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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55화 (255/341)

# 255

레벨이 갑이다

255화

“최 박사, 날 찾았다고?”

“네, 회장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 혹시…….”

“네! 드디어 손자분을 깨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네. 한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뭔가? 내 무슨 방법을 써서든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네.”

“그것이…….”

밝았던 최박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 회장은 그의 얼굴을 보며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이보게, 내 이날만을 기다려 왔네. 그런데 내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 보게.”

“자칫 회장님의 모든 명성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네. 어차피 난 곧 죽을 몸 아닌가. 민후를 볼 수 있다면 그깟 명성쯤은 없어져도 되네.”

“좋습니다. 그러면 회장님을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결심을 굳힌 최 박사는 홀로그램을 띄웠다.

“이건 그 아이가 아닌가?”

“네. 운이 좋게도 서우 군의 혈액이 저희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미리 빼 뒀지요.”

“그래서?”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원하는 장기를 비롯해 혈액까지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손자분에게 서우 군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특징을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해 주게.”

“여기를 보십시오. 육체 능력을 수치화한 겁니다. 이쪽이 서우 군이고, 이쪽이 서우 군과 같은 나이의 성인 남성입니다. 차이가 보이십니까?”

“수치가 크게 차이나는구먼. 이건 이미 본 적이 있지 않나.”

“네. 본 적이 있으시지요. 그러니까 서우 군을 복제해서 원하는 장기를 얻으면 서우 군의 육체 능력이 고스란히 생겨나겠죠. 그걸 손자분에게 이식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건…….”

“네.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그래서 회장님의 명성이 모두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한 것입니다.”

정 회장은 이미 각오를 다졌는데도 최박사의 설명을 들으니 선뜻 수락을 하기 힘들었다.

“서우 군처럼 육체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네.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불가능합니다.”

“서우 군과 비슷한 사람도 찾지 못했고?”

“네. 아쉽게도 찾지 못했습니다.”

“허참, 선택지가 없구먼. 선택지가 없어.”

“서우 군의 혈액이 남아 있으니 그나마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도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불가능하니 빠른 시일 내에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크흠.”

정 회장의 신음소리가 길어졌다.

손자를 위해서는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인간복제를 실행해야 한다는 말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 회장의 독백처럼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정 회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네. 내 모든 지원을 해 주지. 단, 보안이 철저한 곳에서 행하게. 자네 혼자서만 말일세.”

“……알겠습니다.”

시간을 걸리겠지만 기밀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 독해져야 한다. 손자를 살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최박사의 당당한 뒷모습을 보며 정회장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 * *

“미, 민후 님, 관리자들이 자꾸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간악한 자들에게 이곳이 엉망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게 누가 수련을 게을리하래? 별 힘도 없는 것들이 내가 최고입네 하면서 탱자탱자 노니까 그 모양 그 꼴이 되는 거지. 다 자업자득이야.”

“그, 그렇지만.”

“그렇게 걱정이 되면 여기도 모험가들이 있잖아. 그놈들에게 퀘스트라도 부여하든가.”

“저,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꽤 강해진 놈들이 많으니 도움은 되겠지. 포인트가 나가는 게 좀 아깝지만 귀찮은 것보다 나으니까.”

“그럼 명을 받들겠습니다.”

“딱 10퍼센트만 써. 더 쓰면 죽을 줄 알아.”

“여부가 있겠습니까.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내는 혹시라도 정민후의 마음이 바뀔까봐 얼른 밖으로 나갔다.

하이 레벨 지역을 관리하는 관리자들 뿐 아니라 통치자, 지배자, 절대자, 이 모두가 각자 소유한 포인트가 있다.

세력의 크기에 따라, 거느리고 있는 노예들의 숫자에 따라 포인트가 달라진다.

성장 포인트라고 하는데, 민후는 이것을 생명 포인트라고 말한다.

포인트가 적으면 발전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으면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포인트로 모험가들에게 퀘스트도 줄 수 있고, 도시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성장 포인트를 모으는 건 레벨을 올리면 가능하다.

물론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레벨이었다.

레벨을 올려야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내가 나가고 정민후는 연신 투덜거렸다.

“그 인간 다시 만나기만 해 봐라. 어떻게 된 게 400레벨 이후 레벨이 안 오르냐? 와, 진짜 미치겠네.”

400레벨 이후 10레벨을 올리는 데 정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다.

500까지 가려면 1년은 더 고생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도 매일 22시간 이상을 말이다.

“그래도 성장 포인트는 쭉쭉 오르네. 관리자 구역을 조금만 더 먹으면 영역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말이야.”

하이 레벨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영역 확장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는데, 과거보다 레벨이 낮은데도 몇 배나 강해지니 욕심이 났다.

최근 두 곳의 관리자 지역을 삼켰다. 소화를 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해서 잠시 멈췄는데, 금세 허기가 졌다.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항상 탈이 나는 법이다.

“그래. 일단은 레벨 업에 집중하면서 지금 있는 지역부터 제대로 관리하자.”

정민후는 다른 생각을 지워 버리고 오직 레벨을 올려야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다시 사냥에 매진했다.

그가 결정을 굳혔을 때, 모험가들에게 단체 퀘스트 메시지가 떴다.

“일부 지역에 있는 모험가들에게만 퀘스트를 줬네. 하여튼 잔인한 놈이라니까.”

정민후는 혀를 찼다.

하이 레벨 지역은 일반 지역과 달리 퀘스트 쟁탈이 가능하다. 물론 일반적인 퀘스트는 쟁탈이 불가능하지만 지역을 관리하는 존재가 쟁탈 가능 여부를 설정해서 퀘스트를 주면 상대의 퀘스트도 뺏을 수가 있었다.

이런 정보는 일반 지역 유저는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발전을 위해 되도록 쟁탈이 불가능한 퀘스트만 줬다.

하지만 모험가들의 레벨이 400이 넘고, 평균 300이상이 되면서 경쟁을 붙이기 위해 대부분의 퀘스트에 쟁탈이 가능하도록 설정했다.

소문이 나자 모험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분쟁이 일어났다.

모험가들은 신이 나서 열심히 싸움을 했다. 마치 싸우기 위해 뉴 월드를 하는 사람 같았다.

모험가들에게 퀘스트를 주는 곳은 정민후가 관리하는 지역만이 아니었다.

일반 유저들이 사냥을 하는 곳과 가까운 지역에서도 퀘스트가 주어졌다.

중국과 인도의 유저들은 그 퀘스트를 바탕으로 빠르게 발전을 이루었다.

* * *

“와, 오빠, 그때도 엄청 강했는데, 지금은 진짜진짜 엄청나게 강해졌네.”

“중요한 건 이게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는 사실.”

“헐. 대박. 이젠 진짜 혼자서 하이 레벨 지역 어디든 누빌 수 있겠는데? 어쩌면 통치자까지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통치자를 본 적이 없어 뭐라 말하기가 애매한데, 충분히 상대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나만 있으면 지금보다 2배 이상 강해질 수도 있으니까.”

“헉. 지금보다 2배 이상이나 강해진다고?”

이설아는 더 이상 놀랄 게 없는 줄 알았는데, 2배 이상 강해진다는 말에 턱이 빠져라 입을 쩍 벌렸다.

“일시적인 거지만 강자들과 싸울 때는 확실히 도움이 되지.”

“맞아. 단 한 수로도 승패가 갈라지는 게 고수들의 싸움이니까.”

그런 면에서 이서우는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초월 가속만 해도 엄청나게 강한데, 그보다 2배나 더 강해진다면 이기지 못할 싸움이 없었다.

“그럼 당분간 사냥할 거야?”

“관리자들을 처치하면서 일단은 영역부터 확장해 나가야지. 레벨 업도 쏠쏠하니 괜찮고.”

“방송 준비 때문에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아, 맞다. 레이드 몬스터 솔플을 방송하기로 했지. 깜빡했네. 위치는 알고?”

“응. 미리 봐 뒀어.”

“오오, 이거 은근히 기대되는데?”

“아무래도 힐러 혼자서 400레벨 이상 레이드 몬스터를 처치하는 건 최초일 테니까.”

“400레벨을 하려고?”

“400레벨이랑 450레벨을 해야지. 오늘은 처음이니 일단 400레벨로 하고, 호응이 좋으면 다음에 450레벨로 바로 넘어가려고.”

“그럼 움직여 볼까?”

“응.”

이설아는 미리 봐둔 곳으로 이서우를 안내했다.

1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정보가 사람들에게 퍼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유저들이 하이 레벨 지역으로 몰려왔다.

아무래도 레벨을 올리기에는 하이 레벨 지역이 가장 좋아서 그런 것이리라.

물론 던전에서 파티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1주년 이벤트에서 쓸 장비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레이드 몬스터도 찬밥 신세인 건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많이 잡아먹는데, 워낙 아이템 드롭률이 좋지 않아 다들 기피하는 것이다.

“저기 있네. 역시 다들 레벨 업한다고 레이드 지역은 한가하네.”

“그 덕분에 이런 방송도 할 수 있으니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지. 도핑해.”

“응.”

이설아는 레이드 몬스터가 보이는 곳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각종 전투에 도움이 되는 소모품 아이템을 복용했다.

이서우에게 구입한 약초액까지 쓰고서 방송을 ON했다.

사람들은 방송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는지 순식간에 많은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이설아도 힘이 나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 그럼 드디어 약속한 대로 저 혼자 레이드 몬스터를 잡아 볼게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녀석은 공격력과 방어력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하누만이에요.”

이설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메라는 거대한 덩치의 하누만을 찍었다.

시청자들도 하누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400레벨 20명 이상이 되어야 잡을 수 있는 녀석이어서 모두들 힐러 혼자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다들 아시다시피 400레벨이지만 측정 레벨보다 훨씬 강한 녀석이죠. 오늘 전 이 녀석을 혼자 잡을 거예요. 그리고 이번 방송이 끝나고 호응이 좋으면 다음에는 450레벨로 바로 건너뛸게요.”

이설아는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시청자들은 댓글을 통해 꼭 성공하라고 응원을 했다.

“다행히 전 4차 전직을 해서 이벤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500레벨 레이드 몬스터까지는 혼자 처치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400레벨은 가능해도 500레벨은 불가능하다고요?”

아무리 4차 전직을 했다고 해도 500레벨의 레이드 몬스터를 홀로 처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이설아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정 그러시면 승패를 놓고 내기를 하셔도 좋아요. 물론 도박성이 너무 짙지 않고 내기 금액은 1골드 정도로 해야겠지만, 재밌을 것 같네요.”

시청자들 중 남자의 비율이 80퍼센트나 된다.

남자들은 보통 이런 가벼운 내기를 좋아해서 이설아의 말에 다들 1골드씩 걸기 시작했다.

“어머,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네요. 자, 그럼 갑니다. 승패를 떠나 응원은 해 주실 거죠? 역시, 여러분들 덕분에 힘이 나네요. 고고씽!”

이설아는 애교를 부리며 지팡이를 들고 하누만을 향해 달려갔다.

400레벨의 레이드 몬스터 하누만은 웬 유저 하나가 지팡이를 들고 달려오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설아의 강력한 공격에 화들짝 놀라 얼른 방어 기술을 펼쳤다.

이설아의 이 행보가 힐러들에게는 엄청난 힘을 주었고, 사람들이 힐러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설아는 그날 400레벨 레이드 몬스터를 혼자 30분 만에 잡아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400레벨 20인이 해야 30분 정도 걸리는 것을 혼자 해내다니!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멘트와 아이템 드롭까지 포함해 40분이 조금 넘는 이 영상은 생방에서도 수천만의 시청자가 참여했고, 다시 보기로도 많은 사람들이 구매했다.

레이드가 끝나고 즐거운 미소와 함께 방송이 끝났다.

이설아는 기분 좋게 이서우 곁으로 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길드 창으로 김소연이 다급히 외쳤다.

-서우야, 큰일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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