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레벨이 갑이다
199화
이서우가 새벽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각종 장비들이 창고로 들어왔다.
이번 테스트를 위해 특별히 창고를 개조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꾸며진 곳이었는데, 기계들이 들어오니 금세 전혀 다른 곳이 되어 버렸다.
꽤 넓었던 공간은 온데간데없었고, 하얀 가운을 입은 세 명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서우가 샤워까지 마치고 오는 동안 모든 준비가 다 완료 되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테스트를 진행하게 된 최 박사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서우입니다.”
이설아와 김소연도 40대 초반의 젊은 박사와 인사를 나누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비들을 꽤 많네요. 초정밀 3D 스캐너까지 있는 걸 보니 꽤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하실 건가 봐요?”
“네. 최대한 모든 방면에서 테스트를 다 해볼 생각입니다. 뉴 월드 플레이시에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까지도요.”
“플레이 중에 육체에 부담을 주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김소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최 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특수 제작된 접속 베드를 쓰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특수 제작된 거라뇨?”
“정 회장님은 글로벌사의 안 대표님께 꽤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수 베드를 제작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약간이라도 서우에게 문제가 생기면 테스트를 중단할 거예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서우씨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최 박사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하자 그제야 김소연은 약간 안도할 수 있었다.
방송 장비 말고는 기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이설아는 주변에 무슨 기기들이 있는지 몰라 나서지 못했는데, 김소연이 알아서 정리를 해 주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이서우도 가전제품이나 봤지 복잡한 기기들이 있어 약간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김소연의 도움을 톡톡히 보았다.
최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김소연이 주변 기기들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자 약간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먼저 맥박과 혈압, 채혈을 했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어차피 테스트에 응하기로 했으니 빨리 끝내버리죠.”
“잠시 이쪽으로 앉아 주세요.”
최 박사가 권한 자리에 앉자 흰 가운을 입은 30대 초반의 여성 연구원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간호사, 나송연이에요.”
“이서우입니다.”
“상의만 탈의하시면 되는데, 옷을 갈아입고 오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운동할 때도 상의는 줄기차게 탈의를 해 와서인지 이서우는 편안하게 티를 벗었다.
“이야, 서우 너 몸 좋다?”
“언니, 눈빛이 불순하다?”
“저런 몸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하지. 근데, 하루 4~5시간 정도 운동으로 석 달 정도 만에 저렇게 탄탄한 근육이 생길 수도 있구나.”
“워낙 열심히 하니까 그렇지.”
“잠깐만요. 서우 씨, 운동한 지 석 달밖에 안 되셨나요?”
“석 달이 조금 지났네요.”
최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료용 초정밀 3D 스캐너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나송연 씨 간단한 테스트가 끝나면 바로 스캔부터 할게요.”
“네, 박사님.”
나송연은 대답과 함께 이서우의 손목에 띠를 둘렀다.
주사 없이 채혈을 하는 기구였는데, 금세 피가 뽑혀져 나왔다.
“혈압, 맥박, 체온 다 정상이시네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채혈된 피를 작은 박스에 잘 놓아두고는 이서우를 이끌고 3D 스캐너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바닥에 그려진 발 모양에 서서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이서우는 바닥을 힐끗 보고는 어깨 넓이로 그려진 발 모양위에 섰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기기들이 움직이며 이서우의 육체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3분 만에 검사 과정이 끝났고, 심장과 관자놀이, 손목, 발목 등 몇 군데에 얇은 실리콘을 붙였다.
단순한 실리콘이 아니라 몸 상태를 알려 주는 장치들로, 피부색과 똑같아서 얼핏 봐서는 뭔가 붙어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흡착력도 좋아서 샤워를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걸 24시간 붙이고 있어야 된다는 겁니까?”
“서우 씨의 스마트 워치와 연동이 되도록 했으니 끄고 싶으면 얼마든지 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데이터를 위해 되도록 끄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되겠지요.”
“꺼야 될 때는 끄도록 하죠.”
“쿡쿡.”
“언니?”
“아, 미안. 서우가 밤에 흥분해서 맥박이 미친 듯이 올라갈 걸 생각하니 웃겨서.”
“어휴, 하여튼 저질이라니까. 종명이 오빠도 언니가 이렇게 음흉한 생각 하는 거 알아?”
“알지. 근데, 이게 더 매력적이라던데?”
약간 거리를 두고 있어 최 박사와 나송연은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지만, 이서우의 귀에는 잘 들렸다.
“누나, 다 들려.”
“어머, 거기서 우리 목소리가 들린다고?”
1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작게 속삭였는데도 들렸다고 하니 김소연도 이설아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크게 말했는데 그럼 안 들려?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저기, 서우 씨, 전 두 분의 대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만?”
“저도 못 들었어요.”
최 박사와 나송연이 의아한 얼굴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소리가 들렸단 말인가.
“두 분 정말 못 들었나요?”
“네.”
“아마 저에게 집중하신다고 그러신 것 같네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흰 기계와 서우 씨에게만 집중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청력과 시력 등 오감 테스트도 같이 진행할게요.”
“네. 그러세요.”
“그럼 스캔 결과가 나오는 동안 시력 테스트부터 할까요?”
“그러죠.”
오감 테스트는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최 박사가 가져온 기계로 충분히 가능했다.
“이상하네.”
“문제가 있나요?”
“기계가 이상한가 봐요. 다시 테스트 해 볼게요. 잠시만요.”
나송연은 과거 시력 테스트를 할 때 벽에 붙어 있는 숫자와 그림, 다양한 모양들의 조합을 프린터 하더니 벽에 붙였다.
“이거 보이시나요?”
“네.”
“이게 뭐죠?”
“7이네요.”
“이건요?”
“3인데요?”
0.5에서 시작해 0.7까지는 무난했다.
바로바로 대답을 해서 나송연은 두 개 정도를 더 물어보고 1.0으로 갔다.
그런데도 이서우는 막힘없이 3개를 맞추었다.
1.5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한데, 2.0마저도 3개 이상을 맞추자 나송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것을 보면 잘 보인다는 것인데, 약 7개월 전까지 식물인간으로 지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호기심이 도한 나송연은 이서우를 8미터 거리까지 가도록했다.
보통 시력 측정은 4미터에서 이뤄지지만 2.0까지 통과해서 거리를 두 배로 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에 있는 숫자와 그림을 다 맞추었다.
“서우 씨, 원래 이렇게 시력이 좋았나요?”
“1.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많이 좋아졌나요?”
“네. 제가 볼 땐 5.0은 되는 것 같으신데요?”
“네? 5.0요?”
“네. 그것도 제 추측이에요. 조금 더 정확히 알아봐야 하겠지만 독수리 정도의 시력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제가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육체적인 운동과는 크게 상관이 없어요. 보통 시력이 좋은 사람들은 먼 곳을 자주 바라봐요. 태국의 모겐족의 경우 9.0까지도 있거든요. 하루 종일 들판을 바라보면서 생활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먼 곳을 바라본다라…….”
스캔 결과를 기다리던 최 박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이서우에게 접근했다.
“혹시 서우 씨, 뉴 월드에서 먼 곳을 바라보지 않으시는지.”
“뉴 월드에서야 항상 먼 곳을 바라보죠. 대부분 그럴 걸요?”
“아닙니다. 제가 회장님의 손자분을 지켜보면서 뉴 월드도 분석을 했는데, 대부분 던전에서 많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먼 곳을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가요? 한데, 뉴 월드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과 무슨 상관이죠?”
“지금까지는 상관이 없죠. 하지만 뇌는 아직도 인간이 알아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입니다. 뉴 월드가 뇌를 자극하는 것이고, 시력도 시신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어서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과거 어나더 월드 시절에 뇌 관련된 실험을 했고, 뉴 월드가 오픈하기 전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가 되었을 텐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집중적으로 연구를 한 것은 고작 1년에 불과합니다. 안정성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장을 받았지만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봐야겠죠.”
“그런데도 게임을 오픈했다는 건가요?”
“안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뉴 월드가 안전하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되었다. 휴식도 취하지 않고 오랜 시간 접속을 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지만 16시간 연속 접속으로는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오감 테스트를 조금 더 자세히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저도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최대한 점심시간 전까지는 마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이서우는 뉴 월드가 현실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는데, 시력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좋아지자 다른 감각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이설아와 김소연도 돌아가는 상황이 예상과 다르자 호기심을 가지고 테스트를 지켜보았다.
2시간에 걸친 정밀 검사의 결과는 의외였다.
“이거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네요. 청각과 후각 모두 일반인보다 3배 이상 뛰어나고 시력은 매보다 좋습니다. 동체시력도 어떤 운동선수보다 좋네요. 펀치력은 700킬로그램이 약간 넘고, 킥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위력을 나타내더군요.”
“제가 훈련을 좀 열심히 해서 그런 거겠죠.”
“아닙니다. 이 정도라면 종합격투기 현역 선수급은 됩니다. 동체시력과 반사 신경이 워낙 뛰어나서 어쩌면 선수들 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지도 모르겠군요.”
“그 정도인가요?”
“네. 3D스캔 결과로 봐도 근육이 엄청 탄력적이고 유연해서 쉽게 지치지도 않으실 것 같네요.”
“박사님,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죠?”
설명을 듣고 있던 이설아가 염려의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최 박사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오히려 너무 건강해서 탈입니다.”
“다행이네요.”
“운동을 하시기 전에 테스트를 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왜 제 몸에 이런 변화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인가요?”
“네. 지금으로서는 짐작이 되지 않네요. 시력 같은 경우는 뉴 월드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지만, 왜 힘이 강해졌는지는 저도 정확히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뉴 월드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는 건가요?”
이서우는 운동의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최 박사의 말을 들으니 뉴 월드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이서우로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가만히 누워 있는데 신체 능력이 좋아질 수 있단 말인가.
“움직이지 않고도 운동을 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한창 연구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는데, 아직 안전에 대해 인증을 받지 못해 일반인들에게 적용할 수 없을 뿐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뉴 월드가 근육까지 발달시켰다고요? 쉽게 믿어지지는 않는 일이네요.”
“저도 뉴 월드가 근육에까지 변화를 줬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서우 씨가 하루 5시간씩 꾸준히 운동을 해 왔기에 이런 결과가 있을 거라는 게 더 신빙성이 높은 추측이지요. 하지만 두 경우 모두 과학적으로는 확률이 매우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최 박사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과 이서우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적절히 섞어서 해 주었다.
하지만 최 박사는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100일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근육을 발달시킬 수는 없어. 운동과 함께 뉴 월드를 하면서 뭔가가 그를 변화시켰을 거야. 그게 뭔지 찾으면 노벨상도 노려 볼 수 있어.’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고작 하루 5시간씩 한 달을 한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육체 변화가 생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뉴 월드로 인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이서우에 대한 기록을 모두 보았기 때문이다.
5년 동안 분명히 병원에서 식물인간으로 있었고, 지금은 정상인보다 훨씬 더 튼튼한 몸이 되었다.
이 모든 게 약 7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오랜 시간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깨어난 사람들 중에 이서우와 같은 경우는 단연코 없었다.
최 박사의 눈빛에 강한 열망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