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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3화 (3/325)

# 3

내가 이정도 액션도 못 깔 줄 알았어?

12시 4분.

헐레벌떡 박기태와 이지혜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난 책상 의자에 앉아 손목 시계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고, 다른 부서 사람들은 곧 시작될 전운을 감지하고 재미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점심 시간이 됐음에도 누구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박기태와 이지혜는 다른 부서 사람들의 눈길에 고개를 숙이며 내 앞으로 다가와 섰다.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시계만 쳐다보자 박기태는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였고, 이지혜는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입술을 안으로 숨긴채 숨을 죽였다.

"쟤네들 뭐하냐?"

장 차장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인 박 부장이 영업 2팀장에게 물었고, 영업 2팀장이 대략의 상황을 설명하는 사이 양 대리가 쭈삣거리는 모습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박 부장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양 대리에게 한 마디 했다.

"잘 좀 하자, 준호야."

"...네, 죄송합니다."

"하아...쩝. 가봐, 얼른."

박 부장은 거기까지만 말을 한 다음 장 차장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난 박 부장과 눈이 한 번 마주쳤지만, 자세를 잡고 있으라는 박 부장의 신호 덕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손목 시계로 돌렸다.

시간은 12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말이 우습게 들린다는 증거였다.

늦긴 했지만, 어떻게든 빨리 오겠다고 헐레벌떡 뛰어온 박기태와 이지혜.

이 둘은 12시 4분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그보다 7분이 더 늦게 도착한 양 대리.

저기 영업 4팀에서 스마트 폰 진동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무실 전체 분위기는 싸늘했다.

양 대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많이 심각함을 감지한 듯, 하지만 그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왜 밥을 먹고 있는데, 오라고 해요?"

제대로 궁지에 몰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살려달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다른 팀 팀장들까지 다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저게 할 소리란 말인가.

평소였음 내가 묻기 전에는 한 마디도 안하는 사람이 아닌가.

물어도 단답이 전부인 사람이 똥줄이 타기는 타는 모양이다.

난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간만에 애들 밥 한 끼 사주려고 좀 일찍 데리고 나갔어요. 공 팀장도 알잖아요, 게장집 12시 넘어서 가면 줄만 1시간 이상 서야 한다는 거."

"공 팀장?"

난 그의 입에서 나온 나의 직책을 똑같이 흉내내며 양 대리를 쳐다봤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음 제가 그쪽 부하직원인지 알겠어요, 양 대리."

"...!"

지금까지 난 양 대리를 직접적으로 부를 때에 꼭 뒤에 님자를 붙여서 양 대리님이라고 불렀다.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직급을 떠나 어쨌든 입사 선배가 아닌가.

그리고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양 대리 역시 팀장으로 승진을 하게 될 것이고, 그때 서로가 불편해지지 않으려면 입사 선배 대우는 해주는 게 맞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런데 그런 도의, 양심, 매너, 예의 같은 것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요,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그러니까 그만 합시다."

양 대리는 우리 부서를 먼발치에서 기웃거리는 다른 부서 사람들, 부서 팀장들을 둘러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내게 그만하자고 말했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억지스런 미소가 남아있었다.

자신에게 상황이 불리할 때에 진짜 약자들이 자주 취하는 방어기재가 그의 얼굴에서 작동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난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되는 거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만 하자니까..."

양 대리의 말수가 많아지고, 내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자 박기태와 이지혜는 거의 울상이 되어버렸다.

결국 양 대리도 박기태 옆으로 나란히 섰고, 나와는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는지, 애꿎은 내 컴퓨터 모니터에 끼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 뭐..."

"뭐?"

"아니...이렇게 불렀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할 거 아니냐고요."

"내가 지금부터 무슨 말을 할 거 같아요, 양 대리."

"..."

난 일부러 다른 부서 사람들 다 들으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조금 높혔다.

그렇다고 흥분을 했다는 걸 보여준 건 아니다.

다만 내가 하는 말을 다른 부서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목소리를 높혔을 뿐이다.

"똑바로 서요, 짝다리 짚지말고."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난 일관된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몇 차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우습다는 식으로, 혹은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돌려 다른 부서 사람들을 쳐다보던 양 대리.

그는 자기와 눈이 마주친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여유있는 표정까지 만들어지었다.

미친놈이 틀림없다.

"거 보는 눈도 많은데 그만 합시다, 팀장님."

입사 후배 앞에서 똑바로 서 질책을 받을 용기는 없는 모양이다.

"똑바로 서라고."

"말 똑바로 하지?"

"너나 똑바로 해. 여기가 놀이터야? 내가 네 친구야?"

순간 박기태와 이지혜의 두 눈에 지진이 일어났고, 양 대리 역시 예상치 못한 강한 공격 앞에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신 참 나쁜 사람이야."

난 일부러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의자 등받이 깊숙하게 등을 기대고 이지혜부터 차례대로 박기태, 그리고 양 대리를 쳐다봤다.

"내가 처음에는 어떻게든 당신을 이해해보려고 노력을 했거든? 나 같아도 진짜 싫을 거 같애.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는 당신에 대한 노력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를 알겠더라. 나라고 당신 입장에서 생각을 안해봤을 거 같아? 동기도 아니고 입사 후배 밑에서 일하라고 하면 정말 싫지. 그것보다 자존심 상할 일이 어딨어? 안그래? 그런데 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당신처럼은 못할 거 같아. 억울하고 분해서, 쪽팔려서라도 어떻게든 내 눈앞에 있는 입사 후배 팀장 보란듯이 팀장 달려고 발악을 했을 거 같다고."

"적당히 합시다, 공 팀장."

"그 적당히라는 건 당신이 했었어야지!"

난 고함을 쳤고, 순간 양 대리가 무척이나 당황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왜? 내가 이정도 액션도 못 깔 줄 알았어? 내가 왜 지금까지 당신이 내 앞에서 무례하게 행동해도 참고 지켜봐줬는지 알아?"

"..."

"내 승진 때문에? 우리 팀 실적 때문에? 웃기지마. 어차피 난 남들보다 2년 이상 빨리 팀장 달았어. 그래서 2년 정도 늦어져도 아무 상관없다고. 그냥 당신한테 미안했던 거야. 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당신한테 미안했던 거라고.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지금 이 상황은.

꼭 나와 양 대리 사이에 생겨난 갈등이 아니라, 직장이라는 집단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직간접 경험을 해봤을 우리 모두의 현실인 것이다.

다른 부서 사람들 모두 착찹한 심정으로, 그리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또 누구는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가며 지금 우리 부서에서 일어나고 있는 푸닥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 진짜 악질이야. 당신은 당신이 악질이라는 거 모르지?"

"..."

"싸움을 걸고 싶으면 나한테 걸어야지. 뭔가 못마땅한 게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를 해야지. 왜 아무 죄없는 이 두 사람을 붙잡고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어?"

난 박기태와 이지혜를 차례대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 두 사람이 새우야? 당신이랑 내가 고래야? 왜 우리 두 사람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어? 어? 도대체 그 이유가 뭔데? 나 빼놓고 이 두 사람 데리고 술마시러 다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나 몰래 이 두 사람 데리고 점심 먹으러 다니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냐고. 그걸 다 아니까 팀장이야. 팀장이 그정도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혹은 알아서 기분 나쁠 거라 생각하니까 당신은 대리인 거고. 당신 이 두 사람 입장은 전혀 생각 안해봤지?"

"..."

"정말 불편했을 거야, 그 동안. 셋 다 지금 당장 자기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노트랑 팬 챙겨서 와요."

잠시 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다이어리와 팬을 가지고 왔다.

양 대리 역시 지금껏 내 앞에서는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었던 다이어리를 가지고 왔다.

난 그 셋에게 짧막짧막하게 그리고 최대한 건조한 음성으로 내 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그 기준은 정확하게 말해서 양 대리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노트할 내용은 크게 없다.

다만 난 양 대리가 내가 하는 말을 받아적는 모습을 꼭 봐야했다.

경고의 메시지는 대략 이랬다.

첫 번째. 난 당신의 윗사람이다.

두 번째. 그런데 당신은 오래전부터 나에게 아주 불손한 태도로 일관해오고 있다.

세 번째. 그건 내 기준에 맞지 않다.

네 번째. 윗사람을 이런이런 태도로 대하는 게 내 기준이다. 난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이지혜 씨."

"네, 팀장님."

"어떻게 생각해요?"

"맞는 거 같습니다."

"박기태 씨는요?"

"그게 맞습니다."

양 대리에게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그럼 내 기준에 전부 맞추세요, 앞으로. 제가 윗사람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명심하세요. 제가 여러분들의 업무 능력을 평가 할 때엔 여러분들의 실적도 포함이 되겠지만, 태도도 다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여러분들의 업무 능력 평가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세요. 이건 협박이 아닙니다. 제가 팀장이기 때문에 미리 제가 어떻게 여러분들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지 그 기준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양 대리."

"네."

"뒤에 팀장님이라고 붙이세요, 앞으로는. 양 대리."

"네, 팀장님."

"양 대리가 지혜 씨나 기태 씨를 데리고 나가서 밥 사주고 술 사주는 거 가지고 딴지를 걸고싶은 마음은 없어요. 내가 왜 거기에 딴지를 걸겠어요?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지킬 건 지킵시다. 이 사람들 주말은 건드리지 말자고요. 특별한 프로젝트 없는 주말엔 그냥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해줍시다, 네?"

"..."

"그리고 나 이 팀 팀장 달고 오늘 처음 반차 썼어요. 그런데 처음 자리 비웠는데, 보란듯이 이런 일이 터져버리네? 앞으로 제가 자리에 없을 때에도  출퇴근, 점심시간은 칼같이 지키세요. 참고로 제 기준에서 출근시간은 사무실에 골인하는 시간이 아니라 할 거 다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박기태 씨."

"네, 팀장님."

"노선을 헷갈려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간을 보는 건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네. 그거 직장생활 잘하는 거 아니에요. 일을 배워야지, 일을 배워야 할 2년 차 사원이 벌써부터 사내 정치질부터 배워서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아닌 말로 나랑 양 대리가 게임이 돼? 똑똑한 줄 알았는데, 영 헛빵이네. 그럴 정신으로 그냥 일해요, 일. 네?"

"네, 알겠습니다."

"내 기준에서 현재 기태 씨는 상당히 간당간당 해요. 믿을 수가 없어. 그게 다 누구 때문이겠어요, 양 대리?"

"...!"

"양 대리가 진짜 진심으로 부하직원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정도까지 말을 해줬음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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