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레벨이 갑이다
83화
“미노타우로스?”
전에는 오우거와 와이번이 나타났었는데 이번에는 마노타우로스였다.
이곳에서 오래 머문 게 아니어서 특정 몬스터가 나오는 지역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오우거가 나타난 곳에서 미노타우로스라니.
미노타우로스는 오우거보다 더 강한 몬스터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등장하는 건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사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라 처음 온 기사들은 바짝 조였던 긴장감을 슬며시 풀었다.
“멍청하긴! 죽기 싫으면 온 신경을 집중하라!”
사이먼이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오우거도 상대하기 힘들었는데 미노타우로스라니.
그것도 1마리가 아니라 50마리가 넘었다.
‘놈들은 마치 우리가 올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포위하는 형태로 공격하고 있어.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곳이 있지?’
이제 막 머드 맨 지역을 벗어나 오우거를 만났던 지점에 도착했다.
만약 우연히 발견하고 공격을 하는 것이라면 지금처럼 원형을 이룬 채 다가올 수 없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게 바로 이서우가 그들을 미리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미 오기 전부터 숨어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다른 의문이 든다.
‘대체 저놈들은 어떻게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이곳에 올 걸 알았을까.’
바보 멍청이가 아니라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숨어서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 말은, 이서우와 그 일행이 이곳에 올 걸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뜻이 된다.
‘설마, 와이번? 몬스터들끼리 서로 교류를 한다는 말인가? 만약 진짜라면 낭패인데…….’
와이번을 집어넣으면 지금 상황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이곳은 끔찍한 곳이 되고 만다.
‘일단 전투가 끝난 뒤 생각하자.’
미노타우로스가 턱밑까지 다가왔다.
먼저 움직인 것은 이서우였다.
6미터가 넘는 신장에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핼버드를 든 미노타우로스.
인간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미노타우로스는 힘이 강하기로 유명한 몬스터였다.
이서우가 다가가자 핼버드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후우웅!
공기를 가르는 강렬한 소리가 귀를 찢어 놓을 듯 거칠게 들렸다.
속도도 엄청났다.
수십 킬로그램의 거대한 핼버드를 가벼운 장검 휘두르듯 쉽게 사용했다.
이서우는 받아치지 않고 가볍게 아래로 피했다.
하지만 미노타우로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휘두른 핼버드를 입질이 온 낚싯대를 낚아채듯 당겼다.
이서우는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에 크게 도약해 뒤로 회전하며 핼버드를 피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던 미노타우로스가 마치 이서우의 행동을 미리 읽고 있었다는 듯 틈을 주지 않고 공격했다.
이에 이서우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기 위해 마나를 잔뜩 담았다.
162레벨이 되면서 펠렌의 대검도 진화를 했고 마나의 효율성도 좋아져서인지, 푸른 빛이 조금 더 진해져 있었다.
서걱!
강력한 강철의 핼버드가 거짓말처럼 잘려 나갔다.
놀란 미노타우로스는 급히 몸을 뒤로 뺐다.
무기가 없어도 상대할 수 있지만, 이서우의 강함을 직접 목격했기에 피하는 것이다.
무기를 잃은 미노타우로스는 다른 기사를 공격하기 위해 덤벼들었고, 그 빈자리를 다른 미노타우로스가 채웠다.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이, 집단전에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자칫 사망자도 나올 수 있겠는데.’
이서우는 미노타우로스의 거친 공격을 피하면서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무기가 부딪치며 강렬한 파열음이 들리고 있었는데, 팽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50 대 80이다. 게다가 힐러와 마법사까지 있다.
인원수에서 유리한데 적을 밀어붙이지 못한다는 것은 불리하다는 뜻이다.
그때였다.
“익스플로전! 파이어 레인!”
거대한 화염구가 미노타우로스들에게 떨어지며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 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칸달은 파이어 레인으로 추가 대미지를 노렸다.
마나의 소모가 꽤 큰 공격들이지만 미노타우로스는 마법에 약해서 효과는 컸다.
기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약해진 미노타우로스들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위망이 무너지지 않았다.
‘6서클인데도 엄청나네.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는 크지 않겠어.’
이서우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전투에 집중했다.
서걱! 서걱! 서걱!
빠르게 대검을 휘두르며 미노타우로스의 힘줄을 끊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다리와 팔을 주로 노렸는데, 한두 차례로는 힘을 잃지 않아 같은 곳만을 노렸다.
미노타우로스 입장에서는 얄밉게 힘줄만 잘라 대는 이서우가 짜증이 났지만, 워낙 동작이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다.
쿠아아아아!
그 순간 강렬한 외침이 들리며 공기가 진동했다.
그리고 떠오른 메시지.
-하이 레벨 미노타우로스 킹이 분노합니다.
-모든 하이 레벨 미노타우로스의 공격력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모든 하이 레벨 미노타우로스의 방어력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효과는 하이 레벨 미노타우로스 킹이 죽을 때까지 계속 지속됩니다.
‘이런 미친.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이서우는 눈을 돌려 미노타우로스 킹을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보통은 머리 하나 정도는 커서 금세 알아볼 수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신장이 다 비슷비슷했다.
‘응?’
그때 문득 이서우는 유독 머리 하나가 작은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했다.
‘설마…….’
크기가 작은 미노타우로스에 집중하자 그의 힘이 느껴졌다.
한데 다른 미노타우로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저놈이다!’
이서우는 망설이지 않고 땅을 박찼다.
왜 크기가 작은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쿠오오오오!
이서우가 지그재그로 미노타우로스의 공격을 피하며 접근하자 미노타우로스 킹이 분노를 터트리며 핼버드를 들었다.
깡!
묵직한 핼버드와 부딪치자 망치로 쇠를 강하게 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서우와 미노타우로스 킹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씨익.
‘어쭈, 이놈 봐라.’
미노타우로스 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명백한 도발.
이서우는 마나를 잔뜩 실어 폭풍처럼 좌우, 위아래 할 것 없이 휘두르며 몰아쳤다.
겉보기에는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것 같아 보였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 킹의 약점을 정확히 노리며 공격했다.
하지만 적의 방어가 만만치 않았다.
이서우의 그 빠른 공격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막아 내고 있었다.
‘젠장, 장난 아니네.’
힐러들이 혹시라도 알아볼까 봐 마나를 한계까지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80퍼센트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미지를 줄 수 없다면 모든 능력을 끌어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유저들의 눈이 걸렸다.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곳에 오기 전 유저들은 비밀 서약을 했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것이다.
이곳을 벗어나서 그의 정체를 밝히면 되지 않느냐고?
절대 그럴 수 없다.
이서우가 정체를 드러낸 곳은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그제야 이서우는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백호, 소환!’
이서우는 그동안 소환하지 않았던 백호까지 불렀다.
“주인님!”
“그래, 오래 참았다. 신나게 놀아 보자!”
“네, 주인님!”
백호는 그동안 소환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떤 불만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이서우가 불러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기색이었다.
이서우가 100퍼센트의 힘을 발휘하자 미노타우로스 킹은 크게 당황했다.
거기다 백호까지 가세하니 죽을 맛이었다.
“전장의 지배자?”
“저건 분명…….”
“어머, 오빠가 전장의 지배자였어?”
중앙에서 힐을 하던 힐러들은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이벤트 때 전장의 지배자가 활약하는 동영상을 수없이 보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아 지금도 보고 있었다.
그러니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이서우의 모습이 전장의 지배자와 똑같다는 것을.
“힐이 부족합니다!”
“네? 아, 네. 죄송해요.”
보통은 힐을 달라는 소리를 싫어하지만 지금은 정신을 놓고 이서우를 보고 있었기에 얼른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오빠가 전장의 지배자였다니. 끝나면 꼭 물어봐야겠어.’
‘정말 평범해 보였는데, 저분이 전장의 지배자였다니. 이번에 잘 보여서 저분의 마음을 얻고 말 거야!’
‘전장의 지배자…….’
조현아는 순수하게 기뻐했지만 권안나는 흑심을 품었다.
하지만 두 사람과 달리 이민아는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놀란 것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이서우는 미노타우로스 킹을 열심히 몰아붙였다.
마음껏 힘을 사용하니 천하의 미노타우로스 킹이라도 이서우에게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벌써 생명력이 절반이나 내려갔다.
“백호야, 조심해.”
“네, 주인님.”
네임드 몬스터들이 위기에 처하면 강력한 공격을 한다는 걸 알기에 주의를 주었다.
열심히 몰아치며 큰 공격에 대비하는데 갑자기 미노타우로스 킹의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멀리 벗어나기 시작했다.
“온다!”
이서우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금세 알아차리고 마나에 집중했다.
쿠오오오오오!
천둥소리와 같은 함성과 함께 미노타우로스 킹의 덩치가 커졌다.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7미터에 육박할 정도로 몸이 불어난 미노타우로스 킹의 머리에서 뿔이 길게 자라났다.
원래 가진 뿔은 그리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1미터 이상 자라났다.
미노타우로스 킹이 핼버드를 이서우에게 던졌다.
팽이처럼 회전시켜 부메랑처럼 던지자, 마치 헬리콥터가 이륙하는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생겨났다.
이서우는 핼버드를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피했다.
속도가 워낙 빨리 근소한 차이로 피했는데, 핼버드가 방향을 바꾸어 이서우를 집요하게 쫓았다.
소나기는 피하자는 생각으로 뒤로 크게 벗어나려는데 갑자기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
이서우가 미노타우로스 킹을 힐끗 보았다.
“저런 미친…….”
미노타우로스 킹이 늘어난 양쪽 뿔을 잡더니 부러뜨렸다.
그러고는 뿔에 무슨 주문이라도 외듯 중얼거린 뒤 이서우에게 던졌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팟!
2개의 뿔이 총알처럼 이서우에게 날아오더니 갑자기 파편이 되어 비산했다.
마치 파편형 수류탄처럼 수천 조각의 파편들이 이서우를 덮쳤다.
피할 곳이 없었다.
“주인님!”
핼버드를 피한다고 멀리 떨어져 있던 백호가 처절하게 이서우를 불렀다.
하지만 백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서우의 눈이 빛났다.
팅팅팅팅팅팅팅팅팅팅팅팅팅팅!
수천 조각의 파편이 프라이팬에서 튀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드 배리어?”
심상치 않은 기운에 사이먼이 이서우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그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데, 거짓말처럼 이서우의 몸에서 푸른 빛이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빛이 수천 조각의 파편을 모두 막아 내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기술은, 사이먼이 알기에는 소드 배리어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던 소드 배리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런 곳에서 마나 소드 배리어를 보게 될 줄이야.”
언제 다가왔는지 칸달이 사이먼의 곁에 서 있었다.
“저게 정말 마나 소드 배리어란 말이야?”
“그래. 진정한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이지.”
“멋지군.”
“그래, 멋지지.”
마나 소드는 사이먼도 펼칠 수 있다.
소드 마스터가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유지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공격이 들어갈 때 타이밍을 잘 맞추면 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소드 배리어(마법사는 마나 배리어라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도 사이먼이라면 펼칠 수 있다.
하지만 마나를 많이 주입할 수 없고, 아주 잠깐 동안만 유지가 가능하다.
전투에서 그 찰나의 시간조차도 승패를 좌우하니 크게 도움이 되지만 미노타우로스 킹이 펼친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천 조각이나 되는 강력한 파편을 모두 막으려면 마나를 잔뜩 주입해야 하는데, 그것을 배리어 형식으로 만든다?
사이먼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능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소드 마스터의 끝자락에 다다른 사람. 진정한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사람이라면 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을 이서우가 연출하고 있었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서우는 기세를 몰아쳐 미노타우로스 킹에게 최후를 선물했다.
-하이 레벨 미노타우로스 킹을 처치하셨습니다.
-1,284,00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7미노타우로스 킹의 갑옷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이 레벨 미노타우로스 킹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이 레벨 미노타우로스 킹의 뼈를 획득하셨습니다.
-하이 레벨 미노타우로스 킹의 가죽을 획득하셨습니다.
-23골드 55실버를 획득하셨습니다.
미노타우로스 킹이 죽자 살아남은 미노타우로스들은 겁에 질려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
사이먼과 칸달, 힐러들은 이서우에게 다가갔다.
한데, 이서우는 우두커니 서서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