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레벨이 갑이다
124화
-누나, 위쪽은 좀 어때?
-장난 아닌데. 이거 우리끼리 가능한 거 맞아?
-가능하게 해야지.
-오빠,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는 진짜 무리인 것 같은데.
-방법을 찾아보자.
이서우는 생각보다 큰 마을 규모에 놀랐다.
두 번째로 처치한 종속자인 키난의 마을보다 최소 1.5배는 큰 규모였다.
‘그냥 대놓고 대결을 신청해야 하나?’
정공법으로 갈까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종속자가 이서우를 무시하고 있다지만, 어떤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릴지도 모르는데 1대1 대결을 수락할 리가 없었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이서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누나, 반경 30킬로미터까지 감시 범위를 확장해 줘.
-그렇게 넓게?
-대규모 공사를 하는 곳을 찾으면 돼.
-알았어.
김소연은 새들을 풀어 사방으로 보냈다.
다섯이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변의 정보들이 빠르게 김소연에게 들어왔다.
마나가 워낙 많이 소모되는 일이어서 평소였다면 할 수 없었겠지만, 이서우에게 마나 물약과 비약을 구입하면서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
이서우는 같은 동료인데도 절대 공짜로 주지 않았다.
그게 서운할 법도 한데, 오히려 두 여자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서우야, 찾았어!
-오케이. 위치는?
-북서쪽이야.
-그리로 가자.
10분쯤 지나자 김소연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서우는 안내를 부탁했고, 김소연은 탈것을 소환해 이설아를 뒤에 태웠다.
“전속력으로 달려.”
“알았어!”
김소연은 소환수를 재촉했다.
그녀는 바람이 주는 저항이 커지자 투명한 막으로 몸을 감쌌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는데, 금세 편안해졌다.
김소연은 이서우가 잘 따라오고 있나 뒤를 돌아보았다.
“옆이야, 옆.”
“헐, 달리면서 말도 할 수 있어? 여유롭네.”
“지금보다 2배 이상은 빨리 달릴 수 있는걸.”
“대단하네. 역시 전장의 지배자야.”
김소연은 3차 전직을 하고 큰 힘을 얻게 되자 무서울 게 없었다. 전신이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전장의 지배자와는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데, 직접 경험을 하니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3차 전직 유저 한 파티가 덤벼도 결코 이서우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10분쯤 달렸을까.
산길이었는데도 빠르게 이동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빠, 지난번하고 똑같아.”
“그래. 이것들은 자기를 드러내는 걸 좋아해서 이런 공사를 하고 있을 줄 알았어.”
“이거 완전 피라미드가 따로 없네.”
“지난번에는 작업 초반이어서 뭘 만드는지 몰랐는데, 진짜 딱 피라미드네.”
이서우는 거대한 피라미드 셋이 완성된 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양쪽 2개는 높이가 200미터는 넘겠어. 가운데 있는 건 300미터 정도 될 것 같고. 완전 미친놈들이네. 저걸 만들자고 저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다니.”
“그나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힘이 장사여서 그렇지 80킬로그램도 겨우 드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수만 명은 투입되어야 했을걸.”
작업 인원은 처음 이서우가 피욘을 만날 때보다는 약간 많았다.
하지만 1만 명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근데, 여기는 몬스터 반, 사람 반이네.”
“다른 곳은 사람만 있었어?”
“아니, 반대.”
“몬스터만 있었다고?”
“어. 사람들을 막 부리고 있어서 처음에는 꽤 놀랐지. 근데 여긴 치킨집도 아닌데 반반이네.”
“오빠, 요즘 아재개그가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그건 아니잖아.”
“뭐, 어쨌든. 난 저놈들을 들쑤셔 놓을 테니까 누나는 범위를 더 넓혀서 찾아봐. 분명 이런 작업장이 더 있을 거야.”
“너무 멀리까지는 힘들어.”
“한계가 어느 정돈데?”
“50킬로미터 정도 될 거야.”
“알았어. 그럼 그 범위까지만 확인해 줘.”
“응.”
이서우는 일행과 의견 조율을 하고 피라미드로 달려갔다.
노예들에게 채찍질을 하며 작업을 종용하던 몬스터와 인간은 이서우가 달려오는 것을 보며 바짝 긴장했다.
자기들은 수천 명이나 되는데 고작 1명을 보며 긴장한다는 게 말이 안 되겠지만, 이서우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적이다! 다들 놈을 잡아라!”
대장으로 보이는 인간 사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돌연변이 하이 레벨 오우거들이 일제히 방망이를 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서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서우는 종횡무진하며 오우거와 인간을 베어 나갔다.
사지가 잘리고 목이 떨어져 나간 시체들이 바닥에 계속 쌓여 갔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이설아는 이서우의 활약에 혀를 내둘렀다.
강한 것은 알았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서우 진짜 대단하네.”
“제대로 힘을 안 쓰는데도 저 정도니 대단하긴 하지.”
“저게 힘을 제대로 안 쓴 거라고?”
“응.”
“저 정도면 전신을 압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근데 전신이 얼마나 좋은 아이템으로 도배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이크, 소환수 거리가 멀어져서 난 이제 그만 집중해야겠다.”
“응.”
김소연은 소환수와의 거리가 멀어지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눈을 감았다.
소환수와 교감을 하며 지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정밀한 명령은 많은 집중력과 마나를 소모해야 해서 대화를 더 이상 이어 가는 것은 무리였다.
김소연이 반경 50킬로미터까지 샅샅이 뒤지고도 더 범위를 넓혔다.
주변을 살피는 동안 이서우가 열심히 사냥한 덕분에 3레벨이나 올라 마나에 여유가 생겼다.
어느덧 2시간이나 지났는데도 그녀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때였다.
‘찾았다!’
레벨이 증가하면서 마나를 바닥까지 사용하니 예상치보다 훨씬 더 먼 범위까지 탐색이 가능했다.
그렇게 반경 70킬로미터쯤 갔을 때 드디어 한 곳을 더 찾을 수 있었다.
눈을 떴을 때, 이서우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정리를 하고 있었다.
“언니, 찾았어?”
“응. 네가 옆에서 든든히 지켜 준 덕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어. 70킬로미터 지점에 한 군데 더 발견했어.”
“잘됐네. 오빠도 마무리된 것 같아.”
“레벨 오르는 소식을 듣고 알았어. 진짜 레벨 업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언니가 위치를 잘 지적해 줘서 편하잖아. 둘이서 돌아다녔으면 아마 여기 찾는 데도 며칠은 걸렸을걸.”
“그것도 그러네. 이럴 때는 소환사를 잘 선택한 것 같다니까.”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났을 때쯤 이서우가 돌아왔다.
“피라미드까지 조금 손을 보고 온다고 늦었어. 그나저나 누나, 찾았어?”
“응. 70킬로미터 지점에 하나 더 있어. 지금 바로 갈 거야?”
“바로 움직여야지. 종속자 녀석을 아주 엿 먹이려면 순식간에 처리해야 돼.”
“알았어. 그럼 바로 출발할게.”
김소연이 탈것을 소환하자 이설아는 익숙하게 뒤에 올라탔다.
그녀가 비록 아무것도 하는 것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김소연을 지켜야 했고, 혹시라도 주변에서 다른 적들이 오는지 살펴야 했다.
이서우가 아무리 편하게 전투를 펼치고 있어도 넓은 범위까지 신경을 쓰면서 사냥하는 것은 무리였다.
70킬로미터는 상당한 거리였지만 산길이었는데도 1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와, 여긴 더 장난이 아닌데.”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질수록 영향력이 줄어드니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더 크게 할 수밖에 없겠지.”
“안 되겠다. 오늘 아예 뿌리를 뽑아 버려야겠어. 누나는 계속해서 찾아 줘.”
“응.”
김소연도 사람들을 노예로 부려 먹는 것이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아 최선을 다해 찾았다.
그렇게 셋은 무려 48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접속 종료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서우가 원하는 대로 종속자는 크게 분노했다.
피라미드까지 아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전투노예들을 대거 투입해 진상 조사에 나섰다.
파괴된 피라미드 숫자에 맞게 5개의 조사단이 구성되었다.
전투노예들이 이끄는 조사단은 각각 500명 정도였는데, 이서우가 모조리 처치해 버렸다.
김소연이 공중에서 지원을 해 주니 조사단을 찾는 게 쉬워 처리도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이서우는 종속자가 다스리는 도시의 입구에서 종속자가 직접 나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나올까?”
“자존심이 센 놈이니 안 나오고는 못 배길걸.”
“나오면 바로 치려고?”
“소규모로 나오면 바로 치고, 그게 아니면 놈을 열 받게 해야지.”
“열 받게?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
“서우는 이런 쪽으로는 확실히 머리가 잘 돌아가네. 내가 서우를 적으로 만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만약 내가 종속자의 입장이었으면 지금 상황만으로도 복장이 터져서 죽었을지도 몰라. 거기다 더 열 받게 한다니.”
“나도 언니 말에 동감! 진짜 얄미울 정도로 열 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니까. 물론 적의 입장에서 말이지만.”
“쉿, 혹시 모르니 이제부터는 파티 챗을 이용해.”
이서우는 일행에게 주의를 주고는 시선을 종속자의 도시 쪽으로 고정시켰다.
* * *
쾅!
“그러니까 지금 내 구역에서 어떤 미친놈이 설친다는 것이냐?”
“그, 그렇습니다, 주인님.”
“그런데도 네놈들은 아직도 그놈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것이고?”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이게 지금 죄송하다는 말로 넘어갈 일이더냐!”
“주, 죽여 주시옵소서.”
“그래, 죽어야지.”
쌔에에엑!
푹!
“큭. 주, 주인님.”
한 뼘 정도 되는 단검이 날아와 가슴에 박히자 사내는 그대로 즉사했다.
“내가 직접 나서겠다.”
“주인님, 안 됩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놈이 바라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전투노예 하나가 죽는 것을 보았지만 자신의 주인을 직접 나서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죽음을 무릅쓰고 나섰다.
“네놈은 지금 내가 그놈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그놈이 주인님을 함정에 빠트리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어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정 따위에 내가 당할 거라 생각한다는 말이더냐?”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네놈도 쓸모가 없구나.”
쌔에에엑!
푹!
“큭.”
전투노예 하나가 또다시 죽었다.
이제 남은 전투노예는 셋.
그들은 공포에 젖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전투노예들을 다 불러라. 그들을 이끌고 내가 직접 조사를 하겠다.”
“네, 주인님!”
종속자의 명령에 3명의 전투노예들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는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잠시 후, 100여 명의 전투노예들이 모였다.
“이야기는 들었겠지?”
“네, 주인님.”
100명의 전투노예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화려한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러면 완전무장을 했을 거라 믿는다. 지금 당장 출발할 것이다. 가자.”
“네, 주인님!”
종속자가 힘주어 말하자 그를 따르는 전투노예들도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2명의 전투노예가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그들도 목숨이 귀한 줄은 안다.
100명이 다 덤벼도 종속자에게 상처조차 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은 무조건 종속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다 곧 그들은 의문을 가졌다.
도대체 누가 자신의 주인을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들도 적에 대한 적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1명의 종속자와 100명에 달하는 전투노예들의 살기는 입구를 나와서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