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레벨이 갑이다
117화
어둠의 기운이 커지더니 갑자기 주변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오빠?”
“설아야!”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를 보지 못했다.
소리를 쳐 봐도 대답이 없었다.
이서우는 기운을 집중했다.
‘다크 웨폰이라더니 어둠에 잠식당하도록 하는 방법인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어떻게 공격을 한다는 거지?’
다크 웨폰이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는 알았지만 이게 무슨 효과가 있나 싶었다.
잠시 후, 마치 오밤중에 공동묘지에 있는 것처럼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서우는 자연스럽게 대검을 들었다.
“오빠?”
“설아야.”
“오빠, 나 너무 추워. 얼른 안아 줘.”
“뭐?”
이서우는 갑자기 이설아가 달려와 안기자 당황했다.
약간 기온이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추울 정도의 날씨는 아니었다.
한데 자신에게 안긴 이설아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결코 인간의 몸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무슨.”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이서우는 이설아를 제대로 보기 위해 그녀를 잠시 떼어 놓았다.
한데, 갑자기 그녀가 입을 크게 벌리면서 이서우를 물어뜯으려 했다.
화들짝 놀란 이서우는 그녀를 밀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입이 괴물처럼 변하더니 이서우를 집어삼키려 하는 게 아닌가.
이서우는 놀라 대검을 휘둘렀다.
“아악! 오, 오빠.”
“설아야?”
이서우는 이설아의 비명 소리에 깜짝 놀랐다.
괴물인 줄 알았는데 정말 설아였던 것이다.
다급히 파티 창을 확인했는데 정말 이설아의 생명력이 70퍼센트나 빠져 있었다.
3차 전직을 하지 않았다면 한 수에 죽었으리라.
“미안해. 네가 갑자기 괴물로 보였어.”
“힐이 있으니 괜찮아. 그것보다 이 어둠을 어떻게 떨칠지나 생각해 봐, 이 개자식아!”
“…….”
갑작기 설아가 욕을 해 댔다.
이서우는 어리둥절했다.
그 순진하던 설아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다니.
하지만 이서우는 곧 그녀가 진짜 이설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푹!
이설아가 중간 크기의 중검으로 이서우의 가슴을 찔렀다.
“큭.”
이서우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적이 검을 빼지 못하도록 팔을 덥석 잡았다.
“잡았다, 이놈.”
이서우는 적의 팔을 비틀어 부러뜨렸다.
그리고 무릎을 세워 복부를 후려 찼다.
“아악! 오, 오빠! 대체 왜 그러는 거야?”
“…….”
이서우는 다시 이설아의 모습으로 바뀐 것을 보며 얼른 손을 놓아주었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서우야, 이놈의 자식아. 제발 좀 깨어나라. 이 엄마가 죽는 꼴을 보고 싶으냐, 흑흑흑.”
“엄마?”
이설아가 사라지고 갑자기 이서우의 눈앞에 그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침대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뭐지? 이건 분명 병원에 누워 있는 장면인데?’
이서우는 뜬금없이 병원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자 당황스러웠다.
‘설마, 어둠의 기운이 나의 뇌를 자극하는 건가? 이런 개자식!’
뇌를 자극해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게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악질적인 기술이었다.
이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주의 기운이 강한 게 분명해. 최대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그러지 않으면 마나가 고갈되어 죽고 말 거야.’
이서우는 다크 웨폰이 얼마나 무서운 공격인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가 빨리면 상대는 아주 손쉽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서우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당하는 것이 싫었다.
게다가 마나가 고갈될 때까지 끔찍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방법을 간구하던 이서우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래, 내 힘에 더 집중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어둠의 기운에만 집중했어.’
주변 환경에 흔들려 자신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한 것이 실수였다.
이서우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얼른 정신을 차렸다.
눈빛이 변했다.
실제인지 허구인지 구분을 하지 못해 흔들리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3차 전직을 하면서 관찰력이 500이 되었다.
그러자 통찰력으로 변했고, 모든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마나를 소모해야 했지만 지금은 마나가 얼마나 남을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였다.
통찰력에 집중하자 이서우는 그제야 어둡던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이설아가 보였다.
한데, 그녀의 눈동자는 그가 알던 초롱초롱한 모습이 아니었다.
두려움이 보였고, 겁에 질려 있었다.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 봐. 내가 기분 좋게 해 준다니까 그러네.”
“아악! 하지 마!”
“이년이 반반하게 생겨서 앙칼지네. 너, 벌써 남자한테 다리 벌렸잖아. 나한테 한 번 더 벌린다고 닳는 거 아니니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있어.”
덜덜덜.
이설아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겁탈을 당하려 하고 있었다.
한데, 이설아는 분명 선생님이라고 했다.
“어찌, 선생이란 자가 그런 악랄한 짓을……!”
화가 난 이서우는 악을 썼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 보이는 장면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설아를 본 자신의 뇌가 반응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서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나를 일으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무섭도록 높은 집중력이 발휘되자 드디어 어둠에 가려졌던 시야가 밝아졌다.
‘찾았다, 개자식! 어디 맛 좀 봐라!’
이서우는 다크 엘프 리더의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마치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설아야, 설아야!”
이서우는 일부러 손을 허우적거리며 설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서 조금씩 다크 엘프 리더가 느껴졌던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서우는 지면을 강하게 박차며 대검을 뻗었다.
푸욱!
“큭! 어, 어떻게…….”
“더러운 수를 쓰다니, 생긴 것만큼이나 더러운 족속들이구나. 반드시 다크 엘프 종족을 멸망시켜 버리겠다! 하앗!”
이서우는 그 말과 함께 대검을 잡고는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깨를 잡은 채 일자一字로 서 있던 자들의 몸통이 하나둘씩 반 토막이 나 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반가운 메시지와 함께 하늘이 밝아졌다.
이서우는 얼른 이설아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털썩.
“설아야!”
“오, 오빠?”
“그래, 오빠야.”
“오빠!”
이설아는 눈물을 흘리며 이서우에게 안겼다.
“나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
“이제 괜찮아. 그러니 걱정하지 마.”
“고마워. 오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설아는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다.
공포감이 남아 있는지 몸이 아직도 떨렸다.
잠시 후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도 나 지켜 줄 거지?”
“……그래. 그러니 걱정은 훌훌 털어 버려.”
“……응. 고마워.”
이설아는 이서우의 대답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는지 흐느낌을 멈추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10분 정도를 안겨 있었을까.
그제야 이설아는 완전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빠, 나 많이 추했어?”
“응? 아냐. 추하긴. 나한테 안겨 있어서 하나도 안 보였어.”
“정말?”
“그래. 그나저나 이제 좀 괜찮아?”
“응. 완전히 괜찮아졌어. 근데,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정말 끔찍한 장면이 보였거든.”
“놈이 어둠의 기운을 이용해 우리 뇌를 흔들어 놓았던 거야.”
“어떻게 그런 끔찍한 기술을…….”
“이래서 저주를 조심하라고 했나 봐. 앞으로 다크 엘프를 상대할 때는 최대한 속전속결로 처리해야겠어.”
“응!”
이설아는 다시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힘차게 대답했다.
“자, 이제 지하로 가 보자. 거기서 물의 엘프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
“알았어.”
물의 엘프의 기운을 따라가자 지하로 통하는 곳이 나왔다.
이서우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다크 엘프도 처치했으니 이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인공 동굴을 따라 지하 깊숙한 곳으로 가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누, 누구세요?”
“피욘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피, 피욘 장로님이 보내셨다고요?”
“그렇습니다.”
멀리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서우는 다가가면서 그녀의 말에 호응해 주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완전히 막혀 버린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안쪽에 몇 명이나 있나요?”
“200명 정도 있어요. 하지만 자매들은 아직 인간들에게 붙잡혀서 치욕을 겪고 있답니다.”
“일단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네.”
이서우는 대검을 들어 마나를 담아 가볍게 문을 파괴했다.
두부처럼 잘려 나간 철문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쿵!
땅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감옥 안의 모습은 끔찍했다.
여성 엘프들은 옷도 입지 못한 채 벌거벗은 채였다.
그 모습에 이서우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걸 입으세요.”
“고, 고마워요.”
이설아가 얼른 인벤토리에서 천과 가죽을 꺼내 건넸다.
저레벨 때 방어구를 만들기 위해 모아 두었다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인데 유용하게 쓰였다.
대충 두른 천을 단단히 고정시킨 뒤에야 이서우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구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피욘 장로님께서 보내셨다는 증거를 보여 주세요.”
“이거면 되겠습니까?”
“휴우, 그거면 돼요. 죄송해요. 워낙 다크 엘프들이 사악해서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몰라 무례를 범했네요.”
“아닙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확인해야죠.”
“한데,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아셨는지요?”
“자세한 건 피욘 님께 직접 들으시는 게 나을 겁니다.”
“……네.”
정수를 보여 주자 그제야 여성 대표는 안도했다.
하지만 궁금한 게 많았다.
그녀가 알기로는 피욘도 노예로 붙잡혔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증은 일었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11명의 다크 엘프가 이곳을 지키고 있던데, 근처에 인원이 더 있나요?”
“11명이었나요?”
“네.”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 왔을 때는 더 많았는데, 나머지는 돌아갔나 봅니다. 11명만으로도 우리를 감시하는 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그렇군요.”
이서우는 11명이서 이 많은 인원을 끌고 오지는 않았을 거라는 판단에 물어본 것이었다.
“장로님은 어디 계신가요?”
“안전한 곳에 잘 계십니다. 지금부터 그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을 구속하고 있는 이 목줄을 잘라만 주시면 방해되지 않을 거예요.”
“그건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이서우는 200명의 목줄을 일일이 끊어 주었다.
워낙 단단하게 박혀 있는 것이어서 이서우의 힘으로만 가능해 시간이 꽤 걸렸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이동하는 데 방해는 되지 않을 거예요. 제발 이곳에서 우리를 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원이 많으니 너무 넓게 퍼지지 않게 잘 따라오십시오.”
“네.”
“설아는 후방에서 이들을 보호하면서 오도록 해.”
“응, 오빠.”
-혹시 모를 위험이 감지되면 언제든 소리치고.
-알았어. 아주 악을 쓸게.
-그래.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이설아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녀가 사라지자 물의 엘프 여성 대표가 이서우를 보며 물었다.
“사랑하는 분이신가 봐요?”
“네? 아, 아닙니다.”
“그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여자를 너무 기다리게 하지는 마세요.”
“출발하겠습니다.”
이서우는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가 앞장서자 엘프들은 그의 뒤를 쫓았다.
동굴을 빠져나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일행은 최대한 안전하게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올 때와는 달리 주변을 살필 필요가 없어 속도가 많이 처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인원이 많다 보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더 가서야 마을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2시간 정도만 이동하면 됩니다. 조금만 힘을 내세요.”
“네!”
쉬지도 않고 강행군을 했기에 다들 지쳤을 텐데도 표정은 밝았다.
동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리라.
이서우가 다시 앞장섰다.
그의 뒤를 엘프 여성 대표가 익숙하게 따라왔다.
하지만 그녀의 눈이 흰자위가 없이 시커멓게 물이 들었다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