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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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불안
-백마 길드 주도하의 일곱 차원 연합과 콜로라의 전쟁이 현지 시각으로 지난 27일 9시 47분경 막을 내렸습니다.
BBC 앵커가 말했다.
-백마 길드 대표 강윤성 헌터는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현재 콜로라의 전함은 백마 길드에서 수거하여 비공개로 조사 중이며, 콜로라의 군인 대부분은 소탕되었으나 일부 잔당이 도주하였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화면이 윤성의 인터뷰로 넘어갔다.
정장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윤성이 기자들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콜로라 전사들의 척결을 위해서 각 차원의 최상급 실력자들 일부가 인계에 머물 예정입니다. 이들은 백마 길드에서 발급하는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윤성이 말했다.
-또한 백마 길드에서는 상급 헌터 그룹들을 세계 각지에 보내어 콜로라 잔당의 구축에 힘쓸 것입니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윤성이 계속 말했다.
-다른 국가에 헌터와 마수들을 파견하겠다는 뜻입니까?
기자 중 하나가 소리쳤다.
-네. 바로 그렇습니다.
윤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마수라고 불렀던, 다른 차원의 드래곤이나 엘리지아, 메탈로이드 등은 모두 지성을 갖춘 이들이니 염려치 마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물론이고 헌터들 역시 콜로라 잔당 소탕 외의 목적은 전혀 없으니 각국 정부는 이들의 출입국에 대해 가급적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은 좀 더 중요한 내용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이번에 인계의 관리자가 된, 백마 길드의 새 CEO, 민차희 씨를 소개합니다.
이미 대표의 일을 하고 있었던 민차희를 언제까지고 비서라고 소개할 순 없다.
윤성은 백마 길드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지분 상당량을 차희에게 양도하며 길드의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이제 콜로라와의 전쟁이 끝났으므로 길드에 눌러앉을 수 있게 된 것은 맞지만, 그래도 그녀보다 이 회사를 더 잘 운영할 자신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차희라면 윤성이 세상 그 누구보다 신뢰하는 사람이니까.
윤성의 발언 다음에는 인계의 관리자라는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나왔다.
‘거대한 문화나 문명을 창시하며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은 사람.’
이 소개는 사실 정확하진 않다.
관리자라는 개념은 차원을 지배하는 독재적 존재이므로 그저 많은 지지를 얻은 이. 정도의 설명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차희를 석가모니에 비교한다거나 예수의 환생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면 어찌 되겠는가.
세계 곳곳에서 종교적인 문제로 소란이 일어날 것이고 차희에 대한 반감이 커질 것이다.
윤성과 차희는 인계 관리자에 대한 설명을 이 정도로 하기로 논의 끝에 결정했다.
다시 화면은 BBC 뉴스데스크로 돌아왔다.
-파격의 연속이라고 할 만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에 헌터와 다른 차원의 군인들을 파견하겠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벌써 여론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측과 거부해야 한다는 측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앵커가 말했다.
-또한 인계의 관리자라는 개념이 생소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백마 길드가 설명한 인계의 관리자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민차희 씨를 인계의 관리자로 임명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윤성이 들었으면 어이가 없었을 말이다. ‘전문가’가 대체 누구기에? 관리자에 대한 전문가가 인계에 차희 말고 또 있나.
앵커가 계속 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이들이 민차희 씨와 백마 길드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각, 차희는 뉴욕의 UN 본부에 와 있었다.
과거 엘리지아의 침공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던 UN 본부는 이제 거의 다 재건된 상태다.
변한 건물 구조 등의 문제로 아직까지 약간은 업무 과정에서 혼선이 생기지만 그럭저럭 일들은 잘 진행된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회원국의 평화와 안보를 담당하는 유엔의 한 기관이다. 나라와 나라 간의 충돌, 또는 한 나라 내부에서 일어난 내전 등에 간섭한다.
어떤 종류의 무기를 쓰지 마라, 어디서 누구를 죽이지 마라, 따위의 국제적 규약을 만들고 집행하여 국제무대에서 전쟁을 억제하거나 중재한다.
안보리 이사국들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잔뜩 모여 있다.
그러나 차희에겐 하품 나올 정도로 긴장감이 없다.
온갖 수라장을 거쳐 오면서 그녀의 담력도 이제는 인계의 관리자라는 지위에 걸맞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본 회의가 시작도 되기 전에 각국의 대표단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서로 로비를 하고 사실상 지금 회의를 소집시킨 안건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었다.
차희는 여기까지 같이 온 헌터 테쿰세, 오스칼, 메탈로이드 아톰과 함께 따분한 듯 떠들고 있었다.
정부 외교관들도 몇 명 따라왔지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진 않았다.
본 회의가 시작된 후에도 한동안 주제 밖을 빙빙 돌면서 대화가 따분하게 진행되었다.
그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차희의 말 한마디면 나라 하나가 뒤집어지는 것이 일도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이 회의가 소집된 이유를 정확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
“각국에 헌터들과 여러 차원의 군인들을 파견한다고 하셨죠?”
마침내 유엔 주재 러시아 대표부의 안드레이가 본론을 꺼냈다.
“어디에 얼마나 파견할 겁니까?”
“모든 국가에, 그 국가의 면적과 지형의 험한 정도에 비례한 만큼 파견할 겁니다.”
차희가 대답했다.
“그들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SS급 헌터 이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SS급 헌터 이상의 전력을 각 국가에 파견하겠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전 세계의 SS급 헌터를 다 합쳐도 그만한 숫자가 되지 않는다.
다른 차원의 강자들이 대체 얼마나 많기에?
“미국을 기준으로 하면 몇 명이나 됩니까?”
미국 대사가 물었다.
“모든 주를 합쳐서요?”
“네.”
“322명.”
툭.
대사의 펜이 테이블에 떨어졌다.
“지금 SS급 헌터 이상의 전투원을 미국에 300명이나 파견하겠다는 겁니까?”
거의 전쟁을 하자고 선전포고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충격받은 이사국 대표들의 얼어붙은 표정들을 마주하면서 차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인원은 있어야 모든 주를 돌면서 잔당을 소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일 년 이상은 해당 지역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후에는 모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머무는 동안 사고를 치면 어떡합니까?”
“누가 사고를 친다면 백마 길드에서 잡아가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그들의 숙박은요? 1년이면 어떻게든 그들도 먹고 자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들이 머무는 데 필요한 일체의 경비는 각국에서 지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 싶은 국가는 백마 길드에서 지원할 테니 염려치 마시고요.”
“잠깐만요. 지금 그게 말이 됩니까? 마음먹으면 나라를 엎어버릴 수도 있는 무력을 국내에 들여놓고 그들의 숙식까지 해결해 주라?”
“헌터들의 경우엔 월급도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러시아 대표가 이마를 탁 치며 고개를 젖혔다. 중국 대표는 뒷목을 잡았다.
“차희 씨. 그거 아십니까?”
미국 대사가 말했다.
“상임이사국 중 한 나라라도 거부하면 의결은 통과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임이사국 다섯 개 국가 중에서 동의할 나라는 하나도 안 보이는 것 같군요.”
“사실 그 문제 때문에 왔습니다.”
차희가 말했다.
이사국 대표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차희를 바라보았다.
“이사국 대표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상임이사국’이라는 개념을 폐지하세요.”
“뭐라고요!”
영국 대사가 펄쩍 뛰었다.
“중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 다섯 개 국가가 상임이사국으로 유엔을 굴리고 있죠? 세계 협약 기구라고는 하지만 다섯 국가 중 한 군데라도 거부하면 의결은 통과되지 않죠? 대체 이게 무슨 세계 기구입니까?”
차희가 따졌다.
“제가 어릴 때 본 영화에서 그런 말이 나오더군요. 세계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유통시키는 나라 5개국이 중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이고. 상임이사국도 정확히 같다고요.”
영국 대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상임이사국 5개국은 세계적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들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절대적인 거부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결의를 세계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5개국에서 더 늘어나면 결의 진행이 느려지기 때문에 확대하지 않은 것뿐이고요!”
“그래서 안보리의 그간 결의들이 잘 작동했나요?”
“우리가 대체 뭘 못했습니까?”
영국 대표가 감정적으로 쏘아붙였다. 차희는 빙긋 웃었다.
“상임이사국들은 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기 때문에 강한 권력을 휘둘러왔죠.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의 영웅인 처칠이 벵골에서 700만 명의 주민을 굶겨 죽인 사실은 보통 겉으로 알려지지 않고, 600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가 악의 화신이 된 것처럼.”
차희가 말했다.
“상임이사국의 횡포도 세계 평화 유지라는 명목 속에서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근거로요?”
미국 대사가 불쾌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되묻고 싶습니다. 영국 대사께서는 그간 안보리가 국제 평화를 위한 일들을 잘해냈다고 믿으시는 모양이지만, 그 결과인 시리아 사태를 눈앞에 두고도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당신이 안보리를 운영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 같습니까?”
차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운영했으면 없었을 것 같냐고요? 당연하죠. 없었습니다.”
차희가 말했다.
“저는 인류뿐 아니라 지구의 일곱 차원 전체의 절멸 같은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막아내기도 했는데요. 시리아 사태 정도야 뭐.”
“저는 이 회의 안 하겠습니다. 제정신이 아니군요!”
“네 시간.”
차희가 말했다.
“백마 길드가 영국 영토 전체를 점령하는 데 필요한 시간입니다.”
“뭐라고요?”
영국 대사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주먹을 꽉 쥐었다.
차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구적 차원의 전쟁 억제를 위해 가장 큰 강대국들이 절대적 거부권을 가지는 것이라면, 백마 길드 혼자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
“백마 길드는 이미 전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정말 오만하군요.”
영국 대사가 쏘아붙였다.
“강윤성 헌터를 믿고 하는 얘기인 것 같은데, 그자의 강력함은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들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차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힘으로 먼저 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세게 나갔는데, 적들이 이쪽의 힘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잠깐만.’
차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백마 길드의 싸움에 주력으로 참전하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력 분석은 이미 마쳤을 텐데.
<연대 발동!>
<정신 교감 발동!>
차희가 스킬을 사용했다.
그들의 감정과 기분들에 대한 강력한 공감대 형성. 기억의 공유.
그 안에서 차희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표정이 굳었다.
“오스칼.”
차희가 말했다.
“영국 대사 뒤에 있는 머리 벗겨진 남자입니다.”
“콜로라요?”
신차민과 다윤이 데이트하던 중 습격을 당했다고 했다. 의식을 조종하는 콜로라 전사에 의해 일반인이 공격해온 것이라고.
“죽여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오스칼이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무기 휴대는 금지되어 있지만 SS급 오스칼에게 차희가 버프를 걸어주면 테이블에 있는 볼펜 같은 것도 나이프보다 위험한 흉기가 된다.
콰직!
눈 깜짝할 새에 볼펜이 남자의 관자놀이를 절반 뚫어버렸다.
“꺄아아아악!”
“으아악!”
사람들이 놀라서 일어나며 비명을 질러댔다.
<진정 발동!>
차희가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마치 확 일어난 불꽃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사람들의 소동이 가라앉았다.
“콜로라 전사입니다.”
차희가 말했다.
정말로 남자의 얼굴이 흐물흐물 무너지더니 콜로라 전사로 변하고 있었다.
“의장에까지 숨어들었군요. 영국 대사님을 조종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
대사들이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