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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33화 (33/341)

# 33

레벨이 갑이다

33화

“크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멀리 도망간 뱀파이어들은 무시하고 근처에 있는 다른 뱀파이어들을 열심히 사냥 중인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서우는 힐끗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 휴식을 취하던 파티네. 응?’

순식간에 모두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시선을 거두고 사냥에 집중하려는데, 유저들을 순식간에 죽인 뱀파이어가 이서우를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서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뱀파이어는 조금 달랐다.

‘설마 뱀파이어 킹?’

의문을 갖자마자 유저들을 모두 처치한 뱀파이어가 이서우에게 다가왔다.

‘킹은 아닌데, 저건 설마…….’

상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이서우는 그가 평범한 뱀파이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마, 유저?”

“그래도 멍청이는 아니네.”

다가온 뱀파이어는 이서우와 대치하고 있는 동족들을 물리며 이서우와 마주 섰다.

이서우가 그를 유저라고 생각한 것은 입고 있는 방어구 때문이었다.

몬스터들도 방어구를 입지만, 유저들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뱀파이어는 특별한 방어구 없이 망토가 전부였다.

한데, 이서우와 마주 선 뱀파이어는 화려한 방어구에 다른 뱀파이어보다 훨씬 길고 두꺼운 손톱을 세우고 있었다.

딱 봐도 손에 착용한 것은 무기였다.

“뱀파이어로 시작할 수는 없을 텐데, 설마 전직을 한 건가?”

“눈치도 빠르고 멍청하지도 않은데, 저레벨 장비를 착용하고 이곳을 와?”

유선중은 이서우의 장비를 보며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쫙 찢어진 눈으로 실실거리며 웃으니 재수 없어 보였지만 이서우는 차분히 그를 관찰했다.

20대 후반에 키는 180센티미터 정도였다.

80레벨대인 뱀파이어를 통솔할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아 90~100레벨 사이인 것 같았다.

이서우는 상대가 계속 반말을 해 대는 것이 살짝 짜증이 났지만 똑같이 대해 주면 되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뱀파이어로 플레이하면 PK도 상관없나 봐?”

“암살자도 그렇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지. 그 맛에 게임 하는 거 아니겠어?”

“변태군.”

“뭐, 각자 가치관이 다른 거니까. 그나저나 널 어떻게 죽여 줄까? 동맥을 끊고 피를 쫙 빼 버릴까, 아니면 단숨에 죽여 줄까? 아니지, 단숨에 처치하는 건 재미가 없지.”

“조금 전만 해도 단숨에 잘 죽이던데 난 특별한가 봐?”

“퀘몹인 줄 알고 신나게 죽였는데 아니더라고. 이왕 늦었으니 즐기기라도 해야지.”

“유저에게 몹이라니. 별난 놈 다 보겠네.”

이서우는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유선중을 보며 혀를 찼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말이야. 수집품 목록에 잘 넣어 둘게, 네가 죽는 동영상.”

“이거 진짜 변태 새끼잖아.”

유선중의 행동에 이서우는 참고 있던 분노를 터트렸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유저를 몹이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죽는 영상을 찍어서 모으다니.

“최고의 찬사인데? 좋아, 날 이렇게 흥분시켰으니 마나부터 쫙 빼고 상대해 주지. 놈을 지치게 만들어라!”

“네.”

이서우를 물어뜯기 위해 바짝 독이 오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뱀파이어들이 유선중의 명령에 잽싸게 덤벼들었다.

혹시라도 유선중에게 이서우를 빼앗길까 봐 걱정을 하고 있다가 받은 명령이어서 망설이지 않았다.

이서우는 하급 마나 물약과 활력차를 복용했다.

뱀파이어의 숫자가 워낙 많아 아낌없이 털어 넣었다.

우르르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을 상대로 차분히 대검을 휘둘렀다.

마나를 빼 놓겠다 했으니,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했다.

마나의 소모가 평소보다 적었다.

회피 동작도 최소화했고, 대미지를 가장 많이 줄 수 있도록 급소만 노렸다.

예전보다 절반 이상의 마나를 아끼며 뱀파이어들을 상대해 나갔지만 문제는 적들이 너무 많았다.

30마리쯤 잡았을 때, 마나가 50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

‘이거 다 잡기 전에 진짜 마나가 바닥나겠는데.’

아직도 뱀파이어 숫자는 많았다.

더군다나 레벨이 높은 유저가 있으니 지금의 마나로는 절대로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서우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고 도망을 가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그 방법밖에 없나.’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방법은 한 가지였다.

이서우는 회피 위주로 태세 전환을 하면서 캐릭터 창을 열었다.

-정신력 순수 스텟이 100에 도달했습니다.

-스킬 사용 시 소모되는 마나가 30퍼센트 감소합니다.

-삑!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행동에 마나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숙련도 밸런스 레벨에 따라 마나 감소 효과가 증가합니다.

-정신력 스텟 1당 증가하는 마나의 양이 2배로 증가합니다.

‘역시, 예상이 맞았어!’

이서우는 정신력 순수 스텟이 100에 도달하면 마나에 변화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근력, 민첩력, 체력 스텟을 올리면서 이미 경험한 바다.

다만, 보너스 스텟을 아껴 두는 차원에서 지금까지 손을 대지 않았을 뿐이다.

이서우는 더욱 안정된 모습으로 전투에 임했다.

8천 정도의 마나지만 30퍼센트를 절약할 수 있으니 실제로는 1만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여유가 생기니 마나는 더욱 절약되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레벨 업 소식이 들렸다.

거의 50마리는 잡은 것 같은데 고작 1레벨이 오른 것이다.

그러고도 10마리 정도를 더 잡고서야 유선중 혼자만 남았다.

“너, 뭐야? 사기꾼이야? 아님 거지새끼야?”

80레벨대 몬스터 60마리 정도는 유선중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100레벨 장비를 착용했을 때다.

만약 이서우처럼 40레벨 장비를 착용하고 사냥을 했다면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타인을 속이기 위해 레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저레벨 장비를 착용했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골드를 현찰로 바꿔 장비에는 신경 안 쓰고 솔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거나.

몇몇 악질적인 사람들이 이런 유저를 두고 거지라고 놀리지만, 정작 그들도 골드를 캐시로 현금화하는 데 혈안이 된 경우가 많았다.

이서우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대꾸도 하지 않고 공격했다.

갑자기 달려오는 이서우를 보며 유선중은 급히 손을 들었다.

“큭, 무슨 힘이…….”

유선중은 가볍게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체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힘을 주고서야 겨우 막아 냈다.

뱀파이어 고유 기술인 육체 강화였다.

공격이 막혔음에도 이서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유선중은 불길한 예감에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서우가 대검에 힘을 잔뜩 실어 그대로 날려 버린 것이다.

유선중은 허공에 붕 떠서 5미터나 날아가서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기회를 잡은 이서우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유선중은 박쥐로 변해 얼른 그곳에서 벗어났지만 이서우의 스피드를 이길 수는 없었다.

서걱!

“크아아악!”

날개가 잘려 나가며 변신이 풀렸다.

변신이 풀리자 한쪽 팔이 없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했다.

극심한 고통까지 몰려오니 그만 빈틈이 생기고 말았다.

이서우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후웅!

그러나 레벨 100은 그냥 되는 게 아닌지, 유선중은 아슬아슬하지만 이서우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무리하게 몸을 비튼다고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움찔.

이서우의 공격이 이어질 것을 염려해 뒤로 피하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서걱!

결국 이서우의 대검을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2차 전직만 완료했어도…….’

생명력이 절반이나 빠져나갔다.

유선중의 남은 피 통은 약 30퍼센트.

이서우의 남은 마나는 약 1천.

숫자상으로는 이서우가 불리해 보였지만 상황은 훨씬 유리했다.

그것은 둘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서우는 여유로움이 얼굴에 가득한 반면, 유선중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려는 모습이 보였다.

이서우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명력과 체력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이서우의 움직임을 충분히 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푹!

긴 대검이 유선중의 심장에 박혔다.

44레벨 차이치고는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다.

일반 레벨과 하이 레벨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한판이었다.

-유선중을 처치하셨습니다.

-4,900,000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이 100 상승했습니다.

-현상금 500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뱀파이어의 킹의 권갑을 획득하셨습니다.

500골드가 들어왔다는 메시지에 이서우는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게다가 명성과 더불어 무기까지 얻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권갑 계열이었나 보네. 권갑도 꽤 돈이 나갈 텐데.’

이서우는 바로 아이템을 확인했다.

“헉, 대박이네.”

이서우는 영웅 등급의 권갑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하급에 속하는 옵션이지만 추가 옵션이 2개였고, 등급도 좋아서 최소 1천만 원은 받을 수 있었다.

이자에 대한 고민이 싹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이서우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길게 올라갔다.

다른 유저의 장비를 팔아도 될까 하는 일말의 갈등은 있었지만 타인의 것을 빼앗으려 했으면 자신의 것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악질 놈들만 잡아도 돈 되겠는데.”

뱀파이어나 암살자는 어둠에서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일반 유저들도 직업에 따라 특성이 있지만, 그들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한 대신 다른 유저들보다 죽었을 때 착용하고 있는 장비를 떨어뜨릴 확률이 높았다.

작은 차이지만 레벨이 높아지면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서우는 일단 자리를 피했다.

뱀파이어 본거지를 난장판으로 해 놨으니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마나만 충분했다면 조금 더 사냥을 했겠지만 100 미만으로는 1마리를 상대하는 것도 힘들었다.

잽싸게 그곳을 벗어나자 뱀파이어 킹의 명령을 듣고 100마리가 넘는 뱀파이어들이 몰려들었다.

“낮에 오는 게 좋겠네.”

멀리 벗어나면서 뱀파이어들의 기운을 느낀 이서우는 밤에 이곳에 오는 것은 불리하다 판단했다.

이서우는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마을로 가는 내내 싱글벙글했다.

* * *

“아아아악! 내 퀘스트! 내 전직! 이 개자식!”

유선중은 강제 종료가 되고 접속 베드에서 나오자마자 발악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드롭된 아이템은 재접속을 해야 해서 아직은 모르지만, 아마 알게 되면 멘탈이 붕괴될지도 몰랐다.

뱀파이어 킹에게 온갖 아부를 해서 얻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접속 제한 페널티 때문에 진행 중이던 퀘스트가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보통의 퀘스트라면 다시 접속해서 진행하면 되지만 유선중이 받은 퀘스트는 조금 특수해서, 시간이 아주 중요했다.

게다가 침입자를 죽이고 뱀파이어 킹과의 친밀도를 높이려던 것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퀘스트 실패로 7레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아아아아! 시팔! 생각할수록 열 받네. 어떻게 올린 레벨인데. 두고 보자.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아주 게임을 못 하게 만들어 주마!”

유선중은 홀로그램 인터넷 창을 띄웠다.

곧 화면에는 음지의 직업군들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떴다.

지문 인식 과정을 거치고 로그인을 한 그는 글을 쓰면서 동영상 하나를 띄웠다.

“아아아악! 이 개애애애자식!”

이서우와 전투를 펼친 영상이었는데,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다.

상대측에서 프라이버시 모드를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화가 나서 영상을 확인도 하지 않고 사이트에 접속한 것이 실수였다.

유선중은 결국 이서우의 이런저런 특징들을 글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현상금을 1천 골드로 설정하고는 창을 닫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1억 명이 다 돼 가는데, 아는 게 키밖에 없다니. 그렇다고 쪽팔리게 40레벨 장비 찬 놈에게 죽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아놔!”

유선중은 한참을 악다구니를 쓰더니 대충 옷을 걸쳐 입고는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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