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
레벨이 갑이다
271화
“……!”
활을 꺼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살기가 느껴졌다.
‘분명 다른 한 손이 허리 부근에 있어 공격할 틈이 없었는데 왜 살기가 느껴지지? 설마 조력자가 있나?’
하지만 이서우는 주변에서 어떤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뭐,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마나 막을 치면 되니까.’
이서우는 즉시 마나 막을 두껍게 쳤다.
“크크크. 네놈이 보호막을 칠 거라 예상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너와의 전투를 시뮬레이션했는지 알면 아마 놀랄 거다.”
“그래? 괜한 헛수고를 했군.”
“헛수고? 느껴봐라. 고통을! 가라, 가서 적을 꿰뚫어 버려라!”
테라칸의 외침에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서우는 더욱 보호막을 두텁게 했다.
펑!
“큭!”
보호막에 부딪치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생명력이 무려 3퍼센트나 빠져나갔다.
이서우에게는 약한 대미지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런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시 버틸 줄 알았다. 그래서 준비했지. 다시 간다. 받아라!”
‘아니, 도대체 어떻게 공격을 하는 거지?’
활을 들지도 않았고, 테라칸의 팔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보호막을 통과해서 공격이 들어왔다.
보호막으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서우는 다섯 겹의 보호막을 쳤다.
“크크크. 소용없다니까 그러네. 죽어라!”
이서우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소용없다? 그렇다면 보호막을 무시하고 공격을 한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한 번 당하지 두 번은 없어.’
이서우는 초월 가속을 시전할까 하다가 테라칸의 자존심을 와장창 무너뜨리기 위해 기다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살기를 따라가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강한 살기가 보호막 근처까지 왔다.
‘왔군. 어디냐!’
이서우는 초월 가속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시간이 느려지면서 주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날아다니는 것, 공기의 흐름. 그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찾던 살기의 정체를 이서우는 볼 수 있었다.
‘아주 잘 만들어 놨네. 저러니 못 찾지.’
이서우는 보호막 근처까지 다가온 화살을 보았다. 아니, 화살에 의해 먼지가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리라.
한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기운이 느껴진다면 보호막에 걸려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뚫은 거지?’
이서우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고 유심히 관찰했다.
그때, 먼지가 소용돌이치는 게 보였는데, 보호막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라……졌네?’
이서우는 너무 놀라 초월 가속에서 튕겨 나올 뻔했다. 하지만 다시 집중력을 발휘해 유지할 수 있었다.
살기는 여전했기에 다시 화살을 찾았다. 그런데, 화살이 다시 나타난 곳은 놀랍게도 보호막 안쪽이었다.
‘사라지는 화살이었다니. 이러니 당했지. 어디 다시 보호막을 쳐 볼까?’
이서우가 다시 보호막을 치자 그제야 펑 하는 소리가 나며 폭발했다.
“어, 어떻게…….”
“아주 재밌는 기술을 익혔네. 보호막을 뚫고 들어오는 화살이라.”
“이, 이놈, 고작 기술 하나 밝혀냈다고 기고만장하다니. 내 기술이 어디 그거밖에 없을 줄 알았더냐!”
“그래? 그럼 마음껏 펼쳐 봐. 신화급 아이템이 얼마나 대단한지나 보자. 아참, 신화급 아이템 보호 주문서가 있었던가?”
“…….”
지나가듯 하는 이서우의 말에 테라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신화급 장비 보호주문서가 없어 곤란해하던 차였다.
이서우의 말에 테라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자신감 넘치더니 공격 안 해? 그러면 내가 가고.”
이서우의 말에도 공격을 펼치지 않자, 초월 가속을 극대화시켜 거리를 좁혔다.
그제야 테라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재빨리 공간 접기를 사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기술은 이미 안 통하는 걸 알 텐데?”
“제, 젠장!”
테라칸도 뒤늦게 실수를 깨달았는지 재빨리 공간 탈출을 시도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근거리 탈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의 기운을 감지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곳으로 초월 가속을 시전했다.
블링크든, 공간 이동 기술이든,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동안에 잠깐의 틈이 생긴다. 0.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이지만 이서우에게는 그 정도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서걱!
“크악!”
가슴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마나를 잔뜩 담아 공격을 펼친 것이기에 더욱 고통은 컸다.
물론 물리적으로 육체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어서 신체에는 아무런 영향은 없지만, 공격당했다는 생각이 가짜 고통을 만들었다.
크리티컬 대미지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생명력이 70퍼센트나 빠져나갔다.
너무 많은 생명력이 한 번에 빠져나가는 바람에 몸이 잠깐이지만 굳어졌다.
이서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초월 가속으로 다가가 그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의 그 패기는 어디 갔지? 그렇게 자신하더니 말이야.”
“어, 어떻게…….”
“네가 신화급 장비를 얻든, 준신이나 신급 장비를 얻든 넌 나에게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러니 까불지 마. 알겠어?”
“…….”
테라칸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자신했다. 절대로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서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한데,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죽음을 떠올리자 테라칸은 신화급 활에 눈길이 갔다.
“아, 안 돼!”
“뭐가? 아, 활? 먼저 공격한 놈이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높다는 건 알고 있지?”
“제, 제발. 날 그냥 보내 줘.”
“내가 왜? 너 때문에 내가 관리하는 마을 세 곳의 수익이 반 토막 났어. 신용도도 떨어지고. 그런데 내가 왜 널 살려 줘야 하지?”
“손해 본 건 내가 2배, 아니, 3배로 쳐서 돌려주겠다. 그러니 제발 날 그냥 보내 줘.”
“흠. 그럴 생각이 없는데.”
“이, 이렇게 빈다. 제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간절히 호소하는 테라칸을 보며 이서우는 코웃음을 쳤다.
“너도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는 유저들을 외면했을 텐데. 접속 제한 페널티 때문에 살려 달라고 소리쳤지만 무시했잖아. 그런데 내게 자비를 바라? 내 눈에 띄면 넌 무조건 죽어. 24시간 접속 가능하니 네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끝까지 쫓아가서 죽일 거야. 하이 레벨 지역도 내겐 소용없는 거 알지? 그러니 처신 똑바로 해.”
이서우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그를 처치했다.
도전을 한 자에게 자비란 없다.
-테라칸을 처치했습니다.
-+30진화한 테라칸의 활을 획득하셨습니다.
-신화 등급부터는 아이템에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처치하는 것이어서 명성은 오르지 않았지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활을 얻었다.
이럴 때는 보호 주문서를 다른 장비에 바른 것이 실수였다.
적대적인 관계에서 죽으면 아이템을 더 잘 떨구고, 먼저 선공을 펼치면 떨어뜨릴 확률이 배가 된다.
거기다 아이템 중에 보호주문서가 없다면 무조건 그 아이템이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한 번 바른 보호 주문서는 죽기 전에는 임의로 사라지게 할 수 없다.
하지만 테라칸은 이서우에게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그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온 것이었다.
그게 바로 그가 한 결정적인 실수였다.
이서우는 아이템 이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화한 테라칸의 활? 아이템이 어지간히 마음에 든 건가. 앞에 이상한 형용사나 갖다 붙이고.”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활의 옵션을 확인했다.
-+30진화한 테라칸의 활.
착용 레벨 : 500
등급 : 신화.
공격력 : 200,000
근력 +290
체력 +290
민첩력 +299
생명력 +100,000
마나 +50,000
추가 옵션.
공격 속도가 20퍼센트 상승한다.
이동 속도가 20퍼센트 상승한다.
*특수 스킬 ‘관통’을 사용할 수 있다.
*이름은 한 달에 한 번만 변경이 가능하다.
“헉! 와, 전설 등급이랑 진짜 차원이 다르네. 무슨 놈의 아이템이 이렇게 좋아?”
펠렌의 장비보다는 못하지만 일반 장비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옵션이었다.
“이런 지존급 아이템 떨어뜨리면 나 같으면 게임 접지. 이런 걸 쓰다가 어떻게 전설급을 쓴다고.”
전설 등급은 지금 습득한 것보다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특수 스킬에,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 옵션까지 있다니.
경매장에 내놓으면 엄청난 가격에 팔릴 것이 분명했다.
이서우는 군침을 흘리며 인벤토리에 잘 넣어 두었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대검이나 장검이었으면 진짜 대박인데, 아쉽네.’
활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만 장검이나 대검에 비하면 많은 편도 아니었다.
가격 차이도 거의 2배 가까이 나서 장검과 대검을 쓰는 유저들이 최근 들어 게임을 못 해먹겠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 옵션이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서우는 아이템을 어떻게 처분할지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룰루랄라 마을로 향했다.
* *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개 자시이이이익!”
분노를 터트린 테라칸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집안 살림을 다 부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래층에 사는 그의 형이 올라왔다.
“야, 너 미쳤어? 왜 살림을 다 때려 부수고 지랄이야?”
“시팔, 개자식.”
“뭐? 이 새끼가 미쳤나.”
“혀엉, 나 무기 떨궜어.”
“뭐? 야, 너 거기 쏟은 돈이 자그마치 2천억이야. 그런데 그걸 떨궜다고?”
“혀어어엉!”
테라칸은 눈물, 콧물 질질 짜며 형에게 매달렸다. 아무리 돈이 많은 그라고 해도 2천억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액수였다.
동생이 하도 사정을 해서 절반 정도 보태 줬는데, 그러면서도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그나마 가상현실 게임 개발에 동생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돈 보태 준 걸 잘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걸 떨구었다니.
“야, 이 새끼야, 그걸 왜 떨궈?”
“그놈. 그 새끼가 내 아이템을 가져갔다고오오오!”
“그 새끼? 누구? 전장의 지배자?”
“허어엉. 형, 그거 뺏어 줘. 제발!”
“아오, 이런 골 때리는 새끼. 서른이나 처먹은 놈이 지질하게 질질 짜고 난리야?”
덩치는 커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모습이 그렇게 볼품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니 욕만 해 댈 수는 없는 노릇.
사내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 아이템 나오자마자 내가 사 주마.”
“고마워, 혀어엉!”
“단!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돼. 알겠어?”
“뉴 월드 접으라는 소리는 안 돼!”
“멍청한 새끼, 게임을 접으라고 할 것 같으면 내가 왜 그 아템을 사 준다고 했겠어? 병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제발 좀 정신 차려라, 정신 좀!”
“고, 고마워, 혀엉!”
“휴우.”
욕을 해도 고맙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만 어쩌랴,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인 것을.
사내는 원하는 것을 말했고, 테라칸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전장의 지배자라. 감히 내 돈을 훔쳐갔겠다? 가만 두지 않는다.’
잘못은 테라칸이 저질렀는데 책임은 전장의 지배자에게 묻고 있었다.
그 형에 그 동생이라는 말이 딱 떠오르지만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을 걸 어쩌랴.
사내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는 비서에게 신화급 아이템이 경매로 올라오면 얼마가 들든 사들이라고 핏대를 세워 가며 말했다.
게임 속 경매든, 현실 경매든 가리지 말고 무조건 사라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사내는 뇌 실험 관련 준비가 진행 중이어서 너무 바빠 그 사실을 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