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응원하는 거예요
프론트를 보는 직원은 아닌 거 같고, 일종의 벨맨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 하나가 객실까지 안내를 하겠다는 걸 정중하게 사양했다.
짐이라고 해봤자 강혜선이 가지고 온 롱샴 가방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객실까지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난 강혜선을 빤히 쳐다봤고, 그런 날 상대로 강혜선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도발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봐요?”
“뭐가?”
“뭐가? 요즘들어 말이 점점 짧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럼 안돼요?”
“완전 되죠. 나 이런 거 완전 좋아해.”
정말 이상하게도 더이상 침묵이 어색하지가 않았다.
가족이라는 걸 보여준 뒤부턴 그냥 흐르는 침묵마저도 자연스러웠던 거 같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그 눈빛으로 장난을 치는 이 순간이 너무 재미가 있었다.
강혜선은 언제부턴가 말을 편하게 놓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을 해봐도 내가 참 고지식한 게, 진심은 같이 말을 놓고 여느 연인들처럼 편하게 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그러자는 말을 먼저 꺼내기가 무척 쑥스러웠다.
연애고자.
글쎄...
진짜 그런건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애라는 텐션게임 앞에 주눅이 들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라고 뭐 처음부터 이랬겠나.
내 또래 직장인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먹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보니 이렇게 조심성만 늘어버린 거지.
“...”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 강혜선이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서 검지로 내 손바닥을 슥슥 긁었다.
난 뭐하는 거냐며 강혜선을 쳐다봤고, 강혜선은 그저 싱긋 웃으며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객실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난 강혜선을 안았다.
강혜선은 피식하고 웃으며 천천히 하자는 말과 함께 날 밀어냈다.
하지만 난 그대로 돌진했다.
들고 있던 롱샴 가방을 객실 카페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강혜선의 목선을 따라 귀 주변까지 입술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객실 현관 바로 앞이었다.
미니바 맞은편, 객실 카드를 꽂아두는 벽에 강혜선을 기대어 서게 만든 다음 한참동안 그녀의 살 냄새를 음미했던 거다.
간지러운지 이리저리 움찔거리던 강혜선의 손이 언제부턴가 내 머리카락을 솔솔솔 긁기 시작했다.
“집에 못가게 내가 안잡았음 어쩔 뻔 했어요?”
“술이라도 한 잔 더 하자고 했겠지.”
“피...맨날 말만...”
그리고 난 강혜선의 입술을 훔쳤다.
강혜선은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을 빤히 뜨고서 급하게 달아오른 날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부끄러울 이유가 더이상 없었으니까.
“다 좋은데...나 지금 자세가 너무 불편해요. 허리 아프려고 해. 침대 가서 좀 편하게 하면 안될까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도발을 하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고?”
“도발? 나 도발하는 거 아닌데? 응원하고 있는 건데?”
“미치겠네, 진짜...”
“진짠데? 나 지금 응원하고 있는 거예요. 잘하라고.”
두 눈을 여러차례 감았다 뜨며 계속적인 도발을 시도하는 강혜선이었다.
그런 강혜선의 손목을 잡고 침대로 향했다.
“아아!”
침대 위로 눕히는 순간 약한 신음을 흘리는 강혜선.
응원을 하고 있는 게 맞나보다.
애써 강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런 계산된 반응에 내가 지금 자극을 받고 있는 걸 보면...
강혜선 옆으로 나란히 누워 머리카락을 귀옆으로 살짝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입술을 훔쳤다.
한참동안 열심히 그녀의 입술을 음미했고, 어색해서 어디에다 둬야할지 몰랐던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담아봤다.
순간 강혜선은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한쪽 눈을 감으며 수줍은 듯 내 손을 허락하는 강혜선이었다.
그리고 난 그 응원에 좀 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차례대로 열기 시작했다.
그때부턴 입술을 떼고 아래에 누운 강혜선과 그윽히 눈을 맞추었다.
“키 때문에 미스코리아를 포기해야 했던 여자의 몸이 얼마나 예쁜지 확인 한 번 해봐야겠어요.”
“괜찮겠어요? 깜짝 놀랄 수도 있는데?”
“그 놀람이 실망은 아니겠죠?”
“그럴리가요. 얼마나 계산된 몸맨데...각오 단단히 해야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강혜선은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일부러 애먼곳으로 돌렸다.
그렇게 난 차례대로 블라우스 단추를 모두 풀었고, 강혜선의 등 뒤로 손을 넣어 속옷 상의까지 풀어지게 만들었다.
천장을 향해 누워있는데도 뽀얀 언덕 두 개는 그대로 봉긋 솟아있었다.
그녀의 블라우스 소매 부분 단추까지 모두 풀어 상의를 벗겨놓고 스커트 속으로 손을 넣었다.
까칠한 스타킹의 감촉이 이렇게까지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자세를 세운 강혜선이 내가 입고 있던 상의 셔츠를 대신 벗겨주었고, 난 천천히 그녀의 스커트 속에서 스타킹을 끌어내렸다.
“잠깐만요, 잠깐만...”
침대 시트를 끌어올려, 그 안으로 쏙하고 들어가버린 강혜선.
이 이상은 자신도 벌써부터 보여주기 부끄럽다는 신호 같았다.
그래서 난 그 안에서 강혜선 위로 올라타 그녀의 속옷부터 스커트까지 모두 벗겨 그녀 속으로 들어갔다.
“하아...”
미간을 찡그리기 시작하는 강혜선.
하지만 그녀의 고통마저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 안은 너무나 부드러웠고, 또 따뜻했다.
“아...잠깐만요...”
“왜요? 아파요?”
“아니, 천천히...천천히요. 너무 급하게 하지말고...”
그리고 난 그녀의 템포에 맞춰 내가 지금 당신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대하고자 하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강혜선의 두 팔이 내 목을 휘어감았다.
난 정직하게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서 신음을 흘리는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로 가로막았고, 그녀의 콧김이 볼에 와닿을 때마다 온 몸의 신경이, 솜털이 모두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욕구가 거칠게 표현될 때마다 강혜선은 머리맡에 놓여있는 베개를 쥐어짜내듯 움켜쥐었다.
그것 만으로는 도움이 안되었던지 내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강혜선은 내 허리를 감싸 제법 강한 힘으로 날 끌어안았다.
이대로 가버리지 말고 잠시만 그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달란 그녀만의 욕구 표현인 듯 했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살갖에서도 특유의 향수 냄새에 섞인 그녀의 땀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강혜선은 손톱 끝으로 가볍게 내 등을 긁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닥토닥,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토닥토닥 내 등을 더듬어주었다.
난 이미 그녀의 귀옆으로 베개에 얼굴을 묻은 상태였다.
뒤늦게 등에 땀이 맺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응원을 해줬건만...”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푸흡...”
“지금 그거 비웃은 거죠?”
“아뇨, 아니에요.”
“비웃은 거 맞는 거 같은데...”
“좋았어요. 정말로. 정말 진짜 좋았어요.”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와 두피를 솔솔솔 긁기 시작했다.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남자 나이 서른 넷.
여전히 들끓는 피지만, 내 기억 속 왕성했던 시절이 그리울 만큼, 강혜선이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만큼 내 입장에선 급하게, 그리고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틀림없이 강혜선의 입장에선 아쉽게 끝이났다.
혼자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렇게 조금씩 그녀 안에서 정상적으로 돌아올 거란 기대를 가지며, 난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같이 샤워하고 싶어요. 욕조 안에서.”
“그럴까요?”
“뒤에서 꼭 안아주세요. 그럼 전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은태 씨한테 기대볼테니까.”
호텔 가운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얼굴만 빼어내고 이불 속에 푹 숨어서.
작은 드레스 룸에 걸려있는 가운 두 개 중 하나는 내가 입고 다른 하나를 챙겨 강혜선에게 갖다주었고, 자신이 가운을 입는 동안 고개를 돌리고 있으라고 해서 휴대폰을 만졌다.
강혜선이 욕조에 물을 받으러 간 사이 난 누나에게 카톡을 하나 보냈다.
-내 좀 늦을 거 같다. 혁재하고 지현이가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하네.
친구란 이럴 때 팔아먹으라고 있는 거 아니겠나.
이럴 때 팔아먹지 언제 또 팔아먹어 보겠나.
곧바로 누나로부터 답장이 왔다.
-알았다. 술 조금만 무라. 그라고 혜선이 혼자 있게 하지말고 같이 있어주라. 여자 혼자 호텔방에 재우는 거 아이다.
기분이 참...
분명 난 성인인데, 그리고 벌써 몇 년 째 자취를 하며 혼자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아직까지 가족들한테는 스스로 어린 아이처럼 구는 것일까?
밖에서 회사 일을 할 때엔 눈빛과 입술에 칼을 차고 그렇게도 날카롭게 어른 행세를 하는 내가 왜 자꾸 가족들 앞에서는 어린 아이가 되는 것일까...
가족들이라고 왜 모를까.
그런데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부끄럽고 또 민망해지는 이 마음.
“물 다 받아졌어요. 오세요.”
그렇게 나와 강혜선은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의 알몸을 공개했다.
강혜선은 마치 자신의 몸매 정도면 충분히 훌륭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싱긋이 미소를 지었고, 난 그런 강해선의 가슴을 한 손에 담고 다시 입을 맞추었다.
적당하게 따뜻한 욕조 속 물.
아로마 오일과 소금을 풀어 물을 받은 모양이었다.
상쾌한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 강해선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러자 샤워 타올로 몸을 가린 강혜선이 한 발 욕조 속으로 몸을 담궈 내 앞으로 쪼그리고 앉았다.
뷰가 예술이었다.
해운대 백사장이 펼쳐졌고, 저 멀리 마린시티 쪽에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들이 뿜어내는 조명은 이곳이 천국이라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안 출출해요?”
강혜선이 물었다.
난 여전히 그녀의 목 위로 턱을 괴고서 그녀의 몸 위로 욕조 물을 손바닥에 받아 흘리고 있었다.
“왜요? 출출해요?”
“조금 출출하네요.”
“저녁 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제대로 먹기나 했겠어요?”
“하긴...나도 그래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되더라.”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죠?”
“당연하죠.”
“그럼...우리 여기서 이렇게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서 소주 한 잔 해요. 그때 말이에요, 나 은태 씨 처음 봤던 결혼식 날. 부산까지 와서 회에 부산 소주 한 잔 안하고 가려니까 그게 그렇게 아쉽더라고요.”
사실 부산에서 회를 제대로 먹으려고 하면 민락동까지 가야 되는데, 시간도 그렇고 고작 회 한 접시 먹자고 택시를 타기도 그래서 그냥 바가지 쓸 각오를 하고 결국 미포로 갔다.
그래도 나름 미포 끝집 하면 어느정도 메이커는 있는 집이니까.
가격이 비싼 거야 뷰 값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평상에서 술을 마셨다.
바람도 좋았고, 또 그 앞 방파제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어린 친구들이 있었기에 여러모로 부산 냄새가 나는 자리였다.
은근슬쩍 화장실을 다녀오는 척을 하다가 자기 자리에 앉지 않고 내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버리는 강혜선.
내 눈 앞으로 자신의 손 바닥을 내밀었다.
그래서 그 손바닥 위로 내 손을 올리니 깍지를 끼고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조금 무뚝뚝하고, 하나하나 가르쳐야해서 그렇지...또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답답했던 과정 모든 게 은태 씨를 만나는 재미였던 거 같기도 해요. 어쩌면 그래서 은태 씨한테 더 끌렸던 게 아니었나...싶기도 하고.”
“나는 그냥 처음부터 좋았어요.”
“처음부터?”
“나 적금 통장 만들러 은행에 가서 혜선 씨 처음 보고, 와, 씨...진짜 괜찮네...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괜찮네...하는 생각을 하면 했지, 그 앞에 와, 씨...이건 왜 붙어요?”
“그냥 당연히 그림의 떡인 줄만 알았으니까요. 하하하...”
“제가 그렇게 도도해 보였어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그냥 내가 만날 수 있는 여자는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거 같아요.”
“왜요?”
“그야 저도 모르죠. 그땐 그냥 좋았다가 끝이지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어요. 아, 예쁘네. 남자친구 있겠지?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좋겠네...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 끝.”
“다시 만났을 때는요? 결혼식장에서.”
“예쁘다. 예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어요. 그리고 간지럽더라고요.”
“간지러워요?”
“그냥 혼자 막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거지. 그러다 백화점에서 다시 만났을 땐...”
“다시 만났을 땐?”
“이미 그때 난 이상하게 우리가 결혼까지 가게 될 줄 알았던 거 같아요.”
“나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