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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42화 (42/325)

# 42

이불킥 참 많이 한다, 요즘들어...

다음날 출근을 해야함에도 나와 장 차장은 2차를 안갈 수가 없었다.

모처럼 기분 좋게 취하기 시작했으니까.

지난 세월 함께 해왔던 회사 일들을 안주삼아, 그렇게 우린 형제처럼, 또는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가 같이 해왔던 지난 추억을 하나둘 씩 풀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울산식당 바로 맞은편에 있는 연탄 오돌뼈집.

“그때 막 자율출근제를 하니마니 할 때 있었잖아.”

“아우, 진짜 그때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십시오.”

“크크큭...”

“자율출근제. 노이로제 걸릴 거 같습니다. 말이 자유출근제지...하아...진짜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까지 자다가도 번쩍 눈이 다 떠집니다.”

“왜? 그때 자율출근제 이야기 처음 나왔을 때 네가 거의 가장 먼저 쌍수를 들고 반기지 않았었나? 크크큭...”

“그런 건줄 몰랐죠, 전.”

“그래서 내가 그거 시작하는 순간 죽어나는 건 팀장 이하, 팀원들이고 오히려 위에 사람들 좋은 일만 시키는 거라고 그렇게 반대를 했었잖아.”

“그러니까요.”

“바보들도 그런 바보들이 어딨냐? 생각을 해봐라.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자율출근. 점심시간 포함해서 어떻게든 9시간 근무만 하면 된다. 딱 봐도 함정이 안보이냐? 하루에도 몇 번씩 미팅을 해야하는 우리가 오후 1시부터 4시 사이에만 미팅을 할 수 있단 말이잖아. 4시 30분엔 미팅도 못잡아. 8시 근무자 퇴근을 시켜야 하니까.”

“시차 문제로 해외 브랜드 업체와 연락을 주고받는 애로사항 때문에 당연히 이건 획기적인 변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자율출근제로 바뀌는 순간 센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죽어나야 했죠.”

“센터들도 힘들었어. 밤 늦게까지 사무실 지키면서 다음날 유관부서 미팅 자료 혼자 다 준비해야 했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어? 유관부서 미팅 자료 준비가 어쩌다 보니까 센터가 마땅히 해야할 업무로 변해버렸잖아.”

“팀장들도 고생 많았죠.”

“고생? 고생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러려고 팀장을 달았나 싶더라. 아무도 9시 전에는 출근을 안해. 사장님 지시로 인사부가 자율출근제 매뉴얼을 좀 빡빡하게 만들어 숙지시켰어? 자료가 필요해도 담당자한테 연락을 못하게 만들었잖아. 아침부터 팀장 미팅이라도 있는 날이면 텅빈 사무실에 혼자 출근해서 미팅자료 긁어내고...이게 과연 팀인가 싶으면서 이러려면 팀을 왜 만들었지 하는 생각에 진짜 일할 맛 안나더라. 우리 그거 자율출근제 얼마나 했었지?”

“3달 하다가 원래대로 돌아갔잖아요.”

“3달도 진짜 오래 간 거야, 따지고 보면. 그런 시스템은 저기 어디 아이티 관련 스타트업 기업에서나 가능할까, 홍성이 시도해볼 시스템이 아니었어, 애초에.”

“그런 거 보면 사장님도 참 대단하세요. 부작용을 전혀 모르지 않으셨을 건데, 그렇게 진행을 시키시는 거 보면.”

“사장님 입장에서야 아쉬울 게 전혀 없으시지. 그거 시작하기 전에 입장을 정확하게 밝히셨잖아. 앞으로는 매출로만 이야기 하겠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야? 이제 막 입사한 애들, 직장 생활 경험이 부족한 애들 입장에서는 그 말이 상당히 진보적이고 또 합리적이었다고 생각을 했겠지.”

“그렇죠. 매출로만 이야기 하겠다...저도 처음엔 그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 몰랐어요.”

“그때 퇴근하고 근무시간 안에 자기 업무를 다 못 끝낸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회사 앞 스타벅스로 다 모였었지?”

“인사부에서 9시간 근무 채운 사람들은 이유불문하고 다 퇴근을 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게 얼마나 미련한 짓이야. 내 사무실, 내 책상이 저기 있는데, 그걸 못쓰고 내 돈 들여 노트북 들고 커피숍에서 앉아서 잔업을 하는 게. 재수가 없어서 컨센트 있는 자리를 못 찾으면 하는 수 없이 집까지 업무를 가지고 가야했잖아.”

“그렇네요. 진짜 그럴 때가 있었네요.”

그렇게 또 소주 한 잔.

“그런데 내가 예전에 너한테 그렇게 무섭게 대했냐?”

“음...아니라는 말은 못하죠? 하하하.”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사실 무섭게 대하셨다고 하기 보다는...음...너무 빈틈을 안 보여주셨어요.”

술잔을 입술에 붙여놓고 장 차장은 자신의 지난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팀장이었던 차장님을 바로 밑에서 모셨던 제 입장에선 숨이 막힐 정도였죠. 이 사람이 쉬어야 나도 같이 쉴 수 있을 거 같은데, 무슨 철인도 아니고 이거 끝내놓고 바로 다른 프로젝트 들어가고...어디 뭐 그뿐입니까? 마치 제가 차장님처럼 일을 안하면 전 회사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 거 같고, 일을 열심히 안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드셨잖아요.”

“내가...그랬나?”

“원래 때린 사람은 기억을 잘 못해요. 맞은 사람만 기억을 하는 거지. 하하하...”

“많이 아팠냐?”

“뭡니까, 이건 또. 원래 차장님 스타일이라면 이럴 때 제가 반박하지 못하도록 그때 그렇게 하셨던 이유를 A부터 Z까지 들어야 정상인데...”

“크크큭...차장 단 이후부터 나도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번씩 팀장 때 내가 너나 다른 팀원들한테 했던 행동, 말들을 떠올려볼 때가 있어.”

“...”

“이불킥 참 많이 한다, 요즘들어.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애들한테 했을까? 그때 내가 왜 그렇게까지 애들을 굴렸을까? 뭐 그런 생각들. 그땐 내가 너희들한테 했던 말들이 꼰대 잔소리인지 모르고 했던 거 같애. 나도 여유가 없었거든. 여유는 없는 상태에서 의욕만 가득하다 보니까, 그리고 또 회사로부터 인정도 받고 있고...그래서 어떻게든 너희들을 데리고 기존의 매출 기록을 깨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모양이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 차장의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술잔을 비워놓고 장 차장이 말을 이었다.

“내 딴에는 그렇게 내 사비로 너희들 데리고 다니면서 술 사먹이고, 또 내가 아는 직장 노하우를 말해주는 게 내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애. 그게 너희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또 꼰대 잔소리가 될 지 몰랐던 거지. 진짜 몰랐어. 알았음 안 그랬지. 차장 쯤 다니까 내가 팀장때 했던 모습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팀이 아닌 부서 전체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그리고 그때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다녔던 게 참 꼰대 진상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야. 이불킥을 할 수 밖에.”

왠일로 장차장이 내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자신에게 철저했던 사람, 완벽주의자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이 자신의 지난 행동들이 부족함에서 온 미숙이었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참 우습게도 자신의 미숙했던 지난 날을 인정하는 장 차장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원망할 대상이 사라져버리는 기분이었달까?

계속 자신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억지로라도 만들어 주장해야 겉으로 알아들은 척하며 속으로 욕이라도 할 수 있을 건데, 저렇게 어이없이 인정을 해버리니 괜히 그걸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있으면 나만 속 좁은 놈이 될 거 같은 이 억울한 감정.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가벼워지는 마음 속으로 돌 덩어리 하나가 들어와 앉는다.

난 괜찮은가.

과연 지금의 난 내 팀원들에게 내가 바랐던 이상적인 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나 때문에 회사를 관두겠다고 했던 양 대리를 잡으며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

혹시 나와 친해지고 싶냐고.

그런게 아니라면 그냥 나와는 업무적인 관계만 유지하고 계속 회사를 다니라고.

다른 사람 때문에 선택한 회사가 아닌데, 왜 다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회사를 그만두려 하냐고...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겐 양 대리를 상대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나 역시 양 대리처럼 다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업무적인 관계만 유지하면 되는 장 차장이란 사람을 상대로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었으니까.

나도 하지 못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해보라고 한다?

이런 내로남불식 코메디가 세상에 또 있을까...

장 차장과는 그날 가진 술자리 이후로 인간적인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

농담을 자주 주고받기 시작했고, 편집샵 프로젝트 준비에 관한 지원 역시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D-DAY H.I 오픈 30일.

“그러니까 1차 오픈할 전국 40개 샵 매장 직원들을 서울로 다 초대해서 트레이닝을 하겠다?”

미팅 중에 이지혜가 H.I 샵 전체 매출 중 나크리스 판매량을 어느정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흐음...”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접근이 전혀 잘못된 아이디어는 아닌데, 거기에 들어갈 비용대비 성과가 얼마나 나올지는 미지수인 아이디어다.

“어차피 지점별로 차례대로 매장 직원들을 불러 교육을 해보라고 하셨잖아요.”

“그거 하고는 조금 다른 문제죠. 몇 개 매장을 동시에 묶어서 진행을 하는 거랑, 동시에 다 불러서 진행하는 건 진행 경비 자체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아무래도 그 많은 인원을 다 수용하기 위해선 호텔을 섭외해야 할 거고...”

“전 충분히 시도해볼만 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양 대리가 말했다.

“비용은 좀 들어가더라도 한큐에 끝내놓고, 지혜 씨를 기태 씨 쪽으로 붙여주는 게 지금 우리 입장에선 훨씬 더 효과적일 거 같습니다.”

“에이, 누가 그걸 모릅니까? 재무 쪽에서 컨펌을 안해 줄 거예요. 지금 이 프로젝트에 들어간 비용이 총 얼마입니까? 틀림없이 보류 시키면서 샵 다 오픈되면 하라고 할 게 뻔하잖아요. 그렇다고 홍성 직원들 트레이닝 시키는 비용까지 나크리스에 요구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이래서 마이너 브랜드랑은 같이 하는 게 힘들죠. 원래 메이저 브랜드들은 우리가 말 안해도 자기들이 먼저 알아서 이야기를 꺼내주는데...”

“이미 나크리스는 해줄 만큼 해줬습니다. 여기서 더 바라면 우리가 양심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 순간 장 차장이 떠올랐다.

장 차장이라면 방법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거 같다는 기대감.

“일단 그거 혹시 모르니까 트레이닝 기획서라도 하나 만들어 볼래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장 차장이 그걸 진행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게 뭔데?”

“아무래도 나크리스를 조금 더 공격적으로 프로모션 하기 위해선 매장 직원들을 불러서 우리 영업부 직원들이 해외 트레이닝 연수를 가듯, 그런 연수 프로그램을 한 번 해주는 게 효과적일 거 같아서요.”

“연수 프로그램?”

“다른 브랜드 보다 나크리스 인센티브를 높게 잡아서 넣어주더라도 한계라는 게 있을 겁니다, 분명.”

“그렇겠지.”

“그렇다고 나크리스에만 있는 인센티브를 다른 브랜드에는 안 넣을 수도 없는 거고요.”

“그건 말이 안되는 거고. 이미 다 잡아놨잖아, 인센티브 리스트는.”

“그러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나크리스 매출을 어느정도 확보하기 위해선 매장 직원들이 나크리스라는 브랜드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흐음...”

“대형 브랜드들이야 때되면 알아서 직원들 파티도 열어주고 작은 선물들도 전달하면서 매장 직원들을 상대로 영업이라는 걸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H.I에 들어가는 다른 브랜드들도 다 본사로 바로 받는 게 아니라 만토바 거쳐서 받는 거라 그런 프로그램적인 혜택은 전혀 없잖아.”

“그러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나크리스가 그걸 해주면 나크리스에 대한 직원들의 사기는 분명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을 한 번 진행해주면, 매장 직원들도 현재 본사가 나크리스를 얼마나 푸쉬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느낄 거고. 고객들 상대로 열 번 푸쉬할 거 백 번 푸쉬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달라집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이 친구야. 근데 이걸 재무부장이 오케이 사인을 해줄까? 부장님?”

“안해줘. 당연한 걸 뭘 또 물어, 묻긴. 장 차장, 너같으면 해주겠냐? 아닌 말로 나 요즘 재무부장 피해 다닌다. 전무님 덕에 이렇게까지 진행이 되는 건데, 여기서 이거까지 요구하면 재무부장 입에 거품문다.”

바로 그때 장 차장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회사 카드를 꺼낸다.

그리고 말 없이 박 부장을 쳐다봤다.

“왜?”

“...”

“뭐?”

“...”

“아, 어쩌라고?”

“꼭 필요한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뭐 지금 나더러 부장 카드 주라고?”

“저도 지금 제 회사 카드 주지 않습니까?”

“안돼. 이번달 팀별로 돌아가면서 회식 시켜주기로 했어.”

“다음달에 하십시오. 다음달 하실 때 4팀, 5팀은 제 카드로 회식 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번에 디테일 잡힌 거 다 쳐내고 나면 재무부장 따로 불러서...”

“아, 그냥 좀 주십시오!”

“아, 알았어.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자, 자, 가져가. 다가져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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