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레벨업 속도는 9.8m/s^2 241화
크리스퍼.
툴바 출신의 유명한 실력자. 키와 체격이 크고 완력이 우수한 전사다.
X등급 익시튬이 전쟁에 대해 의논하거나, 몇몇 중요한 임무들을 믿고 맡기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주선은 자동 비행 상태이며, 승무원 전원은 곧 전투원이었기 때문에 이미 모두 지상으로 내려갔다.
따라서 이곳에는 방금 들어온 크리스퍼를 제외한 콜로라 전사는 하나도 없다.
크리스퍼는 우주선 내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갑판부로 올라갔다.
검고 매끈한 전투복을 입은 마스크맨이 보였다.
그가 쓰고 있는 마스크 역시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것이다. 꺼삐딴에서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던 당시 마스크맨이 인계에서 저걸 쓰고 있었댔지.
“마스크맨.”
크리스퍼가 클로를 세우며 다가왔다.
“이제 얼굴을 공개한 걸로 아는데 왜 다시 마스크를 썼지? 우리 첩보에 따르면 며칠 전부터 줄곧 쓰고 있었던 모양인데.”
“연합군의 사기를 위해서.”
“그게 전부인가?”
“이편이 지휘하기 더 좋거든. 아직 얼굴은 익숙지 않아서.”
“의미 없는 짓이다. 어차피 모두 전멸할 테니까.”
“쉽지 않을 거다. 너희가 이 행성을 침탈한 건 큰 실수였어.”
“글쎄,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던 네 마력조차 대단치 않은 것을 보면 걱정할 만한 요소는 없다.”
크리스퍼의 눈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마안 발동!>
그러나 마스크맨은 고속으로 이동하며 마법 공격을 회피했다.
마치 밤하늘에 플래시를 흔들면 빛의 흐름이 분선처럼 나타나듯이 잔상이 남았다.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크리스퍼는 잠깐의 당혹감 속에서 페이스를 놓쳤다.
<빛의 강체 발동!>
마스크맨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펀치 발동!>
<스페이스 블라킹 발동!>
크리스퍼가 사용한 마법이 반투명한 벽이 되어 마스크맨의 공격을 막아섰다.
하지만 빛펀치는 과연 지구 최고의 공격 스킬이다.
쩍!
단번에 스페이스 블라킹에 금이 가면서 마스크맨의 주먹이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다행히 공격 속도가 약간 다운되었기 때문에 크리스퍼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적중당하는 것을 막았지만 식은땀이 흘렀다.
생각보다 강한 적이다.
“옌뚜르나 쯔위민보다 한 수 아래 같은데…….”
마스크맨이 말했다.
“닥쳐!”
크리스퍼가 클로를 세우며 바짝 달려들었다.
<컷 발동!>
클로를 짧고 빠르게 휘둘러 적을 베어내는 가장 단순한 공격 스킬.
검도로 치면 빠른 머리치기 같은 기본 동작이나 그것도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크리스퍼에겐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이다.
날카롭게 파고든 클로의 칼날이 마스크맨의 목덜미를 스쳤다.
뜨끔 하는 감각과 함께 피가 흐르자 마스크맨이 손을 가져다 댔다.
<대천사의 힐링 발동!>
그의 손끝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오며 상처가 아물었다.
“마스크맨은 일곱 차원의 모든 스킬을 다 쓸 수 있다더니. 그게 전부인가?”
“한 종류만 써도 충분할 듯해서.”
<빛의 탄환 발동!>
마스크맨의 손가락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가 아래로 파고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쾅!
일격이 복부에 꽂혔다.
주먹 끝이 지끈지끈하다. 마치 돌을 친 듯한 느낌이다.
마스크맨이 크리스퍼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크리스퍼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파악!
그가 휘두른 클로가 다시 마스크맨의 뺨을 스쳤다.
공격 하나하나가 예리하다.
마스크맨은 몸을 뒤로 빼면서 자신의 가슴께 앞에 와있는 크리스퍼의 손바닥을 발견했다.
막대한 마력이 몰려들고 있었다.
‘실수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크리스퍼의 손에서 발사된 마력의 파편들이 몸 곳곳에 박혔다. 전투복이 쭉쭉 갈라지면서 피가 치솟았다.
“크학!”
마스크맨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크리스퍼는 손목을 주무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래디에이션 샷건이라는 스킬이다. 툴바족들에게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거지. 이런 건 처음 봤지?”
<대천사의 힐링 발동!>
마스크맨이 마법을 쓰려 했지만 크리스퍼가 재빨리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두 번씩 회복하게 두진 않아.”
“…….”
마스크맨이 주먹을 꽉 쥐었다.
파악!
붙잡힌 손목에 힘을 준 채 몸을 크게 돌리자 크리스퍼의 손아귀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등을 보이게 된다.
크리스퍼로서는 이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너무나 무방비하기 때문에.
<컷 발동!>
크리스퍼의 클로가 빠르게 날아들어 마스크맨의 등을 찢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클로 끝이 갑자기 무언가에 걸린 것처럼 들어가지 않았다.
찌직!
갈라진 전투복의 등 부분으로부터 흰색 빛의 줄기 같은 게 치솟기 시작했다.
“뭐, 뭐냐 이게!”
놀란 크리스퍼가 한 걸음 물러나며 자세를 새로 잡았다.
파악!
완전히 펼쳐진 빛의 날개는 총 다섯 쌍. 그 화려함과 밝기가 어마어마하다.
“날개가 불편했어.”
에어포스가 윤성의 마스크를 벗어버리며 말했다.
“천사였나?”
“그 동안 한국에 있었던 마스크맨은 계속 나였다.”
그녀가 말했다.
크리스퍼가 그녀를 가만히 쏘아보았다.
“보스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셨지.”
“알고 있었나?”
“알고 싶지 않았다. 보스나 나 같은 간부들이 마스크맨 따위가 어딨는지 신경 써야 하나?”
“…….”
“하지만 궁금하긴 하군. 그래, 지금 어디에 있지?”
“알아도 못 만날 거야. 그때 너는 죽은 후일 테니까.”
“한 번 해보시지.”
크리스퍼가 클로를 세우고 달려들었다. 칼날 끝이 에어포스의 심장을 정확히 겨냥했다.
<빛걸음 발동!>
다시 한번, 그녀의 몸이 잔상을 남기며 스르르 미끄러졌다.
엄청난 속도다.
그녀는 크리스퍼의 등 뒤로 이동하며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빛을 뿜어냈다.
<라이트 오브 퍼지 발동!>
화아악!
엄청난 눈부심에 크리스퍼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빛이 잦아들었을 때, 크리스퍼는 가슴이 휑한 느낌을 받았다.
몸통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에어포스가 새롭게 각성한 마제스티엘의 스킬.
빛펀치보다 우수한 공격력.
천계의 지배자로서 천사들의 질서에 반하는 악을 숙청하는 최고위 마법이다.
“큭…….”
크리스퍼가 울렁울렁 올라오는 피를 손으로 붙잡으며 풀썩 주저앉았다.
콰직!
에어포스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부숴버렸다.
“후우…….”
이 스킬은 부담이 크다.
이번에도 타이밍을 잘 잡아서 성공했지만 시전 시간이 긴 편이라 적의 박자를 빼앗은 다음이 아니라면 어렵다.
“그래도 어찌어찌 처치하긴 했군.”
그녀는 갑판부에서 선체 조종실로 이동했다.
익시튬의 마법으로 동기화된 우주선이 저절로 작동되며 지상에 포격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콰앙!
에어포스는 주먹을 힘껏 휘둘러 계기판을 파괴해 버렸다.
‘이걸로 괜찮을까?’
그녀는 모니터를 살펴보았다.
지상에서 익시튬이 움찔하는 게 보인다.
방금 전에 에어포스가 쓰러트린 적은 상당히 강한 실력자였다. 익시튬이 신뢰하는 간부라면, 그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형식으로든 반응할 것이다.
본인이 직접 우주선으로 올라온다면?
그 상황은 막아야 한다.
익시튬이 우주선을 타고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든 지상을 떠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가 윤성의 버프가 지워진 후에 돌아온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로켓은 하나뿐이니까.
***
윤성은 NASA에서 발사된 로켓 내부에 있었다.
-잘 가고 있어?
수호자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뭐, 그럭저럭 아직은 작전대로 되는 것 같아.>
윤성이 답했다.
-이미 여러 번 당부했지만, 버프 범위를 지켜야 해. 우주적 스케일은 잠깐만 넋 놓고 있으면 순식간에 네 한계를 초월한다.
<알아.>
-네 지금 힘으로 운용할 수 있는 버프는 많이 쳐줘도 지구에서부터 100만㎞가 한계야.
<알았다고.>
-그 값을 넘어가면 버프의 부작용이 너무 커서 오히려 더 낮은 높이에서 랜딩한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현기증 그냥 좀 참으면서 하면 안 돼?>
-현기증 정도가 아니라 각혈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내가 강해지긴 한 건가?>
윤성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가 보낸 메시지가 약간 우울하다.
윤성이 말했다.
<이런 훈련을 쌓기 전에도 달에서 랜딩했을 때의 높이가 38만㎞였어.>
-많이 늘었네.
<난 훨씬 더 우주적인 단위가 나올 줄 알았다고. 화성까지 거리가 5,500만㎞래.>
-공전 주기가 겹쳐서 지구 바로 옆에 있을 때가 그렇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단위가 바뀌지. 굳이 ㎞를 쓰면 억 소리가 나는 값일걸.
<그게 실망스럽다고.>
윤성이 우울한 듯 말했다.
<지구의 기술력으로도 화성까진 다녀올 수 있다고 했어. 다니엘과 메탈로이드의 기술이 들어간 이 로켓은 그보다 더 멀리도 갈 수 있댔고. 내가 부족한 거야. 인계에서 제공하는 버프를 내가 다 챙기지 못하는 거야.>
-멍청한 소릴 하는군. 100만㎞ 높이에서 랜딩하면 넌 이 우주 전체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야.
수호자가 말했다.
-우주 자체가 워낙에 큰 게 문제지 네가 약한 게 아니란 말이야.
<…….>
-아무튼 랜딩 잘해서 익시튬 잡을 생각만 해. 너 이번 랜딩 잘해도 익시튬이 워낙 강해서 질 수도 있어.
<그럼 어떡하지?>
-위험하다 싶으면 튀어야지, 뭘 어떡해.
<내가 도망치면 다른 사람들은?>
-죽으라 그래.
<미쳤어?>
-진심이야. 네가 살아남아서 익시튬을 막기만 하면 돼. 다른 사람들 죽는 건 내 입장에선 아깝지도 않아. 몇만 년만 지나면 다시 개미떼처럼 늘어날 것들인데.
<정말 소름 돋는 소릴 쉽게 하는군.>
치지직!
로켓 모니터에서 전파가 튀었다.
삑! 삑!
메시지 수신이 들어오자 윤성이 확인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아톰의 얼굴이 나타났다.
윤성의 로켓을 호위하는 메탈로이드 편대의 대장이다.
“무슨 일이야?”
-전투기 접근이 포착되었습니다.
“전투기?”
-전 편대 전투 모드에 들어갑니다.
“자, 잠깐만. 적이야?”
-콜로라 전투기입니다.
윤성은 벌떡 일어나서 로켓 후미로 이동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시선을 집중했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흑색 전투기 한 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건가?”
-강윤성! 전투 준비해라!
수호자가 외쳤다.
“뭐야? 저거 누군데?”
-디아만토풀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