘라내고 갈 줄 알았어요. 저부터 자르고 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한테는 기회를 주네요? 여기서 제가 도망갈 이유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사람들이 저한테 내부 고발자라 손가락질하고, 의리 없다 수근거려도 그 손가락질 때문에, 그 수근거림 때문에 제가 도망갈 이유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안 대리는 마치 내게 자신의 생각과 같음을 보여달란 투로 똑 같은 말을 여러번 물었다.

그런 안 대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뭐가요?”

“미처 이런 이야기들을 들어드리지 못해서...”

“아뇨, 전 오히려 팀장님한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절 봐주셨잖아요. 법인에서 내가 무슨 짓을 했건, 별 관심 없다는 말 한마디로 요약해서 입장 정리를 해주셨잖아요. 그게 전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제가 안 대리님한테 그 말을 했을...”

“알고 있습니다, 팀장님. 다 알고 있는데...그래도 전 제게 꽤 든든한 팀장이 생긴 거 같아 위로가 됐습니다.”

“...네.”

잠시 흐른 침묵.

그 침묵 속에서 난 참 많은 생각들을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조심히 입을 연다.

“해외 사업부 사람들한테 섭섭하지 않으십니까?”

“섭섭할 게 뭐가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해외 사업부 전체를 발칵 뒤집어놨는데...오히려 미안하죠.”

“그래도 저 같으면 복수라도 하고 싶을 거 같은데요. 특히 직급상 안 대리님 보다 아래에 있는 직원들까지도 대놓고 무시를 하지 않습니까.”

“그들한테는 또 그들만의 세상이 있는 거니까요.”

“그 친구들을 아마도 우리 영업부가 다 끌어안게 될 거 같습니다. 같이 일하는 거 안 불편하시겠습니까?”

“전혀요. 그 친구들한테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자기들만 괜찮다고 하면 잘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전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게 누굴 비난하고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아마 조만간에 상무보님 이하 의전팀과 현지 법인 상황 체크 겸 중국 출장을 갈 일이 있을 겁니다. 저랑 같이 가시겠습니까?”

“에이, 여유가 없죠. 지금 막 아동복 편집...”

“그건 회사 일이고요.”

“...?”

“그건 회사 일이고, 이번엔 회사 경비로 안 대리님 개인적인 일을 좀 하러 같이 가봅시다.”

“그게 무슨...”

“저한테 고자질 좀 해주세요.”

“...?”

“법인의 누가 어떻고, 또 누가 어떻다는...그럼 전 회사 일을 하는 척, 안 대리님의 지난 법인 생활을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상대로 복수라는 걸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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