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256화 (256/260)

# 256

레벨업 속도는 9.8m/s^2 256화

81. 인간의 싸움

쿠구구궁!

윤성의 몸이 흰 빛에 휘감겨 증발했다.

동시에 아리가 재빨리 순간이동석을 받아 들었다.

키가 3미터가 넘어가는 그의 체고에서 순간이동석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차원문을 넘어온 랜딩의 마지막 순간, 윤성이 자세를 잡을 높이가 생길 테니까.

쨍그랑!

연구소 창문이 박살 나면서 바이크를 탄 콜로라 전사들이 난입했다.

“여기 있다!”

그들이 소리쳤다.

“전부 죽여!”

SS급 헌터 오스칼이 칼을 뽑았고 테쿰세, 티엔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자리를 지켜!”

차희가 소리쳤다.

“윤성이 올 때까지 버텨내야 해!”

<광전자포 발동!>

왼 손으로 순간이동석을 높이 든 채, 아리의 오른손에서 마법 주포가 빛을 발했다.

파앙!

한 방에 콜로라 전사 둘이 날아갔지만 적들의 수가 훨씬 많다.

그리고 개중에는 정예도 있다.

<콜로라 라이플 발동!>

전사들 중 몇이 아리와 헌터들을 향해 클로에서 총알을 발사했다.

투두두두 팅!

오스칼과 티엔이 전면으로 나섰다.

<검무 발동!>

<발경 발동!>

두 사람 모두 예부터 사용해 왔던 주력기이자 방어용 스킬을 썼다. 다만 그 위력은 차희의 버프를 받아 훨씬 강력해졌다.

오스칼의 검이 잔상을 남기며 아름답게 흩날렸다. 날이 흐르는 자리마다 콜로라 전사들이 발사한 총알이 쪼개지며 불꽃이 튀었다.

티엔의 몸에서 흘러나온 푸른 마법의 기류는 적들의 공격을 유연하게 받아 흘렸다.

“죽어!”

빈틈을 노리고 달려든 전사 하나가 클로를 길게 뻗고 티엔의 옆구리를 노렸다.

하지만 그 끝이 전투복을 뚫어버리기 직전.

“크헉!”

그가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테쿰세가 마법을 걸고 있었다.

백마 길드 안팎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무렵.

윤성은 처참한 몰골로 까삐앙 도시에 이르렀다.

늦은 밤이다.

하늘에는 콜로라 혹성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다섯 개의 위성이 보였다. 저 중 하나는 ALK일 것이다.

“오랜만이군. 이 도시도.”

<폴리모프 발동!>

<……작동 실패.>

폴리모프도 잘 안 된다.

윤성은 순간이동석을 집어 들었다. 아마 지금쯤엔 아리의 손에 들려 있을, 다니엘의 마법이 걸린 순간이동석과 연결된 물건이다.

이걸 매개로 한 차원문 발동.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스킬이 이것뿐이다. 그것도 딱 한 번뿐.

‘그보다 정말 큰일이군.’

폴리모프 없이 이 몸으로 돌아다니면 콜로라 녀석들한테 발각되고 공격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당장 포탈 랜딩을 위해 인계로 돌아갈 수도 없다.

‘공중에서 문을 넘어야 한다.’

순간이동석으로 통로를 만들고 차원문을 양쪽에 열어 포탈을 이용한 랜딩을 해야 한다.

랜딩 높이는 ‘낙하 시작 지점’부터 ‘착지 지점’까지의 최단 거리.

이는 옛날 이집트에서 비행기를 타던 때의 연구로 확인한 바 있다.

즉, 랜딩을 하려면 까삐앙 도시의 지상에 발을 디딘 상태로 차원문을 여는 걸로는 부족하고, 공중에서 문을 넘어야만 ‘낙하’ 판정이 되는 것이다.

‘쉽게 될까?’

이제는 수호자의 승계 프로그램도 종료되어 조언을 구할 수도 없다.

이 먼 혹성에 완전히 혼자다.

윤성의 왼쪽 발목이 녹아버렸다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살이 갈라지고 불타는 듯한 고통이 계속해서 엄습한다.

시간이 없다.

윤성은 옛 꺼삐딴 길드의 폐허로 이동했다.

건물의 잔해들이 이제는 많이 복구되었고 새 건물이 건축되고 있었다.

잔해더미 속에 마법 합금 기둥 200여 개와 임시 발판과 계단이 세워져 있다.

<랜더의 전투화 발동!>

<……작동 실패.>

아무래도 폴리모프만이 아니라 장비들의 스킬도 모두 무력화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윤성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하나씩 올랐다.

삐걱. 삐걱.

발아래에서 울리는 소리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

가장 처음 Joker 등급을 각성하던 때에 이 같은 폐건물을 오르고 있지 않았던가.

그 애 이름이 뭐였지. 유나였나?

무사히 잘 있을까?

보육원에 있는 걸 한 번 봤지만 그 후로는 소식이 없군.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막상 머릿속에 떠오르고 나니 어쩐지 그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찌릿하다.

그러고 보니 Joker 각성 직후나, 아직 전력이 뛰어나지 않던 때에 만났던 이들 대부분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른다.

코르소와 카다시안 부부.

마족 하인스가 출현했던 리자드맨 던전을 함께 돌았던 헌터 리나나 박형철 등.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E급 헌터로 분투하던 때에는 하급 헌터들의 지위와 의무에 입각해 세상을 지킨다는 신념과 자신감이 있었다.

만약 등급이 오른다 하더라도 그들의 힘과 세상의 평화에 대한 기여도를 무시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상 Joker가 되어 최상급 이상의 전투들을 이끌어온 지금은 어떤가?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만한 힘을 가지고도 방심해서 클리앙에게 치명상을 입고. 에어포스를 죽게 만들고.

지금도 지구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랜더의 전투복도, 전투화도, 시계도. 모두 과분한 것이다.

에어포스. 당신이 Joker가 되었더라면 세상은 좀 더 안전했을까요?

‘E급 헌터인 제겐 너무 무거운 짐이었던 게 아닐까요?’

핑!

갑자기 마법 총알 한 발이 윤성의 귓불을 뚫어버리며 코끝을 스쳤다.

뜨거운 통증과 충격에 놀라서 내려다보니 지상에 콜로라 전사 몇 명이 서 있었다.

“강윤성인 것 같군.”

그들 중 한 여자가 말했다.

통역 스킬이 사라진 윤성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다.

“엔?”

윤성이 콜로라 혹성들을 돌면서 레벨 업을 하던 때 그를 우주선에 태워주었던 콜로라 탐사대 대장이다.

그녀의 병사들 십여 명이 윤성에게 라이플을 겨누고 있었다.

“강윤성! 지금에라도 항복해라!”

엔이 소리쳤다.

“난 지금 통역 스킬이 없다.”

윤성이 한국어로 대답했다.

엔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윤성에게 스킬을 걸었다.

“다시 걸었어. 이제 들리나?”

아무래도 클리앙의 마안에 적중당한 이후에 걸린 스킬들은 작동하는 모양이다.

윤성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엔이 말했다.

“네가 떠난 후, 클리앙 님께서 날 찾아오셨다.”

젠장!

클리앙이 벌써 수를 썼다.

윤성이 이를 악물었다.

“클리앙이 내가 이곳에 올 거라고 했나?”

“그건 아니지만. 클리앙 님께서 지구를 침공했을 때, 만약 놓치면 네가 까삐앙 도시로 도망칠 수도 있다고 하셨지. 폴리모프가 있으니 주의하라며.”

“…….”

포탈 랜딩을 클리앙이 생각한 것 같진 않군. 이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상황이 매우 나쁘다.

“항복해. 아니면 죽이겠다.”

엔이 협박했다.

“그렇게 말해봤자…….”

어떻게 투항하겠는가.

타다닥!

윤성이 건물 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엔이 이를 빠득 갈았다.

“쫓아! 죽여도 좋아!”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콜로라 전사들이 와르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쳇.”

윤성은 단검을 집어 들었지만 적들에게 투척 유도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단검을 던져도 회수할 수도 없겠군.

게다가 클리앙과의 싸움으로 단검의 끝이 깨져서 투척에 적당하지도 않다.

윤성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계단을 달리기 시작했다.

찢어진 발목에서 걸음걸음마다 끔찍한 고통이 일었다.

등에 몇 발의 총알이 박혔고, 엘리지아의 칭호가 그 상처를 재생하고 있었다.

사실상 칭호 하나 말고는 남은 게 없다.

어떻게 이렇게 무력할 수가 있지?

‘난 지금까지 대체 뭘 해온 걸까?’

윤성이 이를 악물었다.

***

적들이 너무 많다.

“아리! 여기서 탈출하세요!”

테쿰세가 소리쳤다.

“차희 씨를 데리고 나가십쇼! 다 막아낼 순 없습니다.”

“쳇.”

아리는 순간이동석을 차희의 손에 들려주고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일단 빠지겠습니다. 안주인님.”

그가 창문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등 뒤에서 부스터가 발동하면서 하늘로 솟구쳤다.

고도가 높아지자 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럴 수가…….”

차희가 탄식을 뱉었다.

참혹하다.

클리앙의 마법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마법 헌터들과 용제와 바토리가 분전한 덕에 스페이스 스퀴즈는 막아낸 듯하지만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메탈로이드가 거의 전멸했군요.”

아리가 말했다.

“다른 병사들도 상당수…….”

“헉!”

갑자기 차희가 화들짝 놀랐다.

“왜 그러십니까?”

“바…… 바토리가!”

그녀가 지상 한편을 가리켰다.

쓰러져있는 바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만 그녀의 몸이 두 동강 나 있었다.

주인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마족 기사들의 주검이 그 곁에 즐비하다.

“인간! 이 현장을 벗어나라!”

옆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새까만 블랙 드래곤. 실렌티였다.

“캬아아아악!”

그가 날카롭게 포효하면서 지상을 향해 쇄도했다.

콰아악!

그러나 그 이빨이 클리앙을 향하는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마법의 장검 같은 게 떨어지더니 그 칼끝에서 피가 분출했다.

실렌티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드래곤은 이제 일곱밖에 남지 않았다. 날개 한쪽을 잃어버린 용제가 지상에서 브레스를 뿜었지만 클리앙에겐 소용이 없다.

<콜로라 스나이핑 라이플 발동!>

클리앙의 손에서 발사된 마법 총탄이 용제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너무나 무력하다. 태풍 앞의 촛불처럼 모두의 생명이 순식간에 꺼져나가고 있었다.

차희는 어깨에 소름이 돋는다.

파괴자.

모든 것을 멸망시키는 존재. 익시튬과 비슷한 무언가라 생각했지만 클리앙의 힘은 그를 훨씬 웃돌고 있다.

헌터들도 태반이 죽었다.

-계속 그 위에 있을 생각인가?

갑자기 클리앙의 목소리가 차희와 아리의 바로 곁에서 울렸다.

“이게 무슨…….”

놀란 아리가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클리앙이 새빨간 마안으로 하늘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한쪽 발이 미들로드의 시체를 밟은 채였다.

이제는 핵이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남지 않은 퀸은 재생 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녀는 뭉개진 머리를 복구하면서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다.

콰앙!

마법 하나가 날아와 아리의 허리를 부숴 버렸다.

“꺄악!”

“안주인님!”

아리와 차희의 몸이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리의 등에서 부스터가 다시 발동하면서 몸을 세우려 했지만 추락 속도가 줄었을 뿐이다.

쿠웅!

그들은 클리앙의 발아래 떨어졌다.

“강윤성은 어디 있지?”

클리앙이 물었다.

“……조금만 기다려. 곧 너를 혼내주러 올 테니까.”

차희가 받아쳤다.

“원래 강윤성은 마지막에 죽일 생각이었다. 그 녀석이 아꼈던 이들을 모두 없애고 나서 말이야.”

클리앙이 말했다.

“그도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하거든. 존경했던 스승과 동료들과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두 죽고, 직장이자 집이었던 공간이 소멸하는 걸.”

그의 눈에 분노와 광기가 튀었다.

“이젠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그 주인공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너, 너희가 먼저 침공한 거잖아!”

차희가 소리쳤다.

“그딴 것 집어치워. 난 그런 걸 따지러 온 게 아니니까.”

클리앙이 말했다.

“옌뚜르와 꺼삐딴의 복수를 할 뿐.”

“그렇게 안 될 겁니다.”

아리가 말했다.

“주인님이 당신을 막을 거예요.”

“안 오니까 하는 말이잖아.”

클리앙이 싸늘하게 아리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하지.”

콰직!

그가 아리의 머리에 주먹을 쑤셔 박았다.

치직, 치직 튀는 전파와 함께 안에서 뽑아버린 것은 마정석이 들어간 인공지능 캠코더다.

아리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클리앙의 마력이 캠코더에 스며들었다.

파직!

백마 길드 광장의 대형 스크린이 켜지면서 캠코더가 비추는 클리앙의 모습이 나타났다.

인계의 모든 인터넷과 텔레비전에 접속하여 강제로 송출하는 화면.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인계의 모두들. 다들 잘 들어라.”

클리앙이 말했다.

“너희의 히어로가 도망쳤다. 나는 이곳의 모든 적들을 학살했지.”

크가 캠코더를 움직여 처참한 현장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인계의 관리자. 민차희 하나만이 남았을 뿐.”

클리앙은 캠코더로 자신과 차희를 비추면서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여행용 캐리어 두 개를 합친 크기의 가방이었다.

“이게 뭔지 알아?”

그가 물었다.

“……?”

“옛날, 너희 인계 놈들이 가지고 있던 폭탄이다.”

가방 커버에 DANIEL이라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이거 설마.

차희의 눈이 커졌다.

윤성이 다니엘을 처음 스카우트했을 때 저 물건에 대해 알려주었다.

메탈로이드 통합 던전을 클리어하는 아이디어를 다니엘이 처음 제시하던 때. 그는 자신이 제작한 2,200T 폭탄 얘길 했었다.

그러나 미연방 헌터국에서는 그 폭탄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로 사용해 버렸고, 지금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 폭탄이 너한테 있지?”

“꺼삐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물건들은 미리 몰수했었거든.”

클리앙이 말했다.

“이 폭탄은 SS급 던전을 소멸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면 훨씬 강해질 수 있지.”

<마력 주입 발동!>

클리앙의 막대한 마력이 폭탄 가방에 콸콸 쏟아져 들어갔다.

차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 스위치를 켰다.”

클리앙이 말했다.

“이 폭탄은 3분 후에 폭발한다. 위력은 이 행성의 내핵을 쪼갤 수 있는 정도다.”

“이 무슨…….”

“나라면 폭발을 정면에서 맞아도, 우주 공간에 남겨져도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쩌면 강윤성. 너도 살아남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 고향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가 캠코더에 대고 말했다.

“네 파트너와 함께말이야. 그들을 살리고 싶다면 지금 내 앞으로 와라. 이제 이 전쟁의 끝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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