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레벨이 갑이다
92화
“백호, 고생했어.”
“주인님을 무시하는 처사는 저를 무시하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절대로 안 될 일이죠!”
“그래, 고마워.”
이서우는 백호로 인해 아리아에게서 액세서리 세트를 받았다.
몰디나가 왜 그렇게 쉽게 내주냐고 따져 물었는데, 아리아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네가 너무 빡빡한 요구를 했잖아. 그래도 우리 그이의 후예인데, 기회도 못 얻고 좌절하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지.”
그 말을 들은 몰디나의 얼굴은 정말 가관이었다.
지나가다가 똥을 밟고 넘어져 똥통에 빠진 사람의 표정이랄까.
하지만 아리아도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펠렌의 후예로서 자질이 없다 판단하고 반지 한 쌍만 넘겨주었다.
목걸이와 귀고리는 몰디나의 요구를 끝내면 그때 주겠다고 했다.
이서우는 반지 한 쌍으로도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펠렌의 반지
등급 : ???
착용 레벨 : 1
진화 단계 : 2
공격력 : 8,150
근력 : 35
민첩력 : 35
체력 : 10
정신력 : 10
관찰력 : 10
잠재력 : 10
추가 옵션
-???
-???
-???
-???
-???
무기+방어구 세트 효과
-모든 스텟 +50.
액세서리 세트 효과
-2개 착용 : 모든 스텟 +10.
-3개 착용 : 모든 스텟 +30.
-5개 착용 : 모든 스텟 +50.
*거래 불가.
*펠렌의 후예만 착용 가능하다.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성장하는 아이템이다.
‘다른 악세까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네. 그래도 이 정도 능력치에 세트 효과까지 있으니 충분해. 힐러들의 도움을 못 받는 게 조금 아쉽지만 불가능할 정도는 아냐.’
몰디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혼자서 200레벨을 찍어야 된다고 했지만, 한 가지 놓친 게 있었다.
바로 백호의 존재다.
이것이 이서우가 흔쾌히 승낙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주인님, 그래도 조심하세요. 거기 느낌이 너무 좋지 않았어요.”
“알아. 하지만 백호가 있으니 든든한데?”
“헤헤, 역시 주인님밖에 없어요.”
백호는 이서우의 뺨에 털을 비비며 웃어 보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오빠, 우리 왔어요.”
“벌써 시간이 됐나?”
“아뇨. 마법진 준비가 끝났다는 걸 말씀드리려고요. 마나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대요.”
“얼마나 걸리는지는 모르고?”
“네. 근데 금세 회복될 거래요.”
“그래?”
“네. 우리 여기 있어도 되죠?”
“금방 나갈 테니 상관없지.”
“네.”
이서우는 8서클 마법사가 얼마나 강한지 잠깐이나마 느껴 봤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세 여자들은 수다를 시작했다.
주로 뉴 월드와 관계된 이야기였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랭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서우도 관심이 있는 부분이어서 귀를 쫑긋 세웠다.
“근데 언니,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다니?”
“오빠 말이에요. 비공개로 해 놨을까요?”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그런 얘기 하는 건 무례해.”
“피, 오빠한테 말해 봐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니 그렇죠.”
조현아가 이서우를 힐끗 보며 말했다.
자신에 대해 그다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서우였다.
하지만 조현아는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항상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이서우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랭킹 칭호 효과가 괜찮나 봐요?”
“네, 서우 씨. 공격력이랑 방어력 등 전반적인 능력치가 올라가요.”
“어느 정도죠?”
“랭킹 1위가 5퍼센트 능력치 증가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확한 수치는 잘 모르지만 그 이상은 아닐 거예요.”
“그렇군요.”
“왜요? 랭킹 1위에 도전해 보시게요?”
“나 쪼렙이다.”
“어머, 오빠. 오빠가 쪼렙이면 우리는 다 죽어야겠네요?”
듣고 있던 조현아가 말도 안 된다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150레벨이 넘는데 이서우의 공격 한번 제대로 받아 낼 자신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무기가 좀 특별해서 그렇지 레벨은 그리 안 높아.”
“평범해 보이는데, 꽤 괜찮은 장비인가 봐요?”
“그럭저럭 쓸 만해.”
지금 이서우의 말을 펠렌이 들었다면 아이템을 넘긴 걸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데 전신을 압도했다니, 대단하네요.”
“특수한 기술 몇 개 얻어서 그래.”
“어쨌든 전신과 비견될 인물과 함께 사냥하고 있다니 신기하네요.”
비밀 엄수 조건만 걸리지 않았다면 조현아는 당장이라도 여기저기 떠들어 댈 기세였다.
수많은 유저들이 관심을 가지는 전장의 지배자여서 더욱 그런 것이리라.
한창 대화를 하는데, 사이먼 자작이 나타났다.
“가세.”
“네.”
몇 시간 기다리지 않았는데, 며칠은 지난 것 같았다.
이서우와 그의 일행은 사이먼 자작을 따라갔다.
성 앞에는 이미 몰디나와 아리아가 나와 있었다.
“반지 한 쌍 더 가졌다고 조금 강해진 것 같네. 방해는 안 되겠군.”
“마법진 준비가 꽤 늦어진 것 같습니다? 결계를 원상 복구시키시는 데 어려움이 있으신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뭐? 이놈이!”
“몰디나, 사고 그만 치고 얼른 가야지. 늦으면 오늘 하루 또 날아간다고.”
“뭐 어때. 어차피 저놈 때문에 한 달은 있어야 하는데.”
“어쨌든 빨리 가서 끝내고 오자.”
“쳇, 알았어.”
평소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명분이 있는 일에는 몰디나도 별달리 반항을 하지 않았다.
“백작님, 다녀오겠습니다.”
“사이먼 자작, 두 분을 잘 보필하게.”
“네, 백작님.”
일행은 은밀히 성을 빠져나가 성벽으로 향했다.
높은 나무가 빼곡한 지역을 지나자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성벽을 보강한다더니 진짜 엄청나게 올려 놨네.”
“덕분에 영지가 안전한 것이죠.”
“그이의 결계가 지금까지 이곳을 지켰다는 걸 잊지 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분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몰디나는 펠렌을 인정하기 싫은지 침묵한 반면, 아리아는 펠렌이 무시를 당하는 것 같자 즉각 지적했다.
사이먼도 아차 싶어 얼른 머리를 숙였다.
펠렌에 대한 아리아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잠시 잊은 것이다.
성벽을 지나 거침없이 결계가 있는 곳까지 갔다.
“확실히 많이 옅어졌네.”
“그러게. 그래도 능력은 대단한 인간인데 말이야.”
“그이가 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고 했는데, 이상하네.”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 봐?”
“그럴 가능성이 높잖아.”
“넌 그 인간을 너무 믿는 게 탈이야. 언젠가 돌아온다고 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잖아. 그런데도 믿고 싶냐?”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은 없잖아.”
“없긴 하지. 언젠가는 한다는 식이었으니.”
“어쨌든 뭔가 이상하긴 해.”
“내가 볼 땐 대충 했다.”
아리아는 뭔가가 결계를 약하게 만들었다 믿었지만 몰디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튼 결계부터 보강하자. 어느 정도 될 것 같아?”
“둘이서 하면 예전의 80퍼센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 정도로는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는데?”
“나중에 다시 와서 손 좀 봐야지. 그러려고 텔레포트 게이트 설치한 거니까.”
“그건 그렇지. 그럼 시작하자.”
“그래.”
몰디나와 아리아는 결계 앞으로 갔다.
“참, 너희들은 결계 건너편으로 가서 몬스터들이 오는 걸 막아.”
“건너가도 괜찮은 겁니까?”
“결계가 완성돼도 몬스터만 막는 거니 상관없어.”
“아, 네.”
이서우는 힐러들에게 눈짓을 했고, 모두가 결계 밖으로 나갔다.
“아리아, 시작하자.”
“알았어.”
이서우과 사이먼이 자리를 잡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몰디나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아리아도 신성력을 일으켜 몰디나를 도왔다.
몰디나가 사용하는 방법은 아우라 마법의 확장판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결계에 마나를 덮어씌워 더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리아는 그런 몰디나의 힘을 증폭시키는 것과 동시에 결계에 신성력을 입혀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자 주변에 마나 폭풍이 몰아쳤다.
“다들 몸을 보호해.”
“네, 서우 씨.”
“네, 오빠.”
힐러들은 얼른 치유의 보호막을 펼쳤고, 이서우는 마나를 온몸에 둘렀다.
‘이렇게 강한 기운을 뿜어 대는데 몬스터가 어떻게 접근한다고…….’
이서우는 무시무시한 힘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버틸 만합니까?
-네. 그럭저럭 버틸 만은 해요. 하지만 거리를 조금 둬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럼 결계에서 약간 떨어집시다.
-네.
“사이먼 자작님, 결계에서 약간 떨어지겠습니다.”
“그러세. 나도 버티기 힘들었네.”
자존심이 있어 사이먼은 먼저 거리를 두자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 이서우가 제안을 하니 얼른 수락했다.
50미터 정도 떨어지자 압박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휴우, 두 분은 어째 예전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아.”
“마법도 대단하지만 신성력도 엄청나네요.”
“아리아 님은 공격, 방어, 치유, 모든 능력이 다 탁월하시지. 거기다 타인의 힘까지 증폭시켜 주니 그야말로 엄청나.”
“진짜 괴물은 아리아 님이셨군요.”
“몰디나 님마저도 한 수 접는다네. 엄청난 분이시지.”
이서우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 정도면 몬스터는 접근하지 않겠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이런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끼고도 접근한다면 뇌가 없거나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녀석들일 테지.”
이서우는 몸을 돌려 결계를 보강하고 있는 둘을 바라보았다.
이미 범접할 수 없는 힘이 느껴져서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다.
‘접근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둘 중 하나를 이기기도 쉽지 않겠어. 저런 둘을 가볍게 이겼다니, 펠렌은 도대체 얼마나 강했던 거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이서우는 백호를 소환했다.
-백호야.
-네, 주인님.
-궁금해서 그러는데, 펠렌 님은 얼마나 강하셨어?
-듣고 나면 의욕이 팍 죽으실 텐데요?
-얼마나 강했는데?
-드래곤은 그냥 뭐 찜 쪄 먹었죠. 오죽했으면 인간계에는 더 이상 상대가 없다고 신을 찾는다고 가셨겠어요.
-뭐? 신을 찾는다고 가셨다고?
-아, 제가 말씀 안 드렸었나요?
-금시초문인데.
-뭐, 어쨌든 그 이후로 저도 동면에 든 거예요.
-그럼 진짜 신을 찾으러 가셨다는 거야?
-에이, 아니죠. 보고 싶다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것 같으면 다들 신을 찾았겠죠. 제 생각에는 그냥 사람들에게 치이는 게 귀찮아서 어딘가로 숨어 버리신 것 같아요. 어차피 옛 주인님은 이제 장비나 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하셨거든요.
-그랬구나.
조금 알았다 싶었는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서우는 펠렌에 대해 알아 갈수록 더욱 호기심이 강해졌다.
물어야 대답을 하는 백호여서 이서우가 또다시 무언가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뭐지?”
이서우의 목소리에 짜증이 살짝 묻어났다.
사이먼과 힐러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가?”
“오빠, 무슨 일이에요?”
“멀리서 꽤 강력한 놈들이 다가오고 있어. 오우거나 와이번 같은 녀석은 아냐. 미노타우로스도 아니고.”
“네? 대체…….”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 다들 전투준비하세요!”
이서우가 소리치자 힐러들은 그의 뒤쪽으로 갔고, 사이먼은 옆에 나란히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