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레벨이 갑이다
35화
-앞으로 형님이라고 불러라.
-난 계속 부른다고 한 적 없다.
-하여튼 잔머리는. 얼른 열렙이나 해라.
-야, 고렙 되면 쩔이나 좀 해 줘.
-레벨이나 올리고 나서 이야기하셔요.
-알았다, 알았어. 주말 내내 해서 따라잡아 주마.
-난 그럼 노냐?
이서우가 승부욕을 살살 자극하자 류종명은 사냥 간다고 큰소리치더니 귓말을 종료했다.
이어 박민수에게서 귓말이 왔다.
-야, 너 또 종명이 승부욕 자극했냐?
-너도 같이 얼른 업해. 2차 전직 되면 만나기 편하다면서?
-여튼 너 때매 종명이가 이번 주말은 풀로 뛰자고 난리다.
-광렙 혀.
-넌 좀 살살 해라.
-더 빡씨게 할 건데?
-징한 놈. 여튼 알았다.
이제 두 사람은 시간만 나면 뉴 월드를 할 것이다.
한참이나 늦게 시작한 이서우가 자신들의 레벨을 따라잡았으니 안 할 수가 없다.
이서우는 습관적으로 마나 물약 제조를 걸고 우편함을 살폈다.
‘오오, 대박. 역시.’
하급 마나가 4골드씩에 싹 팔려 있었다.
뱀파이어와의 전투에서 사용했을 때, 확실히 최하급보다는 효과가 좋았다.
눈에 띌 정도여서 고레벨에게도 꽤 도움이 되었다.
100레벨 이상만 되어도 4골드는 그리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게다가 효과가 최하급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30골드밖에 남지 않았던 인벤토리에 2,400골드가 다시 들어왔다.
‘이거, 진짜 약장수로 나가?’
1천 개를 만드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재료비 5골드를 투자하고 2,400골드를 벌 수 있으면 부자가 되는 것도 쉽다.
“그래, 욕심부리지 말자. 길게 봐야지.”
이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물건이 한 번에 많이 풀리면 가격이 떨어진다.
사는 사람이 꽤 많겠지만, 대부분 고레벨 유저들일 것이다.
더군다나 제작하는 동안에는 사냥을 할 수 없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이서우에게 불리했다.
차라리 퀘스트와 레벨 업을 병행하면서 제조 기술 레벨을 올려 더 높은 등급을 만드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이서우는 오랜만에 캐릭터 창을 열었다.
이름 : 이서우
하이 레벨 : 56
명성 : 750
*하이 레벨 특성 스킬.
-약초 바르기
생명력 : 22,620(+1,110)
마나 : 17,800
공격력 : 2,487
물리 방어력 : 1,847
마법 방어력 : 1,490
근력 : 200(+54)
민첩력 : 148(+7)
체력 : 171(+28)
지력 : 50
정신력 : 100
관찰력 : 33
보너스 포인트 : 82
‘약초 바르기. 이건 제조 레벨이 더 올라야 하나, 아니면 따로 기술을 익혀야 하나.’
하이 레벨 특성 스킬이 새롭게 열렸는데, 아직 정확히 어떻게 활용이 가능한지 알 수가 없었다.
추측은 충분히 가능했다.
약초를 이용해 사냥에 도움이 되는 물약을 만들어 바르면 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치고 빠지기를 해야 하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는데.”
아직 수백 마리의 뱀파이어들이 있다.
지금 있는 마나로 처치할 수 있는 몬스터는 120~130마리 정도다.
정신력 스텟이 100이 되고 테스트를 안 해 봐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높게 잡아도 150마리가 한계였다.
이서우는 밸런스 숙련도를 확인했다.
-밸런스 숙련도 : 1레벨 95퍼센트
‘그래도 꽤 많이 증가했네. 숙련도에 따라 마나 소모도 감소될 테니 일단 100마리는 넘게 잡겠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무기만이라도 바꾸고 가자.’
워낙 숫자가 많아서 혹시 모를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이서우는 무기만이라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거래 중개소에서 창을 열어 50레벨 대검을 검색하자 목록이 쭉 떴다.
‘허접한 영웅 무기가 1천 골드가 넘네. 차고 있는 거 팔면 중간급 되는 건 맞출 수 있겠어.’
이서우는 옵션 2개짜리 영웅 무기를 구입했다.
캐릭터 창을 열어 확인하니 공격력 변화가 엄청났다.
공격력이 500 정도 증가했고, 스텟도 3개가 늘었다.
거기다 뱀파이어를 상대할 때 유리한 빛 속성 추가 대미지도 있어 만족스러웠다.
마침 제조를 걸어 둔 마나 물약이 완성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3천 개쯤 제조하고 다 팔아서 장비를 싹 교체하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마나 물약을 거래 중개소에 다시 올리고 북문으로 갔다.
중간에 마주치는 몬스터들을 무시하고 속도를 높였다.
빠르게 도착한 이서우는 주변 상황부터 살폈다.
‘낮 시간이라 그런지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없네.’
이서우는 조심스럽게 뱀파이어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쭈, 햇볕이 드는 곳에서 싸우면 불리하니 이런 장치를 해 뒀네.’
높은 건물이나 나무도 없는데 그늘이 생긴다는 건 특별한 장치를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가득 찬 마나를 보며 자신감 있게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입구 쪽에 있는 건물부터 하나씩 격파해 나갔다.
뱀파이어들은 낮에 주로 잠을 청하는데 뜬금없이 침입자가 나타나니 당황했다.
“또 네놈이구나! 죽여라!”
뱀파이어들이 벌 떼처럼 몰려왔다.
적대감이 워낙 높아져 있어 이서우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분노 게이지는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들을 유인해 대미지 증가가 없는 곳에서 싸웠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뱀파이어들은 머릿수만 믿고 무턱대고 달려들었다.
이서우는 노련한 움직임으로 뱀파이어들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뱀파이어들도 이미 이서우가 다시 올 것을 알고 준비한 것이 있었다.
“이번에는 어림없을 것이다. 모두 준비하라!”
고레벨 뱀파이어의 명령에 다른 뱀파이어들이 박쥐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이서우를 에워쌌다.
많은 무리와 전투 중이어서 미처 피하지 못했다.
“피의 영역을 펼쳐라!”
고레벨 뱀파이어의 말에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다른 뱀파이어들이 뭔가를 던졌다.
곧 바닥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피의 영역’ 안에 갇혔습니다.
-피의 영역에서는 뱀파이어의 공격력이 20퍼센트 상승합니다. 밤일 때는 추가로 30퍼센트 더 강해집니다.
-모든 뱀파이어들을 처치해야만 피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아주 단단히 준비를 했나 보네.’
이미 이서우를 둘러싼 뱀파이어가 200마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100마리씩 처치하면서 치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서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첫판부터 이런 걸 써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이서우는 당황하지 않고 뱀파이어들을 상대해 나갔다.
무기를 바꾸면서 능력치가 꽤 올라갔지만 지금 가진 마나로는 200마리를 모두 처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서우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대체 뭘 믿고 그런 것일까.
이서우가 자신감을 가지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뱀파이어들의 공격력이 밤보다는 조금 떨어진다는 것이다.
피의 영역에 있어도 밤보다는 10퍼센트가 처진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밸런스 숙련도 레벨이 상승합니다.
-마나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50마리쯤 잡았을 때였다.
반가운 메시지가 들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서우는 마나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레벨 업을 통해 마나를 온전히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고 60마리를 조금 넘게 잡았을 때, 또다시 레벨 업 메시지가 떴다.
남은 숫자는 90마리.
이서우는 모든 신경을 집중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몇 시간을 그렇게 사냥을 하니 점점 움직임이 노련해졌다.
80마리 정도를 잡았을 때 다시 레벨 업 소식을 들었고, 가볍게 나머지 10마리를 처리했다.
피의 영역이 사라지자마자 이서우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갔다.
마나의 수치는 생각보다 높았지만 뱀파이어들이 더 많이 몰려오면 낭패다.
레벨 업도 갈수록 버거워지니 자칫 뱀파이어 킹이라도 만난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휴우, 진짜 사람 진 다 빼 놓네. 그래도 레벨 업 성과는 확실하네. 마나만 받쳐 주면 진짜 24시간 내내 사냥도 할 수 있겠어. 어라?”
이서우는 캐릭터 창과 밸런스 숙련도 창을 확인했다.
4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사냥에 임했기에 어느 정도 수치가 올랐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한데, 밸런스 숙련도가 생각보다 많이 올라 있었다.
-밸런스 숙련도 : 2레벨 25퍼센트
“효율적인 마나 활용을 하면 더 빠르게 오르는구나!”
새로운 발견을 한 것까지는 좋았다.
다만 효율적인 사냥을 위해서는 방금처럼 무식하게 싸워야 하는데, 일부러 그러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일시적인 유혹이 왔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한 번만 죽어도 이서우에게는 손해였다.
“킹만 잡는 거면 차라리 편한데. 쫄따구들을 왕창 상대하려니 피곤하네.”
“건방진 인간! 네놈이구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데 갑자기 뱀파이어 킹이 나타났다.
이서우는 너무 안심하고 있었다고 자책하며 얼른 대검을 뽑아 들었지만 주변을 살펴본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혼자야?”
“건방진 인간을 상대하는 건 혼자로도 충분하다.”
“자존심이라 이건가?”
“시끄럽다. 죽어라, 인간!”
뱀파이어들을 우르르 달고 왔을 줄 알았더니 덩치 큰 뱀파이어 킹 혼자였다.
다행히 마나도 여유가 있어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일을 쉽게 해 주네.’
이서우는 혹시 다른 뱀파이어들이 몰려올 것을 염려해 얼른 그에게 덤벼들었다.
“가소로운 녀석. 그런 뻔한 움직임으로……. 크아아악! 이, 이놈!”
다가오는 이서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날카로운 손톱을 들어 올리는데, 갑자기 이서우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느껴지는 고통에 뱀파이어 킹은 허둥대며 발광을 했다.
이서우가 다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것이다.
‘레벨 100일 때도 120레벨 레이드 몬스터를 혼자 상대하던 나다. 네임드 몬스터 따위!’
뱀파이어 킹의 거친 움직임에도 이서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접근해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뱀파이어 킹은 그 자리에 없었다.
막는 것은 힘들다 여기고 박쥐로 변해 벗어난 것이다.
-뱀파이어 킹이 피의 영역을 발동했습니다.
-뱀파이어 킹의 공격력이 20퍼센트 상승합니다.
-뱀파이어 킹의 방어력이 20퍼센트 상승합니다.
‘어나더 월드 때는 기본 능력 자체가 강했는데, 약해진 대신 저런 기술들을 추가했나 보네.’
이서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는 거리를 두었다.
“흐흐흐, 이놈, 나의 노예가 되어 평생 날 위해 일해라!”
“일당 300만 원쯤 주면 생각해 볼게.”
“건방진 인간, 감히 날 조롱하는 것이냐! 죽어라!”
뱀파이어 킹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이서우는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저놈이 초반부터 필살기를 쓰네.’
이서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검을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