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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45화 (245/260)

# 245

레벨업 속도는 9.8m/s^2 245화

에어포스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익시튬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이 감각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죄책감이나 후회에 가깝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여태까지 윤성의 선택과 마제스티엘의 신념을 믿어 의심한 적 없으나 지금은 회의적이다.

이 같은 희생들 위에서 성공할지 알 수도 없는 윤성의 랜딩을 기다리는 게 정말로 옳은 선택이었을까?

그가 랜딩을 하면 정말로 익시튬을 이길 수 있을까?

눈앞에 있는 익시튬의 힘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 괴물이 누군가에게 패배한다는 것 자체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익시튬의 말이 맞는 것 아닐까?

처음부터 헛된 싸움을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지구를 지배하기 위해 온 지구의 구원자 옌뚜르에게 항복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일곱 차원에서 가장 기감이 좋고 밸런스를 잘 지켰던 전대 마왕조차도 익시튬을 두려워했다. 그도 옌뚜르에게 굽힐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던가.

에어포스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가 익시튬에게 덤벼들지 못하는 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기에.

하지만 이 많은 사상자에 대한 책임감과 죄의식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읽은 익시튬이 허무하다는 듯 한숨을 지었다.

“메인 이벤트였던 마제스티엘이 저 혼자 무너지다니. 시시하군.”

그가 말했다.

“역시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가축에 지나지 않았다. 자, 봐라. 내게 더 덤벼들 자가 있는가?”

익시튬이 양팔을 쩍 벌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비록 많은 이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지만 전투가 가능한 드래곤이나 엘리지아, 천사와 마족 기사들과 좀비와 메탈로이드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관리자들의 연합 공격을 애들 다루듯 제압해 버린 익시튬의 전투력은 너무 압도적이고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내 탓이다.’

에어포스가 이를 깨물었다.

익시튬은 에어포스를 손가락으로 겨누었다.

“곱게 죽으면 이곳에 살아남은 이들을 죽이지 않고 노예화하는 걸 고려해 보마.”

“……정말로 약속…….”

“안 됩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테쿰세.

“마스크맨이 올 거예요. 조금만 버텨요.”

“마스크맨?”

익시튬이 큭큭 웃었다.

파아앗!

갑자기 그의 머리 위에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이럴 수가…….”

디아만토풀루의 공격을 맞고 폭발하는 로켓이 나타났다.

“방금 받은 영상이다. 내 부하가 이미 마스크맨을 죽였다.”

익시튬이 말했다.

“이 싸움은 끝이야. 잘 봐라. 너희를 잘못된 길로 이끈 관리자, 마제스티엘을 내가 처형할 테니.”

익시튬의 손가락이 다시 에어포스의 머리를 겨누는 순간이었다.

“개소리.”

헌터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차희 씨?”

에어포스가 깜짝 놀랐다.

“인이어 때문에 대화는 들리는데 여기까지 오는 데 한참 걸렸네.”

차희가 숨을 훅 내쉬었다.

“야, 너.”

그녀가 익시튬을 쏘아보았다.

“독수리 도덕이 뭘 어쨌다고? 네가 니체냐? 웃기지 마, 멍청아!”

“무슨…….”

“네가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동네에 통하는 도덕은 딱 하나뿐이야.”

차희가 숨을 훅 들이마셨다.

“우리는 사람의 목숨을 타협하지 않는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와 존엄함을 계산하지 않아.”

“…….”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모두가 힘을 합쳐서 그에게 맞설 뿐이야. 지도자들의 선택 미스? 헛소리하지 마! 우릴 어떻게 보는 거야?”

그녀가 소리를 빽 질렀다.

“우리 모두가 선택한 거다. 이 땅의 헌터들을, 이 사람들을, 시키는 대로 무작정 따르는 바보들로 생각하지 마! 전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하고 이 싸움을 선택한 거니까!”

<정신 연대 발동!>

“……?”

소리를 지르던 차희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 있었다.

“이게 무슨…….”

<공분 발동!>

순간 머릿속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찌릿한 감각이 흘렀다.

헌터들의 감정과 생각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았다.”

익시튬이 말했다.

“그리고 민차희. 나는 너를 지구에 있는 그 무엇보다 위협적인 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스크맨보다도 말이야.”

익시튬이 차희를 지그시 쏘아보았다.

“과거에 이 세계를 침공했을 때도 느꼈지. 인간은 뭔가 특별해.”

익시튬이 말했다.

“인계에 들어간 적은 없지만, 바깥에서 지켜보면 너처럼 주제도 모르고 나서는 것들이 항상 있더군. 신기해. 너희 속담으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부르는 건가? 그걸 기꺼이 하려는 놈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익시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멍청해서가 아니지. 그보다 좀 더 고결한, 신념과 동지애에서 나오는 투쟁. 난 그걸 존경한다. 지구의 수호자가 인계만큼은 공격하지 말아달라고 내게 빌었던 게 떠오르는군.”

익시튬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수호자. 그 녀석도 인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지. 이렇게 되어 아쉽군. 나 역시 옌뚜르가 성공하길 내심 빌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정리해야 할 때지.”

<엘리멘탈 캐논 발동!>

콰아앙!

익시튬이 발사한 마법이 차희를 집어삼켰으나, 에어포스가 그녀를 구출해 날아올랐다.

“고마워요, 차희 씨.”

에어포스가 말했다.

“당신 덕분에 다시 싸울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젠 제가 하겠습니다. 물러나 계세요.”

“잠깐만요. 지금 나 이상해…….”

에어포스한테 매달린 채 차희가 숨을 헐떡였다.

그제야 에어포스도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왜 그러세요?”

차희의 눈에서 파란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뭡니까 그건?”

“에어포스! 전투 준비해요!”

차희가 소리쳤다.

<고무 발동!>

바로 그 순간.

테쿰세를 필두로 사방에 퍼져서 전투를 치르던 헌터 712명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들의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용기 발동!>

<사기 진작 발동!>

메시지가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헌터들 개개인에게서 엄청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충격받은 표정으로 에어포스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무슨……?”

하나하나가 폭발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했다. 테쿰세나 티엔처럼 원래부터 강했던 SS급 헌터들은 이제 헬라엘이나 실렌티에 근접할 정도의 체급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차희가 자신의 머리를 꽉 움켜쥐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다.

“계속……. 계속해야 돼요. 에어포스. 익시튬을 잠깐 맡아주세요.”

<정신 감화 발동!>

<투쟁 정신 발동!>

마치 사방의 헌터들에게 버프를 거는 듯한 기분이다.

차희의 머릿속에서 메시지가 하나씩 울릴 때마다 헌터들의 전투력이 지수 스케일로 급증하고 있었다.

에어포스는 조심스럽게 차희를 지상에 내려주었다.

원래는 백마 길드 본관으로 보내줄 생각이었으나 취소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이 전장에서 쉽게 빼면 안 될 것 같았다.

“인계의 관리자는 너였군.”

익시튬이 차희에게 말했다.

“인계의 관리자라고?”

에어포스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차희 씨? 인계의 관리자는 마스크맨이잖아요?”

“저도 모르겠어요. 이게 어떻게 된 건지. 하지만 이 감각은……. 에어포스. 당신도 이랬나요?”

“네?”

“마제스티엘의 힘을 되찾았을 때 마제스티엘의 기억도 흘러들어왔나요?”

“기억이라기보단 감정 같은 것들이 들어왔죠.”

“그랬군요.”

차희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기억도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누구의 것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아직도 그 기억의 갈래들이 분별되지 않는다.

인계의 관리자는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제는 알 것 같다.

각 차원마다 다른 관리자의 탄생 조건.

인계의 경우는 ‘타인의 지지’다.

누군가가 관리자로 인정해 줄 때, 그는 그만큼의 힘을 얻게 된다.

그 특성만큼 인계의 관리자는 많았다.

이 무구한 역사 속에서 거대한 문명을 이끌고 문화를 꽃피우고 종교를 창시한 자들.

차라투스트라, 길가메시, 석가모니, 예수, 칭기즈칸.

‘가장 최근은 히틀러인가?’

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전쟁이나 일으켰다니, 멍청하긴.

차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크악!”

“아아악!”

각성한 헌터들의 전투력 폭증은 익시튬의 군대에게 꽤 큰 반전이었다.

뛰어난 실력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강한 드래곤이나 메탈로이드, 엘리지아 성체나 천사들을 상대했기 때문에 헌터들을 맡았던 전사들은 약체들이었다.

그들이 순식간에 썰려 나갔다. 각종 마법과 검술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며 피가 튀었다.

“차희 씨. 만약 당신이 인계의 관리자라면, 마스크맨은 대체 뭐죠?”

“저도 지금 그게 궁금한 참이라.”

“재밌는 구경을 했군.”

익시튬이 말했다.

“하지만 인간 헌터들의 전투력이 올라간 것과 달리 네 힘은 여전히 보잘것없구나.”

“…….”

차희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민차희. 아무래도 인계의 관리자의 힘은 자신의 전력 상승이 아니라 인간을 감화하고 한데 묶는 리더십인 듯하군. 너희 입장에선 아쉬운 상황이 아니냐?”

익시튬이 손을 뻗었다.

“날 넘을 힘이 없으면 결국 다 죽을 테니.”

콰아앙!

손에서 발사된 마법이 차희를 향했지만 이번에도 에어포스가 막아섰다.

“저한테도 그 마법 걸어주실 수 있습니까?”

“미안하지만 인간한테만 통하는 모양이에요.”

“어쩔 수 없군요.”

<빛의 강체 발동!>

에어포스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도 어쩐지 정신적으로 고무되는 기분입니다. 차희 씨. 당신 덕분이에요.”

파아앙!

에어포스는 자리를 박차고 익시튬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력.

그 움직임은 용제의 용안으로도 쫓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에어포스의 주먹에 막대한 마력이 뭉쳤다.

<빛펀치 발동!>

쩍!

주먹 끝에 묵직한 타격감.

이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다. 익시튬이 못 피한 건지 맞아준 건지 모르겠으나 에어포스의 주먹은 정확히 익시튬의 명치에 꽂혔다.

“확실히 감동적이었어.”

익시튬이 에어포스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파악!

빛이 사방으로 분산되어 퍼져나갔다.

익시튬의 손에 힘을 주자 에어포스의 손목이 장난감처럼 부러져 버렸다.

퍽!

그러나 에어포스는 그대로 공중제비를 넘으며 익시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대천사의 힐링 발동!>

부러진 손목을 고침과 동시에 손가락 끝을 겨누었다.

<빛의 탄환 발동!>

연속으로 발사된 마법 섬광이 익시튬의 어깻죽지를 뚫었으나 익시튬은 별 데미지를 입지 않은 듯하다.

그는 한걸음에 달려와 에어포스의 머리를 콱 움켜쥐었다.

“큭!”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익시튬의 움직임이 굳으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두통이 머리를 찔렀다.

‘감히 내게 정신 공격을?’

그가 분노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희의 스킬에 마력이 폭증한 테쿰세가 익시튬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상급 헌터들이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추고 익시튬을 쏘아보고 있었다.

“전원!”

차희가 소리쳤다.

“돌격!”

명령을 내리는 순간. 차희의 눈앞에 또 하나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차원 통신 연결.>

<강윤성이 통신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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