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레벨업 속도는 9.8m/s^2 242화
‘디아만토풀루!’
윤성의 눈이 빛났다.
전에 달에서 수호자와 이런저런 문제들을 논의하던 중 마주했던 적이다.
<오라고 해! 전에 당한 거 갚아줄 테니까.>
-좋아하지 마! 저놈은 위험한 놈이라고.
수호자가 정색했다.
<설마 지금의 내가 저 녀석을 못 이기겠어?>
-넌 많이 컸지만 저놈은 진짜 위험해. 툴바 행성의 족장이었던 놈이다.
<족장?>
-지구로 치면 차원 관리자 같은 셈이지. 익시튬이 워낙 괴물 같은 녀석이라 그 밑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지만 원래는 옌뚜르급이야. 혼자 독자 노선 탔으면 꺼삐딴 같은 길드를 이끌었을 놈이라고.
그렇게 얘기하니 약간 긴장된다.
<하지만 난 이전보다 훨씬 더 성장했잖아. 그때도 네가 판정패 내리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싸움이었는데.>
-아냐, 그땐 백 퍼센트 네가 졌다. 수호자쯤 되면 체급이 눈에 보여.
<그래서 지금도 내가 진다는 거야?>
-이기겠지. 붙어서 싸운다면. 하지만 디아만토풀루가 그렇게 해주겠어? 네가 탄 우주선을 요격할 거다.
<그건 곤란한데.>
-수호자의 보호를 쓰면 살아남기야 하겠지만.
<우주선이 망가지면 랜딩을 못 하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멍청한 생각하지 말고 도망쳐! 메탈로이드 함대한테 호위하라고 해!
윤성은 얼른 통제실로 돌아가 계기판을 조작해 아톰과 연결했다.
“아톰. 저 녀석의 접근을 막아줄 수 있어?”
-해보겠습니다.
아톰이 대답했다.
메탈로이드 편대는 총 10기의 우주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중 일곱 기가 일제히 선회하더니 대열에서 이탈했다.
반원형 우주선 일곱 대가 일제히 라이트를 켜고 열을 맞추어 날아가는 모습은 상당히 멋있었다.
그들이 격추되기 직전까지만.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디아만토풀루의 우주선이 날쌘 벌처럼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메탈로이드 전투기들이 하나씩 박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디아만토풀루의 우주선에서 발사된 마법 미사일들은 마치 자석에 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메탈로이드 전투기로 날아들었다.
우주 공간에서는 공기가 없어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폭발하는 불꽃과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파편들이 보인다.
폭죽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터져 나가는 전투기들.
당황한 윤성이 수호자에게 연결했다.
<방금 봤어? 전부 다 박살 났어.>
-콜로라 전사들은 높은 마력으로 우주선과 동기화하는 스킬이 있다. 옌뚜르와 익시튬 정도만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디아만토풀루도 그 경지에 이르렀나 보네.
<감탄할 때가 아냐.>
윤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역시 내가 가야겠어.>
-뭘 하려고!
윤성은 통신을 끊어버리고 로켓의 출입구로 이동했다.
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당연히 잠겨 있는 상태라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 봤자 메탈로이드나 나사의 기술력과 다니엘의 마법으로 만들어낸 철덩어리다.
콰직!
윤성의 문고리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고정쇠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파괴되었다.
<수호자의 보호 발동!>
스킬을 쓰면서 문을 여는 순간,
콰아아아!
우주선 내부의 공기가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면서 강렬한 돌풍을 일으켰다.
이 로켓은 압력 출입구의 공간이 별도의 개폐 장치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윤성은 간신히 몸을 가누면서 우주선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내부 기압은 상당히 떨어졌겠지만 뭐 상관없지.
수호자의 보호를 쓰고 있으니 우주 공간에 서 있어도 산소 부족으로 쓰러지거나 낮은 기압으로 기절하지는 않는다.
윤성은 단검을 꺼냈다.
<단검 투척 타깃.>
표적은 디아만토풀루가 탄 우주선.
퓩!
발사되는 단검을 윤성이 붙잡았다.
옛날 이집트에서 이와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다.
언제나 고형 표적을 설정해야만 단검을 날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찰력에 따라 이동 능력에 제한이 있다는 점이 큰 한계라서 이런 방법을 자주 쓰진 못했지만 지금은 괜찮다.
우주 공간에는 공기가 없으니 마찰도 없기 때문이다.
단검은 마하의 속도로 디아만토풀루의 우주선을 향했다.
막대한 속도감에 윤성의 온 신경이 찌릿찌릿하다. 윤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디아만토풀루의 우주선을 쏘아보았다.
화아악.
우주선 전면부의 함포에서 빨간 불이 들어왔다.
파아앙!
발사된 마법 미사일이 윤성을 정확히 요격했다.
새파란 불꽃과 마력 화염이 퍼졌으나 디아만토풀루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앞의 전투기들을 파괴할 때와 달리 윤성의 살점이나 장비들이 부서져서 튀어 오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불꽃이 걷히자 그 안에서 연녹색의 보호막으로 둘러싼 윤성이 나타났다.
“굉장히 수준 높은 마법이군.”
디아만토풀루가 주먹을 쥐며 일어났다.
적이 이곳에 거의 접근했다. 이제 백병전이 벌어질 때다.
콰직!
단검은 우주선의 공중 급유 장치에 박혔다. 윤성은 우주선에 매달린 채 몸을 일으켜 안으로 들어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뭐야?”
윤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출입문이 저절로 열렸기 때문이다.
마치 들어오라는 듯.
윤성이 안으로 들어가자 이동 통로의 바깥 출입문이 닫혔고, 대신 안쪽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 디아만토풀루가 장검을 들고 서 있었다.
“이제 클로를 안 쓰냐?”
“인정할 만한 강적에겐 검을 쓴다.”
디아만토풀루가 장검을 한 바퀴 휘두르며 말했다.
“전에는 클로를 썼던 것 같은데.”
“그땐 네가 별것 아니었기 때문에.”
“건방진 새끼…….”
윤성이 단검을 꽉 쥐었다.
<빛의 탄환 발동!>
<단검 투척 타깃.>
왼손으로는 빛의 탄환. 오른손으로는 투검.
가장 빠른 두 장거리 공격이 쇄도함과 동시에 윤성이 디아만토풀루를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파앙!
디아만토풀루는 방어 마법을 국소적으로 휘감아 빛의 탄환을 막아내고 단검은 자신의 검으로 쳐냈다.
<용조 발동!>
윤성의 주먹이 날카롭게 변했다.
상대의 키가 윤성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윤성은 살짝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그 각도는 얼굴이나 목을 향하는 것 같았지만 페이크다.
디아만토풀루가 얼굴 앞으로 팔을 둘러 방어 자세를 취했을 때, 윤성의 주먹은 그의 가슴께를 향해 들어갔다.
콰직!
그러나 놀랍게도 공격이 적중하기 직전, 디아만토풀루의 몸이 갑자기 연체동물처럼 휘더니 윤성의 손목을 꺾어버렸다.
“……!”
당황한 윤성은 재빨리 몸을 돌려 관절이 부러지는 것을 피했지만 자세가 틀어졌다.
쾅!
디아만토풀루의 발끝이 윤성의 아랫배에 꽂혔다.
‘뭐야?’
윤성의 눈썹이 꿈틀했다.
‘견딜 만하잖아?’
큰 일격을 허용할 거라 생각하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타격이 없다.
<빛의 강체 발동!>
윤성의 몸에서 하얀빛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근접전에선 어차피 지능이 별 필요가 없다. 힘과 순발력에 능력치들을 몰아준다.
디아만토풀루가 발차기를 먹인 후 그의 다리는 아직까지 바닥에 내려오지 못했다. 그 자세가 다시 회복되기 전.
윤성은 허리를 굽혀 구부정한 상태 그대로 몸을 돌리며 디아만토풀루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빛펀치 발동!>
콰앙!
“크윽.”
디아만토풀루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꽤 잘 들어간 일격인 줄 알았는데.’
윤성이 약간 긴장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이놈 맷집 실화인가?
디아만토풀루는 장검을 거꾸로 쥐더니 바닥에 쿡 찔러 박았다.
“뭐 하는 거야?”
“너도 무기를 쓰지 않으니까.”
디아만토풀루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윤성의 단검을 가리켰다.
“뭐? 하…….”
어이가 없다.
저 단검은 언제든 회수해서 쓸 수 있는 건데.
그리고 이놈, 목숨 건 전투에 뭐 이렇게 친절하지? 밸런스 맞춰주는 수준이 솔로몬급이다.
쾅! 쾅! 쾅!
디아만토풀루의 발걸음이 바닥에서 울렸다. 그가 윤성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빛의 탄환 발동!>
<급속 냉각 발동!>
윤성은 탄환 한 발을 쏘면서 이어 강렬한 냉기를 뿜었다.
디아만토풀루는 몸으로 한기를 뚫어버리고 돌진했지만 그 너머에 나타나는 것은 뜨거운 염화였다.
<인페르노 발동!>
이글거리는 화염과 앞의 급격한 온도 변화에 따른 수증기.
잠깐의 착란 속에서 디아만토풀루는 윤성의 움직임을 놓쳤다.
사라졌다.
디아만토풀루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검도 내려놓고 정직하게 들어온 건 고맙지만.’
랜더의 전투복으로 <은신>을 사용한 채 재빠르게 디아만토풀루의 등 뒤로 돌아간 윤성이 손을 뻗었다.
‘난 이 싸움을 빨리 끝내고 지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빛의 산탄 발동!>
콰아앙!
근거리에서 발사된 수백 발의 섬광이 디아만토풀루의 등짝을 박살 내버렸다.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버린 것처럼 그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며 찢어진 피부 조각들이 날아다녔다.
콸콸 쏟아지는 피가 바닥에 흥건하다.
‘이럴 수가.’
그러나 공격을 감행한 윤성 쪽이 더 당황했다.
이 정도의 일격을 맞고도 디아만토풀루가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쉬이익!
그의 주먹이 빠르게 윤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칫.”
윤성은 한 걸음 뒤로 빼면서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주먹이 윤성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디아만토풀루의 주먹이 쫙 펴지더니 손바닥에 어마어마한 마력이 몰려들었다.
<래디에이션 샷건 발동!>
쩡!
빛의 산탄을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얻어맞은 느낌이다.
윤성이 강력한 충격에 공중에 붕 떠서 수 미터 뒤로 나동그라졌다.
얼굴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칭호 : 엘리지아의 정복자를 발동합니다.>
귓가에 메시지가 울렸다.
찢어진 피부야 곧 회복되겠지만 머릿속이 윙윙 울린다. 너무 큰 일격을 허용했다.
“아무래도 이제 끝난 모양이군.”
디아만토풀루가 말했다.
“크윽……. 달에서 봤을 땐 너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수호자의 마법을 뚫고 들어가느라 많은 마력을 소모했으니까.”
“너 같은 놈이 왜 익시튬 밑에 있는 거지?”
“나는 툴바 혹성의 최고 지배자지만, 보스께선 우주의 패자니까.”
“…….”
“편하게 해주마.”
디아만토풀루가 장검을 뽑아 들었다.
엘리지아의 정복자 칭호로 윤성은 이미 부상을 회복했지만 피칠갑을 한 얼굴을 보는 디아만토풀루는 그 사실을 모른다.
‘다음 일격이 들어오는 타이밍을 노린다.’
이 괴물의 맷집은 보통이 아니니 평범한 공격으로 쓰러뜨리긴 어렵다.
하지만 방법은 있지.
이 우주선을 부숴 버리는 것.
수호자의 보호를 쓰면 우주 공간에서 윤성은 안전하지만 디아만토풀루는 죽고 말 거다.
“끝이다.”
디아만토풀루가 윤성을 향해 장검을 치켜드는 순간이었다.
팍!
자리에서 뒤로 뛰어오르면서 윤성이 손을 뻗었다.
디아만토풀루를 향해서가 아니다.
등 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단검 쪽.
‘돌아와!’
회수된 단검이 매서운 속도로 윤성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윤성은 손을 거두며 단검을 피했다.
쐐애액!
날아가는 방향의 속도가 유지되고 있는 단검은 윤성을 지나쳐 디아만토풀루를 향했다.
“아쉽군.”
디아만토풀루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단검을 피하면서 말했다.
“아니, 의도한 거야.”
윤성이 빙긋 웃었다.
그제야 윤성의 목적을 깨달은 디아만토풀루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이런!”
쨍!
단검이 우주선의 유리창을 박살 내버렸다.
<수호자의 보호 발동!>
윤성이 마법을 쓰면서 임무를 완수한 단검을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