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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300화 (300/341)

# 300

레벨이 갑이다

300화

이서우는 경호원에게 괜찮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절대로 곁을 떠날 수 없다는 말에 함께 동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40대 초반의 낯선 사내도 그다지 상관이 없는지 경호원들이 따라오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내가 멈춘 곳은 허름한 3층 건물이었다.

음성, 홍체, 맥박, 호흡, 체온, DNA 검사 등 지나치게 과한 보안을 뚫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몸이 아파 신체적 상황이 변하면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저장이 되기 때문에 확인 절차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지하로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림 몇 개가 벽에 붙어 있고,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대형 소파와 테이블이 전부였다.

그중 정면에 있는 대형 그림이 이서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것은 마치 뉴 월 드 세상을 가져다 놓은 것 같이 드래곤과 각종 몬스터에 대항하는 용사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대화가 길어질 테니 소파에 앉지. 아, 대화에 낄 게 아니라면 당신들은 거기서 그냥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어차피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거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이 약간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나서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이서우도 자신의 비밀에 대해 타인에게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들을 멀리 두었다.

가운데 소파에 앉았고, 사내도 마주앉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텅!

위에서 갑자기 유리관이 내려오더니 그들을 가두는 게 아닌가.

사내도 함께 있으니 가둔다는 표현이 조금 적절하지는 않았지만 경호원들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쾅쾅쾅!

“서우 씨!”

“이게 무슨 짓이지?”

“아, 난 저들을 믿지 않아. 그래서 차단막을 잠시 내린 것뿐이야.”

“대체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지만 합당한 이유여야 할 거야. 날 납득시키지 못하면 연장자에 대한 예우 따위는 받을 생각 말라고.”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기세였지만 일단은 사내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단호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만약 납득이 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응징은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네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야.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좋게 말이 나올 수는 없을 테지.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태도가 달라질걸? 뭐,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연장자의 예우 따위는 받을 생각도 없어. 나이 많이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시원시원해서 좋군.”

“모든 대화가 끝나고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어쨌든 지금은 저들부터 좀 안정시켜야 할 것 같은데?”

“멈추세요! 전 괜찮으니 그냥 거기 계세요. 제가 나갈 때까지 누구에게도 알리시면 안 됩니다. 만약 제 요청을 무시하고 경찰이나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면 전 여러분들과 더 이상 같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서우의 말에 주변 사물을 이용해 유리벽을 깨려던 경호원들은 행동을 멈추었다.

겉보기에도 사내가 이서우나 정민후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화가 마무리 된 것을 확인한 사내는 간단히 손짓을 했다. 보안 시스템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는데, 그의 행동이 끝나자 밖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소리뿐 아니라 입술 모양도 읽을 수 없을 거야. 저들이 우리 대화를 듣는 걸 원하지 않거든.”

“대체 당신은 누구지?”

이서우의 직설적인 물음에 사내는 가만히 이서우를 바라보더니 대답 대신 테이블을 탁탁 쳤다.

“커피, 녹차, 주스가 있어. 아, 주스는 착즙이야. 신경 좀 썼지.”

“당신이 누군지 물었을 텐데.”

“뭐, 정 의심이 된다면야 굳이 안 마셔도 되고. 아, 서우는 카페인이 잘 안 받았었지. 지금은 괜찮아졌을 테니 축하한다고 해야 하나?”

“당신 누구야!”

이서우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경호원들이 급히 다가왔지만 사내가 이서우에게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한다면 당장이라도 경찰에 신고할 것처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지금 이서우는 경호원들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니, 온 신경이 사내에게 집중되어 있어 다른 일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카페인이 잘 안 맞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꽤 있지만 부작용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서우도 최근에서야 안 일이고, 그다지 중요하다 여기지 않아 이설아에게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데, 어떻게 처음 본 사내가 자신에 대해 이렇게 잘 아는 것일까. 설마, 그동안 감시를 해 왔단 말인가.

아니, 감시를 해왔다고 해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네가 카페인과 잘 안 맞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어. 네 주변 인물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꽤 있으니까. 하지만 카페인 부작용에서 벗어났다는 건 아마 모를 거야. 너도 최근에서야 알았을 테고,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을 거니까.”

사내는 이서우의 속마음을 정확히 꿰뚫어보았다.

한편으로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분명 저 남자는 뭔가 있어. 문제는 적대적인 관계가 될지, 아니면 우호적인 관계가 될지야.’

목적이 있어 접촉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견해가 맞지 않으면 궁금증을 해소하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할지도 몰랐다.

이서우는 이왕 이런 자리가 마련된 거, 사내에게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다는 거지?”

“너도 알 텐데. 네 신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서우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최 박사와 테스트를 한 것은 정말 극소수만이 알고 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안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만 아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뉘앙스네.”

“알고 있지. 너희들에게 벌어지는 모든 것을.”

이서우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민후도 사내의 말에 크게 놀랐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은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결코 ‘모든 것’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아는 것이다. 한데, 사내는 서슴없이 그 표현을 썼다.

이제는 반드시 사내와 대화를 해야 될 이유가 생겼다.

정민후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그래서 당신이 뉴 월드에서 내게 접근한 건가?”

“맞아. 그래서 접근했지. 이서우, 너도 마찬가지고.”

“……?”

이서우는 이게 갑자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눈빛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낯선 사내인데 대체 언제 접근했단 말인가.

“뭐, 모르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난 그게 중요한데?”

“앞으로의 일에 비하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정 알고 싶으면 직접 알아내도록 해.”

“신뢰의 관계가 형성이 되어야 이 대화가 지속이 될 수 있어.”

“협박처럼 들리는데?”

“목적이 있어서 우리에게 접근했을 테니 있는 그대로를 말하라는 뜻이야. 그래야 서로 신뢰할 수 있을 테니까.”

“신뢰를 할 수 있을지 말지는 그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정 알고 싶으면 이야기가 끝난 뒤 알려 주지. 그 정도면 타협이 되겠나?”

“좋아. 그럼 일단 들어보기로 하지.”

이서우도 사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듣고 싶었지만 결코 상대에게 질질 끌려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면 이서우는 그가 어떤 미끼를 던지더라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마치 이서우가 어떻게 행동할지 안다는 듯 사내는 한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이서우는 놀란 반응이었다.

‘설마, 내 성격까지 알고 있다는 건가? 어쨌든 한 발 물러났다는 건 나나 민후가 꼭 필요하다는 거겠지.’

이서우의 집중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사내의 표정, 말, 행동 하나하나가 빠르게 입력되며 여러 가지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었다.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너희 둘이 함께 만나게 될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라서 나도 어떻게 할까 많이 고민했어.”

“우리가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래. 혼자서는 힘든 일이니까.”

“어째 갈수록 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건지 모르겠네. 대체 뭐가 혼자서는 힘들다는 거지?”

“네 육체가 변하는 일. 그게 그냥 우연히 일어난 것 같아?”

질문을 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다른 질문을 하니 살짝 짜증이 났지만 자신의 육체와 관계 된 것이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사내의 말처럼 육체가 변한 일이 우연이 아니라면?

‘우연이 아니라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인데, 대체 누가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지?’

육체 변화가 우연히 벌어진 게 아니라는 뜻은 이서우에게 아주 심각하게 다가왔다.

“그럼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말인가?”

“세상에 우연은 없어.”

“그럼 누가 이런 변화를 만든 거지?”

“누가 만들었다고 말하기가 참으로 애매해. 원래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비아그라는 원래의 목적과 달리 우연히 만들어진 거야.”

“내 변화도 그렇게 이뤄졌다는 건가?”

“그래.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런 신체의 변화가 일어날 줄은 몰랐던 거지.”

“부작용? 뉴 월드를 말하는 건가?”

“뉴 월드라. 그래, 어떻게 보면 모든 게 뉴 월드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뉴 월드라는 이름이 나오자 사내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회상에 빠진 사내의 정신을 깨운 것은 이서우의 음성이었다.

“뉴 월드는 부작용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부작용이 없는 건 없어. 물론 부작용이라고 부를 정도의 수준은 안 되니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거겠지. 가벼운 불면증과 나른함 정도만 느껴지니까 말이야. 그마저도 아주 희박한 확률로 발생해. 그러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한데, 어나더 월드는 그렇지 않았거든.”

“뭐? 어나더 월드?”

“뭐? 어나더 월드?”

이서우와 정민후가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식물인간이 된 것도 모두 어나더 월드 때문이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사내는 상처를 헤집듯 아픈 곳을 찔러 들어왔다.

* * *

“이름.”

“김승조.”

“나이.”

“이미 다 알고 있을 텐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거군. 뭐, 그러지. 그럼…….”

“해커를 시켜 해킹을 하라고 했다. 그냥 날 잡아 넣어.”

질문을 하기도 전에 김승조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자신의 죄를 시인했다.

하지만 김명국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해킹이 얼마나 중범죄인지 알고서 하는 이야기인가?”

“사안에 따라 무기징역도 가능하지.”

“맞아. 이번 경우는 생명에 지장을 준 것이기에 20년까지도 썩어야 할지 몰라. 그동안 범죄와 무관하게 살아왔다고 자만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무리 괜찮은 변호사를 써도 15년은 무조건 받게 될 테니까.”

김명국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김승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4차 혁명이 본격화되고, 모든 것이 자동화되면서 해킹은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보안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은 해킹에 따른 피해가 막대할 거라는 예상 때문에 법을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냈다.

국회도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 보다 강력한 법을 만들었고, 지금은 사안에 따라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게 되었다.

김명국은 김승조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글로벌사에서도 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안대표의 허락이 있어야 당신의 범죄는 성립돼. 이미 다 알고 있으니 그냥 이실직고 하지?”

“내가 어떤 해커를 샀는지 알 텐데도 그런 말을 하는군. 대표의 권한이야 얼마든지 잠시 빌려올 수 있어.”

“대표? 아, 그러셔?”

김명국은 김승조가 이 자리에서 진실을 바로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미리 예상하고 여러 질문들을 준비했다.

한데, 김승조의 말에서 중요한 점을 잡아 냈다.

‘대표님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냥 막 부르네.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건가.’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워서 잘 변하지 않는다.

원래라면 김승조는 안재훈을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대표라는 말에 날이 바짝 서 있었다.

단순한 것일 수도 있지만, 김승조가 글로벌사에서 일을 한 햇수를 생각하면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30분 정도를 더 질문한 김명국은 취조실을 나와 팀원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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