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레벨업 속도는 9.8m/s^2 254화
클리앙조차 이런 전개는 예상치 못했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에어포스가 움직이다니?
“안 돼!”
뒤쫓으려던 클리앙의 몸이 비틀거렸다.
너무 큰 마법을 썼던 탓에 움직임이 둔해졌다.
“쫓아!”
그가 소리를 질렀다.
콜로라 전사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어포스에게 매달려 날아가는 길.
윤성이 물었다.
“에어포스! 당신 괜찮아요?”
“아뇨…….”
에어포스의 입에서 빛나는 천사의 피가 흘러내렸다.
“빛의 강체를 심장에 집중적으로 둘러 순간적인 절명은 막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한국어였다.
‘내가 통역 스킬까지 잃어버린 걸 에어포스가 알아챈 걸까?’
순간 착각이 들었지만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에어포스는 윤성과 대화할 때는 항상, 천계의 언어를 쓰지 않았다.
“적들이 쫓아와요!”
윤성이 외쳤다.
쾅! 쾅!
콜로라 전사들의 마법이 에어포스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젠장. 에어포스. 미안하지만 제가 지금 클리앙의 마안을 맞고 스킬이 전부 무력화되어서 저들을 막아낼 수가 없어요!”
“압니다.”
<광휘의 날개 발동!>
에어포스의 마법이 찬란한 방어막을 형성해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잠깐뿐이다.
콰앙!
한 발의 엘리멘탈 캐논이 방어막을 뚫고 들어와 에어포스의 허벅지에 적중한 것이다.
그녀가 윤성을 안은 채 휘청거렸다.
“에어포스!”
“괜…… 찮습니다.”
에어포스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그러나 허벅지에서 천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에어포스. 광휘의 날개를…… 쓸 마력이 없는 건가요……?”
“천사 날개를 잃으면서 모든 마력을 소진한 것 같군요.”
“잠깐만.”
윤성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럼……. 마력이 없는데 지금 비행을 어떻게 쓰는 거예요?”
에어포스가 빙긋 웃었다.
생명력을 깎아서.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답이 윤성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만! 내려주세요! 에어포스!”
윤성이 소리쳤다.
“꽉 잡아요.”
“미쳤어요? 이러다가 죽어요!”
쉬이익!
마법 캐논 하나가 윤성의 귓가를 스쳤다.
“윤성 씨.”
에어포스가 말했다.
“저들을 막을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저 차원문, 당신이 연 거죠? 저걸 넘겠습니다.”
에어포스의 몸이 잠깐 빛나더니 비행의 속도가 점점 가속되기 시작했다.
적들과 거리가 벌어진다.
그리고 에어포스의 등, 날개가 찢겨나간 상처에서부터 빛이 분출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명력이 급격히 소모되고 있었다. 윤성이 경악해서 외쳤다.
“자, 잠깐만요. 에어포스! 일단 내려주세요! 조금 버티면 제 디버프가 풀릴 거고, 그럼 비행해서 같이 나가면 돼요!”
“그사이에 클리앙이 쫓아오겠죠.”
에어포스가 말했다.
“그자의 힘. 아시겠지만 익시튬 이상입니다. 당신의 랜딩밖에 방법이 없어요. 전 당신을 탈출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쓸 생각입니다. 속도를 줄이면 따라잡히니까요.”
“아, 아냐. 같이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잠깐만. 일단 좀 내려주세요!”
“그만.”
에어포스가 말했다.
“지금 제 판단이 정확하니 억지 부리지 마세요.”
“하지만 그 몸으로 비행 같은 걸 이렇게 쓰면…… 이러다 죽는다고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승자도 무언가를 잃게 마련이에요. 당신이 절 그렇게 생각해 주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무슨 소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린…….”
“윤성. 오래전부터 당신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네?”
하지만 에어포스는 말하지 않고 한참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얘기요?”
“엘라이자.”
“네?”
“엘라이자……. 숨. 페르난.”
천계의 언어다.
“저 지금은 천계 언어 이해 못 해요. 통역도 없어져서…….”
“압니다.”
윤성의 뺨에 빛나는 따뜻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에어포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에어포스……?”
그녀가 윤성을 꽉 안았다.
“그래서 천사 언어를 쓴 거예요. 비겁한가요? 하지만…….”
“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
“처음엔 그냥……. 한국에 강한 헌터가 하나 더 생겨서 기쁘다는 감정뿐이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언제부턴가 당신은 제 짐을 나눌 수 있는 전우가 되었고, 그다음엔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되었어요.”
“당연히…….”
“당신이 사람들의 기대와 찬사를 독점했기 때문에 솔직히 당신을 질투했던 적도 있어요. 후후, 우습죠? 나 같은 사람이 질투라니.”
에어포스가 말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난 후에는, 내가 당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는, 그게 기묘한 감상을 주더군요.”
“…….”
“콜로라의 침공 같은, 내 손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들이 벌어졌고 난 당신한테 자연스럽게 의지했어요. 마제스티엘에게도 없었던,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죠.”
“에어포스…….”
“그때부터였습니다. 내가 당신 곁을 계속 맴돌게 된 것이.”
윤성을 꽉 안은 손바닥에서 빛이 흘러넘친다.
“윤성. 그거 알아요?”
“네?”
“당신이 날 대천사로 만들었던 날.”
그녀가 말했다.
“난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요.”
“…….”
“차희 씨가 부러워요.”
그녀가 빙긋 웃었다.
“제가 주었던 단검, 차희 씨에게 주셨더군요.”
“어……. 전 필요 없었고, 그 애한테 호신용으로…….”
“용제의 반지도 차희 씨에게 줬고요.”
“…….”
“하지만 무엇을 주든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차희 씨 곁에는 당신이 있어야 해요.”
에어포스가 말했다.
“그녀는 당신을 위해서 싸울 때 가장 영리해지고, 당신은 그녀를 등 뒤에 두었을 때 가장 강해지니까요.”
이제 차원문이 머지않았다. 적들의 추격은 빨랐지만 이제는 약간 여유가 있을 정도로 거리가 벌어졌다.
에어포스의 생명력이 이제 거의 다했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에어포스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은 알고 있을까?
함께 하늘을 날았던 순간의 기억들이 햇볕에 그을린 자국처럼 뜨거운 꿈이 되어버린 걸.
이 감정은 가슴 속에서 오랫동안 한 방울씩 정제된 깨끗한 물 같은 것.
당신이 갈증을 느낄 때면 언제든 주고 싶었지만, 천사의 언어로는 아니었다.
“엘라이자. 숨. 페르난.”
에어포스가 말했다.
두 사람의 몸이 차원문을 넘었다.
인계의 바람이 뺨을 차갑게 스친다.
10여 미터 상공.
지상에 놀란 시민들과 헌터들, 차희가 보였다.
벌써 소식을 듣고 달려온 메탈로이드와 드래곤, 천사들과 마족, 엘리지아와 좀비들도 있었다.
거리 때문에 조그맣게 보이던 그들이 점차로 가까워졌다.
거대한 침식형 던전 게이트를 등 뒤에 두고, 에어포스는 윤성을 안은 채 추락했다.
극도의 기감에도 불구하고, 윤성은 이처럼 가까이에 있는 에어포스의 심장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콰아앙!
지상에 떨어진 윤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힐러!”
그가 소리를 질렀다.
“힐러들! 이쪽으로 와주세요! 에어포스를 치료해 주세요!”
켄지와 몇몇 헌터들이 재빨리 달려왔다. 그러나 힐링 스킬은 에어포스의 몸에 스며들지 못했다.
헬라엘과 천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에어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켄지가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슈우우우우.
에어포스의 몸이 빛으로 산화해서 대기 중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된 겁니까?”
천사들이 윤성에게 물었다.
“저 게이트는 무엇입니까? 침식형 던전이 갑자기 범람하다뇨? 대체 누가?”
“이젠 일곱 차원 간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저 던전은 대체 어느 차원에서 나온 것입니까?”
“어느 차원도 아닙니다.”
윤성이 대답했다.
“콜로라가 만든 겁니다. 클리앙이 수호자를 살해하고 인위적으로 일으킨 겁니다.”
헬라엘이 고개를 떨구었다.
“대천사님…….”
그가 말했다.
“지난번과 다를 게 없군요. 왜 당신은 항상……. 우린 결국 그들을 막지 못하는 겁니까?”
그 옆모습을 보며 윤성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의 눈에 새파란 분노가 서렸다.
콰과광!
침식 던전 게이트가 찢어지며 분출하기 시작했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콜로라의 탈출용 우주선.
이제는 공격용이다.
그 꼭대기에 클리앙이 앉아 있었다.
“클-리-앙-!”
소리치는 윤성의 눈에 핏발이 섰다.
“시끄럽다.”
클리앙이 말했다.
“강한 자는 짖지 않는다. 날 실망시키지 마라. 너는 내 마지막 숙적이니 항상 강해야 한다.”
“클리앙……. 널 반드시.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윤성의 목소리에 분노가 들끓었다.
“기세는 좋지만 네겐 이제 방법이 없다.”
클리앙은 통신기를 집어 들었다.
치지직.
지상에 있는 헌터들의 무전기, 그리고 각 텔레비전과 라디오들에서 전파가 튀었다.
클리앙이 흘린 마법이 그들의 주파수를 강제로 통일시켜 버렸다.
이제는 클리앙의 목소리가 각 기기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나는 꺼삐딴의 마지막 생존자다. 옌뚜르의 의지를 잇고 익시튬의 힘을 이어받은 콜로라 최후의 전사 클리앙이다.”
그의 외침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나는 오늘 이 행성을 파괴한다.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너희의 수호자와 대천사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그가 윤성을 가리켰다.
“너희의 히어로는 힘을 잃었다. 그는 수호자가 없으므로 달에서 랜딩할 수 없다. 그렇다고 로켓을 탈 수도 없다. 탈 때까지 내가 기다려 줄 리 없고, 우주까지 다녀올 시간도 없을 테니까.”
콰아앙!
클리앙의 몸에서 막대한 마력이 솟구쳐 하늘로 퍼져 나갔다.
익시튬 때와 똑같다. 그러나 검붉어진 하늘은 더욱 짙고 흉흉하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싸늘하다.
염산을 마신 것처럼 공기가 맵다.
“윤성 헌터님이…… 랜딩을……. 할 수 없는 건가?”
헌터들 중 누군가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동요하지 마라.”
용제가 성큼 나서며 소리쳤다.
“강한 적이지만 힘을 합치면 막아낼 수 있다.”
“저걸 잡을 정도의 랜딩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바토리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윤성 씨를 데리고 빠져나가세요.”
차희가 오스칼에게 말했다.
“네?”
그녀가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나 이미 ‘연대’와 ‘정신 연결’로 대강의 정황을 파악한 차희는 윤성이 지금 큰 부상을 입었고 스킬을 모두 잃었다는 걸 안다.
클리앙이 걸어놓은 ‘붕괴 마법’은 시간이 지나면 멈출 테고, 엘리지아의 칭호로 회복될 것이다. 모든 스킬을 잃어버린 디버프 역시 시간이 지나면 풀릴 거다.
역시 문제는 랜딩이다. 그 방법을 찾을 때까지 윤성을 지켜야 한다.
“아리. 윤성이를 보호해.”
차희가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주인님.”
아리가 윤성을 번쩍 안아 들었다.
“아리. 다니엘에게 가자.”
윤성이 말했다.
“미쳤어?”
그 얘길 옆에서 들은 차희가 갑자기 펄쩍 뛰었다.
“그 방법밖에 없어. 차희. 알잖아?”
“절대 안 돼! 죽을지도 모른다고!”
“에어포스가 목숨을 던졌어.”
윤성이 말했다.
“나도 걸어볼 생각이야.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하지만…….”
“어쩌면 이 세계의 종말. 어쩌면 내 최후의 랜딩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때가 아냐. 마지막 기회야.”
“…….”
“내가 랜딩하고 나면, 차희, 네가 나한테 마법을 걸어줬으면 좋겠어.”
“마법을?”
“랜딩의 부작용을 진정시켜줘.”
윤성이 말했다.
그는 아리의 품에 안겨 누운 채 주먹을 쥐었다.
‘에어포스. 우리가 이 세상을 반드시 구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