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레벨이 갑이다
257화
“반갑습니다. 천상천하 길드 마스터 천유종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발할라 길드 마스터 조이 바셋입니다.”
천유종은 중국 랭킹 1위 길드의 마스터였고, 조이 바셋은 인도 랭킹 1위 길드의 마스터였다.
두 사람은 수행원도 대동하지 않고 은밀히 만났다.
천유종이 먼저 말했다.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하이 레벨 지역에서 다 같이 시작했으니 응당 도움을 드려야지요. 전장의 지배자 때문에 부른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자를 반드시 처치해야 우리도, 그리고 인도도 편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자가 있는 한 인도도 편하게 게임을 하기는 힘들 테니 반드시 처리해야지요.”
천유종의 말에 조이 바셋도 동의했다.
의견이 일치하니 대화가 술술 이어졌다.
조이 바셋이 넌지시 물었다.
“어떤 식으로 행동했으면 좋겠습니까?”
“아무래도 뿔뿔이 흩어지는 것보다 한데 뭉쳐서 마을을 쓸어 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마을을 친다는 건 우리에게도 큰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희생 없이 얻는 것도 없습니다. 인도와 우리의 이용자 숫자를 합치면 6억이 넘습니다. 고작 2억이 조금 넘는 이용자가 있는 곳을 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군요. 하지만 이번 전쟁은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겁니다. 소모품을 비롯해, 유일 이상의 아이템도 대거 필요할 거고요. 정말 이번 일을 성공시키고 싶으시다면 중국도 희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희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이템을 우리 안에서 소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아이템들은 서로에게 팔자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가격만 잘 맞으면 그게 훨씬 이득일 겁니다.”
“흐음.”
천유종도 조이 바셋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이 바셋의 말처럼 전시에는 적에게 좋은 것을 주면 안 된다. 적에게 좋은 아이템을 팔고 어떻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단 말인가.
“좋습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다른 길드들을 설득해보겠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장비 아이템을 비롯해 소모품까지 모두 다 우리 안에서 소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파는 물건들을 싹 쓸어서 저들이 쓸 수 없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입니다.”
“괜찮은 아이템들은 먼저 점유하는 게 낫지요. 그럼 당장 실행에 옮겨야겠군요.”
“네. 그래야지요.”
중국을 대표하는 길드의 마스터와 인도를 대표하는 길드의 마스터가 서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전쟁에 있어서 물자 보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급이 되지 않으면 결국은 패하고 만다.
중국 대표는 이번 일에 사활을 걸었고, 인도 대표도 그에 동조했다. 이번에 물러선다면 앞으로도 계속 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지금 부길드마스터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곧 각 길드에도 퍼질 테니 거래소나 경매장의 쓸 만한 아이템이 씨가 마를 겁니다.”
“저도 지시를 내렸습니다. 각자 절반만 나서도 3억 명이 넘는 유저들이 물건을 살 테니 쓸 만한 것들은 씨가 마를 겁니다.”
“숫자에서 우리가 유리하니 좋은 아이템까지 갖추면 필승이겠군요.”
“물론입니다. 한데, 언제쯤 공격하는 게 좋겠습니까.”
“당장은 마스터님과 저의 길드가 나서면 되니 1시간이면 되겠군요.”
“좋습니다. 1차로 천상천하 길드와 우리 발할라 길드가 나섭시다. 그런 뒤 다른 길드들을 설득해서 합류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현명하신 생각이십니다. 그러면 1시간 뒤에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네.”
그렇게 중국 대표 길드 마스터와 인도 대표 길드 마스터가 의기투합을 하고는 헤어졌다.
* * *
“이것 봐. 전장의 지배자가 중국과 인도에 소모품 아이템을 대량으로 팔았대.”
“뭐?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지금 중국과 인도 유저들에게 학살당하고 강제 종료된 유저들이 난리도 아냐.”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마나 비약을 쓰는 걸 봤대. 마나 비약은 전장의 지배자만 만들 수 있잖아.”
“와, 설마 전장의 지배자가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했단 말야? 그렇게 안 봤는데 기회주의자였네.”
“내 말이. 지금 다들 난리야.”
“근데 전장의 지배자는 왜 사과도 안 해?”
“사과할 정신머리가 있었으면 아이템을 걔들에게 팔았겠냐.”
“하긴, 그것도 그러네.”
두 사내는 뉴 월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전장의 지배자를 욕하는 글들을 꼼꼼하게 챙겨 보며 같이 동참했다.
이런 일은 그들에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전장의 지배자를 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관리자가 다스리는 도시 하나를 싹 쓸고 나온 이서우는 김소연의 방문으로 바로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이설아도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와 함께 찾아왔다.
“둘 다 표정이 왜 그래?”
“오빠, 큰일 났어.”
“큰일? 중국과 인도가 설치는 것 말고 더 큰일이 있어?”
“당연히 있지. 일단 이것부터 봐.”
김소연이 글 하나를 띄웠는데, 그걸 본 이서우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중국과 인도에 소모품 아이템을 팔았다니!”
“누가 중국 쪽에서 비약을 쓰는 걸 봤대.”
“이런 미친. 접속해서 아이템 회수하려고 보니 다 팔려서 어쩔 수가 없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지껄이고 있어. 이것들을 확 그냥!”
“우리야 네가 결백하다는 걸 알지만 지금 전쟁 중이니 다들 민감하잖아. 해명만 하면 충분히 납득하지 않을까?”
“변명이나 한다고 또 난리를 치겠지. 내가 해 왔던 행동이 있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이렇게 태도가 달라지다니.”
“그래도 해명은 해야 되지 않겠어?”
이설아는 침묵했지만 김소연은 이번 일을 최대한 빨리 무마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해명을 강하게 권했다.
하지만 이서우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믿을 사람은 믿어. 이런 식으로 남들이 하는 말에 휘둘릴 것 같으면 차라리 등을 지는 게 나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모든 부분에서 타격을 받을 거야.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도 줄어들 거고, 다시 보기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리고 네가 세운 빌딩들의 수익도 많이 줄어들지 몰라.”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서 고개를 숙이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언젠가는 밝혀질 테니 그때까지는 비난이 심해도 참아야지.”
“휴우. 누가 네 고집을 꺾겠냐.”
이서우의 생각을 돌려 달라고 잠시 이설아를 힐끗 봤지만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결국 김소연은 설득을 포기했다.
“그럼 인제 어떻게 행동할 거야?”
“누나나 설아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중국과 인도도 서로 만나서 대책을 강구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아이템 문제만 해도, 걔들은 지금 경매장도, 거래중개소도 이용 안 하고 있어. 그 말은 자기들끼리 소모하겠다는 거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자기들이 얻은 건 자기들끼리 판다?”
“그렇지. 6억이 넘는 이용자가 있고, 워낙 잘 뭉치니까 전쟁에서 엄청 유리하지. 우리도 그래야 하는데…….”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길드가 대부분이니 힘들어.”
“나도 알아. 그래서 더 걱정이야. 이럴 땐 힘을 합쳐야 하는데.”
“아마 가격을 더 높여서 이득 보려고 난리일 걸?”
“그러니까. 하여튼 기회주의자들이 너무 많다니까.”
세 사람 다 뾰족한 수를 떠올리지 못했다. 중국과 인도처럼 아이템 소비부터 통제하고 싶은데, 자유를 침해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과연 합심해서 그렇게 할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김소연은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언니 왜 그래?”
“지금 부팀장에게 연락이 왔는데, 이거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
“심각해지다니. 중국과 인도가 전부다 몰려오기라도 했어?”
“일단 여기 링크된 곳부터 잠시 가 볼게.”
김소연은 부팀장이 링크한 곳부터 들어가 봤다.
그러자 온갖 욕들이 다 적혀 있었다.
이서우는 천천히 글을 봤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떻게 이럴 수가…….”
“진짜 상황이 심각해졌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접속을 해야 확인을 할 텐데 하필 이럴 때 제한이 걸리다니.”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자. 접속 제한이 걸릴 걸 뻔히 사람들도 알 텐데 이렇게 널 비난한다는 건 누군가의 의도가 아니면 불가능해.”
“알았어. 그럼 일단 돌아가서 따로 조사를 하는 걸로 해. 접속하자마자 이 일에 대해 알아 볼 테니까.”
“그래.”
셋은 헤어질 때까지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누군지 몰라도 분명 둘 모두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서우는 침대에 조용히 누웠다. 운동을 해야 하지만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육체를 망칠 뿐이었다.
‘비약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그 물건이 나온 거지. 나밖에 못 만드는 건데. 이러면 여론몰이만 잘 해도 정말 타격이 클 수밖에 없어. 대체 어떤 놈이 이번 일을 꾸민걸까.’
이서우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때, 똑똑 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 노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들어와도 돼.”
문이 열리며 이설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이서우의 옆에 누웠다.
잠시 그대로 있더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왔어.”
“잘했어.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
“날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졌다니 기분 좋네.”
이설아는 미소를 짓고는 이서우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
* * *
“크하하하하. 아주 제대로 걸렸네.”
“마스터님, 이번 기회에 그 녀석을 확실히 처리해 버리시죠.”
“그래야지. 여세를 몰아서 그냥 아주 아웃을 시켜 버려야 1주년 이벤트 때도 혼자 잘난 척 못 하지.”
“한데, 문제는 그 놈들입니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데, 입을 잘 닫고 있을까요?”
“걱정할 필요 없어. 돈독이 오른 놈들이니 돈으로 잘 구슬리면 돼.”
“근데, 거기 길마가 참 특이한 능력을 가졌던데, 우리 길드에 활용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 길드에 활용을 하자고?”
“네.”
배상철은 새롭게 영입한 부길드마스터와 죽이 참 잘 맞았다.
부길드마스터도 배상철의 성향을 단번에 파악하고 그가 좋아하는 말과 행동만 했다.
장길수는 김명국이 점점 범위를 좁혀 오자 모든 것을 버리고 숨었다.
헤라클레스 부길드마스터 자리를 박차고 그가 이끌던 암살집단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배상철은 일도 못하는 놈이 게으르기까지 하다며 욕을 있는 대로 퍼부었다.
그런데도 계속 나타나지 않자 척살령까지 내려 버렸다.
배상철은 장길수의 후임으로 유능한 사람을 앉혔다. 그가 부길마에 앉자마자 헤라클레스는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길드원이 많이 늘었으며 고레벨 유저도 대거 영입했다.
길드 자금도 풍성해졌다. 길드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대신 길드 회비도 올렸다.
반발은 크지 않았다.
자신들도 이득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혜택을 늘이는 것을 더욱 반겼다.
“그자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거지?”
“가장 활용도가 높은 건 아이템 복사입니다. 전설 등급 아이템을 복사해서 판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엄청난 수입이 발생할 겁니다.”
“복사가 완벽하지 않잖아. 이번 것도 효과 지속 시간이 랜덤이고. 여러 개를 써 봤지만 5분 이상 넘어가는 게 없었어. 대부분 1분이고.”
“짝퉁이라도 만들어 내잖습니까. 그러면 전설 등급과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안 쓰고 파괴되더라도 누가 알겠습니까? 이걸 확대하면 모든 아이템에 다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지요.”
“중요한 거? 뭐지?”
“바로 골듭니다.”
“뭐? 골드? 지금 골드를 복사하겠다는 뜻이야?”
“네.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글로벌사에서 원하지 않을 텐데.”
“어차피 복사하는 놈은 그놈입니다. 저와 마스터님이 아니고요.”
“하하하. 역시 우리 부마스터가 머리가 좋아. 그렇지. 복사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놈이지.”
배상철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일단 그놈이 곧 오기로 했으니 어디까지 복사가 되는지 한번 물어나 보자고.”
“네, 마스터님. 일단 그자를 보고 더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첫 계획은 무조건 그놈을 매장시키는 거야.”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마스터님을 돕겠습니다.”
“역시 든든하구먼.”
부길드마스터는 배상철에게 아부성 멘트를 날리며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들어와. 어서 앉아.”
“네.”
배상철의 권유에 마주 앉은 사내는 바로 초대박이었다.
그는 다소 어수룩한 모습으로 헤라클레스 길드의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암, 찾았지.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뭘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편하게 말해야지. 그래야 서로의 관계도 돈독해지는 거니까.”
배상철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그는 곧이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