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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53화 (253/260)

# 253

레벨업 속도는 9.8m/s^2 253화

80. 클리앙

옌뚜르의 배터리는 순수한 마력의 결정체다.

익시튬에게 승리한 후 시스템의 선택을 받지 못한 그가,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X등급에 도달하기 위해 고안해낸 물건이었다.

쯔위민처럼 막강한 전사라도 함부로 씹었다간 그 막대한 독성에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클리앙은 이걸 삼킬 수 있다.

마정석의 독성을 중화할 수 있는 특이 체질. 한때 콜로라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었던 전사였지만 옌뚜르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꺼삐딴 간부까지 성장했던 동력.

성장 속도로는 그를 따라올 수 있는 자가 전 우주를 통틀어도 없다.

와드득!

클리앙의 송곳니가 옌뚜르의 배터리를 깨물었다. 윤성에 대한 복수심으로 갈아온 그 송곳니였다.

화아악!

치아가 모두 닳아 없어질 것 같은 화끈거리는 감각.

곧이어 밀어닥치는 막대한 마력의 부작용에 그의 전신이 뒤틀렸다.

장기들을 원심 분리하는 기분이다. 수억 미터의 지옥 같은 심연 속으로 몸이 침전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클리앙의 눈은 붉게 빛났다.

‘옌뚜르.’

이미 X등급에 이르렀고 배터리를 씹은 그 눈에 이제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인다.

죽음의 강을 넘어간 꺼삐딴의 지도자와 머나먼 별에서 망자가 되어버린 익시튬.

카이야쓰와 딘야차. 베아트리체, 쯔위민.

꺼삐딴 간부들이 하나씩 클리앙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의 빛깔이 우울하다. 향냄새와 함께 레몬을 깨문 듯한 신맛이 입안에 번졌다.

심장이 묵직하게 쿵쿵, 요동쳤다.

흉흉한 마력이 거미줄처럼 혹성 전체에 번졌다.

그 힘은 죽음 그 자체다.

ALK 혹성에 피어난 꽃들이 순식간에 시들고 말았다.

콜로라의 수호자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이 우주 그 누구도 감히 대들 수 없는 괴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슨 짓이냐?

콜로라 수호자의 목소리가 클리앙의 귓가에 울렸다.

-내가 이미 너에게 우주를 정복할 힘을 주었다. 너는 무엇을 탐내는 것이냐? 그것은 우주의 법칙에 어긋난다.

<이제 우주의 법도는 나 하나뿐입니다.>

클리앙의 눈이 새빨갛게 빛났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어서 마력을 죽여! 그런 힘을 휘두르면 너 자신도 무사치 못하다.

<강윤성을 죽일 수 있다면 나도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네가 하지 않겠다면 내가 하겠다. 직접 시스템에서 네 모든 것을 종료해버릴…….

<마안 발동!>

쿠우웅!

클리앙의 마안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앞을 비추었다.

불빛 속에 나타난 것은 콜로라의 수호자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놀란 수호자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클리앙이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수호자는 등골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마안으로 차원을 찢고 나를 소환했다고?’

이런 게 가능한 것인가? 코딩 시스템 내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이건 일종의 에러 코드다. 시스템의 변종 바이러스다.

“넌 대체…….”

싸악!

클리앙의 클로가 수호자의 머리를 잘라버렸다.

“아무것도 날 막을 수 없다.”

<차원문 발동!>

클리앙이 손을 뻗어 스킬을 사용했다.

파지직!

그러나 차원문은 생성되다 말고 무너져 버렸다.

‘수호자가 죽었기 때문인가?’

<스페이스 스퀴즈 발동!>

잠깐 고민하던 클리앙은 다른 스킬을 사용해 보았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차원문만이 열리지 않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차원문은 목표 지점과 현재 지점 두 군데에 열려야 한다. 현재 지점에는 X등급 자신의 마력을 잘 가공해서 문을 조형한다고 해도 목표 지점에 생성시키기가 어렵다.

그곳에 X등급을 받아들일 만큼 거대한 마력 역점이 없는 까닭이다. 익시튬을 비롯한 X등급이 차원 이동을 할 수 없다고 알려진 이유도 그와 같다.

하지만 클리앙에겐 방법이 있다.

<마안 발동!>

클리앙은 우주적 기감에 마안의 마법을 연결해 익시튬의 사체를 찾아냈다.

백마 길드 지하.

어마어마한 마력이 아직도 느껴진다.

‘당신의 혼은 그곳을 떠났지만 마력은 아직 흩어지지 않았군요.’

마치 사람이 죽어도 그 시체가 썩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차원문 발동!>

클리앙의 마법이 익시튬의 시체를 겨냥하여 다시 연결되었다.

검붉은 마법의 문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치 우주가 종말하는 순간을 축약해 놓은 것 같다.

클리앙의 발이 문턱을 넘었다.

괴물의 한 걸음이 은하를 뛰어넘어 지구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클리앙은 백마 길드를 곧바로 파멸시킬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강윤성의 버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클리앙은 익시튬보다 강력하고 옌뚜르보다 교묘하다.

그는 폴리모프를 했고, 마력을 깊이 눌러 감춘 채 익시튬 군대의 잔당을 찾아냈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의 작은 섬에 지구를 탈출하기 위한 비상 우주선을 준비해 둔 상태였고, 패잔병들을 모으고 있었다.

“달로 나를 안내해라.”

클리앙이 그들에게 말했다.

“미쳤냐?”

“이건 탈출용이야!”

“어디서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익시튬의 잔당들은 당연히 반발했으나, 클리앙이 자신의 마력의 극히 일부를 분출한 후에는 그러지 못했다.

“너희 보스의 복수를 해주겠다.”

클리앙은 우주선을 타고 달로 이동했고, 수호자를 살해했다.

다음으론 수호자의 코딩 시스템을 뜯어 살폈다.

“이거군.”

프로그램 자체는 보안이 걸려 있어 삭제할 수 없었으나 그 내용은 알아볼 수 있다.

프로그램과 연계된 아이템들도.

“랜더의 시계라.”

걸리적거린다. 언제든 익시튬을 쓰러트렸던 그 버프를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게.

하지만 바로 직전의 버프를 재생할 뿐이다.

클리앙은 강윤성이 지구에서 다시 랜딩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별 볼 일 없는 버프를 획득하고 나면 일을 시작할 셈이었다.

운 좋게도 며칠 더 기다리자 샌텀 타워에서 끝내주는 기회가 왔다.

에어포스와 민차희까지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

“민차희는 소환되지 않은 모양이군.”

클리앙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지구로 내려가면 모두를 멸할 수 있으니.”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윤성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후후후.”

클리앙이 윤성과 에어포스를 슬쩍 쳐다보았다.

“안 돼!”

에어포스가 재빨리 윤성을 잡아당겼으나 늦었다.

두 사람 모두 클리앙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마안 발동!>

“아아아악!”

에어포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어포스!”

“으으으…….”

그녀의 날개 다섯 쌍이 재가 되어 녹아버리고 있었다.

먼 옛날 옌뚜르가 헬라엘을 파멸시켰던 그 스킬이다.

“이 새끼!”

윤성이 단검을 들고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나 클리앙의 주먹이 복부에 꽂혔다.

“크헉!”

반응할 수 없다.

엄청난 속도다.

윤성의 몸이 고꾸라지자 클리앙이 그를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이 순간을, 대표님이 돌아가셨던 날부터 꿈꿔왔다.”

클리앙이 말했다.

“내 고통을 너도 맛봐야 한다. 네가 사랑하는 모든 이를 죽여주마.”

그의 손가락 끝이 에어포스를 향했다.

“우선 에어포스부터.”

<커팅 핑거 발동!>

퓽!

손가락에서 클로의 검날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그 공격력이 압도적이다.

팅!

단검으로 공격을 쳐낸 윤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검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종단 속도의 단검은 옛날 에어포스의 빛펀치를 맞고 한 번 소멸했던 적 있다.

그러나 옛날이야기다. 단검은 랜딩 기록 중 도달했던 가장 높은 최종 속도에 따라 성능이 달라진다.

공격 속도만이 아니라 강도 역시 변할 것이다. 그 증거로 음속 랜딩 이후에는 익시튬의 피부에도 박히고 쯔위민의 공격도 막아내지 않았던가.

“어떻게…….”

그 단검이 이렇게 힘없이 부러졌다. 힘의 격차가 아찔하다.

퍼억!

클리앙의 발끝이 윤성의 가슴께를 강타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콰앙!

이어지는 묵직한 마법. 무엇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윤성의 어깨 한쪽이 탈골되고 장기 중 하나가 파열되었는지 입으로 피가 울컥 튀어나왔다.

<칭호 : 엘리지아의 정복자 발동!>

“그래, 너한텐 그 기묘한 재생력이 있었지.”

클리앙이 윤성을 쏘아보았다.

<펨토 붕괴 발동!>

어팝토시스와 유사한 스킬이다. 하지만 세포 자살이 아니라 분자 수준의 붕괴다.

“끄아아악!”

윤성의 몸 곳곳이 찢어지고 녹았다가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클리앙은 그를 쉽게 죽일 생각이 없다. 윤성은 고통으로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에 그의 모든 감각이 싸하게 가라앉았다.

푹.

클리앙의 클로가 에어포스의 심장을 찔렀다.

이미 날개를 잃고 주저앉았던 그녀의 몸이 천천히 기울어 쓰러졌다.

“클리앙!”

분노한 윤성이 달려들었지만 상대가 안 된다.

클리앙의 펀치가 그의 턱에 꽂혔다. 나동그라진 윤성은 점점 눈앞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강윤성!

바로 그 순간 수호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신 차려라!

<뭐야……? 살아 있었냐?>

윤성이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답했다.

-난 죽었다. 이건 수호자 승계 프로그램이 작동한 거야. 잘 들어라. 정신 차리면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다.

수호자가 말했다.

-차원문을 열어.

<침식형 던전이잖아. 클리어해야만 나갈 수 있는 던전이야. 그런데도 차원문이 열리나?>

-원래는 안 되지. 하지만 이제 네가 수호자다. 네가 원하면 열 수는 있어. 다만 문제가 있다.

<뭔데?>

-여기서 차원문을 열면 원래 던전 출구 게이트가 열리게 될 텐데, 그 위치가 너무 멀다. 그리고 위치를 바꾸려면 코드를 만져야 하는데 넌 그걸 못 해.

<그럼 어떡해?>

-게이트를 열고 거기로 비행을 써서 날아가 탈출하는 거다. 좀 멀지만 그 방법뿐이다.

<차원문 발동!>

마법을 발동하자 수백여 미터 거리에 차원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윤성은 점점 초점이 흐려지는 눈을 한 번 비비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썼다.

“차원문을 열었군.”

클리앙이 비웃었다.

“발버둥 치기는.”

파악!

윤성은 클리앙을 향해 달려들다가 방향을 꺾었다.

<비행 발동!>

에어포스를 끌어안고 하늘로 튀어 올랐다.

<마안 발동!>

“크아악!”

클리앙의 마법에 적중당하자 갑자기 온몸이 무거워졌다.

<디버프 : 마안(스킬 무력화)>

“X등급을 뛰어넘으며 갖게 된 마법이다.”

클리앙이 말했다.

“네 모든 스킬을 무력화했다.”

그러나 윤성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패시브 스킬이었던 통역까지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비행이 꺼졌다.

지상을 향해 몸이 추락하고 있었다.

‘끝인가?’

윤성이 질끈 눈을 감았다.

덥석.

새하얀 팔이 윤성의 가슴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아직…….”

에어포스가 말했다. 극도의 피로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비행 발동!>

파아앙!

두 사람의 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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