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레벨이 갑이다
244화
-주인님.
-백호?
-네, 주인님.
이서우에게 이제 생명력은 20퍼센트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생명력이 줄어들수록 의식이 혼미해져서 백호의 목소리도 쉽게 구분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랫동안 대화를 했고, 지금 그에게 말을 걸 존재는 백호밖에 없었기에 알 수 있었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그것보다 도망 안 가고 뭐 해?
-전 안전하니 걱정 마세요.
-그래, 너라도 안전해서 다행이야.
이서우의 말에 백호는 큰 감동을 받았다. 자신이 주인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데, 주인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다니.
그 순간이었다. 백호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주인님, 어쩌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뭐? 방법?
-네. 제가 좋은 생각이 있어요.
-뭔데?
아직도 3분이나 남은 해독제 제조 시간을 보며 절망했는데, 백호가 방법이 있다고 하니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의문이 들었다.
‘대체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거지?’
이서우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백호는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 했고, 이서우는 그제야 희망이 보였다.
백호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이서우는 백호를 소환해제 했다.
그리고 다시 곧바로 소환을 해서 백호를 불렀다. 생명력이 얼마 없어 있는 힘을 모두 짜내어 소환을 한 것이다. 이번 계획이 실패하면 모든 게 끝장이 나고 만다.
소환이 된 백호는 리치 킹을 힐끗거리고는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강아지 새끼가 재수 없게 감히 이 존귀한 존재를 노려봐? 놈이 죽는 걸 느긋하게 감상하려 했는데, 너부터 죽여 주마.”
앉아 있던 리치킹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백호가 이서우의 목을 물어뜯는 게 아닌가!
“저런 미친놈을 봤나. 자기 주인을 물어뜯다니. 내게 죽고 싶지 않다는 뜻인가.”
백호에게 다가가던 리치킹은 백호의 돌발적인 행동에 걸음을 멈췄다. 소환수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굳이 다가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백호가 열심히 피를 빨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그 피를 돌려주었다.
그러나 이서우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떴다.
-리치 킹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생명력이 0이 되었습니다.
-영혼의 구슬이 파괴되지 않아 생명력이 다시 회복됩니다.
백호가 물어뜯으면서 생명력이 빠르게 사라졌지만 다행히 리치 킹의 능력이 흡수된 이후여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허업!”
리치 킹의 능력을 얻으면서 죽음의 가루로 인한 독이 모두 해독되었다.
“어, 어떻게!”
이제 곧 죽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리치 킹은 갑자기 이서우가 멀쩡해지자 크게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뒷걸음질까지 치며 이서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휴우, 십년감수했다. 백호야, 수고했어.”
“헤헤. 네, 주인님.”
“그럼 이제 들어가서 쉬어.”
“네!”
백호를 소환 해제한 이서우는 대검을 움켜쥐고 리치 킹을 바라보았다.
백호가 생각해 낸 묘책은 이랬다.
리치 킹이 자신의 육체를 가루로 만들어 독약을 만들었다면 이서우의 몸속에는 리치 킹이 담겨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피를 빨아 리치 킹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리치 킹은 불사의 육체를 가진 존재. 일시적이지만 그의 능력을 흡수하면 독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백호는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고, 이서우도 될 거라 믿었다.
이서우의 상태가 멀쩡했다면 백호보다 먼저 방법을 떠올렸겠지만 생명력이 바닥까지 빠진 상태여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쨌든 백호의 예상이 맞았고, 이서우는 금세 멀쩡한 모습을 되찾았다.
“서, 설마. 똥강아지 새끼가 회복의 힘을 가지고 있었더냐!”
“그건 알아서 생각하라고. 근데, 한 가지 알아 둬. 난 네놈의 영혼의 구슬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니까.”
“뭐?”
리치 킹은 너무 놀란 나머지 이서우의 행동을 놓치고 말았다.
“소생의 힘을 쓰면 네놈은 약해지지. 근데 넌 지금 완벽한 상태가 아니란 말이야. 난 너의 힘을 잠시 쓸 수 있는 상태고.”
“서, 설마…….”
“네 힘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영혼의 구슬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거 아니냐고? 맞아. 하지만 아공간은 너의 육체가 있어야 열 수 있잖아. 그치?”
“아, 안 돼!”
이서우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리치 킹이 약해진 틈에 그를 붙잡은 이서우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공간이여, 모습을 드러내라!”
“이, 이놈, 아, 안 된다. 안 돼!”
아직 완벽하게 제 모습을 찾기 못해 피하거나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소생이 반복되면 소생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1분 정도가 지나야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아공간이 열리고 영혼의 구슬을 빼낼 정도의 시간이었다.
리치 킹은 그저 이서우가 하는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영혼의 구슬이군. 색깔도 참.”
진한 먹물을 모아 둔 것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생겼다.
이서우는 영혼의 구슬을 든 손에 마나를 주입했다.
퍼석!
영혼의 구슬이 파괴되는 소리가 들렸다.
-리치 킹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명성 100만이 증가합니다.
-‘리치 킹을 처치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중략……
-레벨이 올랐습니다.
-500만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 100만이 증가합니다.
-리치 킹을 처치하셨기에 모든 언데드들이 사라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중략……
-레벨이 올랐습니다.
“헉! 리치 킹을 잡으면서 언데드까지 모두 잡은 걸로 됐네. 이런 행운이!”
리치 킹을 처치하라는 퀘스트는 A+등급으로 10레벨 경험치 보상이 있었다.
한데, 리치 킹을 처치하면서 모든 언데드들이 죽자 무려 20레벨이 더 올랐다.
이로써 리치 킹 한 마리로 33레벨이 오르는 행운을 누렸다.
이는 퀘스트 공유를 받은 파티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설아는 졸지에 500레벨이 되었고, 그의 친구들도 단숨에 400레벨을 넘겼다.
-헉! 서우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오, 오빠, 나 500레벨 됐어!
-헉! 갑자기 30레벨이나 오르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어머, 이, 이게 대체…….
그렇게 오랫동안 이서우와 함께 사냥을 한 이설아도 놀랐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박민수의 여자 친구는 놀라서 기절할 정도였다.
-휴우, 리치 킹을 잡으면서 언데드가 한꺼번에 죽어서 그래. 1만 마리당 1레벨씩 오르니까.
-그럴 수가.
-아마 리치 킹이 자신의 군대가 절대적인 복종을 하도록 하기 위해 이런 장치를 한 것 같아.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는 거네?
-그렇지. 영원불사의 몸이니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여긴 거겠지.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는데 말이야.
류종명의 말에 파티원들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 킹은 과거 펠렌을 만나서도 영원히 소멸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수면기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펠렌도 리치 킹을 어떻게 해야 완벽하게 죽일 수 있는지 알지 못해 무식한 방법을 썼다. 강제로 수면기에 접어들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서우는 그의 힘을 흡수해 아예 영혼의 구슬을 파괴해 소멸시켜 버렸다.
사실 이서우이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만약 그가 펠렌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백호는 그냥 두 손 놓고 구경만 했을 것이고, 그와 같은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와, 서우야, 진짜 고맙다. 앞으로 사냥하면 경험치는 10퍼센트만 먹으마.
-나도. 10퍼센트만 해도 남들보다 빠를 것 같네.
-나도 찬성!
몇 달 치를 하루 만에 이루면서 파티원들은 이서우에게 경험치를 몰아주자고 합의했다.
이서우로서도 150퍼센트 이상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어서 만족이었고, 파티원들도 빠른 레벨 업을 해서 만족이었다.
이서우는 기분 좋은 얼굴로 황궁으로 갔다.
가면서 통신 구슬을 잡았다.
-언데들은 다 처리됐지?
-그, 그래.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리치 킹을 죽였다.
-그, 그런…….
반다이젠 후작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리치 킹의 맞상대가 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를 죽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가지지 못했다.
리치 킹은 그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힘이 강한 것도 그렇지만 계속해서 소생을 하니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한데, 그런 막강한 힘을 지닌 리치 킹을 죽이다니.
물론 리치 킹이 온전한 힘을 갖지 못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놈이 힘을 완벽히 복구했다면 힘든 싸움이었을 거야.
-힘든 싸움이 아니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대륙은 피바다가 됐을 테고.
-어쨌든 놈을 죽였으니 당신도 계약한 바를 실행해야지?
-알았다. 엘사둔만 안정화가 되면 바로 이행하지.
-안될 말씀. 엘사둔이 회복하면 딴마음을 품으려고?
-그, 그런 일은 없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일주일 내로 계약이 이행 안 되면 내가 직접 엘사둔으로 가서 책임을 물을 거야.
-아, 알았다. 최대한 빨리 약속을 이행하겠다!
반다이젠 후작은 리치 킹을 죽인 이서우가 엘사둔을 공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엘사둔 제국이 완전한 상태라면 몰라도 황제도 죽고, 대부분의 대귀족들도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서우와 적대시한다는 것은 몰락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다이젠 후작과 대화가 끝나자 몰디나에게 연락이 왔다.
-휴우, 진짜 십년감수했네. 고생했어! 아리아가 고맙다고 전해 달래.
-별말씀을요.
-황제폐하께 가 봐.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서 난리시니까.
-선물요?
-그래. 대륙을 구한 영웅이니 응당 대가를 받아야지.
이서우는 함박웃음을 짓고는 서둘러 황제에게로 갔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보상을 황제로부터 받았다.
너무 엄청난 것이어서 파티원들에게는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파티원들도 막대한 골드와 전설급 아이템을 보상으로 받았기에 굳이 이서우에게 묻지 않았다.
접속을 종료한 이서우는 110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온전히 운동에만 쏟았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편안했다.
‘운동에 중독되는 사람은 어떤 괴물일까, 싶었는데 내가 딱 그 케이스네.’
동문회를 앞두고 이서우는 꿀잠을 잤다.
아침일찍 일어난 이서우는 이설아와 식사를 마친 뒤 박대표와 김소연, 그리고 전혀 닮지 않은 그녀의 오빠 김명국과 만났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온 것이다.
* * *
“야, 일찍 깨우라고 했잖아!”
“내가 네 보모냐? 다 큰 성인이면 자기 일은 알아서 해야지.”
“아오, 머리야. 젠장 어떤 놈이 양주는 숙취가 없다고 했어!”
괜히 짜증을 부린 배진성은 헝클어진 머리를 거칠게 비비며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면서도 구시렁거렸지만 황재규는 그에게 신경을 꺼 버렸다.
‘몇 시간 남지도 않았는데 참 천하태평이네. 어떻게 저런 놈이 한 달에 5천만 원씩 벌었나 몰라.’
그가 아는 지인 중에 배진성이 가장 빠르게 수입이 늘었다.
대부분 1천만 원을 찍는데도 몇 달이 걸린 반면, 같은 시간에 배진성은 2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5천만 원까지 도달하는데도 남들보다 월등히 빨랐다.
하지만 도박성이 짙은 일에 손을 대면서 배진성의 명성은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고 배진성은 아직도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괜히 긴장되네.’
아직 약속 시간까지 5시간은 남았지만 황재규는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