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레벨이 갑이다
172화
“실컷 다 써먹고 이제 와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이유가 뭐요, 반다이젠 후작?”
“말이 지나치오! 분명 무슨 일이 있어도 실패하지 않겠다고 말한 건 당신이오. 한데 실패를 해도 대실패를 하고 말았소이다.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오?”
반다이젠 후작은 어느 허름한 집에서 한 사내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하도 목소리를 높였더니 목이 타는지 반다이젠 후작은 탁자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같이 언성을 높이던 사내는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며 후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한데, 어떤 놈이 내 작품을 그렇게 박살을 낸 것이오?”
“모험가요.”
“모험가라고 하셨소?”
“그렇소.”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는 자의 건방진 말투를 반다이젠 후작은 계속 참아 주고 있었다.
반다이젠 후작은 야망이 큰 야심가다.
우연히 인연이 닿아 고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었다.
말투도 건방지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사내였지만 야망을 이루기 위해 참았다.
하지만 골렘이 실패하자 그의 입지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그나마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은 타이탄도 4기가 남았고, 카이젠 황궁이 쑥대밭이 되었다는 것 정도였다.
황제는 반다이젠 후작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그는 즉시 고대 힘을 깨우는 자를 다시 찾았다.
도움을 받을 때 받더라도 따질 것은 따지자 싶어서 큰소리를 친 것이었는데, 사내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바람에 언성이 절로 높아졌다.
하지만 그와 대립각을 세워 봐야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반다이젠 후작은 조용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타이탄이 필요하오.”
“타이탄을 운전할 사람은 있는 것이오?”
“아직 다섯이 있기는 하오.”
“최소 소드 마스터 중급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오.”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오.”
“좋소이다. 내 작품에 흠집을 낸 녀석이 있다고 하니 내 타이탄 5기를 만들어 주리다. 한 달 뒤에 다시 오시오.”
“좋소. 타이탄만 확보해 준다면 우리의 관계는 다시 좋아질 것이오.”
“지난번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난 최상의 골렘을 제공했소. 그걸 활용하지 못한 건 그대요.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난 당신에게 더 이상 골렘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오!”
“타이탄 5기만 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염려 마시오.”
“좋소이다. 그럼 약속한 날짜에 오시오.”
“좋소!”
반다이젠 후작은 확답을 받아 내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욕심 많은 너구리 같으니. 그것만 완성되면 네놈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홀로 남겨진 방 안, 사내의 눈빛은 무섭게 이글거렸다.
* * *
한 달이 지나고 반다이젠 후작은 약속한 대로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타이탄 5기를 가져갔다.
사내는 그 돈으로 이것저것 주문을 하고, 물건을 사와서 창고에 넣어 두기도 하고, 분주히 움직였다.
겉으로 보면 허름한 곳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곳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지하 은밀한 공간에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사내는 지하 공간에서 미친 듯이 작업에 매진했다.
거대한 작업 대 위에 결과물이 천천히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작업대에는 오색찬란한 5미터짜리 골렘이 자리하고 있었다.
“드디어 완성됐다! 이것만 있으면 제국 따위는 아무것도 아냐. 기다려라 내가 이 땅을 접수하고, 다음으로는 카이젠, 그리고 하이 레벨 지역까지 흡수해 주마. 하하하하하!”
사내의 목소리가 떠나가라 창고 안에 울렸다.
* * *
“생각보다 허름하네. 그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반다이젠 후작이 몇 번 들락날락거린 곳이라 이 말이지?”
이서우는 허름한 창고와 같은 건물이 몇 개가 늘어선 사유지 앞에 도착했다.
워낙 허름한 곳이어서 주변에는 사람들도 잘 다니지 않았다.
정보 길드 마스터는 이서우에게 골렘을 제작한 사람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알려 줄 위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그런 정보 길드장이 아니었다.
타이탄을 이끌었던 반다이젠 후작과 연결시켜 이 근처까지 위치를 좁혔다.
나머지는 이서우의 몫이어서 열심히 돌아다니니 의심스러운 곳이 나왔다.
이서우가 길드 마스터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작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곳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는 점 때문이었다.
보통 귀족도 이런 곳에 오지 않는데 대귀족이 왔던 곳이라고 하니 충분히 의심이 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이서우를 맞아 주었다.
한데, 바깥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르게 아주 깔끔했다.
‘허름한 건 위장이었군. 한데, 사람은 없는 건가?’
건물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서우는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응?’
벽을 두드리던 이서우는 뒤쪽에 공간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
이서우는 벽돌을 이리저리 만졌고, 그중 하나를 누르자 뒤쪽 공간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자 벽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지하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쭉 내려가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서우는 보았다.
“저건…….”
이서우는 조심스럽게 커다란 작업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위에 놓여 있는 것은 이서우도 잘 아는 것이었다.
“한데, 왜 색깔이 이 모양이지? 분명 다른 것들은 단색이었는데.”
이서우는 형형색색으로 어우러진 골렘을 바라보며 호기심이 동했다.
“설마, 타이탄보다 더 상위 버전은 아니겠지?”
“누구냐!”
이서우가 한창 골렘을 감상하고 있는데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몸을 돌리자 시커멓게 생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골렘 제작자인가?”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것이냐? 거기서 당장 물러나라!”
“싫은데.”
“이, 이놈!”
사내는 화가 나는지 분기탱천한 얼굴로 이서우를 노려보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그 주인공은 눈앞의 사내일 것이다.
“타이탄을 만든 게 너겠지. 제국으로 몇 기를 더 보냈지?”
“네놈 따위에게 그걸 말해 줄성 싶으냐!”
“말 안 해 줄 수 없을걸?”
“어림없다, 이놈! 어서 썩 비키지 못할까!”
사내는 잠깐 자리를 비운 것을 후회했다. 슈퍼 타이탄만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밟아 죽일 수 있는 상대인데,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
“일단은 대화할 분위기부터 만들어야겠네.”
이서우는 사내가 순순히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같자, 그를 제압하기로 했다.
이서우의 모습이 사라지자 사내는 이때다 싶어 얼른 슈퍼 타이탄에게로 갔다.
하지만 겨우 한 발밖에 떼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큭. 이놈이…….”
“네가 타이탄 제작자인가?”
“그, 그렇다. 타이탄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저건 무슨 타이탄이지? 내가 본 것과는 분명 다른데.”
“설마 네놈이 내 골렘과 타이탄을 처치했다는 그 녀석이냐?”
“맞아.”
골렘과 타이탄을 전부 본 사람은 적이거나 아군 중에서도 고위급 귀족에 속하는 몇몇이다.
이서우가 좋은 의도로 오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뻔한 것이니 사내는 그가 반다이젠 후작이 말한 바로 그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알게 되자 크게 좌절했다.
“다시 묻지. 몇 기를 제국에 보냈지?”
“다, 다섯 기다.”
“전부 타이탄인가?”
“그렇다.”
“타이탄 제조법은?”
“모, 모른다.”
“저렇게 버젓이 타이탄이 완성되어 있는데 제조법을 모른다고? 지금 날 바보로 아는 건가?”
“그건…….”
사내는 할 말을 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궁색한 변명 같았다.
“네가 생각해도 참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
“…….”
“타이탄 제조법은?”
“말해 줄 수 없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잘 가라.”
“제길, 화장실을 만들어 두는 건데.”
퍽!
사내는 억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는 생을 마감했다.
타이탄 곁에만 있었어도 한바탕 멋진 싸움을 했을 텐데, 하필이면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갈 게 뭔지.
지하 작업장을 만들 때 더럽다고 화장실을 만들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이서우는 작업실 내부를 샅샅이 뒤져 자료들을 일일이 훑어보았다.
“골렘을 타는 방법도 있군. 한번 타 볼까?”
호기심에 이서우는 골렘에 탑승을 해 볼까 하다가 맨 아래에 적혀 있는 주의 사항을 보고는 생각을 접었다.
“헐. 미친. 슈퍼 타이탄은 마나가 엄청 빨리네. 죽을 때까지도 계속 빨린다니 이건 그냥 둬야겠네.”
이서우는 마나가 빨린다는 말에 골렘을 타고 싶다는 마음이 싹 가셨다.
지금 상태로도 최고라고 자부하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이탄을 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살핀 자료는 인벤토리에 모두 넣었다.
-골렘 제작을 익힐 수 있습니다. 단, 골렘을 처음 만든 존재의 힘이 없이는 제대로 된 골렘을 제작할 수 없습니다. 치명적인 단점을 담은 골렘이 제작될 수 있으니 신중을 기해주십시오.
‘골렘 제작이라.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녀석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지. 그래도 무슨 내용인지는 확인해 볼까.’
작은 정보라도 유용한 공간이 바로 뉴 월드여서 이서우는 골렘 제작에 대한 설명을 확인했다.
“헉!”
설명을 읽어 내려가던 이서우는 골렘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해서 만든 사람의 이름을 보며 얼어 버리고 말았다.
기존에는 몇 번만 타도 탑승자가 죽어 버려 완전히 폐기가 된 것인데, 서서히 기가 빨리도록 개선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미친, 대체 펠렌은 손을 안 댄 게 뭐야!”
이서우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을 발견하자 어안이 벙벙했다.
왜 골렘 제작에 펠렌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오래전 인물이라는 건 알지만 설마 수백 년 전 사람이었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기행을 저지른 거지? 이렇게 되면 골렘 제작을 배워도 상관없기는 하네.”
이서우는 배워 둬서 나쁠 게 없다고 판단하고 골렘 제작을 습득했다.
-골렘 제작을 배우셨습니다. 제작 메뉴에서 해당 제작과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골렘 성능 개선자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성능을 가진 골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서우는 제작 매뉴에서 골렘 제작을 살폈다.
지금 만들 수 있는 것은 스톤 골렘이 전부였지만 더 완성도 높은 골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기가 빨리니 당분간은 활용하기 힘들어. 특히 슈퍼 타이탄은 몇 번만 사용해도 완전히 폐인이 되니 단점을 더 보완해야 해. 만약 탑승자의 생명만 확실히 보존이 된다면 기가 좀 빨려도 충분히 이용 가치가 높아.’
타이탄과 전투 경험이 있는 이서우는 슈퍼 타이탄이 얼마나 큰 돈이 될지 기대가 컸다.
이서우는 빙글 미소를 짓고는 오색의 슈퍼 타이탄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거 일이 너무 쉽게 해결 돼서 어색하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작업실 내부를 스윽 훑어보며 뭔가 빠진 게 없나 다시 한 번 확인한 이서우는 불을 지른 후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려면 다 태워버리는 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타이탄이 5기가 더 들어갔다면 조만간 움직임을 보일 텐데. 지난번처럼 황궁으로 바로 쳐들어오지는 못할 테고. 어디를 노리려는 걸까?’
이서우는 5기의 타이탄으로 엘사둔이 뭘 할지 궁금했다. 그것만 미리 알 수 있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불이 주변으로 번지자 사람들은 난리가 났지만 이서우는 유유히 도시를 빠져나와 저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