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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44화 (244/260)

# 244

레벨업 속도는 9.8m/s^2 244화

크리스퍼가 당한 것은 익시튬에게도 약간 의외였다.

우주선으로 들어갔던 게 애초에 마스크맨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제스티엘, 아니, 이젠 이름이 에어포스라고 했나? 그 녀석이 크리스퍼를 쓰러뜨릴 정도로 강했을 줄이야.’

익시튬은 약간의 흥분감과 함께 우주선에 올랐다.

파직! 치직!

통제 센터의 모든 기계가 박살 나 전파와 마력이 튀고 있었다.

에어포스는 전함 내를 돌아다니며 중요해 보이는 엔진이나 계기판을 눈에 띄는 대로 파괴했다.

만약의 경우에 익시튬이 다시 우주선을 가동해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려는 계획에서였다.

그 사이 지상에서는 익시튬에 의해 뼈아픈 대학살이 벌어졌겠지만.

그래도 관리자들이 잘 버텨주었을 테니 절망적인 수준은 아닐 것이다.

모니터로 잠깐씩 확인하였던 전장의 상황은 최악은 아니었다.

우주선을 완전히 파괴한 후 지상으로 내려가 참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익시튬이 올라왔다.’

에어포스는 마력을 차분히 고르고 우주선의 공용 로비로 이동했다.

익시튬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에서 네 친구들이 수없이 죽어나간 것을 알고 있나?”

그가 물었다.

에어포스는 대답 없이 가만히 익시튬을 쏘아보았다.

익시튬은 피식 웃었다.

“마스크맨은 어디에 있나?”

“곧 올 거다. 그때까진 내가 상대해 주마.”

“넌 체급이 안 돼. 아래에 있는 떨거지들도 마찬가지였지.”

익시튬이 말했다.

“그런데 에어포스. 네가 이 우주선을 파괴한 것은 내게 꽤 모욕적이다. 오래전에 폭격이 멈추었음에도 우주선 곳곳을 부숴 버린 건 내가 도망칠 거라 판단해서지?”

“그렇다.”

“정말 주제를 모르는구나.”

익시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간 에어포스는 수 미터를 뒤로 물러났다. 식은땀이 목덜미에 흘렀다. 압도적인 긴장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대체 뭐야, 이건?’

쿠구구구구!

끔찍한 소리가 우주선 전체에서 울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조종석 쪽에서부터 폭발이 일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주선이 부서져도 상관없다. 내가 목적지에 이미 도착했으니까. 이곳의 자원이면 이 정도 우주선은 껌값이고, 전장을 수습하는 사이에 새 우주선이 올 거다.”

익시튬이 말했다.

“우주선을 파괴하는 거냐?”

“추락시켰다간 내 전사들의 피해가 생길 테니 주요 시스템을 망가뜨릴 뿐이다.”

“…….”

콰과광!

이번엔 후미 엔진 쪽에서 폭발이 일었다.

“자. 이제 내려가도 안심이겠지?”

익시튬이 물었다.

“도망친다는 건 아예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오만하군.”

“내 경우엔 자신감이라 불리는 것이다. 지상으로 내려가자.”

뚝! 콰지직!

이번엔 천장에서부터 끔찍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다음 순간.

에어포스의 발아래가 꺼졌다.

마치 펀처로 종이에 구멍을 뚫은 것처럼 우주선 갑판부의 가운데가 동그랗게 부서져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안에는 익시튬과 에어포스가 함께였다.

콰앙!

지면에 내려온 익시튬은 무릎 한 번 구부리지 않았으나, 에어포스는 놀라서 빠져나왔다.

비행을 써서 몇 미터 공중에 떠 있었다.

‘이럴 수가…….’

지상은 생각보다 훨씬 참혹하다.

우주선 내의 모니터로 많은 이들이 당하는 걸 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온갖 차원의 희생자들이 바닥에 즐비하다.

콜로라 전사들의 시신도 가득하지만 익시튬이 움직였던 이상 어느 쪽의 피해가 더 컸을지는 뻔한 것이다.

“선체 내에서 싸우지 않고 날 여기로 데리고 내려온 건 이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에어포스가 물었다.

“그렇다. 너 역시 한 차원의 지도자라면 네 선택이 초래한 결과를 눈으로 보길 바랐으니까.”

“…….”

에어포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가 들끓는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공포인가?’

당혹스럽다.

‘내가 두려움을 느끼다니?’

어떤 강적 앞에서도 굴한 적이 없다. 각성하기 전에도 기꺼이 클리앙이 만들어낸 마더와 마이어의 폭탄을 안고 하늘로 치솟았던 그녀다.

목숨이 아까워서 이 많은 희생들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상상도 해본 적 없었던 일이다.

“자, 어서 들어와라.”

익시튬이 말했다.

그러나 공격한 것은 에어포스가 아니었다.

팡!

검은 마법의 화살 한 대가 익시튬의 어깨를 스쳤다.

꽤 매서운 공격이다. 익시튬의 감각능력으로도 포착이 한 박자 늦어서 완전히 피하지 못했으니.

익시튬은 바토리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격렬한 전투 끝에 그녀는 전신이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잠깐 정신을 잃었었는데, 익시튬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회복했다.

‘이름이 바토리라고 했던가? 전대 마왕의 마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군.’

익시튬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감상했다.

“전대 마왕 이상의 마력을 담고 있구나.”

“당연한 것 아니냐?”

바토리가 다시 활대에 화살을 메겼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에서부터 검은 마력이 치솟더니 서서히 형체를 갖추었다.

꺼삐딴을 무너뜨릴 때 쏘았던 기둥 같은 화살.

하지만 그 크기가 점점 줄어든다. 작고 좁은 공간에 밀집하며 압축된다.

이제는 고작 팔뚝만 한 크기라 활대에 간신히 기댈 수 있을 정도다.

“흐음.”

익시튬은 빙긋 웃었다.

“받아주마. 한 번 해보아라.”

“하등한 것이 건방지게…….”

<파슈파타스트라 발동!>

마계의 신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마지막 무기.

너무나 막강하며 끝없이 파괴적이라 마왕의 왕관을 쓰는 이들이 항상 스스로 자제하던 무기다.

아주 먼 과거에 인계에 내려왔던 마계의 군주가 이 무기를 인간의 손에 흘려서 재앙을 초래하려 했던 적이 있다.

“미…… 미쳤습, 니까?”

몸 곳곳이 부서진 채 아리가 외쳤다.

검은 마력이 화염으로 변하며 무시무시한 괴물의 형상을 갖추었다. 천개의 눈과 천개의 팔과 천개의 혀.

모든 것을 종말시키는 마법의 화살이 지상을 불태우며 익시튬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가운데 있는 좀비들과 엘리지아들 일부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콰직!

하지만 익시튬은 그 화살을 한 손으로 잡아버렸다.

마력이 화염을 짓눌렀다.

“이럴 수가…….”

아리가 당혹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익시튬은 화살을 바닥에 버리고 발로 밟아버렸다.

“더 없나?”

“…….”

바토리는 이를 으득 깨물더니 장검을 뽑았다.

“직접 목을 쳐주마!”

타다닥!

날쌔게 달려온 바토리가 장검을 휘두르기 직전.

“지금이다! 미들로드!”

그녀가 외쳤다.

익시튬보다 몇 미터 뒤에 쓰러져 있었던 미들로드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사실상 몸이 완전히 무너져서 팔 하나와 목만 움직였으나, 그에게 남은 마지막 마력을 발동할 정도는 되었다.

<바인딩 발동!>

마법 사슬이 날아들어 익시튬의 몸을 묶었다.

이제는 그의 목덜미가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카아앙!

그러나 부러진 쪽은 장검이다.

정확히 목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바토리의 공격은 익시튬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쾅!

이어서 익시튬의 주먹이 복부에 꽂혔다.

“헉…….”

바토리는 휘청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익시튬의 시선이 이번엔 뒤를 향했다.

<언더프레셔 발동!>

콰직!

엄청난 마력압이 미들로드를 짓눌렀다.

“크헉!”

그의 몸뚱이 절반이 짓밟힌 벌레처럼 터져나갔다.

반파된 어깨와 가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제는 익시튬의 손끝이 천천히 바토리의 이마를 향하고 있었다. 엄청난 마력이 몰려든다.

팍!

바로 그 순간, 에어포스가 날아와 바토리를 안고 뒤로 빠졌다.

그녀는 바토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상태를 살펴보았다.

내장이 모두 뒤틀렸다.

“크헉!”

바토리의 입에서 피 한 움큼이 흘러나왔다.

“바토리…….”

“에어포스! 앞에 봐요!”

아리가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들자 익시튬이 이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막대한 마력이 몰려든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다.

대체 마제스티엘은 어떻게 이런 것을 상대로 저항했지?

콰아아앙!

익시튬의 손에서 발사된 마력의 파동이 바토리와 에어포스를 집어 삼킬 것처럼 날아들었다.

그 회오리에 스친 바닥과 사방의 전사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갔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순간에 용제가 나섰다.

잠깐 기절해 있었던 그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네스트를 시전했다.

해로운 것을 차단하는 마법이 익시튬의 공격을 막아섰지만 방향을 틀어주는 게 최선이었다.

익시튬의 마력 파동은 그들을 지나쳐서 하늘로 솟구쳤다.

전투를 치르던 드래곤들 중 하나가 그 파동을 맞고 그대로 먼지가 되어버렸다.

용제가 숨을 헐떡이며 용안으로 익시튬을 노려보았다.

“내가 뽑아버린 기억이 있는데.”

익시튬이 용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캬아아악!”

용제는 사납게 포효하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콱!

그러나 익시튬이 하늘로 뛰어 오르며 그의 발목을 잡아 팽개쳐 버렸다.

용제는 백마 길드 별관을 박살내며 다시 추락하고 말았다.

“크윽…….”

익시튬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 콜렉션이었기 때문에, 다시 가져가마.”

“끄아아아아악!”

용제의 비명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다시 용안을 뽑아버린 익시튬은 그걸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에어포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에어포스의 다리가 파르르 떨린다.

아리는 거의 머리만 움직이는 상태. 퀸은 수백 번에 걸친 사망 끝에 재생이 느려져 아직도 회복 중이다. 미들로드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다.

극도의 공포가 에어포스를 압박하고 있었다.

“못났군.”

익시튬이 말했다.

“마제스티엘의 후계. 크리스퍼를 꺾은 적. 네가 메인이 될 줄 알았는데.”

“…….”

“이 현장을 보아라. 에어포스. 마제스티엘 때부터 네가 고집을 부린 결과다. 이제 모두가 죽는 거지.”

“모두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되는구나. 이렇게 약하고 겁이 많다면 왜 옌뚜르의 제안을 걷어찼지? 그가 너희에게 살아남을 기회를 주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을 텐데. 왜 그에게 노예를 자처하지 않았나?”

“뭐라고?”

“옌뚜르가 이곳에 꺼삐딴의 깃발을 꽂아버리면 법적으로 내가 손을 댈 수 없다. 옌뚜르는 X등급이 아니지만 많은 존경과 명예를 가진 사내거든.”

“……그래서 널 피하기 위해 옌뚜르의 발아래 들어가야 했다는 뜻인가?”

“절멸하는 것보단 현명한 선택이 아니냐?”

“너희는……. 정말 사악하고 나쁜 놈들이야.”

에어포스의 눈에 슬픔이 차올랐다. 이 행성을 침탈해서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그 책임을 이쪽에 전가하다니.

“옌뚜르에게 항복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아냐! 문제는 너희들이다! 이 행성을 침탈한 너희가 나쁜 것이고, 너희가 잘못된 거라고!”

“참으로 실망스럽군.”

익시튬이 약간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어포스. 도덕엔 두 종류가 있다. 독수리의 도덕과 양의 도덕이지. 태고에 이 우주에는 독수리의 도덕만이 존재했어.”

“……. 무슨 소리야?”

“독수리에겐 선함과 악함이란 개념이 없다. 그들의 도덕 판단은 좋음과 나쁨뿐이지. 양의 고기가 맛이 좋은가, 아닌가. 그것만이 가치 판단의 전부야.”

익시튬은 에어포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반면 양들에겐 독수리에게 저항할 힘이 없다. 하지만 양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연약함’이 원망스럽고 독수리가 밉지 않겠는가?”

“…….”

“그래서 만들어낸 게 선함과 악함이라는 가치 판단이다. 양을 뜯어먹는 독수리를 악하다고, 그리고 순진한 양을 착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했지. 지금의 너희들처럼.”

익시튬은 거만하게 에어포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건 어떤 현실적인 변화도 일으킬 수 없는 도덕이다. 봐라. 네 알량한 도덕 판단의 결과가 무엇인지. 양으로 태어났고 절멸을 피하고 싶다면 스스로 목장에 들어갈 줄도 알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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