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76화 (76/341)

# 76

레벨이 갑이다

76화

“유 대장님, 이야기 좀 합시다.”

“말씀하세요.”

창고를 대충 살피던 유세나는 아직 보지 않은 마지막 창고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NPC들을 약탈하고 얻은 아이템이라면 어차피 영주에게 신고해야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거리를 두려 했다.

만약 이를 신고하지 않고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다면 산적들처럼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었다.

몬스터들로부터 얻은 아이템은 개인이 사용해도 상관없지만, 이 많은 물건 중에 그걸 구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신고를 해서 포상금이라도 얻는 게 나았다.

용병으로 지내 왔기에 유세나는 누구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이었다.

“이거 우리가 가집시다.”

“차 대장님, 그러다가 들키면 용병 생활 접을 수도 있다는 거 아시죠?”

“이 정도 양이면 솔직히 그 정도 페널티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잡동사니만 팔아도 100억은 넘는 규모입니다. 이걸 포기하자고요?”

유세나와 달리 차돌풍은 일생일대의 기회라 여겼다.

그도 최근에는 수익이 많아져 한 달에 3~4천만 원 정도 챙길 수 있었다.

레벨이 증가하면 더 많은 수익이 생기겠지만 용병대가 커지면 운영비로 소모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용병대장이 강해야 사람들도 모이기 때문에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이 재투자에 들어간다.

그래서 실제 그가 가져가는 돈은 500만 원 내외였다.

매달 정산을 할 때마다 차돌풍은 회의감이 들었다.

고생은 누구보다 많이 하는데 정작 수익이 늘지 않으니 답답한 것이다.

잘 관리하면 그가 가져갈 순수 이익이 월 1억 원까지 되겠지만, 그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할까.

이벤트라도 자주 있으면 희망이라도 걸어 볼 텐데, 큰 규모의 행사를 자주 할 리가 없었다.

노력만 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차돌풍은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매일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도 지쳤다.

남자답게, 호방하게 게임을 즐기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갈수록 게임이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세나였다. 그녀를 설득해야만 일이 쉽다.

“전 게임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쪽이 좋아요.”

“어차피 유 대장님도 돈이 목적이잖아요.”

“물론 저도 돈 좋아해요. 솔직히 돈 싫다는 사람 없죠. 하지만 전 제 손으로 번 돈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순간 욕심에 눈이 멀었네요. 가서 창고 처리를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죠.”

“네, 그래요.”

유세나는 차돌풍이 마음을 돌리자 가볍게 웃고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푹!

“으읔, 왜…….”

“고고한 척은 혼자 다 하는군. 어차피 너도 돈이 목적이잖아. 그러면 그냥 주는 대로 받아 처먹을 것이지 말이 많아. 뭐, 잘됐지. 네 몫까지 내가 다 가질 수 있으니. 잘 가라고.”

차돌풍은 검을 비틀어 그녀의 장기를 헤집어 놓았다.

그의 손짓마다 크리티컬 대미지가 터지니, 그녀는 대응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뒤늦게 발견한 조현아가 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꺄아아악!”

“다들 유세나 용병대를 쳐라! 저년이 우리를 배신하고 물건을 독식하려 했다!”

차돌풍의 거짓말에 용병대는 분노를 터트렸다.

이 모든 걸 다 자기들끼리 가지겠다니.

보너스 든든하게 가져가겠구나 싶었던 용병들은 독이 바짝 오른 얼굴로 유세나 용병대를 공격했다.

차돌풍은 멀리서 소리를 빽빽 지르는 조현아에게 다가갔다.

힐러를 죽이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워서, 가볍게 검을 찔러 넣었다.

챙!

“네놈은!”

차돌풍의 검을 막은 것은 바로 이서우였다.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마나를 실어 전력으로 달려왔다.

아슬아슬하게 차돌풍의 검을 막아 냈지만 다른 용병대의 검은 그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그 결과는 곳곳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을 살리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해 차돌풍에게 집중했다.

“왜?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나 보지?”

“시끄럽다, 이놈! 죽어라!”

이놈 저놈 하는 놈한테 예의를 차릴 만큼 이서우는 착하지 않았다.

차돌풍은 자신의 대업을 방해받은 것이 싫었는지 검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하지만 먼저 행동한 것은 이서우였다.

그가 대검에 마나를 싣자 차돌풍의 검이 튕겨 나갔다.

최진수보다 레벨도 낮고 장비도 좋지 않아, 그의 검을 뿌리치는 것은 쉬웠다.

서걱!

이서우의 대검이 차돌풍의 목을 잘라 버렸다.

-차돌풍 용병대의 차돌풍 대장을 처치하셨습니다.

-119,22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12오우거 킹의 장검을 획득하셨습니다.

-차돌풍 용병대와의 적대치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앞으로 차돌풍 용병대는 당신을 적대시하게 됩니다.

차돌풍이 죽자 그를 돕기 위해 다가온 용병대원들이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유세나의 죽음을 목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의 용병대원들을 손쉽게 처리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 상황이 되었다.

이서우는 그들을 남김없이 처리했다.

“괜찮으세요?”

“네. 전 괜찮습니다.”

“그래도 힐 받으세요. 그레이트 힐!”

이서우가 힐 안 해도 된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조현아는 이미 꽤 강력한 힐을 시전했다.

같은 파티가 아니어서 이서우가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졌다.

“어떻게 차 대장이 이런 짓을……. 서우 님, 구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실례인 줄 알지만 전 잠시 종료했다가 다시 접속할게요. 언니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요.”

“어차피 창고를 처리하려면 하루 정도는 머물러야 하니 다녀오세요.”

“네. 그럼 부탁해요.”

안전지대가 아닌 곳에서 접속을 종료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지만 창고 처리 문제가 있어 이곳에서 경비병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종료하자 프랑드가 말했다.

“서우 님,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의뢰를 받고 한 일일 뿐인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전 서우 님 덕분에 아주 큰 것을 얻었습니다.”

“전 드린 게 없는데요?”

“어쨌든 정말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어서 영주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참, 아는 사람이 있으니 제가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인이 있으십니까?”

“네. 같은 생산직인데, 대장장입니다. 영주성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죠. 영상을 담아서 보내면 믿어 줄 겁니다.”

“잘됐네요.”

이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프랑드는 서둘러 귓말을 보냈다.

그리고 그동안 이서우는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12영웅 등급이네. 이것도 꽤 쏠쏠하겠네. 나머지는 희귀라서 그다지 큰돈은 안 되겠어.’

고레벨이 될수록 희귀 아이템의 가격도 떨어졌다. 특히 이벤트 이후에는 거의 헐값에 판매되고 있었다.

하지만 레벨이 높아질수록 강력한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 영웅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많이 찾았다.

수요가 폭발하니 가격도 폭등했다.

워낙 가격이 높아지니 던전이나 레이드 몬스터만 전문적으로 처치하는 팀도 있었다.

드롭률은 떨어지지만 하나라도 얻으면 며칠 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으니 유저들에게 인기였다.

“서우 님, 다행히 영주님께서 사람을 보낸다고 합니다. 물건이 많아서 보내야 할 인원도 많으니 하루 정도는 걸린다고 하네요.”

“어차피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으니 오늘은 이곳에서 쉬도록 하죠.”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야영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땔감을 가져오죠.”

“아직 날도 밝은데…….”

“차가 당겨서요. 상인이시니 텐트는 가지고 다니실 테지요?”

“네.”

“그럼 금세 다녀오겠습니다.”

“네.”

땔감이야 주변에 워낙 많아서 가져오는 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텐트도 원터치여서 인벤토리에서 꺼내면 바로 설치가 가능했다.

순식간에 모닥불이 피어올랐고, 잠자리도 마련되었다.

아직 날이 어둡지 않았지만 차라도 마실 생각에 불을 피운 것이었다.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마시려고 넣어 놨는데, 오늘 따야겠네요.”

“귀한 것 같은데요?”

“제 목숨보다 귀하지는 않죠. 게다가 서우 님께 큰 은혜도 입었고요.”

“감사 인사로 충분합니다.”

이서우의 겸손한 모습에 프랑드는 크게 감동했다.

그의 행동에, 그동안 자신이 너무 이익에만 눈이 멀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드는 미소를 짓고는 잔을 건넸다.

이서우는 그의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병마개가 뽁 소리를 내며 분리되었다.

프랑드는 이서우의 잔을 먼저 채웠다. 그리고 자신의 잔도 채운 뒤 조심스럽게 병을 내려놓았다.

코끝으로 진한 과일 향기가 파고들었다.

이서우는 상큼한 향기에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향기가 상당히 좋네요.”

“맛은 더 좋을 겁니다. 건배하시죠.”

팅.

유리잔이 부딪쳤다.

이서우는 잔 속에 담긴 술을 빙빙 돌리며 진한 향을 다시 한 번 더 음미했다.

가볍게 한 모금 마시자 입안으로 쌉싸래한 맛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맛은 이내 살살 녹아 없어지더니 달콤한 맛으로 변했다.

이서우는 쓴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프랑드가 건넨 술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어느새 술잔이 비어 버렸다.

프랑드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잔을 채워 주었다.

한참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조현아가 접속했다.

“어머, 저만 빼놓고 파티를 하고 계셨네요?”

“그나저나 이름도 모르네요.”

“서우 님은 알고 계세요.”

“조현아 씨라고 들었습니다만…….”

“네, 맞아요. 직업은 힐러고요.”

조현아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미인은 아니지만 귀여운 이미지여서,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사는 그런 유형이었다.

“갔던 일은 잘되셨나요?”

프랑드는 잔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일단 한 잔 마시고 말씀드릴게요.”

“네.”

프랑드는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술을 따라 주었다.

보통은 향도 느끼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곤 하는데, 조현아는 그냥 원 샷으로 털어 넣어 버렸다.

“와, 이거 맛이 독특하네요.”

“꽤 인기가 있는 녀석이죠.”

“그럴 것 같아요. 여성 취향인 것 같은데요?”

“부정할 수 없네요.”

그리 독하지 않고 단맛까지 갖추고 있어 여성들이 많이 찾는 와인이었다.

프랑드가 잔을 다시 채워 주자 그녀가 입을 뗐다.

“언니와 통화를 했는데, 일단 증거가 없어서 용병대를 해산하는 수준까지는 응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영상을 찍지 못해 그게 아쉬웠는데, 안타깝네요.”

“하지만 차돌풍에게 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몰아붙일 수는 있을 거예요.”

“그건 큰 도움이 안 되지 않나요?”

“전투 메시지만 봐도 결투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테니 충분히 몰아세울 수 있어요. 용병 사이에 한번 소문이 퍼지면 회복하기 힘들거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프랑드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용병도 신뢰를 바탕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한데 결투의 흔적도 없는데 다른 용병을 죽였다면 어떻게 될까?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니 그들을 궁지로 몰아붙일 수는 없겠지만, 신뢰에 흠집이 생기게 된다.

용병에는 가장 큰 타격이기 때문에 유세나는 우선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참, 창고 처리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요?”

“아, 그 문제는 잘 처리됐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포상금이 상당하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명성도 꽤 올라갈 겁니다.”

“어머, 잘됐네요. 포상금 받으면 죽은 동료들에게 나눠 줘야겠어요. 혼자만 살아남아서 미안했거든요.”

조현아에게서 진심이 느껴지자 이서우도 프랑드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많이 받을수록 좋겠네요.”

“프랑드 씨가 잘 흥정해 봐요.”

“흥정 하면 또 프랑드죠!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아주 제대로 받아 내겠습니다!”

“호호호, 든든한데요?”

이서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프랑드를 응원했다.

상대를 속이면서 받아 내는 돈이 아니라 정당하게 받는 것이라면 이서우도 환영이었다.

“그나저나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네요.”

“심각한 문제라뇨?”

프랑드도 조현아도 걱정이 담긴 얼굴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차돌풍을 한 수에 처치한 그가 심각하다고 할 정도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저 많은 짐을 셋이서 옮겨야 하는 건 아니죠?”

“어머,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프랑드 님?”

“아, 이런! 제가 큰 실수를 할 뻔했네요. 얼른 내일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해야겠어요. 이왕이면 경비병들과 같이 오는 게 안전하니까요.”

무슨 큰일인가 싶어 잔뜩 긴장했는데, 이서우가 가리킨 방향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

거기에는 프랑드의 마차가 있었는데, 상인 NPC들도 다 떠난 마당이어서 추가 인원이 반드시 필요했다.

프랑드는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다시 귓말을 보내 조율을 끝냈다.

* * *

하루를 푹 쉰 일행은 정오가 되기 전에 경비병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창고를 살펴본 경비병들은 그 많은 양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애초에 프랑드의 물건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싹 쓸어 담아 아고나 마을로 가져갔다.

포상은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지급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서우는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이후의 여정은 순탄했다.

몬스터들이 몰려왔지만 비교적 쉽게 마무리했다.

이번에는 작은 마을에 물건을 맡기지 않고, 서로 번갈아 가며 접속을 종료했다.

이를 예상하고 프랑드가 100명을 모집했기에 여유가 있었다.

다음 접속에는 유세나와 그의 용병대가 접속해서 여정을 계속 이어 갔다.

그리고 드디어 백작 영지 도착을 하루 앞둔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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