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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36화 (236/260)

# 236

레벨업 속도는 9.8m/s^2 236화

온갖 기계에서 사용된 후 폐기된 마정석의 찌꺼기들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 자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지구 같은 조그만 행성의 주민들은 그런 것을 본 적 없겠지만 콜로라의 전사들에게는 제법 익숙하다.

전사들은 그것을 ‘마정석 더미’라고 부른다. 마력을 동력 삼아 느릿느릿 움직이며 폭력을 휘두르는 초자연적 존재들.

그들의 모체인 마정석의 마력은 물론 대부분 연료로 소모되었기 때문에, 찌꺼기에 남은 마력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 더미들이 전사들에게 별 위협이 되진 못한다.

1그램당 0.01sY.

너무 값이 낮아서 지구에 있는 측정기로는 거의 잡히지도 않는다. 오차 범위 이내니까.

그러나 소행성 GLU는 약 천 년 동안 마정석 폐기물들이 버려진 곳이다.

이곳의 마정석 찌꺼기들은 서로를 흡수해 조금씩 덩치를 불려갔다.

그래 봤자 1그램당 0.01sY.

하지만 그것들이 톤 단위라면?

간단히 계산해 봐도 이미 SS급 게이트의 마력에 준한다.

문제는 그것이 ‘게이트’가 아니라 ‘하나의 마수’라는 것.

단일 개체에 누적된 막대한 마력은 전사들의 능력치로 환산하면 꺼삐딴에서도 간부급의 전투력이다.

때문에 한때는 GLU 행성의 더미 사냥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최상급 전사들이 팀을 짜서 톤 단위의 더미들을 사냥하고 거대하고 순수한 마정석을 수집했던 것이다.

이 사업이 철폐된 이유는 물론 효율성이 떨어져서다.

더미는 너무 강했고, 많은 전사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사냥해서 얻은 마정석은 그러한 손실을 보상해 줄 정도로 뛰어나진 않았다.

지구 같은 행성을 생각해 보면 그보다 훨씬 약한 녀석들을 상대로 협상하거나, 그들을 약탈하여 어마어마한 마정석을 단숨에 획득할 수 있으니까.

이제 GLU 혹성의 더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마수들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전사가 여태까진 딱 두 명 있었다.

익시튬과 옌뚜르.

그들은 마정석 더미를 사냥 대상이자 레벨 업의 기회로 이해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과 동일한 의견을 가진 젊은 전사 한 명이 GLU를 헤매고 있었다.

<스페이스 스퀴즈 발동!>

클리앙의 스킬이 마정석 더미에게 적중했다. 2.7톤의 더미다.

마력만 따지면 옌뚜르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그들에겐 지능이 없고 전투 센스도 없다.

다만 무지막지한 맷집 때문에 수없이 공격을 퍼부어야만 한다.

클리앙이 첫 번째 더미를 쓰러뜨리는 데는 무려 반나절이 걸렸다.

“27분.”

클리앙이 시계를 보며 호흡을 다스렸다.

마력 모체가 박살 난 더미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 중심부에, 인근 지역 더미들의 마력을 모조리 끌어모았을 거대하고 순수한 마정석이 보였다.

“SS급 이상이겠군.”

클리앙은 마정석을 빼내어 우드득 깨물었다.

‘차원 이동을 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 전까지는 능력치를 분배하는 것도 괜찮고 마정석을 씹어 삼켜 마력 수준을 높이는 것도 상관없다.

단기간에 최대한의 성장을 이루려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만 한다.

“크으…….”

마정석의 독성 때문에 피부에 울긋불긋 정맥이 곤두선다.

클리앙은 스킬을 발동해 몸에 오르는 알러지 반응을 잡고 독성을 땀으로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정석을 소화시키는 것도 점차로 단련되고 있다.

옛날엔 SS급 마정석을 먹으면 다섯 시간 이상 스킬을 쓰며 해독에 집중해야 했지만 이제는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차곡차곡 힘이 쌓이고 있다.

클리앙은 상태창을 열었다.

<클리앙>

<칭호 : 꺼삐딴 간부>

<힘 : 276,211, 순발력 : 301,367 감각 능력 : 192,200, 지능 : 177,461>

<버프 : 없음>

<디버프 : 없음>

<분배 가능한 능력치 : 0>

<스킬 : 마안, 해독, 핀 쓰러스트, 스페이스 스퀴즈, 피어스, 블레이드 휩, 마력 공명, 매직 익스플로전.>

각 능력치들이 1,000점 이상 올랐다.

“계속 이런 속도라면 좋겠지만.”

이제 GLU에 더미는 둘밖에 남지 않았다.

행성 마력 반응기를 돌려보았을 때 나타났던 시그널의 개수가 총 17개였다. 모두 톤 단위의 더미였고 하나는 900㎏이었던가.

“남은 둘도 톤 단위였으면 좋겠는데.”

해독에 집중하면서 클리앙은 마력 반응기를 켰다.

“뭐야?”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그널이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뭐, 뭔가……. 잘못됐다.”

클리앙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대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이동속도가 초속 수 킬로미터에 이른다.

적이라면 싸워서 승산이 없다. 지금은 해독 중이라 전투를 할 수가 없으니까.

클리앙은 황급히 마력 수준을 낮추며 숨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아직 자아를 갖추지 못한 거대한 마정석 찌꺼기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휘발 중인, 마력 탄내가 역겹다.

클리앙은 쓰레기 더미들 사이로 바깥을 주시하고 있었다.

쿠웅!

이윽고 현장에 무언가가 뛰어내렸다.

‘강윤성!’

클리앙의 눈이 동그래졌다.

얼굴은 달라졌지만 확실하다. 저 정도의 전투력과 저런 타입의 마력 파장은 강윤성뿐이다.

무엇보다 X등급 튜토리얼이 엊그제 이미 알려주지 않았던가.

<익시튬이 이미 X등급이므로 빈자리는 하나뿐입니다.>

아직도 그 메시지창이 머리 위에 떠 있다.

‘더미 둘은 저 녀석이 이미 치워 버린 건가?’

클리앙이 주먹을 꽉 쥐며 강윤성을 쏘아보았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저놈의 목을 잘라 버리고 싶다.

하지만 안 된다.

해독 중인 클리앙의 전투력은 강윤성보다 더 낮다. 어쩌면 최상의 컨디션이어도 상대가 안 될지도 모른다.

“이미 더미가 죽었잖아?”

윤성이 황당한 듯 더미의 시체를 발로 툭 찼다.

“어이!”

그가 소리를 빽 질렀다.

클리앙은 그제야 눈치를 챘는데, 하늘에 작은 우주선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마력 리프트를 타고 엔이 내려왔다.

“벌써 처치했어요? 엄청나네.”

“아냐. 내가 왔을 때 이미 죽어 있었어.”

“그래요?”

“마정석도 없네.”

윤성이 더미의 사체를 뒤지며 말했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분명 여기서 강한 시그널이 났었는데. 시그널 다시 확인해 봐.”

이곳은 마정석 찌꺼기들 때문에 행성 전반의 마력 파장대가 너무 불안정해서 윤성의 감각 능력으로도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려웠다.

이는 오히려 감각 능력이 너무 높은 탓이기도 하다.

“음…….”

엔은 마력 반응기를 켜고 주위를 탐지했다.

“저쪽.”

그녀가 마정석 찌꺼기들이 가득 쌓인 쓰레기 더미를 가리켰다.

“한 번 볼까.”

윤성은 성큼성큼 다가가 쓰레기 더미를 와락 들추어냈다.

쉬이이익.

찢어진 펌프에서 마력 연기가 새어 나왔다.

아무것도 없다.

‘이상한데…….’

윤성은 쓰레기 더미 빈자리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뭐가 있어요?”

뒤에서 엔이 다가오며 물었다.

윤성이 무언가를 집어 들고 있었다.

“뭐예요, 그게?”

“아무것도 아냐.”

윤성이 물건을 손에 꽉 쥐었다.

그것은 꺼삐딴의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였다.

‘클리앙……!’

그가 X등급 튜토리얼을 돌고 있다.

***

해독 도중에 순간이동석을 발동하는 것은 확실히 미친 짓이다.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리바운드…….”

행성 VOM의 황무지.

클리앙이 풀썩 쓰러졌다.

마력의 흐름이 꼬여 버렸다. 내장을 누군가 걸레 짜듯 쥐고 비트는 기분.

끔찍한 고통에 클리앙이 바닥을 긁었다. 손톱이 부러져 피가 흘렀다.

순간이동 직전에 이쪽으로 다가오던 강윤성의 얼굴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를 코앞에 두고도 처치하지 못했다.

쾅!

클리앙이 땅바닥을 내리쳤다.

“젠장…….”

그는 이를 뿌득 갈더니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전 더미를 처치해서 얻었던 것이다. 가까이에 더미가 또 있어서 사냥을 먼저 마치고 해독하기 위해 바로 흡수하지 않았던 것.

와직!

클리앙이 힘껏 마정석을 깨물었다. 쓴 향이 입안 가득 번진다.

“쿨럭!”

한 움큼의 피가 올라왔다. 코에서도 피가 흐른다.

<해독 발동!>

클리앙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눈앞이 희미하다.

와직!

그러나 클리앙은 다시 마정석을 씹었다. 입안에 퍼진 마력의 독성이 너무 강해서 이가 빠져 버릴 듯한 느낌이다.

꿀꺽.

마치 운동선수들이 체중을 늘리기 위해 고단백질, 고칼로리 식사를 하루에 일곱 번씩 하는 것처럼, 클리앙은 자신의 생살을 씹는 기분으로 마정석을 삼켰다.

‘익시튬. 난 당신이 강윤성을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독성을 억누르면서 클리앙이 생각했다.

‘힘이나 지혜. 그런 걸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거든요. 당신도 대표님도 강윤성에게 지는 이유는 하나뿐이야.’

클리앙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에 대한 증오가 없거든. 나와 달리.”

클리앙의 눈이 붉은빛으로 불타올랐다.

***

“GLU에서는 결국 별 소득이 없네.”

식사를 하면서 탐사대원 윌슨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SS급 마정석을 두 개나 얻었는걸.”

엔이 환하게 웃으며 마정석을 보였다.

“그 사람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그 정도 실력자가 왜 지구에 가지 않았지? 난 이해가 안 돼. 불법 이민자인 게 무슨 상관이야? 그 실력이면 그냥 본대 입사 지원해도 문 부수고 들어갔을 텐데.”

“뭐 사정이 있겠지.”

“그리고 그 사람 하늘 날아다니는 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저런 마법 듣도 보도 못했다고. 수상해, 정말.”

“지구에 있는 인간 중에 비행을 할 수 있는 놈이 있대. 천계 관리자인가, 뭔가.”

전사 중 하나가 말했다.

“그래서 저놈이 마제스티엘이다?”

“마제스티엘은 죽었어. 무식한 것들아. 뉴스도 안 보냐?”

“꺼삐딴 멸망시킨 놈. 그놈 이름이 뭐랬지? 지구 관리자? 아니, 수호자랬나?”

“강윤성?”

“맞아, 강윤성. 그놈이 콜로라 성인으로 폴리모프할 수 있댔는데.”

“하지만 강윤성은 비행 같은 거 못해. 이건 꺼삐딴 오피셜이야.”

“그 꺼삐딴이 망했잖아.”

“아! 난 관심 없어. 재미없는 얘기 그만들 하고 마정석 어디다 팔 지나 생각해 보라고. 꺼삐딴 멸망시킨 놈은 익시튬이 알아서 하겠지.”

윌슨이 핀잔을 줬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저 녀석이 강윤성이면 여기서 우리랑 노닥거리고 있겠냐. 익시튬이 자기네 집 마당까지 들어가 있는데.”

전사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엔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수수께끼의 전사, 금수박밀러가 또 어마어마한 속도로 하늘 저 높이에서 지상으로 수직 낙하하고 있었다.

“저 짓을 대체 왜 매일 하는 걸까?”

“정신병자인가 보지.”

전사들이 수군거렸다.

“그만들 험담해요.”

엔이 그들의 대화를 잘랐다.

“어찌 되었든 우리 탐사대원이고, 사실 저분 아니었으면 우리는 아직도 사막에서 땅이나 파고 있었을 거예요.”

“그건 인정해.”

윌슨이 말했다.

“정확히는 사막에서 모래 괴물이 나왔을 때 우리 다 죽었겠지. 근데 저 녀석이 저 정도로 강한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덕분에 내 살다 살다 GLU를 다 와보고.”

“아무튼 우리는 금수박밀러 씨 말대로 소행성들 계속 돌아주기만 하면 각 행성마다 고급 마정석 모아준다니까 좋긴 한데.”

“다음 행선지는 어디에요?”

“소행성 VOM.”

엔이 대답했다.

창밖에선 쿠우웅! 하고 윤성이 지상에 착지하는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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