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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56화 (56/325)

# 56

저 안낙현입니다

회사는 노골적이다.

아니 조직은 노골적이다.

그리고 그 조직을 이끄는 수장들은 하나같이 사이코패스이거나 사이코패스가 되기 위해 단련을 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사이코패스.

여러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회사에서 리더들의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은 업무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정도로 미화시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뭔가 뚜렷한 목적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말단, 부하직원으로 근무를 할 때엔 그런 사이코패스적인 상사, 혹은 집단의 리더들을 저주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어느정도 포지션이 잡히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그런 사이코패스적인 기질을 동경하게 되는 거 같다.

인정을 하게 되는 거지, 리더가 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걸.

어쩌면 그건 인간의 본능, 아니 회사 내에서 어느정도 야망을 품고 있는 직장인들의 본능인 거 같다.

포지션이 쌓일 수록 신경을 써야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그 모든 것들에 하나하나 다 의미를 부여하고 챙기려다 보면 자칫 내 위치라는 걸 잊어버릴 수가 있으니까.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어느날이었다.

장 차장이 17층으로 함께 올라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담배를 피며 저녁 시간을 비워두라는 말을 한다.

“전무님이 저녁에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하신다. 너, 나. 그리고 부장님, 전무님 이렇게 넷이서만.”

흥분과 동시에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보통은 그렇다.

보통은 퇴근을 한 이후시간은 완전히 회사로부터 탈출을 하고싶다.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꿈같은 목적을 가지고 항상 회사 시스템을 속으로만 욕하는 소심한 나다.

하지만 전무님과의 술자리는 이야기가 또 다르지.

누구라도 할 수만 있다면 전무님의 눈에 들어가고 싶어 하니까.

그런 별같은 존재가 술을 마시자고 하면 없는 시간도 쪼개야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 팀장이라는 존재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김 팀장을 제외시킨 술 자리다.

장 차장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술자리의 성격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런 성격의 술자리를 직접 만드신 전무님을 보면 이런 게 사이코패스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될 놈만 데리고 간다.

그러니 너도 끼고 싶으면 내가 널 끼워줄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오라는 식이다.

아직 전무님의 눈에 김 팀장은 그런 명분이 갖춰지지 않은 차장 대리일 뿐이고, 난 완벽한 명분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조금만 펌프질을 해주면 뭐라도 해낼 거 같은 싹으로 보이셨겠지.

“어디서...”

“퇴근하고 나 기다려. 전무님 모시고 자주 가는 집이 있어. 나랑 같이 가면 돼.”

“...네.”

장 차장과 담배를 피우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를 하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김 팀장이었다.

세상 모르고 차장 대리 확정에 들떠서 영업 마케팅 부를 휘젖고 다니는 김 팀장.

승진뽕으로 인해 사기가 많이 올라가 있는 모습이었다.

팀장 시절 때와는 달리 제법 의욕을 보이며 큰 소리도 낼 줄 알았고, 새롭게 편성된 영업 마케팅 전 직원들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 순간 내 눈에만 사무실의 모든 조명이 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눈에만 캄캄해진 사무실.

그리고 조명 하나에 불이 들어와 마치 무대 위 배우를 비추듯 김 팀장을 비추기 시작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난 꽤 오랫동안 김 팀장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속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벌써부터 전무 군단의 일원이라도 된 듯, 김 팀장을 배제시키고 나만 부른 전무님의 입장을 대변하듯 말이다.

전무님과 처음으로 함께 가져본 술자리.

의외로 소박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반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였다.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귀수육을 잘하기로 유명한 집이었는데, 그곳에 미리 작은 방을 하나 예약해 놓은 장 차장이었다.

그리고 그 식당 카운터에서 명함을 하나 챙기더니 내게 건네주며 앞으로 전무님과 식사할 일이 있으면 이집으로 예약을 하면 될 거라는 팁을 줬다.

“어지간하면 이 집으로 잡아. 그럼 큰 실수는 없을 거다. 전무님 20년 단골집이야.”

“아, 네...”

마치 그동안 박 부장을 모실 땐 자신이 직접 예약을 해야했지만, 앞으로는 네가 하라는 식의 뉘앙스였다.

난 식당 명함을 자켓 안주머니 속으로 챙겨 넣은 후, 전무님과 박 부장, 그리고 장 차장이 차례대로 들어간 방 밖에서 그들의 신발을 대충 정리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귀회절임과 부추 무침이 먼저 나왔다.

서둘러 방석 위로 한쪽 무릎을 꿇고 전무님의 잔부터 차례대로 술을 따랐다.

“어떠냐? 할만하냐?”

전무님이 물으셨다.

장 차장이 내 잔을 채워주고 있을 때였다.

난 받은 술잔에 입술을 살짝 대어놓고 다시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재빨리 대답했다.

“네, 전무님.”

“그 이름 뭐야, 중국 법인에서 온 놈. 골 때리는 놈, 그거.”

“안낙현이 말씀이십니까?”

박 부장이 대신 대답을 했고, 전무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름이 맞다고 하셨다.

“그 놈은 잘 하냐?”

“네, 공 팀장이 초장에 잘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준호가 전담마크 하고 있다고 했지?”

전무님께 내가 직접 대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요령껏 흘려놓고 뒤로 빠지는 박 부장.

“네, 당분간은 양 대리가 데리고 다니면서 업무를 가르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센 놈을 길들이기 위해선 더 센 놈을 붙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야. 그렇다고 네가 직접하면 안돼. 그럼 너랑 거리가 좁혀지면서 너 외에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버리니까. 하지만 너무 몰아세우지는마. 그런 놈들이 의외로 멘탈이 약해. 적당히 기가 눌려야 오기라는 게 생기거든. 그런데 너무 눌러버리면 안낙현이 같은 놈들은 포기를 해버려. 적당히 숨 쉴 틈을 줘가며 조아야지 너무 팍 조아버리면 부작용 난다.”

“똑똑한 놈입니다. 그리고 공 팀장이 잡고 있으니까 큰 걱정 안하셔도 될 겁니다.”

“똑똑한 놈이니까 걱정을 하지. 고만고만한 놈 같았음 내가 왜 신경을 쓰겠나? 중국 법인을 발칵 뒤집어 놓은 놈이야. 보통 놈이겠어? 그리고 꼭 보면 똑똑한 놈들이 사고를 쳐. 안타깝게도 그런 놈들은 자기가 똑똑하다는 걸 스스로 알거든. 그래서 오래 못간단 말이야. 진득함이 부족하지.”

“공 팀장이 알아서 잘 할 겁니다.”

박 부장의 확신에 전무님은 더이상 안낙현에 대해선 입을 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고, 우리 모두는 전무님이 들어올린 술잔에 각자의 잔을 붙였다.

“H.I 편집샵 프로젝트. 언제쯤 정상화될 거 같아?”

“현재 각 매장별로 올라오는 매출만 놓고 보면 순항중입니다.”

“순항? 거기에 속도를 더 붙일 수도 있단 말처럼 들리네?”

그 순간 깨닫는다.

박 부장까지야 어떻게든 말빨로 조지겠지만, 전무님 정도 되면 말 한 마디,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걸.

“편집샵만 따로 놓고 보면 애매합니다. 하지만 그 후속빨로 나크리스 단독매장 오픈까지 성공을 거둔다면 현 상황이 순항인 게 확실합니다.”

“나크리스는 조금씩 올라오고 있나?”

“그렇지 않아도 현재 나크리스에 대한 인지도도 H.I 편집샵과 더불어 조금씩 상승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례적으로 나크리스 본사가 자기네 공식 홈페이지에 H.I 편집샵 배너를 걸었습니다.”

“확정 난 거야? 그때 뭐 H.I샵 공식 로고를 줘도 되겠냔 이야기는 들었던 거 같긴 한데...”

“네, 오늘 오후부터 걸렸습니다.”

“그게 효과가 있기는 해?”

“미비할 겁니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찾아와 본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편집샵에서 올라오는 나크리스 매출만 봐도 이 상태에서 나크리스 측이 적당한 모델 하나 써서 괜찮게 프로모션만 넣어주면 무리없이 띄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후속타도 나와야지?”

은근한 압박이 가해지는 순간.

하지만 괜찮다.

H.I 편집샵 프로젝트의 후속으로 내세울 아이템은 이미 잡아놓은 상태이니까.

“준비중에 있습니다.”

박 부장과 장 차장 역시 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업 기획부로 편성이 된 만큼, 앞으로는 매장 관리 보다는 아이템 발굴에 집중을 해야한다고 부장님과 차장님으로부터 계속 주문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 박 부장과 장 차장을 띄워놓고 시작해야지.

혼자 잘났다고 다 해버리면, 지금 날 이 자리까지 데리고 와준 박 부장과 장 차장이 뭐가 되겠나.

“그래서 내년 상반기 인사 승진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신세계를 상대로 H.I 편집샵 확장과 동시에 나크리스 단독 매장 확보에 집중을 하고, 그 이후부터는 정확하게 1,2팀으로 팀을 분할시켜 경쟁구도를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그 경쟁 구도를 만들어주기 위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편집샵은 기획 1팀장을 맡게 될 양 대리에게 맡기고 견제 프로젝트로 현재 생각중인 다른 아이템은 2팀장을 맡게 될 안 대리에게 줄 생각입니다.”

“생각중인 다른 아이템이 뭔데?”

“아동복 명품 편집샵을 구상중에 있습니다.”

전무님의 미간이 좁아지는 순간이었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럭셔리 아동복 라인이라고 해봤자, 버버리, 아르마니, 몽클레어 정도가 대표적입니다. 해당 브랜드 지사 업체와는 상관없이 아동복 라인은 개인 업자들이 취급을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아동복?”

전무님의 반응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껏 홍성이 아동복을 건드렸던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컨셉이 잘 맞아떨어진다.

어쨌든 명품 라인이고, 현재 명품 편집샵은 많지만 아동복이라는 컨셉을 따로 잡은 편집샵 브랜드는 하나도 없으니까.

“네, 장점이 많은 아이템입니다.”

아동복 쪽은 전무님 역시 전혀 공부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러면서 종목이 뭐가 그리 중요한 것이겠냐며, 그렇게 경쟁사들이 보지 못하는 쪽으로 계속 시장을 선점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까지 하셨고.

“일단 마진에서부터 확 차이가 납니다. 최소 85퍼센트는 깔고 갈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그리고 사이즈에 대한 제한도 크게 없죠. 어차피 아이들은 계속 크니까요. 형편이 돼서 명품을 입히는 부모들도 어차피 아이들 옷은 조금씩 크게 구입을 해서 입힙니다. 그리고 원패턴으로 가는 브랜드들은 유행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월 상품을 본 매장에 함께 깔아도 스티커 작업으로 표시만 해두면 큰 컴플레인이 생기지 않는 종목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그렇게 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흐음...”

“루가노에 있는 폭스타운과 링겐에 있는 아운지 클럽 쪽에 도매 업자들이 많이 모여있다고 합니다. 만토바처럼 대형 창고는 없지만, 만토바 보다 마진 조율이 더 쉽다고 하니 추석 지나고 H.I 편집샵 신세계 확장이 구체화되면 시장 조사차 인원을 보내볼 생각입니다.”

“재무 리스크 팀이랑 이야기 해봤어?”

“출장비 지원 확보 받았습니다.”

“아동복이라...그래, 그거 괜찮네. 이것도 뭐 공 팀장 네 아이디어야?”

“아뇨, 아닙니다.”

“그럼?”

“안 대리 아이디어입니다.”

전무님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술병을 박 부장 앞으로 가지고 가셨다.

박 부장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술잔을 받았고, 장 차장과 내 잔을 차례대로 채워주신 후 전무님이 말했다.

“거 봐, 제법 감각이 있는 놈이라니까?”

“중국 주재원으로 있으면서 계속 생각했던 아이템이였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에 있으면서?”

“현재 중국에서 한국 유아 브랜드가 그렇게 인기랍니다.”

“오, 그래?”

“네, 특히 유아복같은 경우는 프랑스 브랜드들을 진작에 따라잡았다고 하더군요. 가격적인 부분에서 메리트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직 중국에 진출하지 못한 한국 유아 브랜드들을 중국쪽에 가져가 런칭을 시켜볼까 구상중이었는데, 위로부터 번번히 커트를 당했던 모양입니다.”

“중국 법인 놈들 하는 게 다 그렇지.”

“네, 제가 생각해봐도 하면 될 거 같은 종목인데, 그걸 왜 허가해주지 않았는지 무척 의아했습니다. 그 아이디어에서 순차적으로 발전을 시켜가다보니, 명품 아동복 편집샵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겁니다.”

“추석 끝나고 언제 시간 봐서 프리젠테이션 한 번 준비해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추석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사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안 대리가 특유의 산만한 몸동작을 하며 내 앞으로 자신의 식판을 내려놓고 앉았다.

그리고 마치 나만 들으라는 식으로 주위 눈치를 한 번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빅 뉴스, 빅 뉴스.”

“다 들린다, 안 대리.”

옆에 있던 양 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그 옆에 있던 다른 팀원들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모여봐요, 완전 대박 뉴스.”

손을 뻗어 자기 주위로 팀원들의 고개를 모아놓고 안 대리가 말했다.

“방금 상무보랑 전무님 완전 크게 한때까리 하셨답니다. 전무님 방에서 흘러나온 샤우팅 소리가 아랫층에까지 다 들릴 정도로.”

“...?”

“그런데 결과는? 두구두구두구두구...상무보의 한판 승.”

상무보랑 전무님이 붙을 이유가 있나?

상무보는 언제나 전무님이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오케이를 말하며 따르는 사람인데...

사장 아들이라도 상무보는 무척 겸손하고 경우가 바른 사람이다.

최소한 그와 함께 조금이라도 일을 해봤던 직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리고 전무님을 친 삼촌처럼 예를 갖춰 대하기로도 유명하고.

그런 상무보와 전무님이 한판을 했다고?

“아니, 그런데 안 대리는 계속 그런 이야기들을 다 어디서 주워들어요?”

“팀장님도 참...저 안낙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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