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레벨이 갑이다
136화
이틀을 푹 쉰 이서우는 가장 먼저 부모님이 하고 계시는 접속 방을 찾았다.
이서우는 박 대표가 제공한 드론 자동차를 이용했다.
드론 자동차는 정부기관이나 응급차, 경찰차에 주로 활용하고 있었다.
민간에는 대기업의 CEO나 유명인들 중에서 일부 사용하기도 했는데, 승인 조건이 까다로워 많은 사람이 쓰지는 못했다.
승인을 받더라도 세금이 워낙 높아 연간 총 유지 비용이 수억 원에 달했다.
특정 인물에게만 승인을 해준다는 비난을 받을 법도 하지만, 거둬들인 세금은 결국 국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니 드론 자동차를 개인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리 큰 반발은 없었다.
또한 국민들도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드론 택시가 운행중에 있었다.
비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누구나 한 달에 이용할 수 있는 거리가 있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했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 게 바로 높은 세금 때문이었다.
물론 사용 가능 거리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불만은 없었다.
급할 때 유용하게 써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좋은 제도라며 확대해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부자들은 세금이 너무 높으니 불만이 있지만,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겉으로 그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소득세나 법인세가 오히려 줄었는데, 사치세 명목으로 늘어난 세금까지 불만을 드러낸다면 여론의 질타를 받기 때문이다.
어쨌든 드론 자동차는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으로 빠르고, 최근에는 특수 제작된 안전 차량들이 생기고 있어 이용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서우에게 제공된 것도 거의 모든 안전장치들이 다 달려 있는 특수 차량이었다.
지상을 달리는 자동차보다 신경 쓸 것이 많아 가격이 엄청났다.
하지만 이서우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해 박 대표는 최고급의 드론 자동차를 그에게 주었다.
하늘을 날아 유유히 빌딩으로 향했다.
모든 건물에는 드론 자동차가 내릴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불편한 점은 없었다.
5층에 마련된 부모님 전용 휴식 공간으로 가니 비어 있었다.
이서우는 이설아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5층에 있는 직원을 찾았다.
“사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어, 작은 사장님. 볼일이 있다고 같이 나가셨어요. 들어오실 때가 됐는데…….”
직원의 말에 엘리베이터로 가는데, 문이 열리며 한정옥이 나타났다.
“서우야, 몸은 괜찮은 거냐?”
“네, 이제 다 나았어요. 근데 아버지는요?”
“집에 잠깐 가셨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네. 회사에서 드론 자동차를 제공해 줘서 금세 왔어요.”
“직장에서 그런 것도 지원해 주나 보구나.”
“네.”
이서우는 일부러 부모님에게 병원으로 오지 말라고 했다. 멀쩡한데 괜히 귀찮게 하는 게 미안해서다.
한데, 한정옥 여사의 손에 박스가 들려 있었다.
“어머니, 그건 뭐예요?”
“네 아빠가 몸이 허한 게 아니냐면서 보약이라도 한 첩 짓자고 하셨다. 아주 유명한 곳에서 지은 것이니 잘 챙겨 먹도록 해라.”
“이런 건 두 분이 드셔야죠.”
“우리 것도 다 준비해 뒀다.”
“하지만…….”
“몸은 젊을 때 챙겨야 한다. 한데, 그 아이는 안 보이는구나?”
“휴게실에 있어요.”
“그래? 왔으니 얼굴은 보고 가야지.”
“네. 그럼 같이 들어가요.”
한정옥 여사는 밝은 얼굴로 휴게실로 향했다.
젊은 사람이 얼굴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 잔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이설아가 인기인이어서 모습을 드러내기 힘들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했다.
이번 가게를 오픈하면서 이설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머님, 죄송해요. 오빠와 같이 찾아뵀어야 하는데…….”
“아니다. 네 처지를 잘 아는데 신경 쓸 것 없다. 우리 서우 병간호한다고 고생이 많았지?”
“아니에요. 같이 있으면서 수다 떤 게 다였는걸요.”
“말 상대해 주는 게 얼마나 힘든데. 고생 많았다.”
겨우 사흘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한정옥 여사는 이설아가 고마웠다.
가족이라도 24시간 붙어서 지내는 게 힘든데, 아들과 함께 있어 줬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있을까.
“참, 네 것도 같이 준비했으니 서우와 함께 먹도록 해라.”
“네?”
“보약이다.”
“어머님…….”
이설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과거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을 때, 그녀의 부모님은 모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엎친 데 덮친 격이어서 그녀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이준민이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지지는 못했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그녀는 항상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부모님의 유산은 두 자녀에게 골고루 분배가 되어 그것으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세상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어서 많이 힘들어했다.
다행히 그녀는 운이 좋아 1인 방송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었지만, 외로움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힘들었다.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너무 밝아서 화목한 가정에 자라고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그녀에 대해 알게 되는 사람들은 놀라곤 한다.
그러던 차에 이서우와 연인이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부모님이니 잘 보이고 싶어 애교도 부려 보곤 했는데,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도 되었다. 한데, 의외로 이서우의 부모님은 그녀를 좋아했다.
편하게 대해 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보약까지 지어 주시다니.
이설아는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빠와 같이 잘 먹겠습니다.”
“그래. 네가 우리 서우를 좀 챙겨라. 저 녀석은 이런 거 안 좋아해서 냉장고에 처박아 두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제가 꼭 챙길게요!”
“그래.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나.”
한정옥 여사는 야무지게 대답하는 이설아를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호흡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을 보니 이서우도 기분이 좋았다.
“여튼 저 괜찮으니 걱정 마시라고 얼굴 비추는 거예요.”
“그래도 항상 조심하고.”
“네. 경호원도 두 배로 늘렸으니 염려 마세요.”
“그래. 알았다. 그럼 바쁠 테니 그만 가 보거라.”
“네. 아버지께 잠시 들렀다 갈게요.”
“손님들도 있으니 번거롭게 내려가지 말고 기다리거라.”
“네.”
한정옥 여사는 이설아를 생각해 직접 내려갔고,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직도 전신이 랭킹 1위야?”
“응. 경험치를 사면서 250레벨을 넘겼어.”
“진짜 광렙하네. 이번 주부터 16시간 연속 접속 가능하지?”
“응. 금요일부터야. 사람들 반응 때문에 주말에 맞춘 것 같아.”
“이틀 남았네.”
“응. 그때부터 접속하려고?”
“아니. 접속은 오늘부터 해야지. 오늘내일 괜찮은 영상 있으면 금요일에 방송 다시 하고.”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원래 내가 약속 어기는 걸 별로 안 좋아하잖아.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얼마나 섭섭하겠어.”
“좋은 영상이 나오면 생각해 볼게.”
이설아는 결국 이서우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걸 알았으니 그녀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참, 무술 사범 문제는 어떻게 됐어?”
“정말 내일부터 하게?”
“응. 뭘 하든 체력은 기본이니까.”
“무에타이는 너무 과한 거 아냐?”
“예전부터 배워 보고 싶었던 거야.”
“오전 8시부터 시작한다고 했어.”
“2시간 정도 훈련하고 접속하면 딱이겠네.”
이서우가 배워 보고 싶었다고 하니 이설아도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어차피 선수가 될 것도 아니어서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최고의 스승을 구해 두었다. 전 종합격투기 세계 챔피언으로 말이다.
한창 대화에 열중하는데 이서우의 아버지가 왔다.
인사를 하고 한참 대화를 나눈 뒤 그들은 K사로 돌아갔다.
“바로 접속하려고?”
“금강산도 식후경이잖아. 배부터 좀 채우고 하자.”
“그럼 준비할게. 잠시 쉬고 있어.”
“고마워.”
이설아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이서우는 식당에 앉아 기사들을 훑어보았다.
이설아에게 정보를 전달받기만 했지 병원에서 일절 인터넷을 할 수 없어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10퍼센트 기준, 게임 시간으로 10시간에 10만 원이면 쏠쏠하네.’
현실 시간으로 5시간이면 30만 원이다. 시급 6만 원이면 최저 시급보다 4배나 많은 돈이었다.
최소 2차 전직은 해야 경험치를 팔 수 있어서 모두가 다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 10시간씩 한 달에 25일만 해도 1,5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물론 연속해서 10시간 내내 사냥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던전까지 돌아야 해서 실제로 경험치를 파는 시간은 평균 5시간 정도였다.
그래도 한 달이면 700만 원 이상의 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경험치를 팔려고 했다.
돈이 넉넉한 사람들은 골드를 막 풀었고, 경험치를 판 사람들은 그 돈을 모아서 아이템을 샀다.
자연스럽게 아이템의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제대로만 굴러가면 오히려 돈 없이 시작하는 유저들에게는 정말 좋은 건데, 꼭 그걸 악용하려는 놈들이 있어서 문제란 말이야.’
역시 안 좋은 기사들이 보였다.
이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았다.
‘허, 전신, 이 사람 잔머리는 끝내주네.’
이서우는 어떤 사람이 남긴 글을 보고 있었는데, 전신이 어떻게 경험치를 올리는지에 대해 나와 있었다.
랭킹 1위인 전신은 비슷한 레벨이 없어 경험치를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자 전신은 꾀를 냈다. 온전히 경험치를 주는 최대 레벨 차이가 나는 유저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레벨 차이가 심하면 밀어주기 등을 방지하기 위해 획득 경험치가 점점 줄어든다.
고레벨일수록 경험치 가격은 비싸져서 온전한 경험치를 주는 최대 레벨 차의 유저와 풀 파티를 하면 가격이 저렴하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냥 세워만 두고, 모든 경험치를 팔 사람을 찾으면 풀파티 보너스 2배 경험치까지 모두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돈이었다. 10시간에 100만 원이니, 너도나도 전신과 함께하려고 난리였다.
하루 접속 가능한 시간 동안 풀로 세워 두면 무려 700만 원이다. 한 달 내내 세워만 둬도 2억 이상을 버는데 누가 그 일을 마다할까.
‘4명이면 1년에 96억이네. 따로 아이템 지른다고 돈 엄청 쓰는 것 같던데, 돈이 얼마나 많은 거지?’
이서우는 전신의 기행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신이 왜 그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나와 승부를 보려는 것 같네. 4차 전직 전에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겠는 걸.’
4차 전직이 되면 늘어나는 능력치도 문제지만 훨씬 뛰어난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는 점도 염려가 되었다.
펠렌의 장비는 전직을 거칠 때마다 큰 폭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레벨 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2차 전직에서 3차 전직을 하면서 늘어난 능력치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빠, 오빠!”
“어?”
“밥 다 됐어. 얼른 와.”
“어, 그래.”
전신에 대해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설아가 큰소리로 부르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식탁 앞에 앉아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수저를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었어?”
“아, 전신에 대한 내용을 좀 봤어.”
“돈질 엄청 하고 있는 거?”
“어. 한 달에 수십억씩 쓰더라. 대체 그 인간 뭐하는 인간인지 몰라.”
“그의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밝히지 않겠다고 해서 자세히 말은 못하지만 재산이 조 단위라는 건 말해 줄 수 있어.”
“헐. 어쩐지 돈을 팍팍 쓰더라니.”
이설아가 준 정보를 토대로 추려 내면 전신이 누군지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이서우는 굳이 그런 곳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누구든 자신에게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5배나 경험치가 많은 곳에서 파티원들의 경험치를 몽땅 먹으니 이전보다 오히려 레벨 업 속도가 빠를 거야. 일반 지역에서 할 때는 경험치가 적어서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는데, 하이 레벨 지역 특수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거지.”
“그래 보이네. 1년에 백억씩 돈을 물 쓰는 쓸 수 있으니 가능한 거겠지.”
“그런 거 보면 오빤 역시 대단해. 돈 한푼 안들이고, 아니, 오히려 돈을 쓸어담으면서도 전신보다 빨리 업을 하고 있잖아. 아마 이런 사실을 전신이 알면 곡소리 낼걸.”
“재산이 그만큼 많은데 무슨.”
“아냐. 부자들이라도 자기 돈은 엄청 아껴. 1만 원짜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하니까.”
“부자들이 더 짠돌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재산이 조 단위나 되는데?”
“다 자기를 위해서 쓰는 거니 주머니를 여는 것뿐이야. 그만큼 더 큰 이득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로 돈 안 쓸 인간이고.”
이설아는 전신의 정체에 대해 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30분 동안 편안한 식사를 한 뒤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또 다시 대화를 이어 갔다.
그리고 드디어 이서우는 접속 베드에 누웠다. 이제는 연인이 되었기에 같이 눕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워서 손까지 잡는 여유를 보였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이설아는 더욱더 이서우를 마음에 두게 되었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감정이 폭발한다.
자신을 지키려고 한 사람에게는 없던 감정도 생겨서 사랑에 빠지곤 했다.
한데, 이미 사귀기로 한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이설아는 더욱 이서우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뉴 월드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