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레벨이 갑이다
222화
“여기에 나온 영상이 진짜 그놈이 확실하겠지?”
“네, 회장님. 어렵게, 어렵게 구한 영상입니다.”
“경계가 심한가 보군.”
“네. 어찌나 보안이 철저한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납치까지 당한 경험이 있으니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해. 한데, 식물이었던 녀석이 이렇게 강해지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솔직히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실력입니다.”
“겸손해할 필요 없어. 생사가 걸린 전투에서는 나도 긴장해야 할 정도니까.”
“감사합니다, 회장님.”
태식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고장수의 말처럼 태식은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다.
각종 무기도 잘 다룰 뿐 아니라 주먹도 위력적이어서, 신의 손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고장수에게 패배를 하면서 그의 화려한 날들은 과거가 되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영상은 황정미 간호사가 찍은 것이었다.
대련을 할 때 육체 변화를 알아봐야 한다는 최 박사의 말에 황정미가 몰래 촬영한 것이었다.
“놈은 행보는?”
“K사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접촉할 기회가 많지는 않겠구먼.”
“네.”
“자료는?”
“핵심 자료를 빼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뉴 월드라는 게임이 의식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정보만 알아냈다는 거네?”
“죄송합니다.”
“아냐. 이게 어디 자네 잘못이겠나. 그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워낙 조심성이 많아야지.”
고장수는 정 회장의 성격을 잘 알기에 태식을 다그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지 않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뉴 월드라는 게임을 활용하는 게 어떨까요?”
“게임을?”
“네. 알아보니 밑에 녀석들이 그걸로 꽤 돈을 만지고 있다고 합니다. 곧 이벤트가 있어 밀어주기로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제가 게임을 해 보겠습니다.”
“네가?”
“네. 그래도 한 달 가까이 걸려야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을 수 있겠지만 간호사에게만 맡겨 두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흠.”
고장수는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의사는 매수가 되지도 않았고, 이서우와 접촉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고장수도 태식의 말에 마음이 동했다.
“좋아. 그럼 이곳으로 기계를 두 대 가져와.”
“두 대라면…….”
“내가 직접 나선다.”
“회, 회장님!”
“괜찮아. 그 녀석과 대화를 하려면 내가 당연히 나서야지. 간호사를 다그쳐서 정보를 얻어 내는 것도 잊지 말고.”
“네, 회장님!”
고장수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 주고 싶었다.
곧 수십억에 달하는 맞춤형 접속 베드가 들어왔고, 두 사람은 뉴 월드라는 게임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서우에게 접촉할 목적으로 했는데, 하다 보니 너무 현실감이 좋아 16시간 풀 접속을 하게 되었다.
아들은 전문가들이 잘 돌봐주고 있어 뉴 월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뉴 월드를 하면서 이서우에 대해 알고 싶어 방송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과거에 했던 방송들까지 유료로 결제해 수십 번이나 돌려 보았다.
그리고 경매에 대한 공지를 보게 되었다.
“태식아, 저기에 참여하자.”
“설마, 스텟 영약을 사실 계획이신 겁니까?”
“그래. 빨리 강해져야 저놈과 얼굴을 맞댈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지만, 경쟁이 엄청날 겁니다.”
이벤트가 끝나고도 고장수는 열심히 밀대를 받으며 사냥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이서우가 스텟 영약을 판매한다는 공지를 봤다.
간호사에게서는 더 이상 핵심 정보가 나오지 않아 고장수는 자기가 직접 이서우와 대면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고장수는 한 번 결정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쟁쟁한 사람들이 워낙 많아 후발주자인 고장수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차마 아무리 노력해도 이서우와 맞상대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고 말할 수가 없어 경쟁이 심하다는 말로 상황을 넘어가보려 했지만 고장수의 표정은 단호했다.
“설마 이번 경매에 중국과 인도 부자들까지도 나설 거라는 뜻이냐?”
“물론입니다.”
“그래 봐야 그자들은 20억 이상 제시하지는 않을 거야. 정보 팀의 분석도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고장수는 철저한 사람이다. 뉴 월드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하자마자 정보 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게임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뉴 월드야말로 그가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고장수는 전폭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길드를 만들어 운영했다.
단일 길드가 아니라 수십 개로 쪼개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정보를 모았고, 고장수는 최대한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성장에만 전념했다.
그런 노력 끝에 그는 현재 250레벨에 도달해 있었다.
두 파티가 16시간씩 풀로 돌아가면서 한 파티에서는 고장수가, 다른 파티에서는 태식이 모든 경험치를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고장수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갈증이 난 것은 바로 스텟이었다.
아이템은 돈을 쏟아부으면 얼마든지 최상급을 구입할 수 있지만 순수 스텟은 돈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스텟 영약에 대한 경매 공지를 보았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쟁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약 하나에 20억 이상 투자하는 건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요?”
“이번에 나올 영약의 숫자나 어느 정도지?”
“정보 팀의 예상으로는 10~30개라고 합니다.”
“편차가 심하군.”
“정보가 거의 없어서…….”
“뭐 어쨌든 20억이 산다면 200~600억 정도 든다는 소리겠네.”
“예상치가 그렇다는 것이지 구입 안전선은 개당 30억 정돕니다.”
“그래 봐야 최대 900억이라는 소리잖아. 그 정도는 지불할 여력은 돼.”
“그건 그렇지만…….”
재산이 3조 이상인 그에게 900억은 결코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영약 가격을 올려놓게 될 경우 추가 경매에라도 정해진다면 스텟 영약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태식은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 하지만 영약의 가치가 더 올라가면 그땐 사고 싶어도 못 사.”
“이번에 가격을 높여 놓지 않으면 30억 이상 올라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리지 않을까요?”
“아냐. 오히려 순식간에 가격이 뛸 수도 있어. 아직은 아무도 그 가치를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해 추측만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좋은 걸 알게 되면 너도나도 사려고 난리를 칠 걸? 그때가 되면 어차피 가격은 올라. 그럴 바에는 조금 비싸게 주고 사더라도 남들보다 먼저 혜택을 누리는 게 나아.”
하루가 다르게 좋은 제품들이 많이 나오는 세상이다.
더 좋은 물건이 나오면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 평생 신제품 출시만 기다리다가 살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누구보다 일찍 사서 최대한 길게 누리는 것이 낫다.
스텟은 전자제품과 달리 영구적인 것이어서 더더욱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그러면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길드 마스터만 참여가 가능하니 너도 어서 하나 넘겨받고 초대권 챙겨.”
“네, 회장님.”
고장수가 결정을 내리자 태식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스텟 영약 경매에 참여할 준비를 했다.
* * *
“자, 이제 대충 진행 방식에 대해 들으셨죠? 그럼 이제부터 경매를 시작할게요. 오늘 경매는 중국과 인도까지 포함해 모두 1천만 명 이상의 길드 마스터분들이 참여해 주셨어요. 많은 길드가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경매에 참여하지 않은 길드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보유 자금이 10억 이하로는 언감생심 꿈에도 꿀 수 없는 아이템이어서 10인 이하의 소수 길드들은 거의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오늘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나올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그럼 경매 시작에 앞서 오늘 물건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릴게요. 공지를 했다시피 근력, 민첩력, 체력 영약 스텟을 판매할 거예요. 다른 스텟 영약도 가능하지만 오늘은 세 종류밖에 없으니 아쉽더라도 다른 스텟은 다음을 기약하셔야 할 것 같네요.”
이설아의 말에 각자의 방에서 커다란 홀로그램을 지켜보던 길드 마스터들이 깜짝 놀랐다. 세 가지 스텟 증가 영약이 있는 것도 놀라운데, 다른 스텟 증가 영약도 제조가 가능하다니!
길드 마스터들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저놈만 얻으면 아들도 깨어날 수 있고, 이곳에서도 지존이 될 수 있어. 반드시 놈을 내 수족으로 만들어야 해.’
고장수는 다른 스텟 증가 영약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 같았다.
상위 랭킹에 있는 길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너스 스텟이 한정적이어서 올리지 못했던 것들까지 다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빛에 욕심이 가득했다.
1레벨을 올려야 랜덤으로 오르는 스텟이다. 보너스 스텟이 3개가 더 주어지지만 고레벨들은 레벨 업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터라 스텟 하나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잘 알았다.
“혹시나 영약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이 영약을 만드신 분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전장의 지배자예요. 그분의 이름은 이미 뉴 월드에 널리 퍼져 있으니 출처에 대한 의구심을 싹 지워 주시길 당부드리며, 오늘 경매에 올라올 영약의 숫자를 발표할게요.”
이설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대여섯 개를 가지고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들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워낙 귀한 것이니 많은 수량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두 자리 숫자는 될 것이라 내다봤다.
음악이 고조되고 최고조에 달하자 커다란 홀로그램에 숫자가 떴다.
“생각보다 많군. 절반은 내 차지야.”
“흐흐흐. 아주 싹 쓸어 주지.”
고장수도 배상철도 홀로그램에 뜬 숫자를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영약의 숫자는 20개씩 총 60개로, 15레벨을 올려야 얻을 수 있는 수치였다.
고레벨이 될수록 1레벨을 올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보너스 스텟을 그만큼 획득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아이템으로 어느 정도 능력치 향상을 이루지만 한계가 있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는 건데, 그건 레벨 업보다 몇 배나 더 힘들다.
그러는 중에 스텟 증가 영약이 등장했다.
몇 날 며칠을 풀접속해서 사냥만 해야 레벨을 올릴 수 있는데, 돈으로 스텟을 사게 되면 단시간에 능력치 향상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하는 것이다.
“보지 않아도 다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겠네요. 지금도 전장의 지배자 님은 열심히 영약을 제조하고 계시니 다음번 경매에는 더 많은 수량이 나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 경매에서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으면 제조하는 시간을 아껴 차라리 레벨을 올린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다들 분발해주세요.”
이설아의 말에 길드 마스터들은 앞으로도 영약 증가 스텟을 계속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경매가 중요했다.
수많은 길드 마스터의 머릿속에는 이설아의 그 멘트가 날카롭게 박혔다.
별로 대단한 멘트는 아니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로 인해 길드 자금의 여유가 있는 마스터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놓았다.
“자, 그럼 1차 경매를 진행할게요. 다들 원하는 가격을 적어주세요. 여러분들이 제시한 가격과 저희가 생각한 가격을 비교해서 커트라인을 설정할 테니 신중히 선택하세요. 자, 그럼 1분 후에 마감하겠습니다.”
이설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길드 마스터들은 각자가 생각한 가격을 적었다.
이설아만 볼 수 있는 현황판에 몇 명이나 가격을 적어 냈는지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빠르게 가격을 적는 다는 건 그만큼 적극적이라는 의미야.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어. 길드 마스터들이 대부분 350레벨을 넘겼으니 레벨 업이 얼마나 힘든지 알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스텟 영약을 얻으려고 할 거야.’
이설아의 분석은 정확했다. 경험치 분배를 최대로 받아도 레벨 업은 쉽지 않았다.
이벤트 중일 때도 350레벨 이상은 너무 힘들어서 사냥을 하면서도 욕을 할 정도였다.
‘드디어 끝났네. 그럼 결과를 한번 볼까.’
이설아가 버튼을 누르자 가격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자신만 볼 수 있는 스크린에 나타났다.
‘와, 이건 상상 이상인데?’
결과를 본 이설아는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