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리바이어던 (4)
헌터의 랭킹은 단순히 무력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사실 헌터의 랭킹은 무력보다는 사회 공헌도로 많이 매겨진다. 그러니까, 던전을 얼마나 레이드 했는지가 랭킹 포인트의 기준이 되는 것이었다.
- 야, 그래도 세계 10위권은 유지해야 되는 것 아니야?
- 아. 아저씨도 대통령 부탁받고 왔어?
- 응. 그 대가로 행사 하나 얻었지.
- 가세요, 그냥.
그때는 참 짜증 났었지. 세계 헌터 순위가 국가의 위신이라며 조금만 더 올려 달라고 했었다. 난 다 무시하고 방송 활동에 집중해 50위까지 떨어졌고, 그다음부터는 정부 주관 행사 때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었다. 물론 그 블랙리스트의 정체가 밝혀지고 정부는 국민들한테 혼쭐이 났다. 왜냐하면, 그래도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인 건 맞았으니까.
그래서 외국에서 랭커가 내한하면 언제나 날 찾고는 했었지.
근데 그런 귀한 대접을 받다가 크기만 한 한낱 도마뱀 새끼가 날 이렇게 취급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신수이니 뭐니, 나는 그런 것 잘 모른다.
"한낱 인간이 날 겁박하는 것인가?"
"내가 한낱이라는 단어를 잘 알아. 인터뷰에서 한낱 일반인들이라고 했다가 엄청 두드려 맞았거든."
그때 그 일은 정말 반성하고 있지. 순간의 실수로 그렇게 악플을 받았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다. 과거에 시달릴 생각은 없다.
"간다."
난 순식간에 리바이어던의 코로 돌진했다. 리바이어던은 바로 입을 쩍 벌렸다. 족히 200개는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은, 가시밭 같은 이빨과 목구멍 사이의 주름들은 혐오스러웠다.
너무 빠르게 움직인 나머지 풍압 때문에 눈꺼풀이 흔들린다. 오랜만이다, 완전한 전력을 내는 건. 적응이 안 될 정도이지만, 난 주환영으로서 살아온 삶이 에퍼리로 살아온 삶보다 훨씬 길다.
퉁!
마치 커다란 북을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리바이어던의 긴 얼굴이 획 돌아갔다. 그와 함께 리바이어던의 물대포 같은 타액이 철퍽거리며 화려하게 깔린 길에 떨어졌다. 일부러 검면으로 쳤다. 얕보는 건 아니다. 저 비늘이 너무 강건해 보여서, 검이 씹힐까 봐 일단 강도 테스트를 한 것이었다.
"한낱 인간이……."
아직 나쁜 말버릇을 못 버린 리바이어던이 짧은 발을 들어 몸의 균형을 맞춘 다음 내게 강하게 내려쳤다. 리바이어던에겐 짧은 발이었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길고 크다. 발이 내게 오기도 전에 압력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고 빠른 일격이었다.
타격 테스트는 끝났고, 이번에는 자상 테스트를 할 때였다.
푸쉬시시식.
풀이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역으로 올라갔다. 리바이어던의 발은 빨랐지만 나보다는 느렸다. 나는 그 발을 나선계단을 파쿠르 하듯 밟고 올라갔고, 그사이에 발에 수많은 칼집을 먹였다.
녹색 피가 뚝뚝 흘렀지만, 피부는 다시 수복이 됐다. 역시, SS급 마수는 달랐다.
이길 수 있나? 솔직히, 모르겠다. A급과 S급 헌터의 차이가 천지 차이인 것처럼, S급과 SS급의 차이도 마찬가지로 천지 차이다.
SS급이라면 S급 헌터 다섯이 붙어야만 가능한 싸움. 내가 허세를 부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어떻게 이 싸움이 끝날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처음 리바이어던에게 죽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일단 난 언어를 배움으로써 100%에 가까운 전투 능력을 스킬로 수복했고, 몸은 더 건강해졌다. S급 헌터는 대개 후유증과 지병에 시달리는데, 이 깔끔한 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또 어려서 유연한 몸과 관절 역시.
"인간치고는 강하구나."
"짐승아, 아가리 좀 닥 하면서 싸워. 지구에선 닥치고 물어 젖히더만 여기선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크르르."
원래 흥분하면 본인에게 익숙한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볼 때는, 짐승 울음소리가 나오면 리바이어던은 흥분한 것이었다.
물론 나도 흥분했다. 내 친구도 아니고 내 동생도 아니고, 나를 죽인 놈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다.
【고유 스킬: 환영살인마 Lv. 7 업그레이드】
컨디션이 좋은 몸으로 스킬을 극성으로 발휘하자 스킬이 업그레이드가 된다. 이건 또 처음 보는 경지다. 분명히, 한 단계 강해졌다. 난 그걸 느낄 수 있다.
【하위 스킬들이 전부 개방됩니다.】
이거라면, 혹시.
마리나, 칸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에퍼리의 신위에 입을 벌리고 구경하고 있었다.
"저런 괴물이 어디서……."
가테스는 다른 이유로 신중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였다. 저 이상한 옌시 소년이 자신과 붙으면 어떤 승부가 날지. 감히 가테스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게 신수라는 걸 망각하고 에퍼리와 자신의 싸움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있었다.
잠깐 공중에서 멈췄던 에퍼리는 내면을 보는 눈을 하더니 다시 스르륵 움직였다. 움직임은 훨씬 입체화되었다.
"대체 저 움직임은 어떻게 된 걸까."
가테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움직임을 쓰는 고수를 들어 본 적도 없었고, 전대에 저런 움직임을 보여 줬다는 사람의 기록도 보지 못했다.
그나저나, 그들 모두는 시험에 빠진 것이었다. 신수를 앞에 두고 같이 싸울 것이냐, 아니면 방관을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가테스는 문득 앞에 쓰러진 아버지를 보았다.
엄청,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게 오히려 가테스에게 답답한 점이었다. 그는 언제나 차가웠다. 천성이 냉정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냉정함을 먼저 찾을 줄은 몰랐다.
리얀은 이미 울면서 아버지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다. 그 작은 몸에 벌집이 된 거구의 아버지가 피를 흘리면서 붙들려 있다. 가테스는 고뇌를 하며 리얀에게 다가갔다.
"리얀, 아버지를 내게 넘겨라."
"…싫어요. 오라버니는 아버지를 묻을 생각이잖아요."
"그러면?"
"좀만, 좀만 더 시간을 주세요."
역시 자신과 비슷하게 냉정하다고 생각했던 리얀도, 아버지의 죽음에는 무력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게 맞다고 가테스는 생각했다. 어떤 냉혈한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슬퍼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
"으흐으……."
가테스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이 사이로 바람을 내보냈다. 에퍼리가 지금만큼은 너무 고마웠다. 자신이 쓸모없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줬으니까.
신경이 오롯이 눈 쪽으로 쏠리고 물이 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눈물이 차오르지는 않았다. 마치 수면이 정해진 댐처럼, 그의 눈물샘은 거기까지였다.
"으흐으으으으……."
가테스는 입으로 바람을 계속 내보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바람 때문에 손바닥마저 차가웠다. 그 차가움에 가테스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더 쓸 시간은 없었다. 아버지는 리얀에게 맡기기로 했다.
"리얀, 아버지를 부탁한다."
"…알았어요."
가테스는 그렇게 말하고 검을 들었다. 리얀이 눈물을 계속 닦으면서 가테스를 붙잡았다.
"오라버니."
"왜?"
"신수랑은 대립하면 안 돼요."
"안다."
"그러면?"
"에퍼리를 막아야지."
가테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역사는 증명하고 있었다, 신수를 홀대하면 여신의 분노가 돌아온다는 것을. 리얀은 그 말에 주저했다.
"그것도 좀……."
"리얀, 아버지가 죽지 않았으면 너도 에퍼리를 막았을 거다."
가테스의 말에 리얀이 목이 막힌 듯 컥 소리를 냈다. 말문이 막힌 것도 막힌 거지만, 틀린 말이 아니어서가 아니었다. 틀린 말이고 맞는 말이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뜻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30분도 채 안 됐어요. 아직, 따뜻해요."
"지금도 우리는 여신의 미움을 받고 있을 거다. 신수를 돕지 않으니."
가테스의 차가운 말은 리얀의 달궈진 눈에 불을 더 지피기 충분했다. 리얀은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가테스에게는 이제 더 이상 끌 시간이 없었다. 그는 검을 빼고 리바이어던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려고 했다.
그때 땅이 크게 울렸다. 리바이어던이 땅에 고개를 처박은 것이다.
가테스는 위를 바라보았다. 목을 살짝 꺾은 에퍼리는 오만하게 땅에 박힌 리바이어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리는 아일린 후작 영애와 같이 있었다. 아일린 후작 영애를 태운 마차의 바퀴는 땅의 균열에 빠져 헛돌고 있었고, 아이리가 바퀴를 베면서 마차를 발로 차 아일린 후작 영애를 꺼냈었다.
"생각보다 터프하시네요, 아이리 공녀님은."
"근처에서 막사는 사람을 봐서, 그걸 보면 조금 더 막살아도 되겠다 싶더라구요."
"아, 에퍼리 자작이요?"
아일린이 바로 맞힐 줄은 몰랐는지 아이리는 입을 꾹 닫았다. 아일린은 그런 공녀가 귀여웠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잘못이 생각났다. 아, 오늘은 그것을 사과하러 온 것이었다.
"공녀님, 정말 멋지신 분이에요. 어떤 누구한테도 안 꿀릴 만큼. 제가 그런 걸 질투했었나 봐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다 잊었어요. 이름도 비슷한걸요."
뜬금없이 나온 헛소리에 아일린은 푸핫 웃었다. 가장 귀족인 작위의 공작의 영애인데, 귀족답지 않은 농담이어서 웃긴 것이다.
그때 엄청나게 땅이 흔들렸다. 저 멀리 중앙 황궁에서 괴물이 솟아 올라왔다. 보기만 해도 압박이 느껴지는 괴물이었다.
"…이런, 잡담할 때가 아니네요."
그녀들이 있는 곳은 황도의 외곽. 하지만 저 괴수라면 외곽이건 뭐건 몇 발 자국이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다. 지금도 땅의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최대한 황도에서 빠져나가야겠어요. 백성들을 구하면서요."
"네."
아일린은 고민했다. 이렇게 멋있는 여자한테 왜 성녀는 질투를 하는 걸까. 아일린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공녀님."
"왜요?"
"성녀님을 조심하세요."
"…갑자기요?"
"사실 오늘 그 얘기를 하려고 왔는데, 길게는 얘기 못 하겠어요. 성녀님이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 조심하세요."
아이리는 갸웃했다. 성녀한테 자신이 밉보일 만한 일을 한 일이 있었나. 어쨌든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들은 백성들을 구하면서 황도 바깥으로 사람들을 끌고 나갔다.
"공녀님, 감사합니다! 저같이 천한 것을……."
"빨리 나가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가라!"
"공녀님 먼저 나가셔야 되지 않습니까?"
어떤 백성 한 명이 아이리에게 물었다. 아이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귀족은 전진 때는 최전방, 후퇴 때는 최후방을 지켜야 한다. 가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녀님!"
아이리는 일사불란하게 백성들을 지휘하면서 대열이 흐트러지게 않도록 사람들을 하나둘씩 황도 바깥으로 내보냈다. 다행히 괴수는 황궁 근처에서만 움직일 뿐 황도 외곽으로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리가 간신히 황도 북서쪽 외곽을 훑으며 백성들을 다 구하고 다녔을 때였다. 아일린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리는 아일린을 바라보았다. 아일린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이리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그곳 하늘에서 빼꼼히 거대한 하마의 머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의 입에서 망연하니 말이 나왔다.
"…신수, 베히모스."
"크르르."
리바이어던이 끙 하는 소리를 낸다. 일단 원 다운이라고 해야겠지. 다운으로만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격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헌터와 마수의 싸움은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비장한 생사결이다.
"더 이상 신수를 괴롭히지 마라."
그때 가테스가 떠올랐다. 이제 한참 몰아칠 때인데 갑자기 가테스가 나타나니 짜증이 좀 났다. 가테스의 얼굴은 내가 본 어느 때보다 얼음장 같았다.
"뭐 하십니까?"
"네가 여신의 격을 침범하고 있다. 제국은 여신의 가호를 받는 곳."
"지금 저 파충류가 폐하를 시해했습니다. 아니, 폐하도 아니고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귀족의 의무는 백성을 지키는 것. 내가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아버지의 의무를 계승해야 한다. 아버지도 이러길 원하실 거다."
"하."
난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대체 여기의 의무와 권리는 어디까지 사람을 옥죄어 올 건지. 아버지를 죽인 짐승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신 차립시다, 황자 전하."
"넌 이해를 못 할 것 같았다."
"가치관의 차이를 떠나서 말입니다."
나는 말했다.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나는 가테스를 노려보았다. 나한테 이렇게 대놓고 대드는 사람은 지구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강한 사람도.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가테스가, 인간이 아닌 사냥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