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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30화 (230/341)

# 230

레벨이 갑이다

230화

“더 이상 갈 곳이 없구나.”

“후작 각하,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럼 바다를 건너기라도 하자는 뜻이더냐?”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건 리치 킹이 바라는 것입니다.”

“바다도 건너지 말고, 돌아가서 싸우지도 않을 거라면 대체 어찌하자는 것이더냐.”

소드 마스터 상급에 오른 나칸 백작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리치 킹을 처치하고 엘사둔을 구하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제국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후작은 물론이고, 공작의 자리까지도 넘볼 수 있었다.

그런 미래가 눈앞에 있음에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은 그곳이 지옥불 속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타이탄을 이용해 물속을 달리고, 호흡이 급해지면 타이탄을 아공간으로 넣어 잠시 공기를 들이 마쉰 뒤 다시 타이탄을 이용해 물속을 이동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 바다 건너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배가 갈 수도 없는 곳이라는 걸 정녕 모르는 것이냐?”

“그건 알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크흠.”

나칸 백작의 말에 반다이젠 후작도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동쪽이나 서쪽으로도 갈 수 있지만 가봐야 어차피 바다다.

남쪽은 적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 결국은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야 했다.

“후작 각하.”

“알았다, 알았어.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가야겠지. 10분간 휴식을 취하고 움직이겠다.”

“네, 후작 각하!”

나칸 백작은 기사들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한 뒤 떠날 준비를 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타이탄 아홉 기가 북쪽 끝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다들 살아남아야 한다. 호흡이 가빠지면 언제든 물 밖으로 올라가 호흡을 하도록 해라.”

“네, 후작 각하!”

반다이젠 후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홉 기의 타이탄이 바닷속을 달렸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숨이 차면 물 밖으로 나와서 타이탄을 아공간으로 보내고 크게 몇 차례 호흡을 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호흡만 한 채 다시 타이탄을 불러 바닷속을 달렸다.

소드 마스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5일째가 되었을 때다. 휴식을 취하러 나온 한 기사가 소리쳤다.

“육지다! 정말 육지야. 이제 살았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올라온 기사들도 미친 듯이 소리쳤고, 나칸 백작과 뒤이어 반다이젠 후작도 육지를 바라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후작 각하, 드디어 육집니다.”

“알고 있다. 다들 흥분을 감추고, 혹시 모를 적을 대비하라.”

“네, 후작 각하.”

육지에 오른 반다이젠 후작은 산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은신처를 만들었다.

“후작 각하, 제가 둘을 데리고 주변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넷을 데려가라.”

“하지만…….”

“쥐가 고양이 생각해 주는 꼴이구나. 위험하면 네가 더 위험했지 나는 괜찮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야 한다. 이제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네, 후작 각하.”

나칸 백작은 기사 넷을 데리고 주변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온통 나무들밖에 없어 하루를 꼬박 이동하고서야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한데, 마을 이름과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를 본 나칸 백작은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백작님, 어서 가서 후작 각하에게 알려야 합니다.”

“알고 있다. 최대한 흔적을 지우고 다시 돌아간다.”

“네.”

돌아가는 길은 훨씬 빨랐다.

밤이 늦어서야 은신처에 도착한 나칸 백작은 급히 반다이젠 후작을 찾았다.

“후작 각하, 큰일 났습니다.”

“길이 없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마을이 있었습니다.”

“설마 언데드들이 점령하고 있더냐?”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냐.”

“그게 마을 이름과 함께 새겨진 문양이…….”

“거참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보거라.”

“후작 각하, 카이젠 제국의 문양이 있었습니다.”

“뭣이? 그게 정말이더냐?”

“네. 카이젠 제국 문양이 있었고, 마을 이름은 다론이었습니다.”

“허! 어찌 그런. 그러면 엘사둔 북쪽과 카이젠 남쪽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냐?”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어찌 그게 가능하단 말이더냐.”

“극소수의 마법사들이 그랬습니다. 이 땅은 둥글다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었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나 봅니다.”

“이럴 수가. 목숨을 걸고 피한 곳이 카이젠 제국이었다니.”

그들은 카이젠 제국으로 도저히 갈 수 없어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포로로 잡히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데,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카이젠 제국에 도착하고 말았다.

“풍랑이 워낙 심한 곳이어서 배들도 가지 못했는데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후작 각하,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잘되다니?”

“이곳은 리치 킹이 없습니다. 게다가 리치 킹도 우리가 설마 카이젠 제국에 있을 거라 전혀 예상을 못할 것입니다. 정비를 하고 육지를 따라 직접 엘사둔으로 간다면 놈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겁니다.”

“듣고 보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구나. 그럼 일단 타이탄을 모두 숨기고 다론이라는 곳으로 가 보자.”

“네, 후작 각하.”

그렇게 반다이젠 후작은 초보자 마을인 다론으로 가게 되었다.

* * *

한편 이서우는 반다이젠 후작이 다론 마을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엘사둔 국경을 넘어 반다이젠 후작의 성이 있던 곳에 다다랐다.

-오빠, 저기가 반다이젠 후작의 성成인가 봐.

-화려하게도 지어 놨네. 영지민들 등골 제대로 뽑아먹었겠는데?

-주변에 언데드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이럴 때는 신관들이 있으면 딱인데.

-그러게. 그 두 사람이 조금 아쉽기는 하네.

신성력을 이용하면 언데드들을 보다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워낙 신속히 처리할 수 있어 소란도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서우의 힘으로 처리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강한 마나 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 탄을 크게 만드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크기가 클수록 폭발음이 커서 단숨에 발각이 되고 만다.

이서우는 3일 동안 사냥을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이틀 째 그들에게 당분간 퀘스트 진행이 어렵겠다고 말했다.

최혜진과 고아라는 어쩔 수 없다며 지인들과 파티를 맺어 던전을 공략했다. 퀘스트도 중요하지만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두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며칠을 기다린 그들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하고 싶었지만 적진 한가운데여서 두 사람이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전했다.

-반다이젠 후작이 어디로 갔는지 찾으려면 언데드화된 인간을 잡는 게 좋겠지?

-응. 혜진 씨에게 듣기로는 언데드화가 진행된 지 얼마 안 된 인간이라면 이지를 완전히 상실하지 않아 기억력이 남아 있다고 했어. 이성적인 대화가 일부 가능하고.

-그럼 차라리 소란 일으키지 말고 납치만 해 와야겠네.

-아무래도 그게 낫겠어. 발각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혹시 놈들이 함정을 설치해뒀을지도 모르니 혼자 다녀올게.

-응. 조심해.

이설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서우는 초월 가속을 시전에 후작 성을 향해 달렸다.

꽤 많은 언데드들과 언데드화 된 NPC들이 있었지만 다행히 실력이 낮아 이서우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강자들도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초월가속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서우는 계급이 있어 보이는 자를 잡아 기절시킨 뒤 얼른 성을 빠져나갔다.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근처에 언데드화가 진행된 NPC를 아무나 잡아 오고 싶었지만 계급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서우는 위험을 감수하고 깊숙이 들어갔다.

-휴우, 경계가 꽤 삼엄했어.

-무사해서 다행이야.

-엘사둔을 집어삼켰다고 자신하는지 함정은 없더라고. 허접한 언데드들을 속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이서우는 납치해 온 사내를 바닥에 던졌다.

철퍼덕!

볼썽사납게 바닥에 떨어진 사내는 고통이 심한지 얼른 정신을 차렸다.

“누, 누구냐.”

“원래 말이 그리 느려?”

“난 느리지 않다. 네가 빠른 것이다. 누구냐고 물었다.”

언데드화가 진행되고 있어서인지 평범한 사람보다 말이 2배나 느렸다.

“질문은 내가 해. 난 황제께서 보낸 기사다. 반다이젠 후작 각하를 찾아 숨은 세력과 함께 반드시 황궁을 되찾으라고 하셨다.”

“거짓말이다. 주인님께서 대귀족들을 모두 굴복시켰다.”

“거참, 말이 너무 느려서 답답하네. 네 속에는 아직 엘사둔의 피가 흐르고 있다. 반다이젠 후작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 달라. 그러면 그분을 찾아 함께 힘을 합쳐 리치 킹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반다이젠 후작 각하는……. 아, 안 돼. 난 주인님께 복종해야 돼.”

“그자는 네 주인이 아니다. 너의 진정한 주인은 황제폐하다. 그분의 마지막 명령을 하달받은 날 돕지 않겠다는 것이냐!”

이서우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에게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였다.

아직 완벽하게 언데드가 되지 않아 이지를 완전히 상실하지 않아 허점이 남아 있었다.

이서우는 그것을 파고들었고, 사내는 황제를 떠올리며 깊은 갈등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완벽히 언데드화가 진행되어 이런 대화조차도 불가능했다. 그 전에 반드시 반다이젠 후작이 간 곳을 알아내야 했다.

“으으으. 반다이젠 후작 각하는 북쪽, 이곳에서 북쪽으로 곧장 가셨다.”

“마지막까지 넌 자랑스러운 엘사둔의 기사구나. 너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마.”

“어서, 어서 날 죽여 줘! 아악, 주, 주인님…….”

언데드화가 진행이 되면서 혼란스러운지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이서우는 대검에 마나를 실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다행히 위치는 얻었네.”

“응.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일이 풀릴 줄은 몰랐어.”

“이 전쟁을 막고 열심히 레벨 업을 하라는 하늘의 뜻이야.”

“호호호. 오빠, 종교도 있었어?”

“종교는 무슨. 난 나만 믿을 뿐이야.”

“피, 난 안 믿고? 서운한데?”

“당연히 우리 설아는 믿지. 암, 아주 철석같이 믿는다니까.”

“헤헤, 정말?”

“그럼.”

이서우가 가볍게 입을 맞추자 이설아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전쟁통에서도 연애를 하고 애를 낳는다더니 적진 한복판에 와서도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잠깐의 유희일 뿐, 두 사람은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빠르게 이동했다.

* * *

“아니, 저들은…….”

“후작 각하,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저놈들이 이곳에 있을 줄이야.”

“우리를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요?”

“아니다. 저놈들도 최남단까지 내려온 걸 보니 도망치는 게 분명하다.”

반다이젠 후작은 수백 명에 달하는 병사와 기사들의 행렬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다론 마을로 가기 위해 백작을 쫓던 반다이젠 후작은 멀리서 많은 사람들의 기척을 느끼고 방향을 바꾸었다.

한데, 그 기운의 주인공은 바로 그가 은밀히 거래를 했던 쿠아노 후작의 병사와 기사들이었다.

어떻게 그가 그들이 쿠아노 후작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냐면, 바로 기사단장 토첸 때문이었다.

토첸이 수백의 병력을 인솔해 남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모습을 드러내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그들도 도망자 신세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쿠아노 후작도 엘사둔이 리치 킹에게 넘어갔다는 걸 알아차렸나 보군. 쯧쯧쯧, 카이젠을 삼키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더니만 다 물거품이 되고 말다니.’

도망을 치는 사람에게 도움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법.

결국 반다이젠 후작은 다시 다론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세상일은 언제나 그렇듯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거기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몸을 돌려서 가려는데, 갑자기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반다이젠 후작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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