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레벨업 속도는 9.8m/s^2 255화
콜로라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재정비된 패잔병이다. 그들의 사기는 그렇게까지 뛰어나진 않다.
비록 익시튬을 잃었다는 사실에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하더라도 일곱 차원 연합을 다시 침공할 투지는 모자라는 것이다.
드래곤과 엘리지아, 마계 기사들과 헌터들을 마주한 그들은 패배의 기억에 주춤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무섭고 막강한 괴물이 머리 위에 있었다.
호버 바이크를 타고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온 클리앙은 적들을 하나씩 학살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커다란 드래곤 한 마리. 그다음엔 엘리지아 성체 둘. 이어서 수십의 좀비 떼. 마계의 군단장급 기사 일곱을 차례로 꺾었다.
다가가면 몇 초 안에 살해되는 대적 불능의 적.
감정이 없는 메탈로이드와 좀비들을 제외하곤 이미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용제. 아무래도 관리자들이 맡아야겠다.”
바토리가 용제에게 말했다.
“그래. 네가 보기엔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바토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클리앙을 노려보았다.
마족 특유의 기감으로 적의 전투력을 면밀히 진단하건대, 그를 상대로 지금 이곳의 관리자들이 한꺼번에 덤벼들면.
“5분.”
그녀가 말했다.
“절망적이군.”
“그중 3분은 퀸이다. 죽고 재생하고 죽고 재생하고 반복하다 죽겠지.”
“5분 동안 강윤성이 로켓을 타더라도 어디까지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용제가 탄식을 뱉었다.
뒤에서 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강윤성이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쓴다고 했어.”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바토리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차원문을 높은 곳에 연결해서 랜딩하려는 것 아닐까? 짧은 시간 내에 랜딩한다면 그 방법뿐인데.”
“그건 불가능해.”
퀸의 추측에 바토리가 고개를 저었다.
“차원문을 연결하려면 마법 역점이 필요하다. 지구에서 연결할 수 있는 역점은 달까지가 최대야.”
“지구의 다른 차원에 연결하면?”
“다른 차원은 평행 우주라서, 우리가 있는 이 우주와는 공간이 달라. 랜딩이 불가능할 거야.”
“결국 달 정도가 한계라는 거군. 확실히 그 정도 높이에선 클리앙을 막을 수 없겠구나.”
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만히 듣던 미들로드가 답답하다는 듯 쏘아붙였다.
“멍청한 것들. 수호자가 죽었기 때문에 달에도 연결할 수 없다. 강윤성이 지나갈 만한 차원문을 만들 수 있는 마법 역점이 거기에 없거든.”
“그렇군.”
용제의 목소리가 더욱 침울해졌다.
“하지만 난 그를 믿어.”
바토리가 활을 집어 들었다.
“방법을 마련해낼 거야.”
“나 역시 그를 믿는다.”
용제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그의 거대한 날개가 좌우로 펼쳐지며 활공을 시작했다.
<용안 발동!>
익시튬을 쓰러뜨린 후 되찾은 용안. 두 번이나 미간에서 뽑혀나갔고 두 번 다 윤성의 도움으로 되찾았다.
<엘리멘탈 캐논 발동!>
클리앙이 발사한 마법 미사일이 용제를 정확히 겨냥하고 날아올랐지만 용제는 그 공격을 읽었다.
쉬이익!
그의 몸이 빙글 돌면서 클리앙의 공격을 회피했다.
클리앙의 미간이 약간 일그러졌다.
“용안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 공격을 피할 수는 없을 텐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
“익시튬의 마력이 약간 들어갔군.”
익시튬이 용안을 뽑은 상태에서 윤성에게 죽임을 당했다. 용안의 특이한 마력 순환 구조는 익시튬의 숨이 멎는 순간 그의 몸에서 방출된 마력들을 일부 흡수해 버린 것이다.
이유를 알면 파훼할 수 있다.
클리앙의 손가락이 용제를 다시 향하는 순간.
부우웅!
마법 화살 한 대가 클리앙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팡!
클리앙은 그걸 피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화살은 그의 몸을 꿰뚫지 못했다.
미간에 약간의 긁힌 상처가 생겼을 뿐.
촤아악!
동시에 미들로드의 사슬이 날아와 그의 몸을 휘감았고, 퀸이 달려와 어깨로 그를 들이받았다.
“크윽.”
하지만 퀸이 당황하며 물러났다.
가시 촉수를 두른 어깨로 쳤으나 촉수가 모두 부러진 것이다.
클리앙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퀸! 물러나라!”
하늘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브레스 발동!>
동시에 거대한 화염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다. 막대한 열기를 느낀 퀸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손목이 무언가에 꽉 붙들렸다.
클리앙이 미들로드의 사슬에 묶인 채, 퀸을 쥐고 있었다. 그는 함께 용제의 불꽃을 덮어썼다.
쿠우우우!
연기와 재가 사방에 날린 후, 그 자리엔 반쯤 녹아버린 퀸과 재가 되어버린 사슬, 그리고 처음 그대로의 클리앙이 있었다.
“조금 덥군.”
클리앙이 말했다.
“이 정도였구나.”
그가 말했다.
“겨우 이 정도에 꺼삐딴이 무너졌고 익시튬이 당했어.”
퀸의 몸은 꾸물거리며 재생되고 있었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스페이스 스퀴즈 발동!>
클리앙의 마법이 공간 축을 일그러뜨렸다.
국소적인 공간을 휘게 해서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상처를 입히는 마법이다.
그러나 클리앙의 마력이 너무 거대한 탓에 그의 스킬의 범위도 달라졌다.
한 바가지의 물이 개미 떼에겐 거대한 홍수를 초래할 수 있는 원리와 같다.
세상이 소용돌이친다.
대지가 치솟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태풍에 휘말린 모래성처럼 건물들이 으깨지고 흐르고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계산을 잘못했군.”
바토리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30초 정도였다.”
콰아아앙!
클리앙의 마법에 휘말린 일곱 차원의 군대는 장난감처럼 부서졌다. 낙엽처럼 흩날리는 찢어진 살점과 피와 강철 부품과 장비들.
이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서 콜로라 전사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뭐, 뭘 하시는 겁니까?”
그들이 공포에 질려 덜덜 떨었다.
필멸하는 존재라면 이 힘을 목도하는 걸 감당할 수 없다.
도시가 통째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검붉었던 하늘이 이제는 땅속으로 침식하는 중이다.
바다가 끓어오른다.
동해에서 치솟은 해일이 지상으로 밀어닥쳤다.
비정상적인 공간의 뒤틀림에 맨틀이 어긋나 지진이 일기 시작했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장이 아니잖아…….’
콜로라 전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남자가 이 행성을 파괴하겠다고 얘기한 건 문자 그대로의 말이다. 행성을 부수겠다는 뜻이야…….’
그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우,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까지 죽이시진 않겠지?”
쿠우웅!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스페이스 스퀴즈 복판에 들어온 용제가 입을 쩍 벌렸다.
<용제의 네스트 발동!>
<마왕의 장막 발동!>
바토리가 함께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나 둘의 마법으로도 스페이스 스퀴즈 속에서 공간의 안정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미들로드!”
바토리가 소리쳤다.
“뭐 좀 해봐!”
“내겐 방어 마법이 없다. 퀸도 마찬가지고.”
“…….”
용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천사가 있었어야 했는데.”
광휘의 날개가 있었다면 이 공격을 어떻게든 버텨냈을지도 모른다.
콰직!
용제의 날개가 찢겨나갔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이를 깨물었으나 마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드 발동!>
갑자기 미약한 방어 마법이 날아와 연합군을 에워쌌다.
범위가 워낙에 조그마해서 겨우 두세 사람 들어갈 정도다.
바토리는 그 마법의 시전자를 찾고는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백마 길드 소속의 E급 헌터였다. 들어온 지 몇 주 되지도 않은 새파란 신인. 신차민과 동갑이다.
<배리어 발동!>
보다 좀 더 큰 마법이 보태어졌다. 협회 소속이었던 나이 많은 헌터다.
뒤이어 마법 헌터들이 전면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실드 발동!>
<보호막 발동!>
<프로텍트 에어리어 발동!>
<보호 발동!>
수많은 방어 마법들이 현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죽을 힘 다해서 막아!”
그들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
“차희? 괜찮아?”
백마 길드 연구소. 랜딩을 준비하던 윤성이 물었다. 갑자기 차희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헌터들에게 버프를 쏟아부었어.”
그녀가 말했다.
장거리에서도 인계 관리자의 마법은 듣는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신념으로 이어져 있는 한.
“괜찮아, 이제.”
차희가 말했다.
“버텨낼 거야. 다들.”
그녀가 윤성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붙잡은 손가락이 흐물흐물 녹아서 허물어져 버렸다.
아직도 윤성의 몸은 간헐적으로 붕괴와 재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크으윽…….”
윤성이 낮게 신음했다.
다리 한쪽이 썩고 있어서 서 있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윤성은 바닥에 누웠다.
“아파?”
차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버틸 만해.”
윤성이 말했다.
“준비 끝났, 끄, 끝났어요.”
다니엘이 말을 더듬으며 다가왔다.
“하, 하지만 이거 정말, 정말 위험해요. 아, 아시죠?”
“잘 알아. 처음 그 아이디어를 냈을 때 수호자한테 귀에 딱지 앉도록 잔소리를 들었거든. 죽고 싶으면 뭔 짓을 못 하냐면서.”
윤성이 말했다.
“수호자는 내가 견딜 수 있는 버프가 고작 100만 킬로미터 정도랬지.”
“지금은 좀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익시튬을 잡았으니…….”
차희가 말했다.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부터 할 랜딩에 비하면 별 의미 없어.”
“그래…….”
“그때 수호자는 내게 200만 킬로미터 정도에 이르면 현기증을 못 견뎌서 싸우지 못할 거라고 했어. 1,000만 킬로미터를 넘으면 마력의 부담에 짓눌려 죽거나 기절할 수도 있댔고.”
윤성이 말했다.
“하지만 수호자가 내게 버프에 대해 알려줄 때. 그 녀석은 버프가 단순히 시스템값이 아니랬어.”
“그럼?”
윤성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버프.
본래 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힘을 일시적으로 얻는 것.
바퀴 아래 깔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집어 드는 어머니나, 세계 최고의 팀을 꺾어버리는 언더독 스포츠 선수들.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이고 극도의 정신 무장 속에서 발휘되는 초인적인 힘이다.
윤성은 차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협회의 말단 사무직이었던 그녀가 사람들의 지지로 말미암아 인계의 관리자가 되어버릴 정도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얼마나 넘었을까?
버프의 본질이란 그런 것이다.
‘한계 이상의 힘’이라는 정의를 가지면서 동시에 100만 킬로미터 같은 제한이 걸리는 것은 모순적이다.
시스템값에 현혹되지 말자.
수호자 역시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너는 미친놈이 확실하다.
수호자의 승계 프로그램이 윤성에게 말을 걸었다.
-플랑크톤이 태평양 바닷물을 모조리 삼켜 버리겠다는 꼴이야. 지금에라도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는 건 어때?
“이 방법뿐이야. 그리고 난 인간이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할 때, 그에게는 어떤 한계도 없다고 믿어.”
윤성이 말했다.
“부탁합니다. 다니엘.”
그가 순간이동석을 내밀었다.
차원 이동의 마법 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던 인류 최고 천재 다니엘의 가장 위대한 연구.
그는 콜로라의 신물을 지구의 마법 ‘차원문’과 연결 짓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둘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콜로라에도 약간 성질이 다르지만 차원문이 존재한다.
하지만 근거리용이다.
뛰어난 엘리트들도, 양쪽에 마법 역점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수만 킬로미터 정도 거리의 차원문밖에 연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주적인 정복 전쟁은 그 거리의 단위가 달라진다.
6억 4천만 광년.
콜로라 혹성 까삐앙 도시에서 지구까지 날아오려면 그만한 공간을 뛰어넘는 차원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 말도 안 되는 작업에 클리앙이 성공한 것은, 클리앙 본인이 말도 안 되는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며 이곳에 익시튬의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우주적 통로를 만들 만한 마력을 발휘했고, 동시에 X등급이 지나갈 정도의 문을 양쪽에 생성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런 게 일반적으론 불가능하다.
보다 체급이 낮은 전사들은 작은 문을 만들어 이동할 수 있지만 우주적 거리의 통로를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옛날에는 그들도 익시튬처럼 우주선을 타고 직접 여행해야 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콜로라는 순간이동석을 만들어냈다.
우주 공간에 자동으로 길을 형성해주는 마법 아이템.
다니엘은 그것을 해킹했다. 순간이동석 내에 입력된 공간 위치를 분석하고, 암호화된 값을 풀고, 그걸 지구의 차원 이동 마법 코드로 변환한다.
“분석 끝났습니다.”
다니엘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제 손 잡고 마법을 쓰세요.”
그의 말이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바닥에 누운 채 윤성이 짓물러 녹아내리고 부서져 가는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세 개 남은 손으로 다니엘의 손을 움켜쥐고 마법을 작동시켰다.
<순간이동석:차원문 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