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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85화 (85/341)

# 85

레벨이 갑이다

85화

지형은 단순했다.

산이 있고, 강도 있고, 나무도 있다.

도시를 벗어나면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이서우는 지도를 그렸다.

성벽을 기준으로 거리와 방향을 계산해 조금 전 미노타우로스를 만났던 지역을 표시했다.

남쪽 끝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며 1킬로미터 단위로 지도에 표시했고, 특징적인 부분은 따로 체크했다.

높은 나무에 오르는가 하면,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며 지도를 그려 나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시간 동안 몬스터를 보지는 못했다.

‘이상하네. 왜 1마리도 없지?’

이서우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움직이며 위와 아래 모두를 살폈지만 몬스터는 없었다.

경험치를 얻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곳을 살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서우는 빠르게 이동했다.

마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밸런스 숙련도가 상승하면서, 움직임이 더더욱 가벼워졌다.

미노타우로스와 싸운 지점에서 동쪽 20킬로미터에 있는 높은 산을 넘었을 때였다.

“주인님, 저쪽에서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나요.”

“응? 어디?”

“저기, 저쪽요.”

감각이나 시력은 이서우가 뛰어나지만 아무래도 후각에서 백호를 따를 수는 없었다.

이서우는 백호가 가리킨 방향으로 갔다.

유저들이 없으니 백호를 계속 소환한 채로 움직였는데, 이럴 때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커다란 공간이 보였다.

바닥에 뚫린 구멍이었는데 가로세로 50미터 이상의 엄청난 크기였다.

“안 보이네. 백호는 보여?”

“저도 아무것도 안 보여요. 하지만 느낌이 너무 좋지 않아요.”

“내려가 봐야 하나.”

“주인님, 저는…….”

“넌 그럼 잠시 들어가 있어.”

“네, 주인님, 죄송해요.”

“괜찮아. 사냥한다고 고생했으니 좀 쉬어.”

“네, 주인님!”

이서우는 백호를 소환 해제하고 지도에 체크한 뒤 대검을 꺼냈다.

아무리 고민을 해 봐야 답이 없다. 뭐가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수밖에.

무턱대고 뛰어내릴 수는 없어, 살짝 점프해 10미터쯤 떨어졌을 때 벽에 대검을 박아 넣었다.

그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벌써 100미터 이상은 내려왔는데 아직도 안 보이네.’

이서우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의 온 신경은 바닥에 가 있었다.

다시 100미터를 더 내려갔다.

여전히 아래는 시커먼 공간만이 차지했다.

서늘한 바람이 이서우를 휘감았다.

더 깊이 내려갈수록 바람은 더욱 차가워졌다.

하지만 200미터를 더 내려갔을 때, 갑자기 온도가 바뀌었다.

뜨거운 공기가 불어닥치더니 이서우를 때렸다.

하지만 이서우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내려갔다.

그렇게 다시 100미터를 더 내려왔을 때, 아래가 보였다.

보이기는 했으나 이서우가 원하는 그림은 아니었다.

“쩝, 물이네.”

물이 깊은지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서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지.’

그는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첨벙!

마나를 담아 헤엄을 치며 내부를 살폈다.

방향을 잡은 이서우는 손과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방향을 잡기는 했는데, 다 거기서 거기 같았다.

마나 덕분에 숨을 꽤 오래 참을 수 있어 아직은 여유로웠지만, 자칫 돌아가는 길을 잃을지도 몰랐다.

이서우는 수시로 왔던 방향을 돌아보며 머릿속에 새겼다.

30분쯤 지났을까.

서서히 숨을 참는 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 무호흡 잠수로 11분 이상을 버티기도 하지만 그들도 수없는 훈련을 할 것이다.

그에 반해 이서우는 오직 마나만 믿고 뛰어들었다.

그러니 30분 정도면 엄청 버틴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러다가 익사라도 하면 백작에게 가서 뭐라 말할까.

지금 이서우는 쪽팔려서라도 출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빛이다!’

희미하지만 멀리 빛이 보였다.

이서우는 미친 듯이 두 다리를 움직이며 쭉쭉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 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푸하!”

밖으로 나오며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이곳은 은막의 지배자로 전직한 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24시간 내에 돌아가지 않을 경우 강력한 함정이 발동합니다.

-함정이 발동되면 은막의 지배자 외에는 피할 수 없습니다.

“헉! 설마 전직 관련 던전이었어? 은막의 지배자라…… 2차 전직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직업인지 알아보고 정보를 팔아도 나쁘지 않겠네.”

이서우는 은막의 지배자라는 말을 메모장에 따로 기록해 두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넉넉히 있지만 은막의 지배자를 위한 공간이라면 굳이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왔던 곳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전직과 관련된 곳이라면 내가 갈 수 있는 곳도 있을지 모르겠는걸.”

지루했던 지도 그리기가 즐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구멍 밖으로 빠져나온 이서우는 다시 백호를 소환하고는 지도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혹시라도 펠렌이 남긴 장소가 있나 싶어 부지런히 비밀 장소를 찾았다.

해가 지기 전까지 미친 듯이 돌아다녔지만 결국 펠렌이 남긴 곳은 찾지 못했다.

몬스터들을 많이 만나 사냥으로 꽤 이득을 본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이 정도라면 전초기지를 세워도 되긴 하겠는데. 문제는 몬스터가 종류와 상관없이 집단행동을 한다는 건데.’

몬스터의 숫자가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았다.

이 정도라면 기사들이 200명만 있어도 충분히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노타우로스처럼 집단적으로 쳐들어오면 답이 없었다.

첫날, 이서우가 알아낸 곳은 반경 30킬로미터까지다.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거리였지만 마나에 대한 깨달음이 더 깊어져 가능했다.

늦은 밤에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한 이서우는 주변이 어지러운 것을 보고 사이먼에게 달려갔다.

“사이먼 자작님!”

“자네 왔는가.”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습격이 있었네. 미노타우로스였어.”

“네?”

“자네가 없는 것을 알았던 것 같네. 다행히 숫자는 많지 않아 사망자는 없지만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이 몇 명 되네.”

“그럴 수가…….”

“힐러들이 고생했네. 미노타우로스 킹을 처치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네.”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아닐세. 자네가 가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나타났네. 자네 동료들도 부상을 당했으니 얼른 가 보게.”

“네, 자작님.”

이서우가 도착했다는 소문이 벌써 났는지, 이서우가 사이먼 자작의 막사에서 나가자 힐러들이 다가왔다.

“오빠!”

“습격이 있었다면서?”

“네. 미노타우로스가 다시 쳐들어왔어요. 다행히 막기는 했는데, 피해가 좀 컸어요.”

“부상은?”

“가벼운 부상을 입기는 했는데, 신전에서 얻은 스킬 덕분에 나을 수 있었어요. 놈들의 피에 독성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독성?”

“네. 진짜 독하던데요? 기사들도 거기에 많이 당했어요.”

“그랬구나. 그래도 치료를 할 수 있었다니 다행이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우두머리가 죽은 것에 대한 복수인 것 같아요.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거든요.”

“이상하네. 몬스터들은 우두머리가 없으면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데.”

“그러니까요. 마법사님도 이상하다고 3마리를 생포하라고 하셨어요.”

“생포?”

“네. 못 들으셨어요?”

“급히 나와서 자세한 이야기는 못 했어. 내일 다시 대화를 해 봐야겠네.”

“그분들이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워낙 대화 소리가 작아서 제대로 듣지는 못했어요.”

“그분들? 확실해?”

“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알아봐야겠다. 잠시만.”

“네, 오빠.”

이서우는 다시 사이먼의 막사로 들어갔다.

“사이먼 자작님.”

“동료들은 만나고 왔는가?”

“네. 독에 중독되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치료가 가능해서 지금은 괜찮았습니다.”

“동료들이 다들 뛰어나구먼. 셋이 유독 독에 심하게 중독되었는데도 빨리 일어난 걸 보면.”

이서우는 멀쩡한 힐러들을 보며 그렇게 심하게 당했나 싶었다.

“한데, 왜 쉬지 않고?”

“미노타우로스를 생포하셨다면서요.”

“아, 참. 급한 마음에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구먼. 그렇지 않아도 자네에게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말이야.”

“생포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놈들의 이번 행동이 아무래도 기존의 몬스터와는 다른 것 같아서 칸달과 상의해서 생포하기로 했다네.”

“녀석들이 이번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나나 칸달은 불가능하지만 그분들이 오시면 가능하네.”

“그분들이라면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그렇다네. 8서클에 오르신 분이니 이놈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네.”

“아!”

이서우는 그제야 몬스터들을 생포한 이유를 알았다.

하지만 왜 3마리일까. 실패를 염려해서?

“정신이 붕괴되는 것을 감안해 3마리를 생포하기는 했는데,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네.”

“이대로 돌아가시겠다는 뜻입니까?”

“워낙 강한 녀석들이어서 계속 묶어 두는 게 쉽지 않다네. 잠에서 깨기만 하면 죽으려고 기를 쓰니 어쩌겠나. 성에가면 포박할 도구가 있으니 어서 가는 수밖에. 게다가 다시 몬스터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낭패라네.”

“그렇겠네요.”

지도 그리는 일에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고 있는데 돌아간다고 하니 아쉬웠다.

물론 이서우의 목적은 펠렌이 남긴 흔적이다.

하지만 홀로 남겠다고 하면 분명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백작님께서는 이곳을 얻고 싶어 하셨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결계가 강화되면 시간적인 여유도 있으니 천천히 해도 될 것 같네. 참, 주변 상황이 어땠는지도 묻지 않았구먼.”

“몬스터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전초기지를 세워도 될 정도로요.”

“하긴, 자네 혼자서 전투를 펼치고도 무사할 정도라면 대규모 집단을 이룬 것은 아니겠군.”

“네. 하지만 역시나 이번 사건의 실마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이놈들이 다시 쳐들어왔을 때, 그럴 거라 생각했네. 이곳의 생태를 단시간 만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의 교만일지도 모르지.”

이서우는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넓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이곳을 하루아침에 파악하려 한다는 것은 만용이었다.

“그럼 출발은 언제 하실 건가요?”

“1시간 후네.”

“밤이기 때문에 움직이겠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네. 내일까지 기다리다가는 분명 무슨 일이 날 것일세. 근데, 자네는 괜찮겠나?”

“네. 전 문제없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먼.”

“그럼 전 준비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보세.”

“네.”

이서우는 막사를 빠져나가며 힐러들과 함께 돌아갈 준비를 했다.

힐러들을 찾은 것은 몬스터와 싸울 때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직접 그 상황을 경험한 것이 아니어서 정보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1시간이 지나고 모두 떠날 준비를 끝냈다.

힐러들의 무던한 노력에 다행히 자기 발로 걷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이 20명이나 되었다.

그리 험한 길이 아니어서 큰 걱정은 없었지만 세상일은 항상 모르는 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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