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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로 떨어진 S급 헌터-34화 (34/150)

< 34화 권리와 의무 (2) >

"소드마스터 3이 안 되면 남작 작위를 박탈해도 된다는 뜻인가?"

황제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대신들은 거의 말도 못하고 어이없게 날 바라보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게. 제국에서도 소드마스터 3 이상은 30명이 채 안 된다네. 일개 남작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조건이고."

"이 정도는 해야, 대신들이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소드마스터와 소드 스페셜리스트를 헷갈린 건 아닌가?"

황제가 계속 말을 붙였다. 가테스도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말문을 닫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된다. 이 나이에 소드 엑스퍼트 5만 되도 인재니까, 잡고 싶다는 뜻이겠지.

"제가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황제의 불편한 시선은 대신들에게 돌아갔다. 대신들은 고개를 조아렸다. 내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말하면 도발한 쟤들 잘못이지.

"···뱉은 말을 지키는 건 최소한의 명예입니다."

가만히 있던 리얀이 말했다.

"이렇게까지 에퍼리 남작이 대신들에게 공언을 해놨는데, 제국 입장에서 물러주는 것도 웃긴 일입니다. 진행하시옵소서."

리얀의 말에 황제는 혀를 찼다. 그녀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물러달라고 물러주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는가. 차라리 소드마스터 3을 따는 게 낫지. 어떻게 해서든.

"···그래. 에퍼리 남작의 뜻이 그렇다면."

황제는 말했다.

"대신들이 내 안목을 의심하니 어쩔 도리가 있는가. 아쉬울 따름이라네."

"저의 선택일 뿐입니다."

괜히 높으신 황제의 찌릿한 시선을 받게 된 대신들은 어떻게든 황제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황제전의 회의가 끝났다.

"나랑 얘기 좀 할까요?"

도서관에서 한창 스킬 열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 내 앞에 나타난 건 도서관의 일개 사서로 위장한 리얀이었다. 여전히 핑크색 머리였지만, 어쩐지 뱅뱅이 안경은 없었다.

내가 예를 취하려 하자 리얀이 날 막았다.

"여기는 도서관이에요. 전 사서구요. 사서에게 예를 표하는 귀족이 어디 있어요."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한 건데. 깐깐하기는.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리얀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럼 도서관이니까 말도 편하게 할 게요."

"그래요. 전 그게 좋아요."

생각보다 컨셉에 많이 잡아먹혔군. 테스트 완료. 난 의자를 권유했고, 리얀은 맞은편에 앉았다.

"대체 뭔 공부를 하는 거예요?"

"트라프비체 언어 공부입니다."

거의 다 스킬을 열기는 했지만, 개방하고는 좀 다르거든. 확실히 개방하면 몸이 좀 무거워지는 기분이 난다고 해야 하나. 단련을 좀 해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소드마스터 발언은 좀 놀랐어요."

"그렇습니까?"

리얀이 손에 들고 온 찻잔을 휘저었다. 찻잔에서 휘몰아치는 따뜻한 기운이 우리의 자리를 덮었다.

"참고로 말하면, 아버지는 당신의 수준이 소드 스페셜리스트 5 정도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요?"

"그때 마더 트리 해치웠을 때, 조사관들이 당신의 흔적을 보고 판단한 결과에요. 참고로 조사위원장은 저였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소드 스페셜리스트 5라고 판단했다는 거지.

"근데, 당신이 소드마스터 3을 바라본다는 건, 제가 당신을 과소평가했다는 뜻이 되겠죠."

"어째서 그렇게 됩니까? 제가 아직 소드마스터 3이 된 것도 아닌데."

"당신은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건 제 감이지만."

리얀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뒤편에 있는 서가의 책들이 흔들리며 먼지를 떨어뜨려냈다.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파장이 부드럽지만, 강맹한 파장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이 다시 떠졌을 땐, 예상대로 금색의 눈을 띠고 있었다. 난 곧바로 눈을 돌렸다. 그 눈의 힘은, 가테스보다, 황제보다도 강했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빨려 나갈 정도로.

"제가 눈 하나는 잘 타고났죠."

나는 고개를 숙여서 그녀의 눈을 피했다. 저건, 막을 수 없다. 난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꿰뚫릴 수도 없었다.

"눈을 거둬주시죠."

"어머, 황녀한테 협박하는 건가요?"

"지금은 사서 아닙니까."

"싫다면요?"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궁금해서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리얀이 얕은 웃음소리를 섞었다.

책이 몇 권 뒤에서 떨어지고, 책상이 흔들렸다. 찻잔이 깨졌지만 안의 차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자 리얀의 표정이 변했다. 왜냐하면 지금 이건 내가 하고 있는 거거든. 황녀가 아니라 사서니까 상관없잖아.

【스킬 : 위압 Lv MAX 사용 중】

"이건 좀, 떨리네요."

리얀이 일그러진 웃음을 띠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의 눈은 다시 아름다운 에메랄드 색으로 돌아오고, 그녀는 뱅뱅이 안경을 꼈다. 난 그 순간 위압을 풀었다.

소용돌이치던 찻물이 바닥으로 엎어졌다. 난 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으로 리얀 앞에 엎어진 책상을 닦아줬다. 리얀은 가슴에 손을 얹고 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사과를 하려 할 때, 오히려 먼저 사과를 꺼낸 건 리얀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궁금해서, 무례한 행동을 해버렸네요."

"저도 죄송합니다. 감히 황녀한테."

"괜찮아요. 전 지금 사서니까."

리얀과 나의 신경전은 그렇게 끝났다. 내가 먼저 물었다.

"그렇게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봐요. 대답해드릴게요."

"그래요. 당신은 뭘 하고 싶은 거예요?"

리얀이 냉큼 내가 있는 쪽으로 몸을 엎었다. 그 바람에 안경이 살짝 내려가서 에메랄드 색 눈이 반쯤 보였다.

"아니, 당신의 대답을 듣기 전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말해줘야겠군요."

리얀이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어깨를 쭉 폈다. 안경은 여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전 당신을 일체 지원할 마음이 있답니다. 당신은 능력도 출중하고, 현재 제국의 고인 사람들을 갈아내고, 작위라는 제도로 깔려있는 유능한 사람들을 발굴해낼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전 마탑의 수석연구원이기도 하고, 고서관리자, 도서관 부관장 등의 많은 직위를 받고 있죠. 황녀라는 직위는 덤이고요."

덤이라기엔 제일 큰 거 아닌가. 어쨌든 그렇다고 하자. 나는 잠깐 생각을 해봤다. 리얀은 이 소설 속에서 조언자 역할이다. 머리도 좋고, 상냥하고.

지금 그녀가 내게 제의하는 건 동맹 비스무리 한 거다. 그렇다면 나야 고맙지. 그녀의 입은 내가 아는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무거우니까.

나는 바로 말하려고 했지만, 뭔가 목에 걸려서 안 나왔다. 내가 머뭇거리자 리얀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제국에 안 좋은 일인가요? 전 그게 제일 걱정돼요. 당신 같은 사람이 제국을 적대하면, 참 곤란···"

"연애에요."

내가 작게 말했다. 말이 끊겨진 리얀은 나를 눈을 꿈뻑거리며 가만히 바라봤다.

"다시 말해줄래요?"

"못 들은 거예요?"

"아니, 들었는데 제대로 들었나 해서."

"연애요, 연애."

리얀은 안경을 내리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금색 눈은 아니었다. 그저 진심을 알고 싶은 눈빛이었다. 난 수줍게 내 진심을 담아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가만히 있다가 도서관이 떠나가라 웃음을 지었다.

"아하하하하하하!"

"···저기요. 황녀님? 여기 도서관인데."

내 말에도 그녀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뭐, 연애가 비웃을 거리야? 사람 민망하게 하네. 내가 원망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자, 그녀는 헛기침을 하면서 웃음을 간신히 그쳤다. 그러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게 더 열받는다.

"아, 죄송해요."

"알면 됐습니다."

"아, 미안하다고요."

내가 얼굴을 돌리자 리얀이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날 달래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너무 긴장감이 떨어져서 그랬어요. 전 당신이 무슨 제국을 뒤엎으려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요."

"제가 왜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강한 사람이 큰 목표가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연애 정도면 큰 목표인데요?"

"아, 그렇긴 하죠. 그렇지, 그렇지."

리얀이 무슨 날 어린아이 달래듯 말한다. 어쨌든 내 목표를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이 리얀이라 나름 다행이다. 리얀은 실재적으로 내 연애를 도와줄만한 사람이니까. 인맥도 넓고. 능력도 출중하고.

"하긴, 연애는 우리나라에서 힘든 일이예요. 우리는 보통 정략결혼을 하니까요. 평민들끼리도 많이 하죠. 연애결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당신이 제국을 뒤집으려는 생각을 하면, 나는 황녀니까 막아야 하거든요."

나는 웃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러니까 이런 귀여운 짓도 용서할 수 있었다. 리얀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원작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도서관 주변에 있는 병사들 좀 치워요. 살벌해 죽겠으니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리얀은 아예 작정을 하고 온 것 같다. 그녀는 내 말에 살짝 얼었다.

"···알아서 무르려고 했는데, 저를 꾸짖으시네요."

"꾸짖는다니요. 일개 남작이 황녀한테."

"제가 잘못한 건 맞으니까요."

"틀린 게 아니라 입장이 다른 거일뿐이죠."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요."

리얀이 웃으며 무선호출장치를 꺼내 명령을 전달했다. 그와 동시에 도서관 주변에 있는 수많은 인기척들이 사라졌다. 황녀 전용 호위무사들이겠지. 조용히 사라지는 걸 보니 훈련도 잘 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줄 건가요?"

나는 리얀 쪽으로 의자를 틀었다. 메인스토리를 흘러가게 할 연애 라인은 내가 잡아둔다 쳐도, 나를 위한 연애 라인도 잡아놔야지. 그 팀원이 리얀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일단 등위시험을 통과해야겠죠?"

"그렇죠."

"그렇다면 말해줄 게 많죠."

리얀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녀는 이번 등위시험에 관한 것을 그림을 그려가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귀여운 선과 함께 그녀의 나긋한 음성이 정보가 되어 흘러들어왔다.

이번 등위시험이 어디서 펼쳐지는지, 무엇이 목적인지, 어떻게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지. 완전 족보 수준이었다.

"근데 이렇게 알려줘도 돼요?"

"괜찮아요. 제가 등위시험평가 부위원장이거든요."

그게 더 문제 아닌가. 이거 완전 사기 시험이네. 결국 나는 이 시험에 관한 걸 모두 알아냈다. 이 시험은 탄탈로스 숲에서 펼쳐지며, 조를 짜며 움직이고, 던전을 어떻게 레이드를 해야 하는지까지 모두 알 수 있었다.

"자, 시험에 관한 건 이 정도면 됐고."

그녀는 종이를 말아 내게 넘겼다. 나는 얼결에 받았다. 그녀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여심을 알아볼 차례겠죠?"

"···어, 네."

오랜만에 이렇게 휘말리는 기분. 뭐, 어쩔 수 없지. 난 연애에 관해서는 완전히 초보니까.

"일단, 당신은 능력은 충분해요. 그렇다고 앞으로 나서서 하진 말아요. 최대한 위기를 만드세요. 흔들다리 효과는 알겠죠?"

"아, 그. 양아치가 괴롭히고 있으면, 어이, 거기 그 손 멈추지, 약간 이런 느낌이죠?"

"맞긴 한데, 예가 엄청 구리네요."

리얀의 일침에 내 명치가 오목해졌다. 리얀은 내게 한 가지 조언을 해줬다. 최대한 위기를 만들고, 여자를 구해줘라. 그, 그러면 되는 건가.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파티장이 파티원을 위기에 몰다니 말이야. 하긴, 내가 파티장을 할 때 내 파티에서는 커플이 많이 탄생했다. 왜냐하면 내가 혼자 다 하니까, 뒤에서 시시덕거리던 B급 헌터들이 눈이 많이 맞았거든.

그래, 이제는 나도 나를 위해 살아야지.

"등위시험 때 기대하세요. 당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둘 테니."

리얀은 웃은 다음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뭔가 이제 리얀이 성스러워 보이는 기분. 이게 성녀 아닐까. 나는 바로 일어나 내 스승에게 허리를 숙였다.

등위시험 날. 나는 당황했다. 심사평가위원장인 가테스의 말은 리얀이 말한 것과 완전히 같았다. 시험의 내용, 과정, 결격사유, 한 조는 5명이라는 것 등. 그래서 그건 그냥 듣고 넘어갔다.

문제는 내 조였다. 난수로 공정하게 추첨된다는 조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여자였다. 그것도 아름다운 여자들로만. 이게 진정 공정한 난수 추첨이란 말인가. 암, 그렇고말고. 이게 리얀이 준비한 선물인가.

"···반가워요. 아일린입니다."

"시에나예요."

"히아나입니다."

조연 3인방, 역시 아름다워. 데뷔탕트를 거쳤으니 등위시험도 한 번에 수도에서 해결하고 간다 이거겠지. 등위는 명예니까. 여자라도 있어야 하는 게 제국이다.

모두 마음에 드는데. 벌써 호감도가 5~8을 오간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마음에 드는데. 위기 상황을 만들면 된다, 이거지. 근데 문제는 있었다.

'리얀아···'

나는 탄식했다. 이렇게 순둥이들 사이에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너도 이번에 등위시험 봐?"

바로, 오랜 기간을 봤지만 호감도 1에 빛나는 아이리 라피테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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