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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37화 (237/260)

# 237

레벨업 속도는 9.8m/s^2 237화

엔의 탐사팀이 꺼삐딴의 보안 문서들에 적혀 있었던 보물을 찾기 위해 ALK 행성의 모래를 파헤치던 중이었다.

갑자기 우주선 뒤편에서 거대한 모래 괴물이 치솟았다.

어설픈 어중이떠중이 전사들이 어떻게 처리해 볼 만한 마수가 아니다. 최소한 SS급.

윌슨을 비롯한 엔의 탐사대원 전부가 공포로 몸이 굳었다.

마수의 눈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모래가 마치 눈물 같다.

쿠우우우.

마수는 손을 뻗어 엔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꺄아아악!”

엔이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등골에 식은땀이 흥건하다.

다른 탐사대원은 모조리 잠들어 있다.

약간 떨어진 곳, 의자에 가만히 앉은 채 윤성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꿨나?”

윤성이 묻자 엔이 땀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ALK 행성에서 만났던 모래 괴물이 나왔어요.”

“그건 내가 처치했잖아.”

“맞아요. 정말 그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엔이 희미하게 웃었다.

주위 좀 둘러보겠다던 윤성이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모래 괴물을 박살 내버렸던 것이다.

마수는 모체가 모래인 까닭에 파괴되어도 쉽게 재생했지만 마력핵이 부서지자 움직이지 못했다.

핵에서는 SS급 마정석이 나왔다. 엔의 탐사팀의 첫 수확이었다.

“당신을 데려온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나도 너흴 만나서 다행이야.”

윤성이 대답했다.

이런 애송이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임무들을 처리하면서 행성들을 돌았겠는가.

윤성이 자리에 기대어 누우며 메시지창을 올려다보았다.

<임무 : ALK 사막에 꽃 피우기.>

이것은 튜토리얼의 최종 목표다.

완수하기 위해선 이 일대의 소행성들을 모두 돌면서 서브 임무들을 전부 처리해야 한다.

예를 들면 ALK 행성의 모래 괴물을 처치한다거나, GLU 행성에서 마정석 더미를 멸종시킨다거나 하는 것이다.

VOM까지 오는 동안 윤성은 엔의 우주선을 타고 몇 개의 혹성들을 돌았다.

처음 모래 괴물을 처치한 이후부터는 고득점을 얻어내기가 어렵다. GLU에서는 겨우 6점.

‘클리앙 때문이겠지.’

그도 똑같은 임무들을 수행하고 있고, 어떤 것은 윤성보다 더 빠르게 처리해내 윤성이 가져갈 점수의 상당 부분을 빼앗은 것이다.

모래 괴물을 처치할 때는 클리앙이 간섭하는 것 없이 윤성이 혼자서 그 괴물을 처리했었다.

100점. 이게 만약 하나의 임무에서 얻을 수 있는 총점이라면, 다른 행성들에서 윤성이 얻은 점수를 100에서 빼면 클리앙이 얻은 점수가 될 것이다.

그 총합을 계산해 보면.

‘클리앙이 약간 높군.’

VOM 행성에서의 임무는 뭔지 볼까?

<1억 년 된 플래닛 트리를 뿌리 뽑아 파괴하시오.>

“무슨 생각하세요?”

엔이 작은 가디건 하나를 걸쳐 입으며 윤성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윤성의 옆자리에 슬쩍 앉았다.

“플래닛 트리라는 거 혹시 알아?”

윤성이 물었다.

“역시!”

갑자기 엔이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실력 좋고 경험 많은 전사님이라 그걸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어?”

“예상하신 대로 VOM 행성에는 플래닛 트리가 있어요. 1억 년 정도 되었을 거예요.”

“흐음.”

“그거 알아요? 플래닛 트리는 너무 거대해서 지하로 내린 뿌리가 행성의 핵을 모두 관통해 버리면, 어느 순간 행성이 쪼개진대요.”

이런 미친.

그런 거였군.

윤성이 침을 꼴깍 삼키며 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VOM 행성에 뿌리내린 플래닛 트리는 아직 행성을 쪼개진 않았다고 알고 있어요. 1억 년 넘게 그래왔으니까, 우리가 거기서 활동하는 동안 갑자기 행성이 쪼개지지도 않겠죠.”

“쪼개지면 위험해질까?”

“그럼요! 지진이라든지 그런 레벨이 아니에요. 행성의 모든 화산이 분화할 거고, 내핵에서부터 올라오는 지열이 갈라진 틈으로 분출할 텐데요. 당신 같은 분이 그게 위험한지를 모를…….”

엔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감동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행성이 쪼개지더라도 그쯤은 당신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

“뭐?”

“그렇군요. 그 정도는 염두에 둘 필요 없지 않냐, 이런 의미로 물으신 거죠?”

“아니 뭐, 그렇다기보단…….”

“역시!”

엔이 박수를 짝 치며 일어났다.

“제가 사람을 정확히 봤어요. 당신을 모셔오길 정말, 정말, 정말 잘했어요.”

윤성은 피식 웃었다.

“맘대로 생각해. 근데 이렇게 레이드를 돌아서 마정석을 모으고. 그걸로 뭘 할 거야?”

윤성이 물었다.

“네 탐사대가 지금까지 모은 것들만 해도 꽤 부유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뇨. 이걸로는 모자라요.”

엔이 확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꺼삐딴을 재건하려면 돈이 아무리 있어도 모자라죠.”

윤성의 표정이 굳었다.

“뭘 한다고?”

“꺼삐딴 재건이요.”

“……. 하지만 꺼삐딴의 핵심 인물들이 전멸했는데.”

“살아 있는 사람도 있어요. 젊은 간부 클리앙.”

“클리앙을 앞세워서 꺼삐딴을 재건하겠다?”

“그 사람 정도면 옌뚜르의 뒤를 이을 만해요. 물론 저는 만나 본 적은 없지만. 팬이거든요.”

“클리앙을 잘 알고 있나?”

“저는 무관학교에 진학하진 않았지만, 옛날부터 전사들을 동경해 왔어요. 그중에서도 최연소 졸업자, 최연소 에이스 후보, 최연소 꺼삐딴 간부. 클리앙 전사님을 오랫동안 동경해왔죠.”

엔이 약간 수줍어하며 순진하게 웃었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꺼삐딴을 다시 세울 겁니다. 클리앙 전사님이 대표가 되고, 저는 음……. 비서나 할까요.”

“진심인가?”

“그럼요. 제가 어려서 허무맹랑하게 들리시나요?”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길드를 세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후후, 사실 그렇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어요. 꺼삐딴 같은 초대형 길드를 너 같은 어린애가 어떻게 세우겠냐고.”

엔이 말했다.

“물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나대는 건 객기처럼 보일 수 있죠. 하지만 저는 그걸 야망이라고 불러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걸 향해 도전하는 게 왜 나쁘겠어요.”

“그렇긴 하지.”

“자신의 능력이나 처지는 별로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죠. 차고에 회사를 차린 스타트업 창업자와 재벌 2세는 출발선이 다를 뿐, 똑같은 레일을 달리는 거예요. 중요한 건 그거죠. 어디서 뛰고 있는가. 무엇을 향해 뛰고 있는가.”

“…….”

“저는 사람의 한계는 스스로 결정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엔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머쓱해했다.

“밤이라서 제가 너무 감성적이 되었나요? 좀 민망하네요.”

“아냐. 잘 들었어.”

윤성이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떠오르는군.”

“아는 사람?”

“그 사람은 돈이고 힘이고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자기 삶에 뚜렷한 가이드라인 같은 게 있었거든.”

윤성이 말했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어긋나는 게 나타나면 전심전력으로 덤벼들어서 끝을 보곤 했지. 그래서 상사도 박살 내고 조직도 박살 내고.”

“와.”

“어쩌다 보니 지금은 엄청나게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 비슷한 게 됐어. 너도 성공할 거야.”

“대표 비슷한 거요?”

“대표는 따로 있거든. 바지사장 같은 거지만.”

“아무튼 대단하네요. 그분도 롬펠 출신인가요?”

“뭐, 비슷해. 어느 소행성의 소수 민족 출신이야. 말해줘도 모를걸.”

“그렇군요. 재밌는 얘기 잘 들었어요.”

엔이 빙긋 웃었다.

“이제 다시 자러 가야겠어요. 내일 VOM에 도착할 테니까. 컨디션 조절해야죠. 당신도 어서 자요.”

“알았어.”

***

VOM 행성의 외견은 땅에서 나무가 자랐다기보다 어떤 거대한 외계 생물체가 행성을 집어삼키는 도중처럼 보였다.

그것은 어떻게 보아도 나무 같은 게 아니었다. 항성에서 오는 태양 빛을 외기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직통으로 받아 광합성을 한다.

당연히 행성만큼 큰 나무를 먹여 살릴 에너지원이 일반적인 대지에 있을 리가 없다.

VOM의 내핵에는 강력한 마력이 잠재해 있고, 플래닛 트리는 그것을 빨아먹는 것이다.

‘근데 저걸 대체 어떻게 뽑으라는 거야?’

착지하기 위해 행성을 향해 다가가는 우주선.

창밖을 내다보며 윤성이 고민에 잠겨 있었다.

“엔. 여기엔 어떤 마수들이 나오지?”

윌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글쎄요. 정보가 없어요. 하지만 플래닛 트리가 맺는 열매에선 원래 소형 플래닛 트리들이 자라거든요. 그것들이 위협이 될 수 있겠네요.”

“소형 플래닛 트리?”

윤성이 엔을 돌아보았다.

“툴바족만 한 크기의, 두 발로 걸어 다니는 플래닛 트리인데 굉장히 위협적이에요. 하지만 마정석도 꽤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 모체 나무를 뽑아버릴 방법은 없을까?”

윤성의 질문에 탐사대원들 모두가 벙찐 표정이 되었다.

“아, 그 방법이 궁금하신 거군.”

전사 중 하나가 말했다.

“행성을 이렇게 한 손으로 잡고 나무를 쑥 뽑으면 돼. 쉽지?”

“…….”

“어라?”

엔이 갑자기 마력 반응기를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행성 안에 강력한 마력 소유자가 탐지되는데요.”

“플래닛 트리겠지.”

윌슨이 말했다.

“아니에요. 플래닛 트리들보다 수십 배는 강한데. 트리들을 빠르게 처치하고 있어요.”

“빨리 내려가자.”

윤성이 말했다.

“아. 잠깐만.”

그가 엔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 여자가 클리앙의 팬이랬지. 클리앙 얼굴을 마주치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그리고 클리앙 역시 윤성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다.

“내가 먼저 내려가지.”

윤성이 우주선의 비상문을 열고 출구 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 거예요?”

놀란 엔이 물었다.

“여긴 혹성의 대기권이니 날 수 있어.”

윤성이 닫힘 버튼을 눌러 우주선의 내부와 엔트리 사이의 도어를 내렸다.

창문을 통해 안쪽에서 경악한 표정의 엔이 보였다.

윤성은 엔트리 사출 도어를 열었다.

<수호자의 보호 발동!>

<비행 발동!>

콰아아앙!

엔트리를 박차고 튀어나간 윤성의 몸이 빠르게 급선회하며 혹성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플래닛 트리를 뽑아버리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클리앙 같은 위협의 싹을 뽑아버릴 순 있다.

쿠구구구구!

VOM 혹성의 대기권에 진입하자 귓가에 바람 소리가 괴기스럽게 울렸다.

수호자의 보호막 바깥쪽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윤성의 추락은 옛날 백마 길드 앞에서 했던 유성 랜딩과 흡사하게 보였다.

타겟의 마력이 느껴진다.

이 행성은 내핵까지 뿌리내린 플래닛 트리가 압도적인 마력을 뿜어내고 있지만 그 식물성 마력의 파장은 매우 낮고 고요하다.

그 안에 섞여 있는 클리앙의 마력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윤성이 눈을 부릅떴다.

이제는 그의 얼굴도 보인다.

윤성 쪽을 올려다보는 당황한 표정.

윤성은 한 손을 뻗고 나머지 한 팔을 사선으로 펼쳤다.

콰아아앙!

<최종 속력=72,288㎧, 낙하 거리= 620,899.12m, 낙하 시간=12.74s>

<랜딩 성공!>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620,899.12점. 남은 시간 86,40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핀 쓰러스트, 남은 시간 86,400초.>

윤성이 클리앙을 향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둠 오브 루인 발동!>

순간이동석의 발동을 막는 차단 마법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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