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매형은 제게 자신감 그 자체였어요
다음날 아침 조식까지 호텔에서 해결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가족들에게 인사도 드릴겸, 차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갔다
누나는 마트 출근을 한 후였고, 집에는 부모님과 아영이, 셋만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영이를 상대로 한창 장난을 걸며 괴롭히고 있는데, 옆에서 그 장난을 지켜보던 강혜선이 부모님 몰래 인상을 찡그렸다.
아영이를 상대로 하는 내 말투에 오해를 했던 모양이다.
“콱 마 팔 뒤꿈치로 등드리 딱꿍을 때리뿔라. 니 운동화 꾸게 신고 다니다가 삼촌한테 함 걸리라, 진짜...죽는다.”
“아, 뭔소리 하노! 저거 원래 저렇게 신는 거다. 꾸게 신어가 저렇게 된 게 아이라 원래 처음부터 디자인이 저래 나온 거다.”
“어데 감히 삼촌이 말하는데 따박따박...주디를 확 마 다 잡아찢어뿔라.”
바로 그때 강혜선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팔을 잡았다.
순간 난 강혜선이 왜 저러나 싶었고, 살짝 당황하긴 아영이도 마찬가지였다.
강혜선은 나와 눈이 마주친 후 짧게 고개를 흔들며 제발 그만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놔 놔라, 좋아서 안 저라나. 좋아서 저라는 기다.”
“...네?”
강혜선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어머니가 어쩌다 보셨던 모양이다.
“좋아서 저라는 기라고. 경상도 남자 무뚝뚝한 게 어데 하루이틀 일이가. 예쁘다는 말 바로는 못하고 저렇게 좋다고 돌리가 표현하는 거 아이가. 저 둘이는 만났다카면 저란다.”
“아...”
그래서 난 아영이 녀석한테 용돈 몇 푼을 쥐어주며 말했다.
“좋기는 뭐가 좋노. 생긴 건 어디 뭐 밀가루 반죽 뭉치놓은 거 처럼 생기가...한 개도 안 좋다. 감사합니다 해야지. 인사 안하나?”
“아 됐거든.”
“니 씨, 이라면 다음에 내가 또 주겠나?”
“감사합니다, 됐나?”
“고개 숙이야지.”
“하아, 씨, 진짜...”
“두 손 딱 배꼽 위로 올리고 감사합니다...함 해봐.”
“아이고, 감사합니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됐습니까?”
“됐습니다. 얼른 독서실 가보이소. 일찍일찍 댕기라. 요즘 남자친구 생기가 멋 부리고 댕긴다고 서울까지 소문 다 났다. 콩만한 것들이 벌써부터 막 길거리 손잡고 댕기다가 함 걸리라. 죽는다, 진짜...”
“하아...”
뭔가 말을 하려던 아영이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는 강혜선을 보고는 그냥 자기가 참는다는 식으로 한숨만 한 번 내뿜은 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강혜선에게 차례대로 고개를 숙이고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아영이가 말했다.
“숙모.”
아영이 입에서 숙모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물론이고 강혜선,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까지 다들 살짝 당황을 했다.
“우리 삼촌 뭐 좋다고 결혼을 해주는데요?”
“푸훕...”
“뭐? 주디 딱 다물고 고마 가던 길 가라.”
“이해를 할 수가 없네.”
“고마 가라캤다이.”
“참 내 인생도 아닌데, 숙모 선택에 벌써부터 내가 다 걱정이다, 걱정이야. 아이고...마, 차라리 세 살짜리 아를 데리고 살지...”
“뭐? 니 방금 뭐랬노? 서라. 거기 딱 서라.”
“서란다고 내가 서겠나?”
그리고는 내 신발을 발로 툭하고 걷어차놓고 재빨리 현관문을 닫고 사라지는 아영이었다.
그렇게 아영이가 도망치듯 사라지고 난 뒤 나와 강혜선은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조금 더 보냈다.
그리고 매형도 만날 겸, H.I 편집샵 오픈 상태도 확인을 할 겸 서면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라면 또 언제 내려오노?”
“내야 뭐 추석 연휴 맞춰가 내려와야지요.”
“니 말고 혜선이.”
“저는 아마 그 뒤에나 올 수 있을 거 같아요. 어차피 다음부턴 저도 은태 씨랑 같이 부산으로 내려오겠지만, 이번 추석은 부모님이랑 같이 있어드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암, 그래야지. 언니도 시집가서 시댁에 간다믄서.”
“네.”
“딸 가진 부모 맘이 그렇다. 보내놓고도 할 수만 있으면 계속 품고 싶은 게 딸 가진 부모 맘이다. 결혼 해서도 아인나, 혜선아.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상황 봐가 그래해도 된다.”
“네?”
“어째 매번 남편 집만 찾아오긋노. 한 번은 니 남편될 사람캉 느그집서 명절 보내고, 또 한 번은 여유되고 시간되면 부산 내리오고...그래하믄 되는 거지.”
강혜선의 손을 꼬옥 잡으며 어머니가 말씀을 이으셨다.
“대신에 명절 아닐때도 가끔씩 내리와가 얼굴 보이주고 올라가믄 우리야 좋은 기고...”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님.”
“그래, 알았다. 조심해서 올라가라이. 부모님 물어보시면 우리 집에서도 혜선이, 니 너무 맘에 든다고, 이렇게 예쁘고 곱게 키운 딸 우리 아들래미한테 주신다캐가 우리가 많이 감사하게 생각한다 전해드리라이.”
“...네, 어머니.”
고개를 여러차례 끄덕이시던 어머니가 내게 물어보셨다.
“밖에서 매형 만나가 밥 먹고 올라갈끼라고?”
“그러자고 하시네.”
“알았다, 얼른 가봐라.”
사실 다른 집 같았으면 매형은 그냥 스킵을 해도 되는 인물일 것이다.
기회가 되어서 다같이 만나는 자리에 참석을 해 인사를 나눈다면 모를까, 굳이 시간을 따로 내서 만나지는 않을테니까.
하지만 우리집에서 매형의 존재는 조금 특별하다.
다른 집 매형이란 존재에 비해 사연이 있는 편이다.
매형과는 서면 먹자 골목에 있는 송정 3대 돼지국밥집에서 만났다.
강혜선의 선택이었다.
부산까지 내려와서 평소 내가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돼지국밥을 직접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핑계였다.
난 이제 어느정도 강혜선과 편해져서 괜찮았는데, 매형은 걱정을 했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온 손님을 돼지국밥 집에서 대접을 하자니 그건 좀 아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현재 매형이 일하고 있는 범일동의 대략적인 위치 그리고 내가 부산에 내려온 김에 서면 롯데에 들어간 H.I샵을 들러서 확인을 해야 한다는 모든 점을 다 고려해서 서면이 좋겠다고 말을 하자 서면에 괜찮게 잘하는 돼지 국밥집이 있느냐고 강혜선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게 서면 시장 먹자골목에 있는 송정 3대 돼지국밥 집에서 매형에게 강혜선을 소개시켰고, 그 자리에서 매형은 점심부터 소주 한 병을 마시자고 제안했다.
난 운전을 핑계로 거절을 했고, 옆에 있던 강혜선이 빈잔을 들며 자신이 대신 마시겠다고 매형의 분위기를 맞춰주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던 중 식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매형이 일어나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해버렸다.
매형 스타일이다.
당장 쓸 용돈도 없어 누나 몰래 내게 돈을 빌리는 매형이지만, 절대 밖에 나가서 체면 깎이는 짓은 때려죽여도 못하는...
아마 소고기를 먹으러 갔어도 자기가 계산을 했을 거다.
난 매형의 저런 모습에 한 번씩 숨이 탁탁 막히는 거고.
매형과 헤어지고 롯데 서면점에 들러 QA부를 통해 오픈 상황을 확인만 했던 H.I샵을 방문했다.
물론 강혜선과 함께 매장에 등장한 날 알아보는 매장 직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중에 매장 매니저가 날 알아보고는 마치 날 감찰 나온 사람처럼 어렵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산에 온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천천히 매장 확인만 해보고 바로 나왔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이었다.
“매형 되시는 분이 은태 씨한테 들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멋쟁이시던데요?”
“매형요? 아이고...깔롱도, 깔롱도...그런 깔롱쟁이가 없습니다. 멋쟁이라고요.”
“그러니까요. 스타일도 그렇고,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고...”
“저한테는...음...한 때는 저한테 우상같은 존재였어요. 이런 말 하면 웃긴데, 저 어렸을 때 매형 때문에 친구들이 절 참 많이 부러워했어요.”
“왜요?”
“그땐 진짜 잘나갔거든요, 우리 매형이.”
“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대충 20년 전쯤에 부산에서 BMW 5시리즈 몰고 다니면 진짜 잘나가는 거였어요.”
“헐...그건 지금도 잘나가는 거죠.”
“지금이야 리스도 있고 또 수입 중고차 가격도 폭망이라 너도 나도 마음만 먹으면 탈 수 있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건 그렇죠.”
“근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부산을 생각해보면 절대 흔한 차가 아니었어요, BMW 5 시리즈는.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제 주변에 그런 차를 모는 사람은 매형 말고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집이 잘 사는 집이었나 봐요?”
“네, 저기 부산 끄트머리에 보면 대변이라고 있어요. 거기가 부산인지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송정 지나서 대변이라고 멸치로 유명한 어촌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투영망선이라던가? 이름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멸치 잡는 배를 두 대나 가지고 있는 집 아들이었어요.”
“오...”
“그 정도면 나름 그 일대에선 유지라고 볼 수 있었던 모양이에요. 지금은 비록 많이 내려왔지만, 곱게 자란 분이세요, 매형.”
“안 그래도 아까 같이 식사하는데, 풍기는 느낌 자체가 제가 은태 씨한테 들었던 거랑 너무 달라서 속으로 살짝 놀랐어요.”
“제가 왜 소고기에 환장하는 줄 아세요?”
“아뇨.”
“내가 그 이야기는 아직 안했죠?”
“...?”
“저 고등학교 다닐때, 누나가 밖에서 잠시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다면서 나오라는 곳으로 갔는데, 거기에 매형이 있더라고. 저는 처음 봤죠. 아마 그때 두 사람 연애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었던 거 같은데,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하니까 매형이 있으면 한 번 불러봐라...그랬던 모양이에요.”
난 그 시절 추억에 잠겼다.
내가 참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매형.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진짜 인물이 좋았어요.”
“그러셨을 거 같아요.”
“거기다 또 옷은 얼마나 잘 입는지. 사실 그 전까지는 제가 제대로 된 한우라는 걸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뭐 삼겹살이 최고인 줄만 알았죠. 가족들끼리 외식을 해도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지, 비싼 한우를 먹으러 다닐 형편 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그렇죠. 그 당시엔 다들 그랬지 않나? 요즘이야 다들 맛집이니 뭐니 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그땐 서울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때 매형이 부산에 철마라는 동네로 저를 데리고 가더라고요. 전 부산에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아무튼 뭐 거기서 처음 딱 제대로 된 한우를 먹어봤는데...완전 신세계더라고요.”
“어떤 느낌이었는지 대충 알거 같네요.”
“부모님이 항상 주입을 하셨거든요. 진짜 고기 먹을 줄 아는 사람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절반 정도 익힌 한우 한 점을 딱 입에 넣는데, 그냥 사르르 녹아버리는 거예요. 저한테 한우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 같아요.”
“향수...”
“뭐가 막 잘되는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꼭 저 개인적인 게 아니라 집안 자체가 일어나는 느낌. 그 느낌을 받게 해준 게 매형이거든요. 그리고 매형이 틈만 나면 저랑 제 친구들을 BMW에 태워서 누나 몰래 철마로 데리고 가서 한우를 사주고, 또 친구들 다 보는 앞에서 용돈 주고...저 데리고 백화점 가서 비싼 리바이스 청바지에 나이키 맥스 운동화, 루카스 가방, 당시 막 유행했던 40화음 애니콜 폰...그런 것들을 사주셨어요. 저에게 매형은 자신감 그 자체였던 거 같아요.”
“...”
“그래서 한 번씩 진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으면, 아님 뭔가 축하할 일이 있음 전...혼자서라도 한우를 구어먹어요. 어이없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그냥...한우를 먹고 있으면 당시 막 매형만 있으면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시절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