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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4화 (4/325)

# 4

회사는 그냥 계속 다녀

"먼저 퇴근합니다. 알아서 마무리 잘 하고 퇴근들 하세요. 내일 봅시다."

6시 정각.

하루종일 일이 손에 안잡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정작 하루종일 내가 무슨 이유로 뻘짓만 했는지 조차 기억이 안날 정도로 쓸데없는 생각들을 했던 거 같다.

원래라면 점심은 팀원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적당한 메뉴로 한끼 사주고, 저녁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입사 동기인 재경부의 원태와 영업 1팀의 규호를 불러서 소고기를 사려고 했다.

원태와 규호가 무슨 일로 소고기를 사느냐고 물으면 적금 통장이 만기가 됐다는 거짓말을 둘러댈 작정이었다.

그런데 양 대리에게 한바탕 시원하게 퍼붓는 모습을 규호에게 들켜버렸고, 그런 상태에서 술을 한 잔 같이 하자고 하면 틀림없이 내가 그 일로 술 생각이 나서 자기들을 부르는 거라 오해를 할 것 같았다.

규호가 현재 대리로 근무 중인 영업 1팀의 팀장이 양 대리의 전 사수였다.

좁은 직장 생활.

틀림없이 내가 월요일부터 규호를 불러 술을 마신다는 걸 알면 뒤에서 여러가지 말이 나올 게 틀림없다.

그딴 일로 술을 마신다는 식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난 주차장에서 차를 빼 마트로 향했다.

"반주삼아 혼자 먹을 건데 꽃등심 300그램이면 충분할까요?"

"충분하죠."

"파조래기도 주나요?"

"챙겨드릴게요."

꽃등심 300그램과 소주 한 병 그리고 맥주 두 병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2년 째 살고 있는 원룸이다.

처음 서울에 직장을 잡고 얻었던 원룸은 보증금 500에 45만 원짜리 월세였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정말 악착같이 모아서 은행에 대출을 조금 내어 7000짜리 전세 원룸으로 옮겼다.

집 컨디션만 놓고 보면 월세로 있었던 원룸이 훨씬 더 괜찮았다.

회사까지 거리도 더 가까웠고.

하지만 뻔한 월급쟁이 형편에 월세 45만 원은 결코 적지않은 부담이었다.

혼자 사는 집에 누가 수시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아낄 수 있으면 조금 덜한 컨디션으로 옮기더라도 월세로 빠져나가는 돈을 아끼고 싶었다.

그 결과 은행 대출 이자를 계산하더라도 월 30만 원 이상은 세이브를 할 수 있게 됐다.

정말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을 한다.

난 그렇게 세이브한 30만 원으로 대리를 달고 나서 중고 소나타를 한 대 뽑았다.

요즘 뭐 차 값이 문제인가, 유지비가 문제이지.

출퇴근 할 때만 타는 차라서 한 달에 차 밑으로 들어가는 돈은 전세로 옮기기 전 월세로 나가던 금액과 얼추 비슷하다.

그렇게 아둥바둥 살고 있다, 혼자서.

원래 집이 부산이다.

초중고, 대학까지 부산에서 나왔다.

그래서 가족도 친구도 다 부산에 있다.

서울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회사 사람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 인연들이 몇몇 있긴 한데, 잘 안 만나진다.

다들 사는 스타일도 다르고, 형편도 다르다보니 막상 만나도 재미가 없다.

그래서 지금 난 로또에 당첨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술 한 잔 같이 마셔줄 사람이 없는 처지다.

토요일 저녁에 로또 당첨을 확인하고 한 동안 멍하니 있었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별의별 생각들이 쏟아졌지만, 거의 두 시간 넘게 멍하니 스마트 폰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다.

로또에 관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잘 지내시냐, 어디 아픈데는 없느냐 하는 식으로 통화를 이어갔었다.

아버지는 귀가 잘 안들리신다.

그래서 아버지와는 전화 통화를 해본 기억이 군대 때 말고는 거의 없다.

언제나처럼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또 내 안부를 전했다.

그렇게 부모님과 통화를 끝내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친구라고 해봤자 지현이 혁재, 혜림이가 전부다.

셋 다 중학교 때 친구다.

이상하게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과는 연락이 모두 끊어졌다.

친구들 중 지현이 빼고 혁재와 혜림이는 이미 결혼을 했다.

혁재는 딱 서른에 장가를 갔고, 혜림이는 동갑내기 친구와 5년간 열애 끝에 서른 둘에 시집을 갔다.

혜림이 남편인 광호는 나와 지현이 그리고 혁재를 혜림이의 친구가 아닌 자신의 친구로 생각하는 녀석이다.

그만큼 가깝다.

그리고 지현이는 토요일에 내가 전화를 걸기가 무섭게 안 그래도 자기가 나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무슨 텔레파시가 이렇게 절묘하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결혼 날짜가 잡혔다면서, 가장 먼저 나한테 그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는 거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난 로또에 당첨이 됐고, 가장 친한 친구 녀석의 결혼 소식까지 들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벽까지 스마트 폰으로 영화를 봤다.

로또 당첨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오늘은 그냥 네 하고싶은 거 다 해.

안그래도 내일 일요일이잖아.

내일까지는 쉬잖아.

그냥 씻지마.

양치질도 하지마.

그냥 게을러져.

그래서 통닭 한 마리와 맥주 두 캔을 시켜놓고 새벽 4시까지 영화를 봤다.

그리고 다음날 1시까지 잠을 잤다.

일요일은 이상하게 밖에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불안했다.

도둑이 들 이유도 하나 없는데, 이상하게 당첨 용지를 들고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당첨 용지를 집에 놔둔채 어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짜장면과 돈가스를 시켜 먹으며 집에 있었다.

청소도 일부러 안했다.

로또에 당첨이 되니까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

그렇게 하루종일 로또로 당첨된 금액을 계산하면서 당첨금을 수령받으면 그걸로 뭘 하는 게 좋을지를 생각하며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그 사단이 벌어진 거다.

오늘 쯤은 정말 안심하고 거한 외식을 하고 싶었다.

술도 한 잔 찐하게 마시고 싶었고.

그런데 그걸 양 대리 이 개자식이 다 망쳐놓았다.

또 생각하니까 열받네...

"에휴..."

한숨을 쉬지 말자고 그렇게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도 혼자 살고 있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대충 발로 바닥에 널부러진 옷가지를 치워놓고 신문지를 깔았다.

그리고 플라스틱 상을 펴서 그 위로 가스버너를 올렸다.

사원일 시절 팀장이 낚시를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낚시 장비를 구입했는데, 나머지는 다 먼지가 쌓인채 한 곳에 쳐박아두고 있지만, 유일하게 낚시 의자만큼은 요긴하게 쓰고 있다.

낚시 의자를 펼쳐 상 앞으로 놓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맥을 말아서 혼자 꽃등심을 먹었다.

그래도 맛이 있어 다행이다.

파조래기는 그냥 설거지 하기가 귀찮아서 비닐에 든 상태로 소스를 부어 비볐다.

소맥 한 잔을 시원하게 원샷 때리고 고기 한 점을 집어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뭘 위해서 궁상맞게 혼자 이러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난 지난 6년 간 직장 사람들 말고는 서울에 친구 하나 만들지 않고 뭐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살아왔지?

조금이라도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서울 생활을 시작했는데 정작 부산에서 보다 더 좁은 세상 속에 갇혀 살고 있다.

그리고 또 소맥 한 잔에 파조래기를 올린 꽃등심 한 점을 집어먹었다.

도대체 내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크다면 큰 돈이기도 하지만, 막상 쓸 때 보면 별로 쓸 게 없는 350만 원.

그 350이라는 돈을 매월 문제없이 받아가기 위해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하는 사람과 핏대를 올려가며 싸울 이유가 있는 걸까?

오늘 난 350만 원이 아니라 마치 350억이 걸린 것처럼 양 대리를 몰아세웠던 거 같다.

치익...

고기 한 덩어리를 다시 불판 위로 올려놓고 생각했다.

정말 가치가 있는 일을 해왔던 걸까, 그동안.

로또로 생긴 13억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현재 내 컨디션만 놓고 생각해봤다.

그렇게 다른 사람 가슴에 상처를 만들어내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상처를 받으면서 버틴 6년의 결과가 고작 실평수 7평 남짓한 원룸에 전세들어 살며 낚시 의자를 펼치고 앉아 혼자 소고기에 소맥을 마시고 있는 거라면 이 생활을 진짜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이게 최선일까?

고기를 한입 크기로 잘라놓고 다시 소맥 한 잔을 원샷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잖아.

내 안에서 이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13억이 생겼잖아!

그러자 속에서 또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그 돈이 평생 갈 거 같니?

지금까지 넌 그 돈으로 어떤 재테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공부라도 해봤어?

주식, 부동산...그런 거에 자신있게 지금 생긴 13억을 투자할 자신 있어?

투자 해놓고 하루종일 조마조마해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 하고 있는 일에도 집중을 못할 거고.

만약 투자를 했는데 답이 안나오면 어쩔 거야?

차라리 은행에 가만히 꽂아놓고 있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결론이 나오면 어쩔 거냐고.

13억?

그건 그냥 네 마음의 보험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회사는 그냥 계속 다녀.

지금처럼 치열하게 일하지 말고, 그동안 네가 답답하게 생각했던 사람들, 왜 저렇게 밖에 일을 하지 못하나 하고 무시했던 사람들처럼 시간만 떼워가며 출근만 해.

그리고 앞으로는 위에서 지랄하면 무조건 네, 네 하며 죄송하단 말만 하지 말고 할 말도 해가면서 뻐대.

좀 뻐대도 괜찮아.

잘 뻐대는 놈들이 정작 직장 생활은 오래 한다는 걸 지난 6년 간 네 눈으로 직접 봤잖아.

오늘 양 대리한테 했던 것처럼 수틀리면 들이박아도 돼.

오늘 정말 잘했어.

내가 다 뿌듯하더라.

그렇게 하면 돼.

뭐가 무서워?

그동안 넌 그런 걸 못했던 게 아니라, 욕심이 많아서, 야망이 너무 커서 안했을 뿐이야.

이젠 알잖아.

네가 아무리 욕심을 부리고 더 큰 야망을 가지더라도 회사 안에서 네가 클 수 있는 한계는 뚜렷하다는 걸.

그리고 네가 말했잖아, 13억이 생겼다고.

그래, 맞아. 네 뒤엔 13억이 있어.

이제 넌 언제 짤릴지 몰라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야.

돈 몇 푼 더 받기 위해 승진에 목숨 걸 이유도 없다고, 더이상.

얼마나 든든해?

인생 길다.

지금 넌 아직 네 인생의 반도 채 안왔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잘 다니고 있는 회사 그만 둘 생각 하지말고 그냥 다녀.

그러다 보면 잘하나 못하나 경력은 쌓일 거고, 그렇게 쌓인 경력으로 더는 못해먹겠다 싶을 때 시원하게 사표쓰고 나와.

그리고 부산 가.

부산에도 회사는 많아.

여기랑 비교해서 월급은 짜고, 대기업은 없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충분히 괜찮은 회사 찾을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자.

"크흐..."

난 소맥 한 잔을 원샷 때려놓고 다시 고기 한 점을 집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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