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그럼 나도 연봉 1억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출근을 준비하며 다이어리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다이어리 속에서 650만 원이라고 적혀있는 숫자를 하나 발견했다.
650만 원.
그리고 그 옆으로 생활비 250만 원, 각종 경조사 + 잡비로 100만 원.
또 그 밑으로 아이 교육비 + 부모님 용돈으로 150만 원.
가장 마지막으로 아파트 대출금 이자로 100만 원이 적혀 있었다.
650을 벌어도 한 달에 할 수 있는 저축은 고작 50만 원 정도.
이걸 적었을 당시가 떠올랐다.
4달 전, 그러니까 이제 막 팀장으로 승진이 확정났을 때가 마침 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직 영업 5팀이 정확하게 발표가 나지 않은 상태였는데, 팀장 승진을 하고나니까 마침 또 연초고 그래서 이유없이 현재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또 앞으로의 직장 생활을 구체적으로 계획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근길에 앞으로는 연말마다 회사에서 주는 싸구려 다이어리 대신 고급의 다이어리를 쓰고싶단 생각이 들어 팬시점에 들러 이 다이어리를 구입했던 거다.
그리고 가장 첫 장에 10년 뒤 나의 목표를 썼던 거고.
올해 초 내가 세웠던 10년 뒤 나의 목표가 바로 월 650만 원이었다.
10년 뒤 목표가 월 650만 원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뭐야? 꼴랑? 이런 반응으로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또 한 번도 누락되지 않고 때에 맞춰 꾸준히 승진을 해야되고, 또 그 안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가능한 목표가 바로 월 650만 원이다.
연봉 1억.
현재 박 부장의 연봉도 9천 초반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장 차장이 연 6800인가를 받아가고.
그나마도 박 부장은 부장 연수가 쌓여서 그 정도로 받지, 부장 타이틀로 8천 초반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아직 수두루빽빽하다.
우리 패션 업계에서 부장 타이틀로 연봉 1억을 찍으려면 정말 초고속 승진에 승진을 할 때마다 쉬지않고 인정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부장 8년차 재무부장이 딱 1억을 받는 걸로 알고 있다.
연봉 1억.
연봉 1억을 받으면 단순 계산으로 한 달에 돈 천만 원 정도 버는 걸로 착각들을 하는데, 따지고 보면 현실은 절대 그렇지가 않다.
누진세 적용시켜서 실수령액 7900만 원.
그걸 12달로 나누면 한 달에 대충 660만 원 정도가 된다.
그래서 이것저것 끄트머리 다 떼고 10년 뒤엔 한 달에 65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부장으로 일을 하자고 내 스스로 목표를 잡고 이 다이어리 첫장에 썼던 거다.
그 옆으로 썼던 각종 지출 내역은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 하나를 두고 있다는 가정 하에 서울 생활 3인 기준 지출 항목을 나름대로 만들어 썼던 거고.
지금에야 무척 소박하고 또 답이 안나오는 10년 후의 목표이지만, 이걸 직접 하나하나 따져가며 설계할 때엔 과연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란 의심과 더불어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는 도구로 사용하겠다 다짐했었다.
그리고 이번에 부산에 내려갔다 와서 곧바로 공인 중개소를 들러 월 300정도 받을 수 있는 아파트를 알아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내 월급에 플러스 수입 300이 되면 나도 월 수입 650이다.
그럼 나도 연봉 1억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아직은 싱글.
부산에 내려가는 횟수만 지금처럼 유지하면 한달 생활비 100만 원이면 충분하고, 월 경조사비 + 잡비로 50만 원이 채 안나온다.
거기에 아이 교육비는 필요없고, 그 돈 100만 원을 오로지 부모님 용돈으로 드린다고 해도 내 한달 지출은 250이면 충분하다.
아파트 대출금이야 이젠 나와 먼 이야기이니까 빼고 말이다.
월 400을 모을 수 있으면 1년이면 5천만 원이다.
그런데 13억을 가지고 월세 300을 받기는 힘들다고 하니 조금 러프하게 낮춰서 250으로 잡아도 월 350만 원, 1년에 4천만 원 정도 저금을 할 수 있단 결론이 나왔다.
이젠 좀 해볼만 하단 생각이 들었다.
크게 오를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강남 요지에 집을 사놓으면 떨어지지는 않을테니 원금 회수는 얼마든지 가능할 거고, 이정도 세팅이면 앞으로의 내 인생도 나름 괜찮겠다 싶었다.
아니, 많이 괜찮겠다 싶었다.
그리고 알게 된 또다른 돈의 가치.
대출 하나 끼지 않고 13억을 한 방에 투자를 해야만 거기서 월세 250을 올릴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13억이란 거금이 만들어내는 월 수입 250만 원 보다, 난 지금 100만 원이나 더 많은 350만 원을 회사에서 매달 받고 있다는 건데, 기분이 살짝 묘해졌다.
팀장을 달고 일하고 있는 현재 내 일의 가치가 내 계산대로라면 13억을 한 방에 투자해서 만들 수 있는 월 수입 250만 원 보다 높다.
물론 월세 250은 내가 아무것도 안해도 알아서 들어오는 수입이라는 게 포인트겠지만, 이건 또 상황에 따라 월세가 안나가서 수입이 제로가 될 때도 있지 않나.
매일같이 사표 한 장씩을 가슴팍에 숨기며 다니는 회사지만,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니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내 일이 얼마나 가치가 이는 일인지 새삼 뿌듯할 정도였다.
그렇게 난 지옥 같았던 부산에서의 주말을 끝내고 다시 전쟁터로 출근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차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장 차장과 지하 주차장에서 만났다.
난 진작에 내려 엘레베이터로 가는 길이었고, 장 차장은 이제 막 주차를 시키고 서류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난 서둘러 장 차장의 가방을 건네받았고, 차에서 내린 장 차장이 차 리모컨 키를 누르는 동안 그 옆에 가만히 서있었다.
다시 자신의 가방을 건네받으며 장 차장이 물었다.
"뭐 좋은 일 있어?"
"아뇨."
"근데 월요일 아침부터 왜 이렇게 힘이 넘쳐나?"
"글쎄요? 아침부터 차장님을 봐서 그럴까요?"
장 차장은 미간을 좁히며 날 빤히 쳐다봤다.
마치 너 뭐 잘못먹었냐? 하는 말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평소 장 차장에게 지어 보이는 가식적인 미소가 아니라, 진심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여유가 생기니 미소는 덤이었다.
"수상하네..."
"가시죠."
난 장 차장 앞으로 손을 내밀며 먼저 걸으라고 제안했고, 엘레베이터 앞에서 몇 발 장 차장보다 빠르게 걸어 먼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장 차장은 그런 날 다시 한 번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봤다.
"나크리스 진행은 잘 되고 있어?"
"넵!"
절로 나오는 경쾌한 대답.
"진짜 뭐야?"
"뭐가 말씀이십니까?"
"좋은 일 있음 같이 좀 알자. 뭔데?"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요? 그냥...매일같이 출근 할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너 뭐 주말에 부산 내려갔다 왔어?"
"...!"
"너희 매형은 아직도 그러시냐?"
매형이 골때리는 짓을 해온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를 하기 전부터 쭈욱 있어오던 일이다.
그러다 매형이 연산동 아파트까지 해먹었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엔 매형 때문에 서울 생활 정리를 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부모님 곁을 지켜야 할 것 같아 꽤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때 장 차장이 그런 내게 술을 사주며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관을 이야기해줬었다.
결국은 그냥 딴 생각하지 말고 회사에 계속 다니라는 말이었지만, 난 처음으로 당시 팀장이었던 장 차장에게 우리 집안의 골치거리에 대해 털어놓았었고, 장 차장으로부터 위로를 받았었다.
난 장 차장의 물음에 그저 쓴 웃음을 지어보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도 말했지만,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은태야. 어느 집이나 그런 사람 하나씩은 꼭 있기 마련이야. 어차피 인생은 개인 플레이야. 그걸 깨닫는데 너무 많은 댓가를 지불하지는 마라. 결국 시간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진리인데, 그걸 꼭 스스로 경험해보고 알아내겠다고 아까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는 건...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 입장에 보기에 안타까워."
"그럼요, 개인 플레이죠. 이제 압니다, 저도."
"...?"
난 사무실 층을 눌러놓고 다시 한 번 장 차장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장 차장도 함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소주나 같이 한 잔 하자. 둘이 술잔 기울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네. 차장님 시간 괜찮으실때 언제든 말씀만 해주십시오."
"너 그러고 보니까 팀장 달고 아직 나한테 팀장턱도 안쐈어."
"차장님도 차장 다시고 저한테 차장턱 안쏘셨어요."
"그랬나?"
"차장님이 1차 사시고, 2차는 제가 사는 걸로..."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많이 해결이 된 모습이네. 보기 좋다."
"...?"
그렇게 시작된 한 주의 첫날.
팀 미팅에서 장향은이 나크리스 쪽에서 보내온 트레이닝 인비테이션 레터를 프린트해서 내게 건넸다.
"근데 이거 보류해야 되지 않을까요? 현재 우리팀 맨파워로는 두 명 씩이나 자리를 비우기가 좀 애매할 거 같은데."
장향은의 말에 양 대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박기태와 이지혜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 사정에 브랜드 업체 일정을 바꿔달라고 할 순 없잖아요. 우리 회사만 따로 초대하는 것도 아니고...이 좋은 기회를 왜 놓칩니까?"
"막상 가도 하는 건 없잖아요. 짜여진 일정대로 아이템 교육받고 현지 매장 다니면서 매장 분위기 확인하고...지금 우리팀 상황에선 오픈부터 시켜놓고 다음 시즌 트레이닝에 참가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은데요."
"다음 트레이닝에 우릴 초대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내 말에 장향은은 입을 다물었다.
냉정한 세계다.
브랜드 본사가 전 세계에 퍼져있는 브랜드 컨트롤 업체들에게 트레이닝 인비테이션을 보낼 때에도 다 보내는 게 아니라 어느정도 매출이 올라오는 업체들만 선정을 해서 보낸다.
그 비용이 어디 한두 푼도 아니고 어떻게 다 초대를 해서 교육을 시키겠나.
비행기 티켓부터 호텔까지 브랜드 업체가 다 제공을 하는 건데.
하지만 나크리스가 우리 홍성 인터네셔널에 트레이닝 인비테이션 레터를 그것도 두 장의 티오를 만들어 보낸 건 이제 막 같이 손을 잡고 시작하기로 한 파트너이기에 성의를 보이는 것 뿐이다.
막상 론칭을 했는데, 매출이 시원찮게 나온다면 그 다음부턴 트레이닝에 관한 말이 쏙 들어갈 거다.
어쩔 수 없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지.
"물론 향은 씨 말대로 막상 가도 하는 건 없죠.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 시즌마다 그 컬렉션이 그 컬렉션인데 자기들끼리 새로운 컬렉션이다 포장하는 그 지루한 설명을 듣는다는 점에선 큰 의미가 없는 자리이기도 하고. 하지만..."
난 팀원들과 차례대로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그런 자리에 한 번이라도 가본 것과 못 가본 건 틀림없이 큰 차이죠. 직접 가서 파리 방돔광장이 어디에 있다, 나크리스 브띠크가 어디에 있다, 거기 브띠크 분위기는 이렇더라, 다른 브랜드 컨트롤 업체 사람들과 저녁에 맥주 한 잔 같이 하면서 다른 업체에서는 나크리스를 이렇게 컨트롤하더라..."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이지혜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끝맺음했다.
"그런 것들을 다 직접 보고 듣고 올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왜 포기합니까? 안 그렇습니까?"
"..."
이지혜는 내가 보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럼 누가 갑니까?"
장향은이 물었다.
"당연히 향은 씨가 센터니까 향은 씨가 가야죠."
양 대리도 고개를 끄덕였고, 난 뭘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식으로 장향은을 쳐다봤다.
"그럼 한 명 더는..."
"기태 씨."
"네, 팀장님."
"기태 씨 지금까지 브랜드 트레이닝 가본 적 있어요?"
"네, 1팀에 있을 때 두 번 가봤습니다. 아니구나, 일본 미카자키 트레이닝까지 포함해서 총 세 번 가봤습니다."
"양 대리님은 귀찮아서 싫다고 하실 거고..."
양 대리는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우리팀은 불편한 표정으로 침묵을 해야 했다.
그럴 수 밖에.
회사가 계약직 사원에게 브랜드 트레이닝 참가를 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팀 미팅을 끝내놓고 난 장향은이 프린트한 나크리스 트레이닝 인비테이션 레터를 가지고 장 차장을 찾았다.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박 부장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놓고 장 차장 앞으로 프린트 된 종이를 내려놓았다.
"나크리스가 가을 시즌 컬렉션 트레이닝을 한다고 인비테이션 레터를 보내왔습니다."
"보낼 사람 있어."
"네, 여기 밑에 참가 인원..."
장향은과 이지혜의 이름을 적어넣은 서류를 한참동안 말 없이 읽어내려가던 장 차장.
그는 서류 너머로 내 눈을 한참동안 주시했다.
그리고 난 아침에 그에게 보여줬던 미소를 그대로 머금은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거 꼭 보내야 돼? 안 그래도 사람도 없는데, 그냥 다음 시즌에 보내면 안돼?"
"제대로 한 번 띄워보고 싶습니다."
"흐음...이지혜는 계약직이잖아."
결국 서류를 책상 위로 올려놓고 더이상 자신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란 표정을 짓는 장 차장.
그의 표정엔 네가 이렇게 나오니까 내가 악역이 될 수 밖에 없는 거잖아! 하는 식의 서운한 감정까지 실려있었다.
물론 장 차장의 입장은 백 번 이해한다.
그래서 이번엔 작전을 좀 바꿔서 최대한 낮은 자세로 그에게 부탁을 하려고 하는 거고.
"다른 사람들 듣습니다, 차장님."
난 그의 목소리가 너무 컸음을 상기시킨 다음 내 뜻을 전달했다.
"안된다고 하시는데 고집을 피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차장님."
"아, 왜?"
"나크리스 쪽에 저희가 이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건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컨사인먼트에 마진까지 저희쪽으로 이렇게 유리하게 잡아줬는데..."
"흐음..."
"거기다 처음 보내오는 초대장이고. 매장 하나 오픈한다고 그거 때문에 사람이 부족해 못 보낸다고 하면 그쪽에서 저희 홍성 인터네셔널을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건 공 팀장 말이 맞아."
건너편에서 박 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작은 브랜드라도 첫 트레이닝엔 사람을 보내줘야지. 그게 서로에 대한 예우고."
장 차장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선 반박을 할 게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런 장 차장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주고자, 한마디 덧붙였다.
"센터니까 장향은 씨를 보내는 건 당연한 거고...양 대리는 저랑 같이 매장 오픈 해야되니까 당연히 안되고, 그렇다고 기태 이 친구는...솔직히 남자, 여자 달랑 둘만 보낼 수도 없는 거 아닙니까."
"센터가 빠져도 괜찮아?"
"센터 일이야 노트북, 전화기만 있으면 되는 건데요, 뭐. 그리고 오히려 잘 된 거 아닙니까. 간 김에 향은 씨한테 파리에 있는 다른 브랜드 본사들도 직접 몇 군데 찾아가보라고 할려고요."
"난 모르겠다. 부장님한테 직접 허락맡아."
난 장 차장 앞으로 고개를 숙인 뒤 서류를 들고 파티션 넘어 박 부장의 자리로 갔다.
"보낼 사람이 그렇게 없어?"
박 부장은 서류에 적힌 이지혜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똑똑한 친굽니다."
"똑똑은 무슨...가서 하는 게 뭐가 있다고 똑똑을 찾아?"
하지만 말과는 달리, 박 부장은 그 서류에 자신의 사인을 휘갈긴 후 내게 건넸다.
"나크리스 차질없지 진행되고 있지?"
"네, 일단 알렉산더 머린 쪽으로 재계약 없을 거란 내용 메일로 보내놓은 상태고 창고에 있는 재고 아웃렛 쪽으로 다 옮기라고 요청해놨습니다."
박 부장을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은 언제부터 비우기로 했어?"
"정기 세일 들어갈 때 알렉산더 머린도 이벤트에 포함을 시켜달라고 강남점에 요청을 해놨습니다. 해줄 겁니다. 그거 끝나는대로 매장 비우고 나크리스 인테리어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가서 일 봐."
"감사합니다."
난 박 부장과 장 차장에게 차례대로 고개를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지혜 앞으로 박 부장의 사인을 받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거 스캔 떠서 나크리스 본사에 보내주세요."
"...!"
이지혜는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눈을 크게 뜨고 한참동안 박 부장의 사인이 들어간 그 서류를 쳐다봤다.
"티, 팀장님."
"스캔 떠서 보내주라니까."
"...네."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스캔을 하기 위해 복합기 쪽으로 향하는 이지혜의 모습에 양 대리는 설마 진짜 허락을 받아냈다는 식으로 날 쳐다봤다.
장향은과 박기태 역시 그 결과가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다.
내가 이지혜 몰래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양 대리는 책상 밑으로 주먹을 말아쥐었고, 장향은은 안도의 한숨을, 박기태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