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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61화 (61/325)

# 61

힘 빼

책상 위로 한쪽 팔꿈치를 올려놓고, 그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사용해 책상을 타닥타닥 두드리고 있었다.

불안함의 표현.

나도 지금 내가 상당히 산만하다고 느껴질만큼 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기획 1팀, 2팀 할 것 없이 새로 편성된 영업 기획부 전원은 정신없이 각자의 업무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

나만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타닥타닥...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잡아본다.

의미없이 마우스를 움직여 모니터 화면을 다시 살려냈지만, 뭘 클릭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타닥타닥...

영업 기획부는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의 리더쉽이 특출나서 그런 게 아니라 알아서 팀워크가 잡힐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쳐내야 할 업무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업무가 헐렁한 상황이었다면 부서원들도 엉뚱한 생각이란 걸 해볼 수 있었겠지.

보통 그렇지 않나.

부서원들간의 불화라는 것도 일이 할만 하고 딴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라는 게 있으니까 생겨나는 거지, 눈코뜰새 없이 바빠서 쌓여있는 업무를 쳐내기에도 급급한데 파워게임, 감정싸움같은 걸 할 에너지가 어디에 있겠나.

안 대리, 안낙현에 대한 부서원들의 컴플레인도 어느새 쏙 들어가버렸다.

처음엔 뺀질뺀질거리는 그의 이미지 때문에 장향은이 알게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안 대리가 장향은과 박기태를 끌고가는 그림인데, 아무래도 장향은의 입장에서는 불안했겠지.

과연 안 대리가 제대로 된 팀장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믿음도 안갔을 것이고, 이상하게 자신이 더 많은 업무를 보게 된 거 같다는, 그래서 손해보는 기분이 든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다.

실제 옆에서 지켜보는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었고.

하지만 그런 불평, 불안도 잠시였다.

본격적으로 명품 아동복 편집샵 프로젝트에 돌입을 하는 순간 안 대리의 뺀질거림을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세상 진지하게 변했고, 또 빠르게 본사 영업부 기본 업무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안 대리에 대한 장향은의 불안은 사라지게 됐고, 홍성 에이스 센터가 기획 2팀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고 안 대리를 적극 지원하고 나서자 본격적으로 기획 1팀과 2팀의 밸런스가 맞춰지기 시작했다.

따닥따닥...

기획 1팀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연일 대박 매출 행진을 하고 있는 H.I 편집샵.

그 안에서 올라오는 나크리스 매출 덕분에 파리에 있는 김형찬으로부터 일주일에 최소 두세 번 정도는 안부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자기도 신기하거든.

아무리 홍성이라지만, 이정도로까지 나크리스를 띄워 줄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는 거다.

거기다 나크리스 단독 매장 플랜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예 한국 시장에 올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크리스의 입장에서 한국 시장은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기 전 꼭 거쳐야하는 일종의 관문인 셈이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나크리스 강남점 오픈은 나크리스 본사 입장에서는 멀리보고 하는 일종의 투자였다.

돈을 벌겠다고 한 게 아니라 중국 시장을 보고 해보는 투자.

확실한 게 없기 때문에 대대적인 투자는 못하지만, 한 발 정도는 걸치고 있어야 되겠다 싶어서 한국에 다시 들어왔던 거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심상치않게 돌아가고 있고, 조만간 중국이 해외 명품, 럭셔리 라인에 대한 관세 규제 부분을 대폭 낮출 조짐을 보이자, 나크리스 뿐만 아니라 아직 자체적인 힘으로 중국 시장에 들어가지 못한 많은 명품 브랜드 본사들이 앞다투어 중국 시장 쪽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만간 중국도 한국의 면세점과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게 될 겁니다.”

예전에 김형찬이 한국에 와서 했던 말이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꼭 공항 면세점이 아니라 중국도 앞으로는 한국처럼 시내에 있는 백화점에 면세점들이 생길 전망이라는 말이다.

그동안 유독 해외 명품 라인에 엄격했던 중국.

그걸 조금씩 유연하게 다뤄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거다.

바꿔 말해 앞으로 중국도 해외 명품 라인에 대한 면세 범위를 확장시키겠다는 소리인데, 이렇게 되면 패션 업계에는 불이 붙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김형찬의 입장에서는 나크리스라는 어중뜨는 브랜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뛰어들기 전 한국 시장에서 어느정도 인지도를 잡아놓고, 한국과 일본에서 자리잡은 브랜드 이미지로 중국 시장에 진출을 해보겠다는 말이 되는 거고.

그 덕에 양 대리 역시 최근 며칠 퐁당퐁당으로 야근을 하고 있다.

H.I 편집샵 신세계 확장과 동시에 나크리스 단독 매장 플랜을 같이 쳐내야 하니까.

월요일부터 야근을 하고 화요일엔 오전 근무까지만 하고 퇴근, 수요일 다시 야근 하고 목요일 오전 근무 후 퇴근 그리고 우리끼리 쓰는 표현이지만, 지랄아다리 걸린 금요일 야근까지...

물론 인원이 부족해서 양 대리가 계속 야근을 하는 건 아니다.

인원이 많다고 할 수 있고, 부족하다고 못하는 성질의 업무가 아니니까.

꼭 양 대리가 해야만 하는 업무라는 게 있다.

이 대리나 이지혜를 가르쳐가며 쳐내기엔 가르칠 때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커서 이번만큼은 그냥 양 대리가 직접 처리해버리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인 그런 업무.

홍성 인터네셔널 본사차원에서 집중 케어를 해주고 있는 사안이었기에 맨파워야 필요하면 얼마든지 인사부에 요청해서 QA부원을 끌어와 쓰거나 아님 내가 융통성 있게 헬퍼를 붙여줄 수도 있지만, 아직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도 사실이고.

상황이 그렇다보니 퐁당퐁당 야근을 하고 있는 양 대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배달 앱으로 야식을 쏴주는 거 밖에 없었다.

타닥타닥...

다들 그렇게 정신없이 각작의 업무에 빠져서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는데, 나만 혼자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장 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

속으로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는 게 그만 나도 모르게 진짜 입 밖으로 터져나와 버렸다.

장 차장의 손에 내가 기다리고 있던 명품 아동 브랜드 본사의 컨펌레터가 있었으니까.

직접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내게 그 컨펌레터를 건네는 장 차장.

난 두 손으로 그걸 받아들고 물어봤다.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H.I 편집샵 땐 장 차장이 브랜드 본사들로부터 직접 컨펌을 받아주겠다고 약속을 했었기에 내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명품 아동복 편집샵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받아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는 거고.

어디서부터 접근을 해야하는지 감을 잡는데에만 며칠이 걸렸다.

그리고 해당 브랜드를 라이센스로 받아 한국 백화점에 깔고 있는 개인업자들과 몇차례 접촉을 해서 설득이란 걸 시도해봤다.

하지만 자기 밥그릇에 담긴 쌀밥을 좀 나눠먹자고 하는데 좋다면서 그러자고 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나.

그들을 상대로 설득을 하는 건 불가능이란 걸 깨달았을 땐, 이미 기획 2팀이 빠른 속도로 나머지 부분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한마디로 똥줄이 탔다.

애초에 난 본사 컨펌부터 받아내고 다른 부분을 진행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장 차장이 그럴 여유가 어딨냐며 안 대리를 루가노 폭스타운으로 보내게 만든 거고.

안 대리가 폭스 타운에서 마진 협상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다시 돌아오자, 그때부터 진짜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아직 내 능력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솔직하게 장 차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지금 장 차장은 내가 몇날 며칠이나 싸매고 걱정하고 있었던 그 걸 고작 이틀만에 해결해서 내게 그 결과물을 건네주고 있었다.

“인사부 내려가서 홍성 스티커 몇 장 뽑아달라고 해.”

“홍성 스티커요?”

“왜 명절 때 명절 선물 박스에 붙여주는 홍성 스티커 있잖아. 명함만한 사이즈 스티커.”

“아, 네.”

“그거 몇 장 뽑아달라고 해. 그 전에 같이 담배나 한 대 피러가자.”

브랜드 본사야 그렇다치더라도 그 철벽같던 라이센스 업자들을 어떻게 구워삶았느냐고 묻는데 갑자기 홍성 스티커는 왜 뽑으라고 하는 건지.

장 차장은 담배를 피우면서 그 스티커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어쩔 수 없이 홍성 네임드로 찍어누를 수 밖에 없었어.”

“어떻게...”

“본사한테 현재 한국에 라이센스를 준 업체들이 어느정도 매출을 올려주고 있느냐고 물어봤지.”

“그런 걸 알려주던가요?”

“그 브랜드 라이센스를 우리 홍성에게 주면 우리가 책임지고 최소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려줄 수도 있다고 말 끝을 흐렸거든.”

“우리가 직접 라이센스를 받는다고요? 물건은 폭스타운에서 받는데, 어떻게 라이센스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안 그럼 그 쪽에서 한국 라이센스 업체 매출을 말해주겠어? 어차피 비즈니스야. 거기에 의리가 어딨어? 조금이라도 더 팔아줄 수 있는 상대 손 잡는 거야 너무나 당연한 거 아냐?”

난 그때까지도 장 차장이 어떤 그림으로 브랜드 본사들을 공략했는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간단해. 그런 다음에 폭스 타운에서 약속한 마진 제시하면서 그정도로 맞춰줄 수 있겠냐 물어봤고, 거기까지는 힘들 거 같다고 해서 그럼 우린 폭스 타운이랑 같이해도 되겠냐고 물어봤지. 자기들 입장에서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어차피 우리한테 인터네셔널 표준 가격으로 넘기나 유럽내 대형 창고쪽으로 풀어주는 가격으로 넘기나 매출이 늘어날 건 당연한 거니까.”

“그럼 라이센스 업체들은요?”

“담배 한 대 피고 이해시키러 같이 가자.”

“...!”

“여기서 그런 과정 없이 그냥 브랜드 본사랑만 말 맞춰서 라이센스 사업하는 개인 업자들 입장 고려 안 하고 그냥 진행시키면, 그땐 대기업 횡포 소리 듣는 거야. 나중에 가는 길에 정관장 몇 박스 사라. 그리고 거기에 홍성 스티커 붙여.”

“아...”

“같이 가자. 아직 혼자는 무리겠지?”

“...네. 솔직히...”

“그래, 안다. 이게 은근히 어려운 작업이야. 입장이 애매하거든. 너무 미안해하면 상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그렇다고 너무 당당하게 나가면 주위에서 상대를 피해자로 만들지. 적당한 선에서 그쪽이 뭘 필요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줄 건 줘가면서 타협을 하려면...아직은 내가 같이 가는 게 맞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네가 고마워할 게 뭐 있어. 이게 뭐 네 일이야?”

“...네?”

“몸에 힘 좀 빼라고.”

나는 장 차장이 말한 힘을 빼란 소리를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란 소리로 오해를 했다.

요즘 회사 내에서 너무 잘나가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장 차장이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대박을 하나 치고 나면 차기 아이템은 항상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또 대박을 쳐야만 할 거 같고, 그러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할 거 같은 두려움, 꼭 이전에 쳤던 대박은 운빨인 걸로 사람들이 생각하겠지? 하는 걱정들 때문에 말이야. 대박의 인기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건 너, 나 할 것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욕망이야. 그런데 조심해야지. 어떻게 사람이 항상 대박을 칠 수 있나?”

“...”

“H.I 편집샵. 물론 공 팀장 역할이 컸어. 하지만 혼자 다 한 거 아니잖아.”

“그렇죠.”

“그런데 왜 아동복 편집샵에 관한 부담감은 혼자 다 안고 있어?”

“...!”

“너 혼자 하는 게 아냐. 다 같이 하는 거야. 그러니까 힘 빼.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어.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나? 고작 H.I 편집샵 하나 띄워본 게 전부인 놈이. 부담이 많으면 몸에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 힘 빼라. 안 그럼 나중에 혹시라도 잘 안됐을 때 그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끝까지 몸에 힘 주고 있었던 놈 몫이 될 테니까.”

“아...”

“그리고 한 번 쯤은 실패해도 괜찮아. 홍성 생활 길게 보고 있는 거라면 말이야. 물론 내 입장에서야 이번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공을 시켜줬음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너무 뻣뻣하다. H.I 때야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뛰어만 다녔지, 막상 성공의 맛을 한 번 보니까 다시 H.I 진행할 때처럼 생각없이 일만 못하겠지?”

“우와...제 속에 들어왔다 나가셨어요?”

“그런 경험 한 번 안해보고 차장 단 놈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고 해라. 다 알아, 지금 공 팀장 네 상태가 어떤지. 그러니까 몸에 힘 빼. 힘만 빼면...이번 프로젝트도 무조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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