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레벨업 속도는 9.8m/s^2 235화
75. 원정 레벨업
콜로라 행성 까삐앙.
콜로라 성인으로 변신한 윤성은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랜더의 전투복을 이용해 디스가이징 스킬을 발동했다.
콜로라 성인들의 눈에 가장 띄지 않을 것 같은 흔한 의복으로 겉모습을 꾸몄다.
하지만 이걸로는 아직 불안하다.
콜로라 성인 강윤성의 얼굴은 이곳에서도 잘 알려져 있을 테니까.
한 번에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윤성은 도시의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랜더의 전투복 발동!>
<은신 발동!>
숨어서 오랫동안 끈기 있게 기다리자 이윽고 골목 양아치 같은 녀석 둘이 침을 찍찍 뱉으며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콜로라에도 이런 놈들이 있었군.
혹시 이런 식의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수를 써야 했겠지만.
<빛의 탄환 발동!>
퓽!
윤성이 발사한 탄환에 한 명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나머지 하나가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채 끝나기도 전.
<용조 발동!>
윤성의 손가락이 그의 심장을 부숴버렸다.
윤성은 시체를 구석진 곳에 밀어다 놓고, 둘 중 하나의 얼굴을 빌렸다.
<폴리모프 발동!>
***
윤성은 도심으로 나가 상황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수호자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비즈니스 구역의 거대 빌딩들에서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 대한 선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콜로라 본대가 오늘 출정을 마쳤습니다. 소행성 MEK에서 군비를 증강하고 우주선의 연료 보급을 하던 본대는 오늘 오후 8시경, MEK을 출발하여 지구를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윤성은 방송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몇몇 콜로라 시민들이 주위에 서거나 앉은 채 방송을 듣고 있었다.
-우주선은 현재 시속 1만㎞로 비행하여 MEK의 자전축 40도 방향에 생성된 자연 블랙홀을 향하고 있습니다.
‘블랙홀?’
윤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40만㎞ 떨어진 곳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우주선이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는 앞으로 72액터스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72액터스.
콜로라의 시간 단위다. 차원 이동은 시간 소모가 없으니 이곳에서 72액터스만큼의 시간이 흐른다면 지구에서는…….
“두 달 반.”
우주선이 블랙홀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블랙홀을 탄 후 지구까지 이동하는 시간의 합이다.
한국에선 봄이 오기 직전이겠군.
미안하지만 네놈들 생각대로는 안 될 거다.
<차원 통신 발동!>
<콜로라의 침공은 두 달 반 후.>
윤성의 차원 통신이 관리자들에게 날아갔다.
<통신 받았습니다.>
에어포스의 답신이 왔다.
<준비해 두겠습니다. 주인님.>
<귀찮으니 빨리 오라고 해라. 갈가리 찢어서 그들의 해골로 내 왕좌를 장식할 테니.>
<하등한 것들 몇이 와도 두렵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
<용계는 이미 준비를 마쳤다.>
<엘리지아로 만들어도 괜찮지?>
관리자들의 답신이 우르르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바, 받았어요. 차, 차희 비서님한테 전해드리겠습니다.>
<차희한테 미국 대통령한테도 전해달라고 얘기해 주세요.>
윤성은 다니엘에게 메시지를 한 번 더 보낸 후, 도심을 빠져나가 민간 우주 공항 센터로 이동했다.
거대한 로켓들이 줄지어 서있고 수많은 콜로라 성인들이 여권과 캐리어를 들고 탑승 수속을 밟고 있었다.
우주선을 타는 방법은 좀 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윤성이 이곳에 온 이유는 일단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인포메이션 데스크 근처에서 가이드 책자들을 잔뜩 챙긴 윤성은 가까운 벤치로 이동해 눌러앉았다.
콜로라가 이 인근에서 지배하는 혹성들은 총 47개.
그 중 15개는 개발 대상 구역이며 어떤 것들은 위험하다.
여행 제한 구역.
‘이 쪽을 뒤져보는 게 낫겠군. 첫 장에 있는 것은…….’
롬펠.
옛날 강윤성이 롬펠 대륙 출신의 이민자 행세를 했었다.
당시에 ‘대륙’이라고 불렀던 것은 콜로라 언어에서 대륙과 혹성이 사실상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롬펠은 대륙이면서 까삐앙과 분리된 다른 행성이다.
같은 논리로 삐츄아 대륙도 별개의 위성인데, 삐츄아 쪽은 지구인에게도 좀 더 의미가 직관적이다.
그곳은 지하수를 제외하면 육상에서는 발견할 수 있는 물웅덩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실제로 하나의 거대한 땅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롬펠 대륙은 지금은 많이 안전해졌지만 여전히 사람 사는 곳을 벗어나면 온갖 종류의 마물이 가득하다.
특히 챰실정 강 인근의 충설과 같은 벌레들은 꽤 치명적이다.
‘롬펠로 갈까?’
윤성은 혹성의 여행 제한 등급을 확인해 보았다.
B급.
즉, 롬펠에 가고자 하는 이들은 B급 전사 수준의 전투력들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성은 책자를 마구 넘기면서 다른 혹성들을 뒤져 보았다.
B급. A급. C급. B급. S급. B급. A급. A급…….
“제일 강해 보이는 게 S급인가. 이래선 안 되겠는데.”
윤성이 고민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안녕하세요?”
젊은 콜로라 여성이다.
“안녕하세요.”
윤성이 심드렁한 얼굴로 마주 인사하자, 그는 허락도 구하지 않고 옆자리에 앉았다.
“여행 제한 구역을 보고 계시네요?”
“네.”
“전사시죠?”
그가 물었다.
지구인이라고 해서 모두 헌터가 아니듯, 콜로라 성인 중에서도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그들 중 ‘전사’라고 불릴 만한 이들은 무관학교에서 공부한 소수로 제한된다.
“맞습니다.”
윤성이 대답했다.
“상당히 강하신 것 같은데, 더 성장하려고 사냥할 만한 곳을 찾으시는 건가요?”
“뭐, 그렇다 할 수 있죠.”
“그럼 어떻습니까? 저랑 같이 미개척지로 가보시는 건?”
“미개척지요?”
“X등급 콜로라 전사, 익시튬 님이 옛날에 훈련하셨던 곳이거든요.”
“…….”
뜻밖의 이름에 윤성은 잠깐 말을 삼켰다. 섣부른 대답보다는 침묵을 내세워서 저쪽의 정보를 좀 더 얻어낼 생각이다.
윤성이 가만히 있자 여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제 이름은 엔.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가 방긋 웃었다.
“익시튬 님이 훈련했던 혹성에는 온갖 보물과 마정석이 가득하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탐사대를 꾸렸는데 긴급 상황을 해결해 줄 메인 전투원이 없어서.”
“그래서 나한테 그걸 부탁한다?”
“네.”
윤성은 고민에 잠겼다.
이 여자는 분명 윤성의 마력을 읽고 다가온 것이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윤성의 전투력은 쯔위민과 흡사한 정도로, 본대가 모두 빠져나간 지금 콜로라 혹성에서는 손에 꼽히는 강자일 것이다.
그런 레벨이라는 것을 정확히 측정하진 못했더라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가늠은 했겠지.
그리고 여행 제한 구역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접근한 거다.
꽤 절박한 표정.
어쩌면 신분증이 없어도 이 녀석 통해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혹시 개인 우주선이 있나?”
“개인 우주선이요?”
“아니, 일단 네 팀원들부터 만나보지. 다만 사람들 이목이 안 끌리는 곳으로 해줘.”
엔이 환하게 웃었다.
“좋아요! 따라오세요.”
그녀는 윤성을 데리고 우주 공항 센터를 빠져나갔다. 차를 타고 약 40분 정도를 달려 도심을 벗어나자 꽤 한적한 교외 공간이 나타났다.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숲 너머에 엔의 우주선과 그녀의 탐사대원들이 머물고 있었다.
사실 팀에 대해서 얘길 하자면 솔직한 감상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콜로라 최강의 길드였던 꺼삐딴이나 일곱 차원 연합을 이끌던 윤성이 보기에는 정말 애들 장난 같은 그룹이었다.
윤성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전투원 셋은 신차민과 비슷한 레벨이었고, 엔지니어 하나는 다니엘보다도 훨씬 실력이 떨어지는 듯했으며, 프로젝트 리더인 엔 역시 풋내기다.
하지만 일단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만 있으면 된다.
“자기소개부터 해봐.”
전사 중 하나가 말했다. 꽤 건방진 말투다. 윤성은 그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상대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게 느껴졌다.
윤성의 입가에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내 이름은 금수박밀러. 롬펠에서 온 전사다.”
윤성이 말했다.
“롬펠?”
전사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불법 이민자라 신원 증명은 어렵다.”
전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신 실력 증명은 확실하게 할 수 있지.”
윤성이 말했다.
“불안하면 날 쓰지 않아도 좋다. 여기서 작별해도 괜찮아. 하지만 날 쓴다면 안전한 레이드를 보장해 주지.”
“그걸 어떻게 알지?”
전사 중 하나가 윤성에게 다가왔다.
“네 실력을 입증해봐.”
“어떻게 보여주면 좋을까?”
“마력을 끌어올려 봐.”
“보면 놀란다. 이 도시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싶지 않아. 난 불법 이민자니까.”
“허세는.”
전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마력 좀 끌어올린다고 도심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쓸 정도로 네 마력 수준이 대단할 것 같으면 네가 여기에 안 있지. 본대에서 격전지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겠지.”
“방금 불법 이민자라고 내 입으로 설명했던 것 같은데 혹시 까삐앙과 롬펠 사이의 언어 장벽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가?”
“…….”
전사는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이 되더니 윤성을 쏘아보았다.
“그분 실력 엄청날 거예요.”
엔이 끼어들었다.
“제가 전투력은 떨어지지만 기감은 꽤 좋잖아요? 저분 실력 적어도 S급이에요.”
그 말은 좀 효과가 있었다. 전사들이 약간 당황한 표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난 못 믿겠어. 뭐든 좀 보여줘 봐.”
우주선의 날개 옆에 앉아 있던 전사가 클로를 세우며 일어났다.
“어때? 이걸 피해 보는 건?”
그가 윤성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며 단검을 내질렀다.
<핀 쓰러스트 발동!>
‘비슷한 스킬을 어디서 본 것 같군.’
윤성은 상대의 공격을 차분히 읽었다. 옛날 베아트리체가 했던 것과 비슷하다.
다만 그때와 비교하면 너무 느리고 약하다. 권총과 다트 정도의 차이랄까.
윤성은 몸을 완전히 돌려서 공격을 회피한 다음, 클로의 날이 향하는 쪽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쩡!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클로가 부러져 튕겨 나갔다.
“굳이 피할 필요는 없었지만, 원하는 게 그것인 것 같아서.”
이제는 남자의 옆에 서게 된 윤성이 그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내가 들어가는 데 그럼 불만 없는 거지?”
윤성이 웃으며 말했다.
***
젊은 익시튬은 콜로라 측 수호자가 잠재해 준 마력을 각성시키기 위해 혹성 ALK를 탐사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
하지만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콜로라 성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공간.
그곳은 모래밖에 없어서 그 어떤 자원도 얻을 수 없다는 폐허.
그 땅에서 무언가를 얻어낸 이는 익시튬과 옌뚜르뿐이라는 전설이, 그 두 사람을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서만 비밀처럼 전해지고 있다.
“사막이잖아?”
ALK 혹성에 도착한 윤성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부터 저기 끝까지 모래밖에 없다. 풀 한 포기 없고 물웅덩이 하나 없다.
“대체 여기서 뭘 찾는다는 거야?”
“우리도 잘 모르지만 이곳을 잘 뒤지다 보면 엄청난 보물을 얻을 수 있대요.”
엔이 설명했다.
“무너진 꺼삐딴 길드의 보안 정보들 사이에서 나온 거예요. 아마 확실할 걸요.”
“그래서, 뭐, 모래부터 파자고?”
윤성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나쁘진 않고.”
전사들이 우주선에서 삽을 하나씩 꺼냈다.
그러고는 정말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실화인가? 미친놈들 아냐 이거?’
윤성은 혀를 쯧 차며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어디 가세요?”
엔이 물었다.
“한번 둘러보고 올게.”
걸음걸음마다 발이 푹푹 빠진다. 이곳의 태양은 두 개고, 해가 모래를 지글지글 태워서 뜨겁다.
띠링.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뭐야?”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 있었다.
<옌뚜르가 죽었습니다.>
<콜로라 행성 X등급 튜토리얼에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임무 발생! ‘ALK 사막에 꽃 피우기.’>
<플레이어만큼 강력한 전사가 가까운 위치에 또 있습니다.>
<익시튬이 이미 X등급이므로 빈자리는 하나뿐입니다.>
‘클리앙!’
윤성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놈이 여기에 있는 건가?
X등급 튜토리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걸 클리앙도 하고 있는 걸까?