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레벨이 갑이다
256화
-누나, 무슨 일이야?
-언니,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김소연은 이서우의 외침에도, 이설아의 물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누나!
귓말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단 종료해 보자. 아무래도 뭔 일이 생긴 것 같아.”
“응, 오빠.”
이서우와 이설아는 즉시 접속을 종료했다.
그들이 나가자 곧 김소연이 들이닥쳤다.
“누나, 대체 무슨 일이야?”
“야, 큰일 났어.”
“무슨 큰일인데?”
“드디어 중국과 인도가 움직였어.”
“뭐?”
“언니,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하이 레벨 지역에서도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파티가 순식간에 전멸했어.”
“순식간에? 하지만 걔들 아직 450레벨도 안 되잖아.”
“레벨이 중요한 게 아냐. 한 100명쯤 떼를 지어서 왔어.”
“헐. 여기에서까지 인해전술을 쓰네.”
100명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엄연히 파티 사냥이 적합한 지역이 많은 곳이어서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잠시만.”
김소연이 자리를 잡고 안더니 영상 하나를 띄웠다.
“와, 그 순간에도 영상을 찍었네. 역시 대단해.”
“항상 대비를 해야지. 일단 영상부터 확인해 봐.”
시커먼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는데 원거리 유저들이 한꺼번에 스킬을 난사하자 박민수와 류종명이 가장 먼저 죽었고, 그 다음 박민수의 연인과 서윤하가, 마지막으로 김소연이 강제 종료되었다.
“이것도 봐 봐.”
다른 영상을 하나 더 재생했는데, 김소연처럼 불시에 공격을 당하는 유저들이었다.
“아주 지랄 발광을 하셨네.”
“그러니까. 얘들은 뭐 그냥 와서 싹 쓸고 가 버리네. 이거 우리가 너무 불리한 거 아냐? 쟤들은 우리 지역으로 마음대로 올 수 있지만 우린 관리자들 때문에 못 가잖아.”
“레벨이 처지니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런 거라서 어쩔 수 없기는 해. 그래도 좀 짜증나기는 하네.”
이서우의 표정이 싹 변하자 김소연이 살짝 흥분된 음성으로 말했다.
“쳐들어가서 쓸어 버리려고?”
“그럴까 생각 중이야.”
“저놈들 분명 누군가 개인 방송하고 있을 거야. 외국인은 생방송을 막아 뒀으니 지들끼리 방송하면서 히히덕거리고 있을걸? 생각만 해도 진짜 짜증나. 어, 잠시만.”
김소연은 화면이 깜빡거리자 얼른 메시지를 클릭했다.
메시지에는 링크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를 타고 들어가니 영상 하나가 떴다.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김소연의 예상처럼 정말 조금 전 그 장면을 방송하고 있었다.
생방송을 막아 뒀지만 녹화해서 한국 사이트로 직접 올리면 영상을 볼 수 있다.
시간차가 그리 크지 않아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방송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오빠, 아무래도 쟤들 일부러 영상 올린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도발하는 거겠지. 저것들 아주 꼴값을 하네.”
“아오, 열 받아. 4차 전직이라도 했으면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는 건데.”
“일단 길드원들에게 조심하라고 하고, 설아도 일절 저 근처로는 가지 마.”
“응. 어차피 혼자 사냥하는 거면 굳이 저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어. 파티면 몰라도.”
이설아는 아직 레이드 사냥 방송이 남아서 멀리까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서우야, 설마 지금 들어가려고?”
“당연하지. 중국 놈들이 도발을 해 왔으니 응해 줘야지. 그리고 바로 접속해서 물약들부터 회수해야 돼. 저런 놈들에게 내 물약이 들어가는 꼴은 못 보지.”
“위치는 알고?”
“하이 레벨 지역은 내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야. 당연히 알지.”
“오오, 멋져부러! 우리 서우 파이팅!”
“언니, 우리서우가 뭐야, 우리서우가. 오빠는 내거거든!”
“이게 인제는 아주 대놓고 사랑질이네. 에잇, 서러워서 원. 종명이나 불러서 부둥켜안고 영상이나 확인해야겠다. 나 간다.”
“그러지 말고 종명 오빠 보고 오라고 해. 같이 지켜보게.”
“싫은데. 우리 명이랑 꼬옥 붙어서 은밀한 시간을 보낼 건데.”
“피. 마음대로 하셔. 난 우리 오빠가 활약하는 거 열심히 지켜볼 거니까.”
“그러셔요. 그럼 난 이만 간다.”
김소연은 왔던 것과 같이 휙 하고 사라졌다.
“그럼 다녀올게.”
“응, 오빠. 난 여기서 이것저것 확인 해 볼게.”
“그래. 그럼 좀 있다 봐.”
“응. 싹 쓸어 버려!”
이서우는 급히 접속했다.
거래중개소와 경매장을 들렀다.
“젠장.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다 팔렸네. 설마 그놈들에게 넘어가진 않았겠지?”
중국과 인도 유저들과 경매장과 거래소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다 참여할 수 있는 거래 공간이 은밀히 운영되고 있었다.
의문의 존재가 블랙마켓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그 존재가 NPC라고 생각했다.
돈이 되는 것을 글로벌사가 그냥 두지는 않았을 거라 여기는 것이다.
모두가 그럴 거라 예상은 하지만 글로벌사 측에서는 대놓고 자신들이 블랙마켓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여튼, 이서우는 중국과 인도로 물약이 가지 않기를 바라며 방향을 잡았다.
향상된 가속화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사용해 목적지로 향했다.
주변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30분을 채 가지 않아 김소연이 있던 장소에 도착했다.
“이것들 봐라. 치고 빠진 것 같네. 내가 올 걸 예상했나, 아니면 유저들이 몰려올 거라 여기고 도망을 간 건가?”
이서우는 발자국을 쫓았다. 신의 눈을 얻었기에 아주 미세한 흔적으로도 추적이 가능했다.
이서우는 영상을 녹화했다.
10분 정도 추적해 들어갔을 때였다.
‘저기에 모여 있군. 한 번 숨을 고르고 다시 사냥하는 유저들을 쓸어 버리겠다는 생각이군.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 이제 네놈들 차례야. 어디 한 번 당해 봐.’
이서우는 향상된 초월 가속을 바로 시전했다.
순간 이동으로 가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 향상된 초월 가속을 쓴 것이다.
갑자기 바람이 불자 휴식을 취하던 100명의 중국 유저들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비명 소리부터 터져 나왔다.
“아아악!”
“뭐, 뭐야! 커억!”
“아, 안 돼! 크아악!”
“아아악!”
비명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서우는 100명을 순식간에 처치해 버렸다.
그가 100명의 유저를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놀랍게도 단 1분이었다.
이서우는 접속을 종료해 바로 영상을 전 세계 각지에 올렸다.
단 1분짜리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를 늘려 가더니 하루 만에 무려 10억 뷰를 돌파했다.
너무 강렬한 영상이어서 사람들은 1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은 딱 두 글자, 아니 세 글만 말했다.
“쩌, 쩐다.”
하지만 이서우의 이 영상이 중국 유저들을 자극하고 말았다.
중국과 인도 유저를 다 합치면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기존에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숫자를 넘어설 정도로 많았다.
중국 유저만 해도 벌써 3억을 돌파해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길드도 한국은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십만 명이면 엄청난 초대형 길드지만 중국에서는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00만이 넘는 곳도 꽤 있었는데 길드 하나가 가히 대형 도시를 이루는 인구만큼이나 많았다.
영상이 뜨고 몇 시간 뒤 박민수와 류종명을 비롯해 중국 유저에게 어이없이 죽은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다.
“야, 너 괜찮겠어?”
“뭐가?”
“지금 중국 유저들 장난 아냐. 우리 지역 유저들 싹 쓸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4차 전직 유저도 없는 애들이?”
“4차 전직 유저는 없지만 걔들 인구가 어디 보통 많냐? 떼거리로 몰려오면 답도 없어.”
“몰려오라고 해. 언제든 상대해 줄 테니까.”
박민수는 걱정이 되어 한 말이지만 이서우는 걱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400레벨들은 수십, 수백만이 몰려와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치고 빠지면 아무도 이서우를 잡을 수가 없어 며칠만 버텨도 수십만을 죽일 수 있다.
“문제는 네가 아니고 다른 유저들이야. 다행스러운 건 우리가 갔던 곳 주변에는 마을이 없다는 거야.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마을이 피해 보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어.”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는 걸 알고 나도 행동을 한 거야.”
“알아. 하지만 네 입지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야.”
“조세프 백작과의 친밀도가 떨어질까 봐?”
“맞아. 아무래도 병사들이 죽으면 책임을 돌릴 사람이 필요할 테니까.”
“마을과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 마을 주변에도 유저들이 많잖아. 걔들이 넘어올 때쯤 우리 쪽에서 알고 대처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건 그래. 하지만 안심할 수 없어. 중국 유저들이 어떤 식으로 쳐들어올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1주년 이벤트를 하기도 전에 중국과 원수가 되겠는데?”
김소연은 이런 식으로 중국과 원수지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서로 주고받았으니 분명 중국도 다른 행동을 보일 것이다.
“내가 접속해 있을 때는 상관없어. 깊숙이 들어가서 아주 싹 쓸어 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는 풀 접속을 끝내고 나왔을 때야. 8시간의 공백 동안 얼마나 피해가 갈지 아무도 몰라. 그때만 잘 버티면 우리가 훨씬 유리해.”
“조세프 백작을 찾아가서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좀 달라고 하면 안 될까?”
“가능은 해. 아니, 그럴 게 아니라 황제에게 직접 가서 부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그럼 일단 각 길드에 언질을 하고, 최대한 조심하라고 전해 줘.”
“알았어. 어차피 이틀은 접속 못하니까 부지런하게 전달할게.”
이서우와 이설아는 뉴 월드로 갔고, 다른 사람들은 몇 가지 사항을 더 나눈 뒤 각자 맡은 일을 했다.
이서우와 이설아는 종료한 지점이 달라서 접속을 하자마자 서로 만나지 못했다.
대신 이서우는 중국 유저들을 잔뜩 만났다.
이서우는 즉시 향상된 초월 가속을 사용했다.
하지만 중국 유저들은 마치 그가 향상된 초월 가속을 쓸 줄 알았는지 광역 속박을 걸려고 했다.
그러나 이서우에겐 신의 눈이 있어 그들이 무슨 스킬을 쓰려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
‘어쭈, 머리를 좀 쓰는데? 하지만 나에겐 어림없어.’
이서우는 마나를 더 끌어올려 향상된 초월가속의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주변 모든 것이 느려졌다.
속박을 걸기도 전에 이서우는 이미 중국 유저들의 가슴에 대검을 박아 넣고 있었다.
상대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이서우는 토끼보다 더 빨리 움직이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수백 명이 몰려왔지만 5분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죽어 버렸다.
‘죽음 페널티는 모두가 공평하지. 계속 이틀 동안 접속 못하게 하면 알아서 포기하겠지.’
접속 제한 페널티 만큼 유저들에게 무서운 것도 없었다.
이서우는 중국 유저에게 접속 제한 페널티에 대한 공포를 심어 주기로 했다.
모든 중국 유저를 처치한 이서우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중국 유저들은 이서우가 설마 깊숙이 들어올 줄은 예상 못했는지 기습에 속절없이 당했다.
이서우의 행동은 곧 중국 유저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들의 발 빠른 대처로 이서우의 기습은 더 이상 큰 효력을 내지 못했다.
마을에서 이서우를 조롱하며 중국 유저들은 히히덕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관리자들 틈에 숨겠다고? 어림없지. 아주 통째로 날려 주마.’
그들은 이서우가 관리자를 비롯해 수많은 종속자, 그리고 유저들까지 있는 마을로 쳐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서우는 관리자가 다스리는 도시 전체를 깔끔하게 쓸어 버렸다.
유저들까지 포함하면 수십만이 생활하는 곳이었지만 전력을 끌어낸 이서우를 막지는 못했다.
다른 마을로 가서 마저 쓸어 버리고 싶었지만 접속 시간을 모두 쓴 이서우는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이서우가 종료한 바로 그 시점.
중국 유저들은 대한민국 사이트 곳곳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 뉴 월드와 관련이 있는 사이트들이었는데, 내용은 하나 같이 똑같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하이 레벨 지역에 있는 모든 유저와 전쟁을 벌일 것이다. 우리 중국 유저들을 기만한 자, 반드시 응징하리라! 그리고 전장의 지배자라 불리는 허접쓰레기는 들어라. 우리는 널 반드시 죽일 것이고, 뉴 월드를 하지 못하도록 꼭 막을 것이다. 각오해라!
이 내용과 함께 추가된 내용들을 실었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핵심은 이서우를 어떻게든 계속 죽이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하이 레벨 지역은 자신들의 것이니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차별적으로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물론 그들의 말이 과장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하이 레벨 지역에는 수천만, 수억의 유저들이 지내고 있다.
그러니 모두 쓸어 버리겠다는 말은 허풍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이서우가 지적했던 대로 중국유저들은 그가 풀 접속을 마치고 나왔을 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하이 레벨 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서우를 비롯해 그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냈다.
그들뿐만 아니라 대형 길드들도 중국 유저를 막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하지만 한꺼번에 우르르 왔다가 확 쓸어 버리고, 우르르 빠져나가는 중국 유저를 상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중국 유저들이 인도 유저를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도와 중국은 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하이 레벨 지역에서 함께 시작해서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인도 유저의 힘까지 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가 합류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