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레벨업 속도는 9.8m/s^2 252화
샌텀 타워의 방송에서 공개할 것은 단순히 Joker와 슈퍼히어로랜딩만이 아니다.
수호자와 그 후계의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 관리자인 차희가 다른 차원들에서 어떤 지위를 갖고 있는지도.
이런 맥락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전달력을 위해서 윤성은 Joker의 검증을 우선시했다.
유엔 기구 내에 마련된 국제 헌터 협회에 직접 출두했다.
랜딩에 따른 버프와 마력값을 계산해 주며 랜딩 능력을 검증해 주었다. 자신의 등급이 Joker라는 것도 함께.
방송까지 3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J등급. 연일 화제야.”
차희가 백마 길드 사무실에서 말했다. 이제는 CEO가 된 그녀가 윤성이 앉던 책상을 쓰고 있었다.
“그럴 만하지.”
이제는 ‘외부 차원 관리국’이라는 신설 부서의 국장이 된 윤성이 소파에서 답했다.
“유엔 늙은이들 다루는 건 어때?”
윤성이 묻자 차희가 피식 웃었다.
“별거 아냐. 상임이사국 조만간 개편할 거야.”
“어떻게?”
“차원 연합을 좀 더 민간적인 개념으로 확장할 거야. 다른 차원들과의 중개 무역을 시작할 거고. 상임 이사국은 백마 길드를 포함해 각 차원의 대표들이 될 거야.”
“차희. 알지? 모든 차원들 중 분열이 가장 심한 건 인계야.”
“다른 차원의 힘을 빌려서 제3세계의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그런 방법은 쓰지 않을 거야.”
“좋아. 네가 인계의 관리자니까. 네 뜻을 지지해 줄게.”
“후후.”
차희는 과거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정말 충격이야. 내가 인계의 관리자 같은 게 되다니.”
“그래도 너 자신은 보통 사람이라니까 몸조심해.”
“알았어. 그보다 샌텀 타워 방송은 준비 잘 돼가?”
“문제없지. 너도 갈 거야?”
차희가 빙긋 웃었다. 그녀는 윤성의 등 뒤로 다가와 목을 끌어안았다.
“당연하지. 유엔을 개편하고 차원 연합을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거니까.”
차희가 말했다.
“아. 그리고 윤성아. 에어포스도 간대.”
“에어포스도?”
“인계 일들 마무리되는 것까지는 보고 천계로 돌아가겠대.”
“고마운 사람이야.”
“그러게.”
***
토요일. 실시간 통역과 함께 전 세계에 생중계 되는 중요한 토크. 미스테리한 최강의 헌터 강윤성의 랜딩의 비밀이 공개된다.
진행 내용은 총 세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Joker, 하나는 슈퍼히어로랜딩, 마지막 하나는 ‘수호자’다.
불과 며칠만의 이야기지만, Joker와 슈퍼히어로랜딩 개념은 세간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윤성은 직접 한 번 랜딩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열기를 끌어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방송 스튜디오는 샌텀 타워 41층.
지상에 포진한 기자들이 대포 같은 카메라로 윤성을 찍으며 그의 랜딩을 중계했다.
콰아앙!
최적의 자세로 3점 착지를 마친 윤성이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니, 윤성 씨? 인터뷰하다가 어디로 가셨나요!”
연결된 인터폰으로 진행자가 소리쳤다.
“지금 올라갈게요.”
윤성은 그와 농담을 나누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시민들 사이에는 붉은 머리의 젊은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무리를 빠져나와 건물 내부의 후미진 곳으로 이동했다.
<지금 랜딩했습니다. 클리앙.>
그녀가 통신기로 메시지를 보냈다.
윤성이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차희와 에어포스가 윤성이 들어가는 길에 복도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자리에 앉은 윤성은 진행자와 이야기를 이었다.
시작은 포천 던전 전멸 사건.
차희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던 시절부터 일곱 차원을 이끄는 지금의 강윤성이 자랐다.
갑작스런 침식형 던전의 범람 속에서 처음 마주했던 바토리.
팔뚝만한 크기의 장난감 로봇 같았던 아리와의 첫 만남.
메탈로이드 통합 던전을 쓸어버렸던 지자기 폭풍과 다니엘 윈턴.
전투의 단위를 SS급 너머로 처음 확장시켰던 전대 퀸의 출현.
그녀에게 잡아먹혔던 미들로드의 구출. 콜로라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던 천계의 수복. 용제의 합류.
힘으로도 전략으로도 훨씬 더 우월했던 옌뚜르와,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꺼삐딴 길드.
익시튬의 침공과 NASA와 백마의 연합 작전 ‘슈퍼히어로랜딩.’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받쳐주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콜로라를 막게 된 거군요!”
진행자가 감탄을 터뜨렸다.
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희의 큰 그림과, 일곱 차원이 통합된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위해서 이제 수호자에 대한 정보를 내놓을 때다.
“그리고 저는 이제 Joker로서, 수호자의 뒤를 이어 다음 세대의 수호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윤성이 말했다.
“수호자라는 개념. 일반인들에겐 아직 생소한데요, 그럼 윤성 씨는 수호자와 소통하실 수 있는 건가요?”
“못했는데, 다른 혹성들을 돌던 중 할 수 있게 되었죠.”
윤성은 마법을 발동했다.
<차원 통신 연결!>
<연결 실패.>
“……?”
윤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연결 실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끈적한 불안감이 엄습해 몸을 휘감는 기분이다.
‘아까부터 묘한 위화감이…….’
윤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력의 파장이 기묘하다. 이런 것을 옛날에 한 번 본 적 있다.
“윽…….”
갑자기 구토감이 올라와 윤성이 입을 틀어막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진행자가 놀라서 다가오며 물었다.
“오지 마!”
윤성이 소리쳤다.
“전부 여기서 나가!”
“네? 뭐라고요?”
“빨리 이 타워에서 민간인들을 전부 대피시키세요!”
그가 소리를 질렀다.
쾅!
에어포스가 문짝을 박살 내며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뭡니까? 윤성? 지금 이 마력 파장은…….”
“침식형 던전입니다!”
콰과광!
끔찍한 마력의 뒤틀림이 스튜디오를 집어삼켰다.
그것은 마치 건물을 통째로 으적 깨물어 씹은 악마의 입 같았다.
검붉은 마력의 게이트가 샌텀 타워 41층 스튜디오를 기준으로 위아래 두 층을 흡수해 버렸다.
게이트를 이동하면서 윤성은 몸 전체가 노곤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차희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녀가 손을 뻗으며 뭐라고 소리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쿠웅!
윤성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건물 일부가 어딘가로 이동한 후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황폐한, 연갈색 모래로 뒤덮힌 대지.
“달?”
윤성이 불안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윤성 씨. 대체 이게 무슨…….”
“진정해요. 사람들은?”
윤성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진행자를 비롯한 시민들은 모두 기절해 버린 상태다.
<수호자의 보호 발동!>
…….
<작동 실패.>
윤성의 얼굴이 굳었다.
스킬이 작동되지 않는다.
콰앙!
스튜디오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콜로라의 전사들. 그리고 얼굴이 절반 녹아버린, 꺼삐딴의 마지막 생존자다.
“클리앙…….”
윤성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 만났군.”
클리앙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손목시계를 차고 있으면 넌 언제든 버프를 부활시킬 수 있지. 익시튬을 처치했던 버프를.”
“설마……?”
“그래서 네가 랜딩할 때까지 기다렸다. 헌터 협회에서 능력 검증할 때 쳤어도 됐지만, 스튜디오에서 일을 벌이면 큰 고기를 더 잡을 수 있으니까.”
클리앙이 에어포스를 가리켰다.
“하지만 민차희는 놓친 것 같군. 뭐 상관없다.”
클리앙이 후,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익시튬이 널 이길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그자는 옌뚜르 대표님보다 약하거든.”
클리앙이 말했다.
“힘이나 지력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냐. 너는.”
“…….”
“강윤성. 널 죽이려면 그런 걸로는 모자란다. 증오에서 비롯된 집착과 끈기. 광적인 분석이나 끝없는 분노. 그런 게 필요하지.”
클리앙이 주먹을 꽉 쥐었다.
“대표님은 너무 정이 많았기 때문에, 익시튬은 너무 자만했기 때문에 졌다. 그러나 난 아냐.”
“X등급이 된 거냐?”
“X등급. 너는 그게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수호자를 어떻게 했지?”
“내가 네 손목시계의 비밀을 어떻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냐?”
“설마…….”
“죽였다.”
“뭐, 뭐라고?”
윤성의 눈이 커졌다.
“그로서는 자신이 습격당한다는 걸 눈치챌 틈도 없었을 거다. 순식간에 제거했으니. 이 손으로. 직접.”
“이 새끼가!”
윤성이 클리앙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에어포스가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지금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닙니다.”
에어포스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천계 관리자께서 좀 더 상황 판단이 빠르시군.”
클리앙이 말했다.
“하지만 별로 의미는 없다. 어차피 다 죽을 테니까.”
“내가 널 죽였는데……!”
윤성이 이를 부득 갈았다.
“확실히.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지. 빈사 상태의 나는 순간이동석을 써서 ALK 행성으로 이동했다.”
“ALK로?”
“그 혹성에 꽃을 피웠다.”
“하지만 그렇다면 X등급이 되었을 텐데 어떻게 여기로 왔지?”
클리앙은 대답 대신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ALK 혹성에는 비밀이 있다.
ALK의 사막에 파묻힌 클리앙은 천천히 죽어가며 진리를 깨달았다.
그날.
윤성의 마지막 공격이 적중했던 얼굴은 조직의 절반이 괴사했다.
고통은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달콤해지는 법이다. 일정한 시점 이후로는 아픔에 적응하고 만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본 클리앙은 우습게도 별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마치 반딧불이 같았다.
그러나 밤은 춥고 바람은 날카롭다.
사막은 죽음의 공간이다.
사막에 꽃을 피우라는 것은 일종의 넌센스적 명령이다.
여러 혹성들을 돌면서 임무를 수행했던 것도 콜로라 수호자의 프로그램 안에 있는 큰 뜻이며 눈속임이다.
옌뚜르가 떠났고 익시튬은 남았기에 빈자리가 하나뿐이라는 것도 거짓이다.
사자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다.
X등급의 마지막 전사는 시스템에도 동요해선 안 된다.
시스템이 맞다면 이 사막에서 익시튬을 패배시킨 옌뚜르가 왜 X등급이 되지 않았을까? 그가 승자인데도 불구하고.
‘대표님…….’
익시튬은 본래부터 X등급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패배했음에도 X등급이 된 걸까?
그렇다면 그 자질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날 때부터 강한 것?
어쩌면 그의 자질이라는 것이, 항상 승리하는 게 아니라 ‘옌뚜르에게 패배함’을 의미했던 것은 아닐까?
클리앙을 거두어준 그 위대한 스승은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지만, 익시튬을 쓰러뜨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함구했다.
자랑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본인의 실수였기 때문에.
마음가짐의 문제다.
강윤성이 강한 이유는 그가 항상 최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강적들에게 패배했었고, 많은 수모 속을 굴렀으며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모든 적들을 파멸시켰고 세계의 정점에 우뚝 섰다.
X등급이란 무력이나 지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더 정신적인 것.
강적에게 패배해도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승리에 대한 집념, 또는 모든 것을 정복하겠다는 신념.
X등급은 콜로라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다.
수많은 혹성의 챔피언과 수호자를 굴복시킬 정복 전쟁의 왕이다.
콜로라의 패자라면 당연히 그런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보다 더 강한, 옌뚜르 같은 무언가가 존재하여 열등감과 분노가 가득한 상태여야만 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넘어설 상대가 없는, 막강하기만 한 존재라면 그에게 힘을 주는 것에 의미가 없기에.
때문에 콜로라의 정점에 올라설 이 초인은 힘 이전에 X등급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어떤 소문에도, 심지어는 시스템의 메시지에도 현혹되지 않을 것.
그리고 힘과 정복감을, 들끓는 목마름으로 갈망할 것.
그리고 라이벌에 의한 한 번의 뼈아픈 패배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 자만하지 말 것.
숨이 차다.
클리앙의 지친 눈이 천천히 감겼다. 이제는 모든 것이 또렷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처음부터 진실은 이것이었다.
모래가 숨에 섞였다.
ALK 혹성이 느껴진다. 꿈틀대며 박동하는, 내핵이 느껴진다.
우주의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선 위에 차례로 놓이는 것 같고, 150억 년의 모든 순간들이 한눈에 보인다.
어렴풋이 우주 저편에서 익시튬의 죽음이 느껴졌다.
‘자만했구나. 익시튬.’
너는 X등급의 궤도를 이탈했다.
‘이제는 순서가 내게 왔다.’
클리앙의 눈이 차분히 감겼다.
모래 사이에서 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콰악!
클리앙의 주먹이 모래 밖으로 튀어나왔다.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들끓어 피부가 터져 나갈 것 같다.
X등급에 이른 그의 눈에는 이미 혹성 전체가 꽃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난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클리앙은 품속에서 옌뚜르의 배터리를 꺼냈다.
“X등급을 넘어선다. 기다려라, 강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