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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113화 (113/341)

# 113

레벨이 갑이다

113화

하이 레벨 주변 지역을 꼼꼼히 녹화한 이서우와 이설아는 저녁이 되어 삼겹살집을 찾았다.

이설아가 자축의 의미로 소주 한 잔 곁들이고 싶다고 해서였다.

2020년이 지나면서 웬만한 음식점들은 룸 형식을 많이 도입했다.

사람들이 점점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면 가장 큰 불만이 시끄럽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주말과 저녁 시간대가 심했다.

배도 차고 술까지 들어가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드는지, 다른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떠들어 댔다.

그때 마침 방음이 잘되고 깔끔한 룸 형식의 음식점이 오픈을 했다.

게다가 최상의 서비스까지 누릴 수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이곳이 인기가 생기자 너도나도 룸 형식의 음식점을 오픈했다.

이후 여러 음식점에서 차용하면서, 요즘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떠들썩하게 먹을 수 있는 곳도 물론 있지만, 그런 곳이라도 절반 정도는 룸이 있었다.

이설아는 방송을 하면서 여러 단골집을 만들었는데, 그녀가 누군지 잘 알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많이 배려해 주었다.

“삼겹살집 같지 않게 바깥 풍경이 좋네요.”

“네. 사장님이 마치 고급 한정식집처럼 만들어 놓고 조명에도 꽤 공을 들였더라고요. 분위기 마음에 드세요?”

“네.”

통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안에서는 잘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특수 유리였다.

밖은 나무와 인공 구조물, 조명 등이 조화를 이루어 잘 배치가 되어 있었다.

밑반찬이 나오고 숯과 불판이 놓였다. 이서우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올려놓았다.

“오늘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저야 평소처럼 사냥만 했는걸요. 고생은 설아 씨가 하셨죠.”

이설아가 소주잔을 이서우에게 건네고 차분히 잔을 채웠다.

“설아 씨도 받으세요.”

“네.”

이번에는 이서우가 이설아의 잔을 채웠고,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시원하게 원 샷으로 잔을 비운 두 사람은 다 익은 삼겹살을 파무침에 얹어 입안으로 넣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와서 먹는 삼겹살과 소주 한 잔의 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나저나 앞으로 그 많은 영상은 어떻게 편집하실 생각이세요?”

“편집하실 분들을 3명 정도 지원해 주신대요. 워낙 영상이 많을 테니 1명으로는 힘들거든요.”

“너무 성공을 한 상태에서 개인 방송을 하게 되는 건데, 부담은 되지 않으세요?”

“즐겁게 새로운 모험을 하는 걸로 만족해요. 그 과정에서 혹시 시청자들이 떨어져 나가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요. 연연하지 않기로 했어요.”

“참 대단하세요. 그런 마인드를 가지기 쉽지 않을 텐데.”

“에이, 서우 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5년 동안…… 아, 죄송해요. 서우 씨를 찾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과거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괜찮아요. 그것도 제 인생의 일부인걸요.”

이설아는 식물인간에서 깨어나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이서우가 더 대단해 보였다.

‘어나더 월드에서의 20년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된 시기였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니까.’

뉴 월드는 언제든 현실 세상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서 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도 뉴 월드에서 지낼 때만 다르게 느껴지지 현실과 혼동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이서우는 어나더 월드에서 삶을 살았다.

온전히 살아가는 것과 현실을 오가며 잠시 지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다.

그 때문에 깨어난 이후에도 이서우는 남들보다 20년은 더 산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그에게서 가끔 40대의 중년 아저씨의 향기가 풍기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설아는 이서우의 그런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의 꽃을 피우기를 1시간 남짓, 빈 술병이 두 병이 되었을 때였다.

“서우 씨, 저 앞으로 서우 씨를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네?”

“앞으로 계속 같이 일도 하고 함께 있을 시간도 많아질 텐데, 계속 서우 씨라고 하니 뭔가 낯설게 느껴져서 그래요. 안 될까요?”

“뭐, 그럽시다.”

“정말이죠?”

“네. 전 한번 내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럼 오빠도 말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요?”

“헤헤, 네. 그게 편해요.”

“겨우 세 살 차이인데, 설아도 말 편하게 해.”

“정말요?”

“그래. 네 말대로 앞으로 계속 같이 지낼 거잖아.”

“네. 아니, 응.”

이설아는 기분이 좋은지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라, 술병이 비었네.”

“오늘은 그만 마시고 일어나자. 기회가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야겠지?”

“나도 한 병 이상은 힘들어. 아직 몸도 완벽하게 나은 게 아니어서.”

“어머, 내가 실수한 거 아냐?”

“아냐. 이 정도는 괜찮아. 더 들어가면 문제겠지만. 오늘은 오빠가 계산할게.”

“헤헤, 그럼 시원한 차는 내가 쏠게! 술도 깰 겸.”

“그래. 나가자.”

“응, 오빠.”

이설아는 친오빠인 이준민과 대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들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할 때 이설아의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도 성과가 없으니 과연 내가 여기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가족이라고 하나 있는 오빠는 그녀를 멀리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자 이준민이 다가왔다.

성공의 문턱에 선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이다.

그런 태도가 싫었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를 받아 주었다.

이준민은 돈을 좋아했다.

이설아를 속이면서까지 돈을 탐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도가 심해졌다.

방송사가 이준민을 부추기면서였다.

뉴 월드가 인기를 끌면서 이설아는 동분서주했다.

기존의 방송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을 소화하면서 시청률을 엄청나게 끌어 올렸다.

방송사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직접 이야기하면 잘 통하지 않으니 이준민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불화가 생겨 결국 이설아는 계약 파기라는 최후통첩을 하고 말았다.

집으로 가면 항상 이준민이 다시 조 PD에게 사과를 하라고 강권했다.

그래서 K사에서 지낼 공간을 제공한다고 했을 때 고민 없이 옮길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준민과는 서먹해졌고, 그녀는 다시 외로움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서우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이서우와 보내는 시간을 놓칠 수 없다 판단한 그녀는 새벽 녹화까지 감행하면서 그와 함께 있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에 대만족이었다.

방송국이라는 틀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서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녀는 이서우와 함께하게 된 것이 진정으로 기뻤다.

두 사람은 약국으로 가서 술 깨는 약을 마셨다.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취기가 올라왔다.

과거의 주량을 생각하고 마신 게 실수였다.

몸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예전과 다른데, 깜빡 잊고 만 것이다.

하지만 30분이면 간에 무리를 주지 않고 술이 깨는 약이 개발되어 전혀 문제가 없었다.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음료가 나오자 벌컥벌컥 마셨다.

술 깨는 약은 전혀 부작용이 없지만 약간의 갈증을 유발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휴우, 조금 낫네. 몸이 약해져서 주량도 줄었다는 걸 모르고 마셨으니…….”

“기분에 취해 한 병 더 안 마신 게 다행이네.”

이설아도 목이 타는지 단숨에 음료를 반이나 비우고는 말했다.

그녀는 일이 힘들 때 가끔 술을 마시곤 했는데, 은은한 조명과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 것이지 주량은 소주 반 병 정도였다.

“그래도 알딸딸한 기분은 오랜만에 느껴서 좋았어.”

“나도. 예전에 일이 힘들 때는 혼자서 마셨거든. 그때는 술이 그렇게 쓰던데, 오늘은 달달하더라. 기분도 좋고.”

“술꾼 기질이 있는 건 아니고?”

“아냐.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 거였어.”

“더 못 마셔서 엄청 아쉬워하던데.”

“아니라니까!”

“농담이야, 농담.”

“치, 나빠.”

이서우의 장난에 이설아는 새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은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아이스커피를 마저 마셨다.

“참, 오빠, 앞으로 스케줄은 어떻게 할 거야?”

“특별한 건 없어. 지금처럼 뉴 월드 접속하고, 운동하는 것 말고는.”

“건물은 어쩌고?”

“인테리어가 다 끝나면 알아서 연락 오겠지.”

“요즘은 꾸미는 데 2주면 충분해.”

“그 넓은 곳을?”

“응. 장비들이 워낙 좋아서 금세 하거든. 그런 말 안 해 줘?”

“그냥 다 되면 연락 주겠다고 하던데.”

“오빠가 신경 쓸 일 없도록 하려고 그랬나 보다. 꽤 자리가 좋은 곳이던데. 부모님도 좋아하실 거야.”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벌써 걱정이다.”

“검소한 분들이신가 봐?”

“그랬지. 집 하나 있고 아들 멀쩡하게 자라는 걸로도 항상 감사해하고 만족하셨지.”

“좋은 분들이시네.”

“너무 좋으셔서 탈이지. 5년 동안 고생하신 거 보상해 드리려면 더 열심히 해야지.”

“오빠 부모님들은 5년 동안 고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이설아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슬프다고 느낀 이서우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참, 친구 놈이 네 팬이라면서 사인 좀 해 달라던데…….”

“오빠 친구라면 몇 장이든 사인해 줘야지. 나중에 가게 오픈하면 팬 사인회라도 해 줄 테니까 언제든지 말만 해.”

“이거 든든한데?”

“호호호, 잊었어? 이제 우린 동업자잖아. 한배에 올라탔으니 서로 잘 챙겨야지.”

“그것도 그러네. 근데, 사업자라는 말이 뭔가 낯설다.”

“앞으로 세금 왕창 내면 아, 내가 사업을 하고 있구나 싶을 거야.”

“그런가?”

“나도 그렇더라고. 벌어들인 돈에서 30퍼센트 정도 빠져나가니 내가 뭔가 하고 있기는 하구나 싶던데?”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프리랜서로 구분되어 종합소득세를 신고한다.

초고소득 프리랜서 사업자들은 그동안 의료비를 포함해 제대로 공제받을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다.

이런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공제받을 수 있는 범위가 많이 넓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총수익의 20퍼센트 정도는 세금을 내야 했다.

물론 수익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세율 구간이든 과거와 비교하면 낮아져서 대부분 불만이 없었다.

“난 세금이 제대로만 쓰인다면 30퍼센트 정도 내는 건 신경 안 써. 정직하게 살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 어차피 내게도 혜택이 다 돌아오는데 기쁜 마음으로 내야지.”

“그건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 변호사님께 말해 둘게. 일 처리가 워낙 깔끔한 분이셔서 세금 문제도 잘 챙겨 주셔.”

“헐, 그분이 변호사셨어?”

“변호사에 회계사, 세무사, 기타 등등 못하는 게 없는 분이셔.”

“그렇게 뛰어난 분이 왜…….”

“그분은 가능성 있는 청년들을 좋아하거든.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돈도 따라오기 마련인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돈이 생기면 계획 없이 막 쓰게 되잖아. 문제는 그러다가 사기도 당하고, 법을 몰라서 피해를 입기도 하거든. 재능 있는 사람이 그런 일에 휘말려 인생을 포기하는 상황에 처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라고.”

“그런 분도 있구나.”

“멋진 분이셔. 소문이 나서 최근에는 스포츠 선수들이 많이 의뢰를 하는데, 대부분 간단한 상담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나 봐. 우리처럼 꼼꼼한 관리는 10명이 채 안 될걸. 주 변호사님께 관리받는 분들은 다 연 수입이 300억 이상이야. 오빠도 알지, 요즘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 몸값이 어떤지?”

“300억? 5년 전까지는 그런 고소득자가 거의 없었는데.”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이후로는 오직 빚을 갚는 것과 뉴 월드에만 전념해서 다른 일에 대해서는 아직 지식이 부족했다.

“꽤 달라졌지. 15년 전만 해도 이적료가 수천억에 달한다는 건 해외에서나 벌어진 일이었잖아. 연봉도 수백억에 달하는 건 해외에서나 가능했고. 우리나라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연 수입 100억 이상이 거의 없었어. 하지만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지. 광고와 기타 수입까지 포함하면 500억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도 몇 명이나 돼. 세계 대회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수천억을 벌어들이기도 해.”

“와, 엄청나네.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은 그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니네.”

“앞으로는 그 말이 달라질 거야. e스포츠라 불리면서도 연 수입이 50~100억 수준에 머물렀는데, 이제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선수를 능가하는 수준이 될 거야. 그 시작은 오빠겠지.”

“뭔가 엄청 거창한 것 같은데?”

“피, 오빠가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역시 설아는 못 속이겠네.”

“이래 봬도 이 바닥에서 꽤 알아준다고. 뉴 월드 하는 사람들 속은 내가 꿰고 있지.”

설아의 말처럼 해마다 수천억 원대의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지 않지만,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생겼다.

11시까지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졌고, 이서우는 그녀를 K사까지 배웅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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