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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63화 (63/325)

# 63

내부 고발자

그렇게 장학기와 박보람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을 때였다.

임원 회의에 참석했던 박 부장이 급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뒤 “공 팀장, 미팅 준비해.” 이 한마디를 남겨놓고 총알처럼 부장 자리로 가버린다.

뭐지?

순간 나 뿐만 아니라 양 대리, 안 대리 역시 어깨를 들었다 내리거나, 아랫입술 속으로 윗 입술을 숨기는 등 박 부장의 행동에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회사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구는 박 부장의 모습에 평화롭기만 했던 영업 기획부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무슨 미팅 준비를 어떻게 준비하란 말이었을까.

일단 서둘러 자켓을 챙겨입고 다이어리를 챙겼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영업 마케팅의 김 팀장 역시 나와 비슷한 지시를 받은 듯 자켓을 챙겨 입으며 내게 눈짓했다.

마치 넌 뭐 아는 게 있느냐는 눈치였다.

나 역시 모르겠다며 김 팀장을 향해 고개를 짧게 흔들어보이고 있을 때였다.

박 부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장 차장.

“가자.”

장 차장은 내가 뭔가를 물어볼새도 없이 그 한마디만 남겨놓고 박 부장과 함께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난 재빨리 그 둘을 뒤따랐고, 곧 김 팀장도 내 옆으로 다가와 급한 걸음을 옮겼다.

사용 예약도 하지 않은 회의실.

보통은 회의실 앞에 붙어있는 디지털 사이니지로 회의 공간 사용 여부를 확인한 뒤 예약을 거는데, 박 부장은 그런 건 필요없다는 듯, 내게 그 디지털 사이니지를 꺼버리란 말만 남겨놓고 먼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긴말 하지 말자.”

최대 스무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중형 회의실.

그 한쪽으로 네 명이 모여앉는 순간 박 부장이 뜬금없는 소리로 분위기를 잡았다.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뒤로 뭐 해 먹은 거 있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 해. 숨기지 마라. 숨기는 순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진다.”

나와 김 팀장은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내 손 떠나면 커버해주고 싶어도 힘들어, 지금 상황이.”

난 깨끗하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만, 최소한 영업적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유리보다 깨끗하게 계약을 따내고 진행했다 자부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불길이 날 덮칠 거 같지는 않았고.

그리고 김 팀장 역시 원한다면 마음껏 털어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박 부장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믿어도 되지?”

“네.”

“네.”

나와 김 팀장이 동시에 대답을 했고, 장 차장 역시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중에 뒤에가서 뒤통수 때리지 마라.”

“왜 그러십니까, 부장님.”

결국 김 팀장이 교차점 없는 대화 방식은 이쯤에서 끝내달라는 듯한 투로 조심히 물었다.

“해외 사업부 해산되게 생겼다.”

“...!”

얼마나 정적이 흘렀을까.

나와 김 팀장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뜨기만 할 뿐이었고, 장 차장의 귀 주위는 정말 오랜만에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만큼 장 차장 역시 당황했다는 증거다.

침묵을 깨뜨리며 박 부장이 말했다.

“조만간 우리 영업부 전체를 상대로도 감사팀이 뜰 거다.”

“영업부에는 왜...”

“기회가 좋잖아. 이참에 다 털어버리겠단 뜻이지. 진짜 없지, 아무것도?”

그런데 왜일까.

김 팀장의 표정에 불안이 섞이기 시작한다.

내가 느꼈는데, 장 차장, 박 부장이 못 느꼈을까.

“왜 뭐 있어?”

“왜 예전에 클라렌스 인티 건...”

“김 팀장님. 지금 그런 회사 리베이트 건 말고 소리소문없이 팀장님 주머니로만 들어간 게 있느냐고 물으시는 거잖아요.”

왜 저렇게 날이 서 계신 걸까.

평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는 장 차장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타이틀이 높아도 평소 김 팀장을 대하는 장 차장의 모습엔 선배에 대한 예의가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고, 김 팀장 역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함께 급하게 입을 다물 뿐이었다.

“공 팀장, 넌.”

“공 팀장이야 그럴 여유가 있었습니까, 어디. 팀장 단지 얼마나 됐다고.”

“하긴...”

내가 깨끗한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을 하는 박 부장.

“지금 해외 사업부가 양파야. 까도까도 뭐가 계속 나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거기 부장, 차장 그리고 팀장 몇몇까지 곧바로 모가지 날라가지 싶다. 아마 그냥 모가지 날라가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다. 소송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 지금.”

“아...”

역대급인데?

여기서 포지션에 대한 차이가 나오는 거 같다.

박 부장과 장 차장은 그 불길이 우리 영업부로 옮겨붙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지만, 난 사실 속으로 살짝 재미가 있었다.

물론 그걸 겉으로 표현은 못했고.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다...하는 것까지는 아닌데, 일단 난 깨끗하니까, 그리고 우리 영업부가 직접적인 타격권은 아닌 거 같으니까 그냥 어떤 피바람이 불지 지켜만 보면 된다고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김 팀장.”

“네, 부장님.”

“영업 마케팅부 직원들 동요 잠재워라.”

“동요라면...”

“곧 감사팀 뜨고 업무 방해받으면서 피곤해지면 직원들 술렁거리기 시작할 거다.”

이번 감사의 시작은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안 대리의 중국 현지 법인 비리 내부 고발로 인해 시작되는 거라고 했다.

“안낙현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회사 편에 서서 용기를 낸 거야. 그런 안낙현이가 분위기에 눌려 피해보는 일 없도록 하란 소리야. 최소한 우리 영업부 안에서 만큼은 감싸줘야한다. 어차피 우리가 안았잖아. 혹시라도 다른데서 말 나오면 그 아가리 물어뜯어버릴 각오하고 덤벼들어, 그 상대가 누구든. 너네가 안하면 그걸 누가 하겠냐.”

“...”

“왜 대답이 없어!”

“네, 네, 당연하죠.”

“그리고 공 팀장.”

“네, 부장님.”

“넌 내가 따로 이야기 안해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지?”

“네.”

그리고 또 잠시간의 침묵.

“해외 사업부가 이정도까지인 줄은 솔직히 나도 몰랐다.”

그제야 어느정도 진정이 된 듯, 회의 의자에 등을 깊숙히 기대며 박 부장이 말했다.

“처음부터 저렇지는 않았을 거야. 중국 법인 주재원 1기, 2기 근무자들이 하나둘 씩 복귀를 하면서 현지에서 해왔던 관례에 젖어 물을 흐린 거 같은데...썩어도 단단히 썩었어. 그냥 썩은 부위만 도려낸다고 될 일이 아니라 아예 다 걷어내야 하는 지경에까지 온 거 같다.”

“설마 혹시 마진 가지고 장난을 친 겁니까?”

“그거 말고 더 있겠어? 홍성이 아닌 브랜드 업체 쪽으로 유리하게 마진 계약을 해주는 댓가로 한푼, 두푼 자기들 주머니를 채웠던 거겠지. 그리고 너도나도 다 하니까 안 하면 바보라는 생각들을 하게 됐을 거고.”

“하아...”

“월급만 가지고는 재미가 없었겠지. 그리고 주재원 근무를 다녀와보니까 더이상 꽁으로 들어오는 돈이 없어져 아쉬웠을 것이고. 비록 영업부는 아니지만, 해외 사업부 역시 원래라면 해외 영업부로 편성이 됐어야 하는 부서야. 그만큼 영업의 성격이 강한 곳이고. 우리 영업맨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야. 분위기를 탄다. 한 놈이 하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어가게 되면 옆에 있는 누군가는 반드시 흉내를 내게 되어있어. 왜? 안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거든.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억울해하지. 나만 한 게 아닌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는 식으로 말이야. 그렇게 한 놈만 걸려도 줄줄이 비엔나가 돼서 딸려들어가는 건데, 꼭 보면 그 당연한 걸 난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게 돼.”

처음 시작은 안 대리의 내부 고발로 중국 센젠 현지 법인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 인보이스 상의 문제점이 하나둘 씩 드러나게 됐고, 현지 법인과 그 현지 법인의 지원사격부인 해외 사업부가 암암리에 연루된 정황이 하나둘 씩 나오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됐다고.

“전무님이 어디 보통 분이시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탁월하신 분이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지. 이 기회에 어느정도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상무보의 회사 내 입지를 완전히 다져놓겠단 생각이셔. 상무보가 선두에 서서 칼춤을 추게 될 거다. 아마도...다 날리실 거 같다.”

“그렇게 되면 중국 법인쪽은 철수를 하게 되는 겁니까?”

장 차장의 질문에 박 부장은 짧게 고개를 저은 후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아마도 자신의 예상이 맞을 거라는 말을 먼저 꺼내놓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해외 사업부...아마도 우리 영업부가 떠안게 되지싶다.”

“...!”

“원래 처음부터 전무님은 해외 사업부가 아니라 해외 영업부 타이틀로 가야 한다고 주장을 하셨던 분이야. 그걸 당시 중국통이셨던 사장님이 그렇게 되면 본사 영업부의 파워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거 아니냐며 우려를 하셨던 거고. 사장님은 중국 법인의 파이를 최대한 크게 키워서 본사와 맞먹게 만들고 싶어하셨거든. 근데 이번에도 전무님이 맞으셨던 거지. 별개로는 컨트롤이 힘들어. 할 수야 있지. 하지만 그걸 해낼 사람이 없다는 게 포인트였고.”

“해외 사업부가 우리 영업부로 편입이 되면...”

장 차장은 뭔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자신도 딱히 머릿속으로 전체적인 교통정리가 안 되는 모양인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나한테 따로 물으시더라. 영업 이사로 올라가면 중국 법인까지 다 컨트롤 할 수 있겠냐고. 왔다갔다 하란 말씀이시지. 뭐 어쩌겠어, 지금 상황에선 그것 말고는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데.”

“손 팀장 혼자 법인에 박아놓고 컨트롤이 되시겠습니까?”

여기서 박 부장의 대답이 걸작이다.

“혼자? 너네도 다 왔다갔다 해야지.”

이상하게도 난 박 부장이 말한 ‘너네’라는 집단에 내가 주축이 될 수 밖에 없을거란 묘한 촉이 들었다.

“김 팀장아.”

“네, 부장님.”

“너...”

잠시 입맛을 다신 후 다시 말을 잇는 박 부장.

“내가 어쩌면 너 부장까지는 안전하게 올릴 수 있을 거 같다. 하나만 묻자. 자존심 중요하냐?”

“...그런 게 어딨습니까. 내년에 셋째 나옵니다.”

“그래. 그거 죽여라. 그리고 앞으로는 공 팀장 지원해라.”

속으로 터져나오는 묘한 성격의 한숨.

그 한숨을 숨기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야했다.

“장 차장. 너는 영업부에 감사 뜨는 동안 딴 거 하지말고 인사부장이랑 붙어서 영업부 전체 레이아웃 다시 잡아라.”

“아직 확정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아마도 지금 전무님은 내가 그런 그림을 먼저 그려서 보여드리길 원하시는 거 같다. 전무님 스타일 알잖아.

“아...네.”

“그리고 공 팀장 넌 장 차장이 잡는 레이아웃 데모도 칠 준비하고.”

“...네.”

“어차피 거긴 부장, 차장까지 다 나가리야. 짬밥으로 밀릴 이유 없다. 장 차장은 영업 기획부 가지로 해외 영업부 레이아웃 잡아주고, 앞으로 중국 법인이랑 하는 컨택은 장 차장 승인받고 공 팀장 네가 하는 걸로 해라. 어차피 손 팀장이야 원래 우리 사람이니까 수월할 거다. 김 팀장.”

“네, 부장님.”

“같이 가는 거다. 혼자 가는 거 아냐. 자존심 버리자.”

“자존심이라니요. 그걸 공 팀장이라면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오히려 전 고맙네요.”

“그래, 그럼 된다. 공 팀장 넌 그거 뭐야...지금 진행하고 있는 거, 그거...아동복.”

“네.”

“그거 안낙현이 시켜서 원래 가지고 있던 폼 뽑아달라고 해. 원래 중국 법인에서 해보려고 했던 거라며?”

“네.”

“사업계획서 폼 가지고 있을 거 아냐. 노 젓자. 지금이 아마도 우리 영업부 입장에선 물이 들어오는 타이밍인 거 같으니까.”

내부 고발자 안낙현.

미팅을 끝내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안 대리를 따로 불렀다.

“안 대리님.”

“네, 팀장님.”

“이제 좀 궁금해졌습니다.”

“뭐가요?”

“안 대리님에 대해서요.”

“...?”

“그때 싸가지 없게 말했던 거 사과드립니다. 그땐...음...제가 경솔했던 거 같습니다.”

“뭐가...”

“퇴근하고 저랑 소주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안 대리님이 하셨던 중국 주재원 근무가...궁금해졌습니다.”

“크흐...여윽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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