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레벨이 갑이다
207화
“오빠!”
“테스트도 없는데 푹 자지 그랬어.”
“습관이 돼서 그런지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지더라고.”
테스트를 하는 곳과 이서우와 이설아가 생활하는 곳은 철저히 분리가 되어 있다.
박 대표와 김소연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두 사람의 공간에 들어올 수 없었다.
“좀 쉬고 있어, 나 운동하고 올게.”
“오빠, 잠시 할 말이 있어.”
“할 말? 뭔데?”
“오빠가 퀘스트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를까 봐 미리 말해 주려고.”
“일단 좀 앉자.”
“응.”
접속 베드가 있는 방에도 웬만한 건 다 갖춰져 있다.
이서우는 커피 머신에서 아메리카노와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페퍼민트를 가지고 테이블에 앉았다.
“고마워.”
“무슨 일인데 그래?”
이설아의 맞은편에 앉으며 가볍게 질문을 했다.
“오빠가 짓고 있는 빌딩 있지?”
“어, 그게 왜?”
“서른두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지고 있고, 새롭게 생길 마을에도 똑같은 규모가 만들어 질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났어.”
“하루에 한 층씩 올라갈 테니 소문이 나는 것도 당연하겠지.”
“응. 대부분 기대를 하고 있는데, 대형 길드들이 밑밥을 뿌리기 시작했어.”
“밑밥?”
“응. 오빠가 접속하고 얼마 안 지나서 소문이 났거든. 마을 운영을 오빠가 독점할 거라고.”
“그걸 사람들이 믿는단 말이야?”
“응. 대형 길드들이 일제히 나서서 비판을 하고 나서서 사람들도 믿는 분위기야.”
“허 참.”
이서우는 하도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거짓 기사를 여기저기서 쏟아내면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점점 믿게 되잖아. 지금 상황이 딱 그래. 오빠가 그 정도 규모의 거대 빌딩을 짓는데, 수수료를 길드와 나누겠냐는 주장이야.”
“그럴 듯하게 잘 포장했네.”
“응. 오빠가 얼마나 부자인지 짐작을 못하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코웃음을 치던 이서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자 사람들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믿게 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뉴 월드에는 50층 이상의 건물은커녕 10층 건물도 많이 없다.
그러니 이서우가 짓는 건물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지 면적이 3만 평이 훌쩍 넘고, 한 층 바닥 면적이 3만 평 가까이 되는 엄청난 규모의 빌딩에서 나올 수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빌딩 한 곳에서 나오는 수익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 곳이 서른두 곳이나 있으니 얼마나 많은 수익이 발생할까.
사람들은 그런 노다지를 이서우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고, 대형 길드에서도 그 점을 이용해 소문을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국에서 이서우에게 그런 엄청난 부를 줄 리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어느 정도 수준의 부는 이서우의 활약 때문에 인정하지만 황제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데, 허락을 할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대형 길드들이 소문을 퍼트리면서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오히려 운영권을 갖지 못한 길드들이 입점해서 이득을 조금이라도 취할 수 있게 하려 했더니 어이가 없네.”
“그래도 오빠를 굳게 믿는 사람들도 꽤 많아. 이참에 다 지어질 때까지 지켜보고 끝까지 오빠를 신뢰하는 길드들이 입점할 수 있게 하는 건 어때?”
“그렇지 않아도 나도 그 생각했어. 이왕 맡길 거라면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는 자들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게 낫지.”
“응.”
“차라리 잘 됐네. 덕분에 옥석을 가릴 수 있으니.”
“그러게. 오빠랑 대화를 하다 보니 별로 걱정거리가 아니라는 걸 알겠네. 대형 길드들이 자꾸만 거짓 정보를 뿌려서 짜증이 났었거든.”
“그래 봐야 자기들만 손해지 뭐. 거짓 정보 흘려보낸 길드들 명단 잘 뽑아 줘. 다음 운영권 심사에서는 배제시키게.”
“응. 그럴게.”
페퍼민트 차를 머금자 시원함이 입안에 감돌았다.
상쾌한 기분이 곧 온 몸을 휘감자 짜증도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그거 말하려고 기다렸던 거야?”
“아, 맞다. 한 가지 더 있어.”
“뭔데?”
“사실 이게 더 중요해.”
이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일이 뭔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헤라클레스 길드가 쿠아노 후작과 접촉했어.”
“걔들 원래 그쪽으로 붙은 애들이잖아.”
“응. 근데, 그 접촉 이후로 헤라클레스 길드의 편법이 더 심해졌어.”
“후려치기를 더 하고 있다고?”
“응. 아주 대놓고 하던데?”
“이것들을 그냥!”
세상 어디에도 정직만 존재하는 곳은 없다.
법이 있지만 편법을 써서 법망을 피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한다.
이서우는 뉴 월드의 왕도 아니고, 정의를 수호하는 사람도 아니다.
약간의 편법은 이서우도 인정을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가만히 두고 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근데, 이게 좀 애매해. 분명 대놓고 이득을 취하는데, 유저들이 딱히 반발을 못 해.”
“자기 구역에서 나오는 영웅 이상의 아이템에 수수료를 더 물리고, 일정 범위의 사냥터를 독점하게 해 주는 대신 돈을 받고, 또 뭐지, 여튼 몇 가지되던데 그것 말고도 더 있다고?”
“응.”
“어떻게 착취하고 있어?”
“지금까지는 자기들 구역에서 나온 아이템을 다른 곳에서 팔고, 전투 소모품을 다른 마을에서 사도 별 말을 안 했는데, 마을을 이용하는 길드 명단을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어. 만약 다른 마을에서 물건을 사거나 팔기라도 하면 통행 자체를 못하게 하더라고. 다시 이용하려면 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고.”
“뭐? 이것들이 아주 미쳤네.”
“내 말이. 리스트까지 만들어서 그런 식으로 관리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니까.”
“알짜배기 지역을 택했으니 고렙들만 이용하는 곳이라 누가 이용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파악이 가능하지.”
“그래도 수십만이나 되는데 그걸 어느 세월에 다 기록을 했는지 몰라. 아이템 판매는 각 지역마다 등장하는 몬스터가 조금 다르니 이름으로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소모품 아이템 구입은 대체 어떻게 관리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것만 전담하는 애들이 있나 보네. 여튼, 이건 도가 좀 지나친데.”
이서우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당장이라도 조치를 취하고 싶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근데 더 신경 쓰이는 건 쿠아노 후작을 만난 뒤에 돌변했다는 거야.”
“설마, 쿠아노 후작과 모종의 계약이 있었다고 여기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행동이 말이 안 돼. 이익이 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니 이런 짓을 하려면 진즉 했을 거야.”
“하긴, 돈 되는 거면 뭐든 하는 놈들이니 지금까지 참고 있을 이유가 없지. 설마, 운영권을 보장 받은 건가?”
“나나 언니의 추측으로는 그래. 확실한 뭔가가 있기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 같아.”
이설아와 김소연의 추측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해 상당수의 대형 길드들은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들의 행보가 지금까지 그래 왔는데 갑자기 착해질 리는 없었다.
“이번 퀘스트만 끝나면 조세프 백작을 만나서 좀 알아봐야겠네.”
“응.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니 한 번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만약 진짜 쿠아노 후작이 그런 약속을 했다면 오빠랑 충돌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조세프 백작의 입지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후작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쿠아노 후작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게 대부분의 귀족들의 평가다.
만약 쿠아노 후작이 나선다면 아무리 조세프 백작의 비호를 받고 있어도 운영권에 대한 일에 차질이 빗어질 수도 있었다.
“오빠, 퀘스트까지 얼마나 남았어?”
“뉴 월드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총 6일 남았어. 왜?”
“아무래도 그 전에 뭔가 사달이 나도 날 것 같아서.”
“대형 길드가 인원을 많이 모으고 있지만 대귀족에게는 찍 소리 못하는 거 알잖아. 아무리 쿠아노 후작의 비호가 있어도 친밀도가 나만큼 높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마.”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쿠아노 후작의 욕심도 대단하잖아. 헤라클레스 길마가 그걸 모르지 않을 거란 말야. 분명 막대한 돈을 제시했을 거야.”
“흠.”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많으면 상식을 벗어나는 짓을 종종 하기도 한다.
이서우는 어나더 월드 시절 20년 동안 그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았다.
게임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어서 이설아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서우는 황제를 떠올렸다.
“쿠아노 후작의 위세가 아무리 강해도 황제가 운영권을 인정한 것이니 황제를 거치지 않고는 자기 마음대로 못 할 거야. 그랬다가 반역죄로 다스려질 테니까. 그러니 당분간은 별 일 없을 테니 너무 걱정은 마. 이번 일이 마무리 되면 바로 내가 나설 테니까.”
“하지만 오빠는 리치 킹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퀘스트도 있잖아.”
“그건 그렇지.”
한동안 제조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리치 킹의 부하들을 처치해야 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온 신경을 생산 기술에만 쏟았으니 그럴 수밖에.
“또 걱정되는 건 성향이 맞는 대형 길드들끼리 동맹을 맺는다는 거야. 상위 10개 길드들의 입김이 워낙 강해서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피해가 생기기 때문에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동조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운영권을 길드 규모만 보고 뽑지 않았다는 점이야.”
“마을에서 나오는 수익이 막대하니 버티나 보네.”
“응. 상당수의 길드들은 적당히 해먹거든. 지나치면 역효과가 날 걸 아는 거지.”
“결국 더 나쁜 놈이냐, 조금 덜 나쁜 놈이냐 하는 정도네.”
“응. 지금은 그래. 그래도 운영권을 못 받은 길드들 중에서는 꽤 괜찮은 곳이 많아. 목록을 오빠에게 보내 놨으니 시간 되면 봐.”
“그래야겠네. 그나저나 계약서 문제는 잘 처리됐어?”
“아, 맞다. 그렇지 않아도 그 말도 하려 했는데. 오빠가 한번 확인해 봐.”
이서우는 전자문서로 된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특별한 것은 없고, 절대적으로 이서우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네.”
“응. 공증도 받은 거니 이대로 하면 돼. 정 회장님에게 말해 뒀으니 오빠 자고 나오면 그때 계약하자.”
“알았어. 그럼 난 운동 좀 하고 쉬다 올게.”
“응. 푹 쉬고. 나중에 봐.”
이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설아에게로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키스를 진하게 하고서야 운동을 하러 갔다.
한창 불타오를 청춘들인데 이틀 내내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앞으로 이틀을 더 그렇게 보내야 했다.
그러니 시간이 될 때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서우는 2시간 정도를 알차게 운동을 하고 곧바로 골아떨어졌다.
계약 건 때문에 이서우는 4시간 반을 자고 일어났다. 워낙 깊은 수면에 들어 몸은 개운했다.
같은 시간을 자도 낮에 자는 것보다 밤에 잠을 자는 게 더 개운하지만 이서우는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이것도 몸이 좋아져서 그런 건가.’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가면서 지나치게 좋은 컨디션에 의문이 들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식당에 이설아와 김소연이 함께 있었다.
“다들 좋은 아침.”
“야, 지금 오후거든?”
“아 맞다. 2시지. 깜빡했네. 오늘 메뉴는 뭐야?”
“불고기 백반.”
“오, 좋네. 고기가 좀 당겼는데 어찌 알고.”
“아주 부부 행세를 해라, 부부 행세를 해.”
“언니, 질투나면 종명 오빠도 데려오라니까 그러네.”
“일할 시간인데 어떻게 데려와. 그것보다 얼른 먹고 계약서 쓰러 가자.”
“그래야지. 밥들은 먹었어?”
“응. 난 먹었어, 오빠.”
“설아랑 같이 맛난 거 먹었다. 배고플 텐데 얼른 먹어.”
이서우는 금세 차려지는 밥상을 보며 박 대표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챙겨 주는 물을 들고 왔다.
정수기부터 고급 생수까지 없는 게 없었다.
지금 이서우의 손에 있는 것은 유리병이 유독 예뻤는데, 750ml 한 병에 가격이 3만원이 넘었다.
요즘 물맛에 빠져 하루에 두 병은 빠지지 않고 마시고 있었다.
“그 물이 마음에 드나 봐?”
“괜찮더라고.”
“물이 뭐 다 같은 물맛이지 특별할 게 있어?”
“누나가 몰라서 그래. 나도 첨에는 몰랐는데 마시다 보니 다르더라고.”
“오감이 예민해졌다더니 어느 순간부터 깐깐해졌네. 나랑 설아는 정수기 물이나 수돗물, 생수 차이를 잘 모르겠던데.”
“그러게. 감각이 발달해서 그런지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지더라고. 이건 첫 맛은 약간 떫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뒷맛이 달달해서 좋아. 목 넘김이 좋거든.”
“무슨 맥주냐. 목 넘김이 좋게.”
“여튼, 그런 게 있어. 누나도 신경 써 봐. 그럼 느껴질 거야.”
“됐네요. 난 그냥 아무 물이나 마실란다.”
김소연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식사를 했다.
접속 시간을 30분 남겨두고 테스트 룸으로 갔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정 회장과 최 박사, 그리고 그의 조수들이 있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네.”
“이야기는 들으셨을 줄로 압니다.”
“들었네. 당연히 자네 요구를 들어줘야지. 최 박사도 동의하기로 했으니 계약서를 주게.”
“네.”
정 회장의 재산은 20조에 육박한다. 엄청난 부를 가진 만큼 그의 시간도 그만큼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막대한 부를 가진 그가 이서우를 만나기 위해 30분이나 일찍 테스트 룸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 회장과 최 박사는 계약서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이서우도 사인을 하고 각각 한 부씩 가졌다.
“고맙네. 이렇게 흔쾌히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아닙니다. 저도 궁금한 게 있으니 이참에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그렇게 말해 주니 더 고맙구먼. 곧 자네가 접속해야 할 시간이 되는 걸로 알고 있네. 이 늙은이는 눈치 없이 방해하기 싫으니 이만 물러나겠네.”
“멀리 못 나갑니다.”
“자넨 중요한 일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럼 일 보게.”
“네. 살펴 가십시오.”
정 회장은 수행비서와 함께 테스트 룸을 벗어났다.
이설아를 제외하고 최 박사와 주위 사람들은 정 회장이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행동할 줄은 예상을 못했는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어떤 테스트를 진행할지 들어 보고 바로 접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직 20분 정도가 남아 설명을 듣는 시간은 여유롭게 보냈다.
“그 외에 간단한 사항은 황 간호사가 말해 줄 겁니다.”
“안녕하세요. 황정미 간호사예요.”
“네. 이서우입니다.”
나송연은 최 박사를 돕고 있었고,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황정미라는 간호사가 이서우에게 다가왔다.
몇 가지 간단한 것을 당부받고는 특수 제작 베드로 갔다.
* * *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겠지?”
“하지만 자칫 의심을 받을지도 몰라요.”
“자연스럽게 행동해야지. 경력이 10년이면서 그런 것도 제대로 못 해? 그래서 돈이나 제대로 받겠어?”
“아, 아니에요. 할게요. 해요!”
“황 간호사,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그래야 가족들이 다 행복하지 않겠어? 안 그래?”
“제 가족은 제가 알아서 해요. 관심 끊어 주세요.”
“꼴에 자존심은 있다는 건가. 그런 식으로 고개 뻣뻣이 들면 재미없어.”
“죄, 죄송해요. 하지만 제 가족은 걸고넘어지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뭐, 좋아. 난 정보만 얻으면 돼.”
“그건 이미 약속한 거잖아. 돈을 받았으니 저도 제 할 일은 철저히 해요.”
“좋은 자세야. 황 간호사 앞으로 잘 부탁해.”
사내의 음흉한 미소에 황정미 간호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내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테니 절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황정미는 테스트 대상을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이미 막대한 돈까지 받았기에 사내가 시키는 일을 해야만 했다.
황정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곧 그녀는 마음을 굳힌 듯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