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레벨이 갑이다
46화
“딱히 변한 건 없네.”
뱀파이어 지역으로 다시 와서 느낀 첫 감상이었다.
뱀파이어 킹을 생포할 당시에는 포획을 한 채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러워 이곳을 살필 생각은 못 했었다.
그때는 킹을 잡아가는 것 외에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으니 그런 것이다.
어쨌든 이서우는 퀘스틀 위해 다시 한 번 이곳에 왔다.
이서우는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당당하게 뱀파이어 지역으로 들어갔다.
뱀파이어들은 이서우를 알아보고 당장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드디어 만났구나.”
“어라, 넌?”
뱀파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올 것은 이미 예상을 했다.
지난번에 당한 것도 있으니 아마 총동원되었으리라.
하지만 뱀파이어 킹이 없는 상황이니 몇백 마리가 와도 상관없었다.
한데, 예상치 못한 인물이 있었다.
“반가워.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화를 감추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낸 채 웃는 모습으로 이서우와 마주 선 사람은 바로 유선중이었다.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이서우는 그다지 대화의 의지가 없는지 대검부터 뽑아 들었다.
“내 무기를 팔아서 장비를 맞춘 것 같은데, 오늘 다 토해 내야 할 것이다. 놈을 잡아라!”
유선중은 이서우가 60레벨 희귀 장비를 착용했다는 것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그 아이템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게 되니 분노는 더욱 커졌다.
뱀파이어를 모두 동원했기에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300마리의 뱀파이어가 이서우를 잡기 위해 덤벼들었다.
이서우는 빠르게 전투 보조 아이템들을 사용하고는 뱀파이어들을 차근차근 도륙했다.
‘60레벨 아이템으로 어떻게 저렇게 싸우지?’
박쥐로 변해 허공에서 전투 과정을 자세히 살피던 유선중은 이서우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그 속에 담긴 강한 면모를 보며 적잖게 놀랐다.
60레벨 장비를 착용하고 80레벨대의 몬스터들과 싸운다는 것 자체도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데 300 대 1의 싸움에서도 여유로웠고, 유리한 것을 넘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30마리의 뱀파이어들이 죽어 나갔다.
300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고 해도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다.
단지 빈틈을 주지 않고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그것도 이서우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대검이 한 번 허공을 가를 때마다 뱀파이어가 죽어 나갔다.
피의 영역을 펼쳤지만 이서우의 강함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뱀파이어 50마리가 사라졌을 즈음에는 유선중의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뱀파이어의 숫자가 얼마가 있든 일반 몬스터로는 도저히 이서우에게 대미지를 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선중이 뱀파이어들을 물리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마나가 떨어지길 기다려야 해.’
처음 만났을 때 40레벨 장비를 착용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60레벨을 차고 왔다.
그 말은 이서우의 레벨이 높다는 뜻이다.
단기간에 레벨을 많이 올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설마 비공식 랭커인가. 60레벨 아이템으로 저 정도 실력을 내려면 최소 120레벨은 돼야 해. 그렇다면 300마리를 다 처치해도 여기서는 업을 할 수 없어.’
레벨이 낮은 몬스터는 경험치가 정말 눈곱만큼 오른다.
하지만 아무리 고레벨 유저라도 몬스터를 처치하려면 스킬을 써야 한다.
유선중이 기대하는 게 바로 그 점이었다.
하지만 유선중의 이런 추측은 일반적인 경우에나 맞는 것이지 이서우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었다.
한 가지 제대로 짚은 것은 있었다.
‘이젠 300마리를 잡아도 업이 안 되네. 이왕이면 20마리쯤 더 데려오지 소심하게.’
레벨 업이 코앞이라 아쉬웠지만 더 이상 몬스터가 없었다.
“더 없어?”
“마나가 바닥을 치고 있는데도 큰소리를 치는군.”
어차피 뱀파이어는 시간만 조금 투자하면 금세 만들어진다.
자신이나 대상자 중 1명의 레벨만 높아도 뱀파이어가 됐을 때 꽤 강한 상태에서 시작하기에 유선중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서우를 붙잡아 인벤토리를 탈탈 턴 다음 죽이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얼마나 남았는지 한번 확인해 봐.”
“그렇지 않아도 테스트해 볼 참이다. 피의 저주!”
유선중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손끝이 붉게 빛났다.
그것이 끝이었다. 손끝에서 뭔가 형상화되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곧 메시지가 들렸다.
-피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피의 영역 안에서 피의 저주에 걸리게 되면 더 큰 폭으로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50퍼센트 하락합니다.
이서우는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50퍼센트가 떨어져도 과거 유선중을 상대할 때보다도 강한 능력치지만, 이미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상태에서 줄어든 것이기에 피부로 더 크게 와닿았다.
“그걸로 끝이라 생각했느냐? 피의 권능!”
-뱀파이어 킹이 피의 권능을 시전했습니다.
-피의 영역 안에서는 피의 권능의 능력이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뱀파이어 킹의 모든 능력치가 3배 상승합니다.
‘미친. 사기 스킬 아냐?’
뱀파이어 킹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의 스킬이어서 이전에는 유선중도 쓸 수가 없었지만, 전직을 하고 상황이 바뀌었다.
유선중이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유선중의 날카로운 손톱이 번뜩였다.
이서우는 다급히 대검을 들어 유선중을 공격했다.
사사삭!
“고작 그거냐?”
유선중은 너무 쉽게 이서우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이서우의 능력이 그대로 살아 있다 해도 따라가기 벅찬 속도였다.
유선중은 뱀파이어 킹으로 전직하면서 모든 것을 투자해 능력치 향상에 힘을 쏟았다.
전임 뱀파이어 킹보다 거의 2배 가까이 강해진 상태였다.
게다가 몬스터의 경우는 생명력이 빠지는 비율로 필살기를 쓰지만, 유선중은 몰아서 모든 기술을 쓸 수 있기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이서우는 공격을 하지 않고 유선중의 동태를 유심히 살폈다.
스피드 차이가 많이 나도 방어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큰 착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퍽!
이서우의 배에 유선중의 주먹이 꽂혔다.
크게 날아가 땅에 처박힌 이서우는 재빨리 일어났다.
생명력이 워낙 높아서 10퍼센트 정도밖에 빠져나가지 않았지만, 계속 공격을 당한다면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스피드를 따라갈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보너스 스텟 135개를 민첩력에 투자하시겠습니까?
‘그래!’
-민첩력이 300에 도달했습니다.
-민첩력에 영향을 받는 모든 스킬의 능력이 큰 폭으로 향상됩니다.
-삑! 민첩력에 영향을 받는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동과 관련된 모든 움직임이 큰 폭으로 향상됩니다. 단, 그에 따른 마나 소모가 동반됩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소모되는 마나도 커집니다.
-밸런스 숙련도가 높을수록 마나 소모는 줄어듭니다.
-단, 순수 민첩력 스텟이 300이 되기 전까지는 원래 낼 수 있는 힘의 70퍼센트만 적용이 됩니다.
‘좋았어! 나머지 7개도 올린다!’
스피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민첩력의 상승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올려서는 안 될 것 같아 300에 맞춘 것인데, 반가운 메시지가 떴다.
이서우는 순수 스텟을 300으로 맞추었다.
묵직했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순수 민첩력 스텟이 300에 도달했습니다.
-스텟 1당 증가하는 능력치 향상 폭이 이전보다 2배 상승합니다.
능력 향상이 크게 이루어진다더니 효과가 확실히 나타났다.
유선중은 이서우가 뭔가 수를 쓰려는 것을 알고 공격을 이어 갔다.
사사삭!
“헉! 어떻게…….”
이번에는 이서우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유선중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피의 영역에 피의 저주까지 받았는데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유선중은 크게 놀랐다.
필승이라고 자신했는데, 이렇게 되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자칫 실수라도 하면 패배였다.
하지만 유선중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공격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적의 공격력이 50퍼센트 하락했고, 자신의 능력은 3배가 상승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빨라진 스피드를 이용해 강공을 펼쳤다.
스피드가 빨라질수록 힘이 강해진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대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훅훅훅훅훅!
“하하하하하! 간지럽구나, 간지러워.”
전력을 다한 공격이 모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너무 부족해 의미 있는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유선중의 디버프 때문에 생명력을 겨우 5퍼센트밖에 빼 놓지 못했다.
공격이 통하지 않자 이서우는 얼른 뒤로 빠졌다.
‘묵혀 뒀던 건데, 여기서 다 써야 하나.’
남은 보너스 스텟은 85.
근력 79개만 올리면 300에 도달한다.
순수 스텟은 아니지만 100일 때와는 달리 70퍼센트까지 낼 수 있었다.
이서우는 망설이지 않고 근력 스텟을 올렸다.
-근력 스텟이 300에 도달했습니다.
-근력에 영향을 받는 모든 스킬의 능력이 큰 폭으로 향상됩니다.
-삑! 근력에 영향을 받는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격과 관련된 모든 동작에 강력한 힘이 부여됩니다.
-공격력은 소모되는 마나에 비례합니다.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기에 마나 소모도 모든 무기에 적용됩니다.
-근력 스텟이 증가하면 소모되는 마나도 증가합니다. 하지만 마나의 소모가 클수록 대미지가 커집니다.
-밸런스 숙련도가 높을수록 마나 소모는 줄어듭니다.
-단, 순수 근력 스텟이 300이 되기 전까지는 원래 낼 수 있는 힘의 70퍼센트만 적용이 됩니다.
순수 스텟은 300까지 올릴 보너스 스텟이 없어 멈추었다.
하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공격력 자체는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지만 육체 자체가 변한 것이기에 월등히 강한 공격이 가능했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푹!
“헉! 이, 이놈……”
한 번의 공격으로 20퍼센트의 피가 빠져나가자 유선중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떻게 순식간에 공격력이 이렇게 많이 상승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바보처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유선중은 서둘러 박쥐로 변한 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찔린 곳은 회복력이 강해 빠르게 아물고 있었지만 다시 공격받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버려서 쉽게 지상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안 내려온다면 내가 갈 수밖에.”
꽤 높이 날아올라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유선중의 판단은 한참이나 빗나갔다.
이서우는 힘과 스피드 모두 이전보다 강해져 20미터 정도 뛰어오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서걱!
날개가 잘려 나갔다.
동시에 유선중의 생명력도 30퍼센트가 더 빠졌다.
파닥파닥.
한쪽 날개로 날아 보려 했지만 균형이 잡힐 턱이 없었다.
결국 유선중은 뱀파이어로 다시 변신했다.
쿵!
균형을 잃고 바닥에 볼썽사납게 처박혔다.
이서우는 질질 끌 것 없이 유선중의 심장에 대검을 박아 넣었다.
-뱀파이어 킹 유선중을 처치했습니다.
-28,80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뱀파이어 킹의 권갑을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 킹의 귀고리를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 킹의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 킹의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피의 영역의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피의 저주의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아차,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놈의 거처에 반지가 있어야 할 텐데.’
아이템을 2개나 얻어서 미소가 절로 번졌지만, 급한 것은 반지였다.
반지의 유무에 따라 5레벨이 왔다 갔다 한다.
이서우는 뱀파이어 킹의 성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