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레벨이 갑이다
197화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갔어야 했는데.’
블랙드래곤과 리치 킹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아직 대륙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는 게 이서우의 생각이었다.
만약 그들이 당장 대륙을 침략할 것이었다면 귀찮은 과정 없이 바로 모습을 드러내 제국을 휩쓸었을 것이다.
그 둘이 아니라면 몰디나와 아리아의 힘을 막을 존재는 대륙에 없었다.
물론 하이 레벨 지역의 관리자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
이설아의 레벨이 370에 근접했지만 500레벨 이상의 존재에게는 몇 수 버티지 못한다.
몰디나와 아리아가 합세하면 어느 정도 균형은 유지 되겠지만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관리자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하이 레벨 지역은 아냐. 관리자들이 언데드를 부릴 이유도 없고, 개척자 도시를 지나와야만 하니 불가능해. 그렇다고 리치 킹도 아닐 텐데, 대체 어떤 놈이지? 리치 킹의 부하 중 셋을 곤란하게 만들 존재도 없을 텐데.’
이서우는 블랙드래곤과 리치 킹은 배제했다. 최근 중국과 인도가 오픈되었으니 글로벌사가 그들을 절대로 내보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데 누가 그걸 제 발로 걷어찬단 말인가. 노련하지 않은 CEO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남은 것은 리치 킹의 부하다.
언데드라고 했으니 가장 확률이 높은 추측이었다. 한데, 고작 리치 킹의 부하가 셋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모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이다.
이서우의 움직임은 갈수록 빨라져 이설아의 위치가 사라진 곳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백호야, 설아를 찾아봐. 난 이쪽을 맡을 테니, 넌 저쪽을 맡아.
-네, 주인님.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서우는 지체 없이 백호를 소환했다.
후각은 누구보다 예민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방향을 정하고 감각을 높여 꼼꼼하게 살폈다.
한데, 어느 방향에서도 이설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뭐지? 마지막 있던 곳이 이곳 맞는데. 채팅도 안 되고. 접속 종료를 하지는 않았는데 왜 안 보이는 거야?’
주변 일대를 다 뒤졌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아 난색을 표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을 하는데 백호가 다가왔다.
-주인님, 보이지 않아요. 아무래도 지상에는 없는 것 같아요.
-지하에 있을 거라는 뜻이야?
-지하일지, 공중일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땅에는 없다는 거예요.
혹시나 다른 존재가 있을 것을 염려해 의지로 의사소통을 하는 수고를 보이면서까지 조심스럽게 살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 주변에는 정말 흔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지하에 있는 건가. 그렇다면 입구가 있을 텐데.’
이서우는 백호에게 명령을 해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찾아보도록 했다.
같은 방법으로 방향을 나눠 몇 시간을 꼼꼼하게 살폈지만 입구라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이건 외부에서 오는 메시지인데.’
일반형과 고급형은 화재 경보가 울리거나, 위급한 상황에서만 자동적으로 접속이 끊기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최고급형 이상부터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서우는 맞춤형을 쓰고 있어 꽤 긴 내용까지도 받을 수 있었다.
이서우는 안전한 곳으로 가서 메시지 내용을 확인했다.
-오빠, 나 자살했어. 리치 킹이 지하 깊숙한 곳에 함정을 파 놓고 우리 모두를 가둬 버렸어.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이 빠져나오려면 오빠가 마나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된대. 그래야 정확한 위치를 알고 텔레포트를 할 수 있다고 하셨어. 내가 사라진 지점에서 마나를 끌어올리면 돼. 난 괜찮으니 상황이 마무리되면 종료해.
이서우는 메시지 내용을 다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깊숙한 곳에 있기에 마나도 안 느껴지는 거지?’
현재 이서우의 능력이라면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마나도 느낄 수가 있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것은 최소 1킬로미터 이상 깊은 지하에 갇혔다는 뜻이었다.
‘리치 킹은 아닐 줄 알았는데, 뒤통수 제대로 쳤군. 일단 두 사람부터 구하고 보자.’
이서우는 이설아가 사라진 곳으로 가서 온 힘을 다해 마나를 끌어올렸다.
‘뭐지? 왜 반응이 없어!’
마나를 모두 끌어올린 상태여서 오래 버틸 수가 없는데, 몰디나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서우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0분.
벌써 절반의 시간이 지났지만 몰디나와 아리아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마나가 느껴지지 않도록 지하에 결계를 쳐 둔 건가?’
가장 가능성 높은 추측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다. 여기서 포기하면 이설아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나를 더 끌어올려야 돼. 하지만 잠재력을 모두 폭발시켰는데, 어디서 마나를 끌어온단 말인가. 아!’
고민하던 이서우는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캐릭터 창을 열어 급히 잠재력 스탯을 건드렸다.
-잠재력 순수 스탯이 700에 도달했습니다.
-잠재력 전체 스탯이 1,400에 도달했습니다.
-공격력, 방어력, 생명력, 마나가 10퍼센트 추가로 상승합니다. 잠재력에 의한 능력치 상승이 총 70퍼센트에 도달했습니다.
-마나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이서우는 공격과 방어가 175퍼센트나 더 상승하게 되었다.
잠재력이 100 상승할 때마다 10퍼센트씩 올랐고, 순수 올스탯이 500이 넘으면서 100퍼센트가 상승했다.
그리고 백호 덕분에 상승한 5퍼센트까지 더해 엄청난 능력치 상승 효과를 누리게 되었다.
‘됐어! 이 정도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야.’
이서우는 늘어난 능력에 만족하며 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3분쯤 지났을 때였다.
팟!
막대한 마나가 주변에서 느껴지더니 기다리던 몰디나와 아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휴우, 십년감수했네. 뼈다귀 자식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이렇게 무사할 수 있는 게 어디야.”
“그건 그렇지만.”
그들이 나타나자 이서우는 마나를 거둬들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 경황이 없어서 감사 인사가 늦었네. 고마워. 너랑 네 색시 덕분에 살았어.”
“맞아. 이번에는 정말 신세 톡톡히 졌다. 이 은혜는 절대 안 잊을게. 정말 고마워.”
이서우가 다가가자 몰디나와 아리아가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고맙다는 말보다 색시라는 말이 더 신경이 쓰이는지 얼른 화제를 돌렸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리치 킹 녀석이 직접 나타나서 우리를 지하 깊숙한 곳에 가뒀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당할 수밖에 없었고.”
“리치 킹이 나타났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한데, 어떻게 그놈이 직접 나타난 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사실 나도 그놈이 이렇게 대담한 짓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하지만 덕분에 좋은 정보도 얻었지.”
“좋은 정보라면……?”
“리치 킹이 아직 힘을 다 찾지 못했다는 거. 우리를 그냥 가둬둘 정도라면 큰 위협이 안 될 거라는 걸 알게 되었지.”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이서우는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리치 킹이 조만간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여겼는데, 두 사람을 처치하지 않고 가둬 뒀다면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녀석이 대륙을 위협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냐. 빠르면 1년 반, 늦어도 2년 정도면 놈은 분명 우리를 능가할 거야. 그 전에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해.”
몰디나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마법사지만 현실을 외면하면 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경험한 리치 킹은 그 정도의 시간만 있어도 충분히 자신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
“정확히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던가요?”
“나보다 살짝 처지지만 이제 막 8서클에 오른 정도의 힘은 갖추고 있었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번에 날 처리하려 했겠지.”
“그 정도라면 확실히 긴장을 해야겠군요.”
“그래. 아직은 너와 비교하면 부족하겠지만 놈은 언데들의 왕이야. 엄청난 속도로 9서클까지 올라갈 거야.”
“아직은 제가 9서클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뜻이네요.”
“아쉽게도. 9서클은 나 같은 마법사 수십, 아니 백 명이 있다 해도 이길 수 없어.”
“그 정도인가요?”
“나 정도 되는 마법사가 한 사람에게 모두 마나를 나눠 주면 가능성은 있지만 누구도 그러려고 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군요.”
이서우는 몰디나의 염려를 읽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99명의 마나를 모두 받게 되어 승리를 한다 해도 문제다. 그 막대한 힘을 좋은데 쓰지 않으면 리치 킹보다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누가 선뜻 자신의 힘을 내놓으려고 할까.
물론 몰디나만큼 강한 마법사는 카이젠 제국과 엘사둔 제국에는 존재하지 않아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리치 킹은 그렇다지만 문제는 블랙드래곤이야.”
“블랙드래곤도 아직은 리치 킹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요?”
“그럴 확률은 높아. 펠렌에게 워낙 많이 당했으니 몇백 년 만에 회복하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지금은 그 나쁜 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야.”
몰디나는 자신들을 버리고 사라져 버린 펠렌을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만 거칠게 할 뿐 증오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드래곤은 2천살 이상만 되어도 10서클 마법을 쓸 수 있지 않나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블랙드래곤은 거의 소멸 직전까지 갔었기 때문에 10서클 마법을 쓰는 건 무리야.”
“인간의 일에 개입하게 되면 다른 드래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이서우는 백호에게 여러 정보를 들었는데, 그중에는 드래곤에 대한 것도 있었다.
드래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존재가 아니면 인간의 일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블랙드래곤은 욕심이 많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여서 과거 펠렌이 나서기 전에 드래곤 로드가 개입하려 했었다.
하지만 펠렌이 먼저 블랙드래곤을 처치하면서 일이 마무리 되었다.
“가만히 있지 않지. 그래서 블랙드래곤은 리치 킹보다는 조금 덜 위험해. 물론 놈이 마법을 써서 꽤 강력한 부하들을 만들어내면 이야기가 달라져. 9서클 마법사를 쉽게 만들어내거든.”
“그게 가능해요?”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일시적으로 9서클의 힘을 내는 놈을 만들어 내는 건 가능해.”
“인간들을 몰살시키고 자폭하면 답이 없겠네요.”
“맞아. 그런 점에서 블랙드래곤은 오히려 리치 킹보다 귀찮을 수가 있어.”
이서우가 느끼기에는 둘 다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 밤에는 리치 킹이 여러 지역에서 언데드를 만들어 내고, 낮에는 블랙드래곤이 강력한 부하들을 풀어놓으면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놈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 같으세요?”
“리치 킹은 언데드의 힘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분명 밤을 노릴 거야.”
“그건 나도 몰디나의 의견에 동의해. 리치 킹이 한적한 마을들을 오염시켜 언데드화시키겠지. 블랙드래곤은 강력한 몬스터들을 만들어 낼 거고.”
“맞아. 언데드가 그리 강력하지는 않지만 대규모 도시가 아니라면 피해가 클 거야. 블랙드래곤은 마법사뿐 아니라 강력한 육체 계열도 만들 수 있으니 소모품으로 막 만들어 낼 거고.”
“그런 식으로 힘을 낭비할까요?”
“8서클이나 9서클의 힘을 지닌 존재는 많이 만들지 못할 거야. 아마도 자신을 대신해 행동할 녀석으로 두세 명 정도 만들겠지. 그놈들은 또 7서클 이상의 힘을 지닌 녀석들을 만들어 곳곳에 풀 테고.”
“그렇게 만들어진 놈들이 두 분이 말씀하신 일을 벌이고, 우두머리들은 힘을 비축한다?”
“그렇지.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아.”
이서우가 생각해도 그 방법이 가장 그들에게는 효율적이었다.
1년 반에서 2년만 잘 버티면 되니 여러 지역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럴 게 아니라 일단 황궁으로 가자.”
“알았어. 너도 이리 와.”
“네.”
이서우가 다가가자 몰디나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함정에 빠진 것이지 힘은 남아 있어 마법을 사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황제가 안전한 것을 확인한 이서우는 접속을 종료했다.
* * *
“젠장! 감히 내 일을 방해하다니!”
“주인님, 그냥 황궁을 밀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직은 아니다. 아무 피해도 없이 너무 빨리 함정을 벗어났어. 조금만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리치 킹은 몰디나와 아리아를 가둬 두고 황궁을 직접 노려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렇게 해서 엘사둔과 전쟁을 일으키면 사망자가 많이 늘어나고, 그럴수록 그의 힘도 빨리 회복될 것이었다.
한데, 이서우라는 존재로 인해 그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단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라.”
“네, 주인님!”
뼈다귀밖에 없지만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고는 밖으로 나갔다.
“네놈들이 내 발 아래 무릎을 꿇는 건 변하지 않아. 그저 시간이 조금 늦어졌을 뿐이야.”
리치 킹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화려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더니 탁탁탁 소리를 내며 턱이 부서질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