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레벨이 갑이다
97화
-언니, 오빠!
-어, 현아야. 일찍 접속해 있었네.
-네. 근데 두 분이 나란히 들어오시네요.
-타이밍이 잘 맞은 거지, 뭐. 근데, 민아는?
-언니도 아마 곧 접속할 거예요.
말하기가 무섭게 이민아가 접속했다.
-민아, 어서 와.
-네, 언니. 일찍 오셨네요.
-나도 방금 접속했어.
-둘 다 정비 끝내고 ‘만남’으로 와.
-네.
만남은 NPC가 운영하는 주점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24시간 운영되는 곳이어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유저들이 이용하는 곳은 사람들이 워낙 많아 가기가 꺼려져서 NPC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갔다.
이들은 이미 이서우와 힐러들의 존재를 알기에 거부하지 않았다.
시원한 생맥주를 시킨 이서우와 이설아는 자리에 앉아 동료들을 기다렸다.
“조세프 백작이 부를까요?”
“아마 부르긴 할 거예요. 아직 전초기지 퀘스트가 남아 있으니까요.”
“전초기지 퀘스트는 오래 걸리겠죠?”
“우두머리 사이클롭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꽤 오래 걸렸을 것 같은데, 놈들이 나타나 준 덕분에 위험 요소가 많이 사라져서 일이 수월해졌어요. 어쩌면 당장이라도 가능할지 몰라요.”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설, 아니, 고미 씨, 고미라고 하니 뭔가 어색하네요.”
“좀 부르다 보면 익숙해지실 거예요.”
“그럼 게임에서만 봐야겠군요.”
“어머,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건 안 되는데…….”
“여튼, 고미 씨는 따로 받으신 퀘스트 없어요?”
“받아 둔 건 있지만 경험치가 시원찮아요. 힐러들은 파티 퀘 위주로 해야 하는데 전 솔로 퀘 위주로 하다 보니 사실 레벨 업 속도가 많이 더디긴 해요.”
솔로 플레이로는 레벨 업이 힘들다는 게 힐러들의 비애다.
“생산직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전문 생산 기술자들은 제작으로도 경험치가 올라요. 제작 관련 퀘스트도 많고요. 빠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솔로 플레이를 하는 힐러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렇군요.”
“언니, 오빠!”
한창 대화를 하고 있는데 조현아가 놀이동산에 온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며 들어왔다.
반대로 이민아는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차분히 걸어오고 있었다.
조현아가 이서우의 곁에 앉았고, 이민아는 이설아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참, 오빠! 제가 오면서 생각을 해 봤는데요. 어쨌든 우리도 파티를 하고 있으니 역할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역할? 무슨 역할?”
“힐러가 셋이면 중복되잖아요. 1명이 힐을 전담을 하면 나머지는 딜을 하는 거죠. 누가 힐을 할지 안 정하니 서로 막 하게 되고, 어떨 땐 언니들이 하겠지 싶어서 신경 안 쓰게 되더라고요.”
“그럼 제가 힐을 할게요. 언니나 현아는 저보다 레벨도 높고 장비도 좋으시잖아요.”
“그럼 민아 언니가 하는 걸로 하고 우린 딜 할게요.”
“난 늘 하던 일이니 괜찮은데, 현아는 괜찮겠어?”
“네. 저도 공격 잘해요.”
“고전 게임에서 힐러만으로 던전 공략하고 보스 몬스터 잡고 그랬다는 말은 들어 봤는데, 뉴 월드에서 힐러 셋이 뭉치게 될 줄이야.”
이설아는 게임 방송을 하면서 다양한 게임 정보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른 게임과 함께 과거에 있던 것까지 가리지 않았다.
게임만 아니라 상식이나 이슈가 되는 일도 꼬박꼬박 챙겼다.
초대 손님이 게임을 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때 다양한 지식을 알고 있으면 대화를 이끌어 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본이 있으니 그리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설아는 대본에 얽매여 있으면 발전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그 바쁜 중에도 뉴 월드를 플레이 하는 것이었다.
파티를 하든 하지 않든, 이서우는 몰디나가 준 퀘스트 때문에 자신의 기여도만큼만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말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일행은 뉴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뉴 월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솟아나왔다.
날이 밝자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좀 쉬라고 했더니 여기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겐가.”
“오셨습니까. 어제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서 기분 좋게 한잔하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마음 같아서는 나도 한잔하고 싶지만 백작님께서 자네를 찾는다네.”
“그렇잖아도 소식이 올 때쯤 됐다 싶었습니다. 가시죠.”
사이먼 자작을 따라 성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주민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사이먼 자작이 지나가자 다들 예의를 차렸다.
사이먼 자작도 그들에게 일일이 화답하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대귀족을 모시고 있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한데, 그런 게 없어서 좋네.’
어차피 게임이니, 영주나 그를 따르는 귀족의 성품이 어떤지는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왕이면 괜찮은 영주를 만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었다.
“자네들은 이곳에 있고, 서우 군만 따라오게.”
“네.”
힐러들은 손님방에 머물렀고, 이서우는 백작의 집무실로 갔다.
‘이상하네. 왜 그들의 기운이 안 느껴지지?’
감각에 마나를 실으면 충분히 몰디나와 아리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백작 성에 들어왔으니 혹시나 싶어 그들을 느껴 보려 한 것인데,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성안에서 강한 기운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이먼 자작에게 물어보려는데, 집무실에 도착해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백작님을 뵙습니다.”
“새벽에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였다고?”
“네. 성공적인 마무리를 했으니 간단히 축하하는 의미에서 시간을 가졌습니다.”
“좋을 때군.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조세프 백작은 과거를 회상하는지 옅은 미소와 함께 허공을 잠시 응시했다.
“이것 참, 사람을 불러 놓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구먼. 내가 오늘 자네를 부른 것은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라네.”
“그분들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라니요?”
“그분들은 황궁에 급한 일이 있어서 텔레포트로 떠나셨다네.”
“그런…….”
이서우는 펠렌의 장비 세트를 얻을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 그리 걱정하지 말게. 몰디나 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펠렌 님의 후예라면서?”
“…….”
“그 말을 듣고 조금 서운했다네.”
“죄송합니다. 함부로 말할 성격의 것이 아니어서.”
“알고 있네. 어쨌든 자네가 그분들의 요구 사항을 잘 이행하면 그분이 남긴 물건을 받을 수 있을 것일세. 참, 아리아 님은 다 주고 가셨다네. 받게.”
“네? 네.”
이서우는 백작이 건네는 금색의 작은 상자를 받아 들었다.
“사이클롭스 중에서도 강한 녀석이 이번 결계 보강 작업을 방해했다고 들었네. 그래서 아리아 님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주고 가셨네. 그놈보다 더 강한 녀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시면서 말일세. 하지만 몰디나 님은 완고하셨다네. 내가 함부로 주지 못하도록 보호 마법까지 걸어 두셨지. 자네가 조건을 충족시키면 이 마법은 해제될 것이네. 그러니 이것도 가져가게.”
이서우는 서류 가방 정도 크기의 상자를 받아서 인벤토리에 잘 넣었다.
“참, 몰디나 님이 주신 물건을 착용할 정도가 되면 꼭 황궁에 들러 달라고 하셨네.”
“황궁에요?”
“그렇다네.”
“황궁으로 가다가 꼼짝없이 잡혀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이 패를 주고 가셨네. 보이면 곧바로 그분들에게 안내될 것이네. 황궁은 워낙 넓어서 황제께서 계신 곳 가까이는 당연히 갈 수 없겠지만, 그분들이 계신 곳은 거의 외곽 쪽이니 상관없다네.”
“바쁜 이유가 황궁과 관련된 일이었나 보네요.”
“무슨 일인지는 내 권한 밖이어서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판단되네.”
대귀족인 백작이 일개 모험가에게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 일은 없지만, 이서우가 워낙 공을 많이 세워 특급 기밀 사항이 아니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 전초기지와 관련된 일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그 일은 당장 나설 생각이네.”
“당장요?”
“자네 덕분에 1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소탕했네. 몬스터가 그 주변에 그리 많지 않다니 이번 일로 더 안전해지지 않았겠나. 그러니 당장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결계는 괜찮은 것입니까?”
사람이 이동을 하려면 분명 특별한 방법이 동원될 것이다.
어떤 방법일지는 이서우도 짐작할 수 없지만,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결계를 약화시키는 상태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백작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그렇지 않아도 두 분이 조치를 취해 주고 가셨네. 마법사만 두면 결계의 힘이 약해지지 않으면서도 이동이 가능하지.”
“결계가 강화되어서 이동이 까다로워질 줄 알았는데, 그다지 힘들지 않겠네요?”
“몰디나 님이 계셔서 그게 가능했던 거네.”
검색만 하면 모든 지식이 뚝딱 나오는 것처럼 몰디나의 이름만 나오면 다 해결이 되었다.
“어떤 방법으로 이동하게 되나요?”
“마법사가 마나를 주입하고 있으면 결계가 부드러워진다네. 그때 그곳을 통과하면 되네.”
“그렇군요. 그럼 출발은 언제 하실 건가요?”
“이미 인원은 어제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네. 정오가 지나면 바로 움직일 생각이야.”
“규모는요?”
“우선 기사 100명과 병사 300명을 보낼 생각이네.”
“꽤 많네요.”
“워낙 강한 몬스터들이 있으니 적은 숫자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인원을 늘렸다네. 차츰 추가해 거기다 마을을 만들어야지.”
“그러면 이곳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한 달 정도가 지나면 1천 명의 인원이 지원되네. 그분들께서 직접 약속하셨으니 무리 없이 실행되겠지.”
“그 정도 인원이라면 괜찮겠네요.”
병사들이 많아지는 것은 이서우도 환영이었다.
숫자가 부족하면 백작으로서도 유저들을 끌어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늦게 공개되는 것도 좋지만, 적당한 시기가 되면 사람들이 많이 가야 해.’
처음에는 비밀을 유지하면서 독점적 권한을 누리려 했다. 남들보다 먼저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지면 마을도 그만큼 많이 생길 것이고, 여러 혜택을 이용하기도 편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지내려니 거래 중개소나 경매장은 물론이고 그 흔한 잡화 상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먼 길을 가서 영웅 아이템을 얻어도 며칠 밤낮을 달려 다시 마을까지 와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더군다나 워낙 넓은 곳이어서 반드시 발전이 되는 게 이서우에게는 훨씬 이득이었다.
어차피 강한 힘을 얻으면 남들이 가지 못하는 지역으로 가서 혼자 사냥을 하면 되니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철책을 치고, 감시탑과 여러 보호 장치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자네가 당분간 거기서 머물러 줘야 하는데, 괜찮겠나?”
“네. 전초기지를 만드는 작업에 저도 동참하기로 했으니 당연히 참여해야죠.”
“두 자작이 동행하겠지만 칸달 자작은 결계를 넘지 않고 자네들을 통과시키는 역할만 할 것이네. 추가 병력이 오면 그때 인솔해서 가게 될 거야. 그때까지만 자네가 좀 도와주게.”
“네.”
어차피 이서우에게도 남은 시간은 한 달이다.
그 기간 동안 200레벨을 만들지 못하면 펠렌의 방어구는 날아가고 만다.
그러니 그에게는 일석이조였다.
“참, 자네 일행도 괜찮겠나?”
“네. 다들 함께할 마음이 있습니다.”
“잘됐구먼. 한 사람이 아쉬운 마당인데 비밀 엄수까지 철저히 할 사람들이 참여해 주니.”
백작은 유능한 힐러 셋이 함께한다니 걱정이 조금은 가시는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백작님.”
“말해 보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언제쯤 그곳을 알릴 생각이십니까?”
“일단 당분간은 참을 생각이네. 이곳에 대한 것이 엘사둔 제국에 알려지면 괜히 귀찮아지거든.”
“엄연히 카이젠 제국의 영토인데, 귀찮은 일이 발생할까요?”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는 법이네. 분명 우리의 영토지만 그동안 숨기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더 강한 호기심을 가지겠지. 그러면 욕심은 눈덩이처럼 커져서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를 것이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욕심 많은 자들이니 그렇게 된다고 봐야지. 그러니 조금 더 확실히 입지를 다져 둔 뒤에 모험가들을 끌어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야지. 이미 많은 사람이 정착해 있으면 그들도 욕심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네.”
“그럼 저는 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1시까지 성벽이 있는 곳으로 오게.”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서우는 백작과 헤어졌다.
그동안 이서우는 아리아에게 받은 액세서리 세트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과연 얼마나 강해질까.’
세트 효과까지 있어 이서우는 당장이라도 착용해 보고 싶었지만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손님방으로 갔다.
일행과 오후 12시 반까지 성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이서우는 한가한 곳으로 가서 화려한 금상자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