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거울 (6)
“뭐, 뭐 하는 거야?”
“저런 미친년!”
감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바로 불이 전부 꺼졌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공포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녹슨 경칩에 문 닫히는 소리가 무겁다. 공기의 흐름이 끊겼다. 환풍구도 없이, 이곳이 완전히 차단되었다는 의미였다. 이 감옥의 방어 체계가 가동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때 옆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어둠 속에서 어떤 이가 내 손을 잡고 감옥 안으로 날 끌어당겼다. 들어가자마자 감옥 철창 바깥으로 털이 굵게 나 있는 다리가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너 미쳤어?”
나를 끌고 온 사람이 날 질책했다. 목소리를 들어 보니 꽤 젊은 여성이었다.
다리가 복도에 스치면서 으스스한 소리가 났다. 다들 그 소리에 비명을 질렀다.
나는 철창에 달라붙어서 그 괴물의 몸을 바라보았다. 몸의 길이는 20m는 되어 보였다. 대체 이런 괴물을 어떻게 사육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내가 철창에 딱 붙어서 보고 있자니 다시 내 몸을 방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야, 정신 차려. 정말 죽고 싶은 거야?”
곧 불이 켜지고, 괴물은 다시 어딘가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지금 예프린의 기억도 있는 상황이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다프네.”
“그래, 내 이름을 아는 것을 보니 정신이 아예 나가지는 않았네.”
“문을 열 수 있었네?”
“난 문 따기 선수잖아.”
다프네는 손에 있는 구부린 철사를 돌렸다. 저건 또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속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뭔 생각으로 그렇게 애를 죽인 거야?”
“난 여기서 나갈 거거든.”
“정말?”
그녀는 마치 그 말이 너무도 놀랍다는 듯 입을 가렸다. 아니,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곳에서 갇혀 있으면 다들 나가고 싶지 않겠는가.
“너,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빠져나가는 게 잘못된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굳이 나가야 되나?”
난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농담인 줄 알았지만, 다프네는 진심인 모양이었다.
“가끔씩 쇼만 해 주면 밥도 잘 나오지, 겨울엔 따뜻하지, 여름엔 선선하지. 이런 곳 별로 없는데?”
다프네는 그렇게 말하고 내게 엄청난 비밀을 알려 준다는 듯 속삭였다.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연기 하는 거야, 나가고 싶은 척. 막상 나가라고 엉덩이 차 주면 안 나가고 쭈뼛댈 놈이 태반이야.”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 이상해져 있었다. 하긴, 예프린도 내가 아는 예프린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곳에 계속 있으면 정신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저 괴물은 뭐야?”
“아파치치라는 마수잖아. 모르니?”
“응. 몰라.”
“굉장히, 굉장히 무서운 마수라고. 소드 마스터가 세 명이 붙어도 안 될 거야. 원래 성격은 온순한데, 여기 사람들이 굶겨서 저렇게 포악해진 거지.”
누가 봐도 포악해 보이는 마수였는데. 생긴 것도 징그럽게 생겼었다. 10개는 넘어 보이는 긴 다리에 달려 있는 몸통에는 눈, 코, 입이 보이지도 않았다.
“저놈은 불멸이야. 죽지도 않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잖아.”
“몰라.”
“음, 그럴 수 있지.”
다프네는 날 귀엽다는 듯 볼을 꼬집었다. 아, 그럴 수 있지. 난 지금 예프린의 외형을 가졌으니까. 내가 만약 에퍼리의 몸이었으면 이렇게 귀여움 받기 쉽지 않겠지.
“너, 내 옆방인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해야 해. 정말 나 같은 파트너 만나기 쉽지 않거든.”
다프네는 그렇게 말하고 철창 앞으로 나가서 문을 세 번 규칙적으로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철창으로 다들 달라붙었다.
“자, 방장 소집. 사람들 오기까지 2분 남았다.”
다프네의 외침이 감옥 전체로 울려 퍼졌다. 이런 곳에 방장도 있나. 예프린의 생각을 뒤져 봐도 여기서의 기억은 드문드문했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가.
“내 친구가 실수를 좀 했어. 한 명이 좀 희생해 줘야겠는데.”
“옆방에 있는 친구가 어제 들어온 친구야.”
“어디? 아, 확인.”
자기들끼리 합의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철창 바깥에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나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쓸 사람을 찾는 것 같았다.
“뭐야, 한 명밖에 없어? 재미없다.”
“최근에 사람들이 일을 잘 안 하네.”
사람들이 낄낄 웃기 시작했다. 감옥이 시끄러워졌다. 내가 여기 있는 도중에 본 가장 생기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약간 오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피해자이며 선할 거라는 생각. 그들은 이런 나락 속에서도 남의 불행을 파먹으면서 지내고, 그런 것에서 기쁨을 찾고 있었다.
“자, 가는 사람을 위해 노래를 한 번 부릅시다.”
다프네의 선창과 함께 감옥에서 노래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철창을 흔들고 치면서 박자를 만들어 냈다.
잘 가시게.
잘 가시게.
덧없는 인생이었을 테지만.
잘 가시게.
가사도 성의 없고, 음정도 성의 없다. 그냥 서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를 뿐이었다. 노래라고 하기는 뭐하고, 원주민들의 제식을 보는 것 같았다.
“예프린, 이리로 와.”
“왜?”
“왜기는. 내가 한 번 도와줬잖아? 그러면 너도 응당 값을 치러야지.”
다프네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나를 방구석으로 끌고 들어간 다음 내 옷자락 사이에 거친 손을 집어넣었다.
“흑.”
갑자기 살갗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아서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그때, 이곳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가 아닌, 감각으로 남아 있는 불쾌한 기억이었다.
난 그때 알아냈다, 예프린을 무너지게 한 게 다름 아닌 녹색 모자나 일당이 아니라 다프네와 이 감옥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프린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사람에 대한 희망. 그녀는 여기서 다프네에게 희롱을 당하고 짓밟힌 거다.
“손 떼.”
“어, 신선한데? 너 처음 왔을 때도 이랬잖아. 옛날 생각 나고 좋다.”
다프네는 마구잡이로 예프린의 몸을 더듬었다. 그녀가 예프린의 몸을 만질수록 기억이 떠오른다. 다프네는 문을 딸 수 있었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예프린의 방인 옆방에 들어와 잔뜩 희롱했던 것이다. 예프린은 살고 싶었고, 그래서 그녀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예프린이 아니다. 난 다프네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어? 너 죽고 싶어? 그래도 살아야지. 사는 건 중요한 거야.”
다프네는 날 위협했다. 이런 인간군상, 너무 많이 봐 와서 지친다. 볼 장은 다 봤다. 여기서 섞이는 것조차도 불쾌하다.
그때, 다시 낡은 경칩이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제자리서 맴돌던 공기가 순환되고 있다. 축제 분위기던 사람들은 바로 입을 꾹 닫아 버렸다.
곧 계단을 타고 몇 명이 내려왔다. 그들은 싸늘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와.”
“저 방 가시면 됩니다.”
감옥 철창 사이로 손가락들이 삐져나가 한곳을 가리켰다. 그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방을 향해 갔다.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곧 당황한 외침이 들렸다. 막 잠에서 깬 목소리였다.
“왜, 왜?”
“나와.”
그와 함께 감옥의 불이 꺼지고, 사람이 끌려 나간 복도에만 조명이 켜졌다. 본보기식 처형이다.
“어때, 저놈들 보니까 무섭지? 응?”
다프네는 낄낄거렸다. 확실히, 몸이 반응하고 있다. 저들을 보니 땀이 솟아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건 내 감정도 아니고 내 몸도 아니다.
나는 시간을 재고 있었다. 난 아이리의 행동에 맞춰야 했다. 이쯤 되면 아이리도 어느 정도 바깥에서 해야 할 조치를 다 했으리라고 믿었다. 그녀도 날 알고 나도 그녀를 아니까.
자, 이제 시작이었다. 여기는 너무 지겨웠다. 난 철창 문을 발로 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바닥에 엎어지며 먼지가 일어났다. 갑자기 난 굉음에 모두가 어둠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 * *
아이리는 생각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에퍼리가 어떤 식으로든 준비가 됐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떨리던 심장이 진정이 됐다.
“공작, 공작이라. 그 정도 작위에 변동이 생겼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너무 자신의 정보를 과신하지는 마.”
“그런가요? 그건 알아보면 알겠죠.”
아이리와 녹색 모자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 녹색 모자도 황도의 정치적인 동향에는 꽤 민감한 편이었다. 매년 바뀌는 법 때문에 일을 하는 방법을 바꿔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뭐,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운이 좋게도 폴라성주가 지금 여기 있거든요.”
“그래? 폴라성주도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가 보네.”
아이리의 비꼼을 무시하고 녹색 모자는 두 팔을 공손하게 뻗어 아이리를 에스코트했다. 그녀는 그를 따라서 저택 안쪽으로 걸었다. 저택 안쪽은 꽤 복잡했다. 여러 기관 진식도 있었고, 비밀 문도 많았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큰 집을 가지고 있는지 드디어 알았다. 단순한 과시용이 아닌, 귀족의 접대에도 요긴하게 쓰이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곧 좁고 탁한 붉은빛의 복도가 나왔다. 한 사람이 걸으면 꽉 차는 그 복도에서 녹색 모자는 유유자적하게 걸었다. 점점 빛에 가까워지면서 아이리는 소란스러움을 감지했다.
중년 남자와 10~20대 여성의, 번갈아 울리는 목소리. 남자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이 제국의 귀족이 아니기를 빌었다. 자신이 아는 제국의 귀족이란 이런 사람들이 아니니까.
“성주님, 자신을 공작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엉?”
폴라의 성주는 한껏 풀어헤치고 있었다. 상반신이 거의 드러날 정도였고, 다른 사람들이 왔지만 그것을 가리려는 생각도 안 했다.
“오, 미색이 대단하군. 내 옆으로 오겠나?”
폴라성주는 녹색 모자의 말은 듣지도 못했는지 그새 아이리의 외모에 팔려 헛소리를 지껄여 댔다. 아이리는 목을 두둑 꺾었다. 피곤하고 뒷골이 땡긴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 것만 같았다.
“코트 백작, 나를 모르나?”
“응? 네가 누군데?”
코트라고 불린 폴라성의 성주. 아이리는 그와 안면이 있었다. 물론 아주 어린 시절 스쳐 가면서 만난 것에 불과했지만.
“본녀의 이름은 아이리 라피테스라고 하는데?”
아이리는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눈에 분기가 가득 찼다. 그 서슬 퍼런 기운에 코트 백작도 잠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라피테스, 중앙 정치에 굳이 관심이 없어도 그 성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2인자, 라피테스 공작은 이 지방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몇 안 되는 중앙 정치인이었으니까. 그 공작에게 딸이 있다는 것도 안다.
“아, 아이리 라피테스 공녀님이시군요. 예. 어쩐 일이신지……?”
“술 좀 깨고 말했으면 좋겠군. 본녀는 분명 나를 공작이라고 칭했다.”
“…네? 그건 무슨 소리십니까? 라피테스 공작이 내려오고 작위를 승계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러하다면?”
폴라성주는 머리를 긁었다. 꼴같잖게 하품까지 했다. 아무리 충격적인 말이라도 그에게는 감각이 우선이었다. 그런 앞뒤를 가릴 예절이 그에게는 없었다.
이런 사람이 제국의 귀족이고 또 한 지역을 책임지고 있다니, 참으로 한숨이 나올 노릇이었다.
“음, 일단 저는 그걸 들은 사실이 없군요. 라피테스 공작 전하 정도의 승계면 저희에게까지 응당 알려졌어야 합니다. 굳이 공작의 작위를 자처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여기에 공적으로 간섭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지. 공녀는 알다시피 허울만 좋은 호칭 아닌가.”
아이리가 이를 드러냈다.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 폴라성주도 옷을 여미고 진지하게 눈을 착 가라앉혔다.
“지방 일에 중앙 귀족이 간섭하신다니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전례가 없다지만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아니지 않는가? 제국은 중앙 정치를 골자로 하고 있으니까 말이네.”
“그렇군요.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코트 백작은 술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공작이시라면 공작 작위 패가 있으실 겁니다. 그걸 보고 판단하도록 하죠.”
아이리는 손목을 손가락으로 툭, 툭 두드렸다. 그때, 창문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곳은 숨겨진 방이었지만, 바깥과 연결되는 창문이 아주 작게 나 있었다. 5살 아기가 드나들 정도의 크기였다. 그저 환풍구 역할만 하는 곳일 터였다.
창문이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깨지고 근처 벽돌들이 무너졌다. 곧 그들이 보게 된 광경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커다란 새가 무언가를 물고 있는 장면이었다.
“감사합니다.”
아이리는 그 새에게 존댓말하고 예를 갖춘 다음에 그 패를 받아 들었다. 아이리는 바로 그 패를 폴라성주 앞에 내밀었다.
“라피테스 공작가 13대 가주, 아이리 라피테스다. 이 정도면 증명됐나?”
그녀가 내민 건 명명백백한 공작 패였다. 그 확실하게 보여 준 증거에, 폴라성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